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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6

    이튿날부터 우리는 스탁핀으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전날 끝마치지 못했던 타 용병단들과의 가벼운 협의사항은 새벽에 손쉽게 마무리했다.

     

     

    부단장들은 마지막 날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이로써 귀찮은 일은 마무리 되었다.

     

    길었던 용병 회담의 쓸모없던 기싸움도 끝난다.

     

    이제는 고향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하아…하아…”

     

    나는 격한 훈련으로 쓰러져버린 대원들을 바라보았다.

     

    내 행동덕에 대원들이 해이해진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런만큼 오늘은 더욱 특별히 힘을 썼고, 다들 잘 따라주며 굴렀다.

     

     

    그렇게 나는 네르가 목에 남긴 상처를 매만지며 훈련을 끝마친다.

     

     

    “부단장…하아…진짜…하아…오늘까지도 이럴줄은….”

     

     

    숀이 격한 훈련에 불평하며 중얼대자, 나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지난날의 격투로 인해 찌뿌둥한 몸을 풀었다.

     

     

    그렇게 마무리 짓던 중, 얼굴의 옆면으로 한 시선이 느껴진다.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아르윈이 살짝 높은 언덕 위에서 쪼그려 앉아, 턱을 괴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

     

    귀족인 그녀였지만…바뀌어버린 옷차림과 배경이 문제였을까.

     

     

    순박한 시골처녀 같은 분위기가 풍겨나온다.

     

    유일하게 그녀의 위엄을 지키는 건, 변함없는 그 차가운 표정이었다.

     

    어쩐지 친밀감이 보다 느껴진다.

     

     

    “…”

     

     

    우리를 지켜보던 아르윈의 시선을 알아차린 다른 몇몇 대원들도 나에게 말했다.

     

     

    “…부단장님, 사모님이 지켜보십니다.”

     

     

    하나 둘 나와 아르윈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나는 슬쩍 미소를 지으며 아르윈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아르윈은 내 반응을 알아차리고는 미묘한 반응을 보였다.

     

     

    원체 커다란 감정표현이 없는 그녀라지만 오늘은 더했다.

     

     

    턱을 받치던 손을 살짝만 들어, 내 인사에 무심히 답한다.

     

    아무래도 관심 없다는 표현 같았다.

     

     

    “…”

     

     

    딱히 그에 대해 불평은 없었지만…그 변화에 의아함이 따르긴 한다.

     

    무엇보다 그녀의 기분이 그리 좋지 않은 것 같아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그걸 체감한 것은 나뿐만이 아닌 듯 했다.

     

     

    숨을 바로잡은 바란이 옆에서 내게 말한다.

     

    “…기분이 그리 좋아 보이시지는 않으십니다.”

     

    “…”

     

    “싸우셨어요?”

     

    “…”

     

    나도 바란을 따라 의아해하던 중, 아르윈이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린다.

     

    그리고는 언덕 너머로 사라졌다.

     

     

    나는 뺨에 난 상처를 긁적이며, 대원들에게 말했다.

     

    “씻고, 돌아갈 준비 해.”

     

     

     

    ****

     

     

    아르윈은 베르그를 떠나 야영지에 돌아왔다.

     

     

    그렇게 앉아있자니, 야영지를 배회하는 네르를 발견한다.

     

    네르도 어느새 이 용병단에 익숙해진건지, 그녀는 크게 불편함 점이 없어보였다.

     

     

    외려 인사를 건네오는 용병들에게 화답하며, 용병단의 일원처럼 행동했다.

     

    간혹 단아한 미소를 지은채 이곳저곳 두리번대는 것은 덤이었다.

     

    예전같았다면 저런 자연스러운 미소는 짓지 않았을 거다.

     

     

    현 상황을 크게 힘들어하는 것 같지는 않아 다행이었지만…왜일까.

     

     

    오늘따라 웃는 그녀의 표정이 보기 힘들다.

     

    어쩌면 그녀의 목에 생긴 새로운 상처 때문일지도 몰랐다.

     

     

    무결한 그녀의 피부에, 하나의 흉한 흔적이 남아있다.

     

    푸른 멍 위에 피어난 붉고 검은 상처.

     

    베르그의 이빨자국.

     

    고운 그녀의 피부와 그 흉한 상처의 괴리 덕에 더욱 시선을 끌었다.

     

    마치 흰 종이에 남겨진 잉크자국 같았다.

     

     

    “…”

     

    마치 이름표를 달고 있는것만 같다.

     

    수치도 모르는걸까.

     

    몸을 더럽힌걸 받아들이는 것만 같다.

     

     

    하지만 네르는 그 흔적이 부끄럽지도 않은지, 자랑하듯 상처를 드러냈다.

     

    작은 미소가 입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하.”

     

    아르윈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이 모든 일이 이토록 꿀꿀한 이유를 그녀도 알고 있었다.

     

     

    인정하기 힘들어 인정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베르그가 최근들어 네르에게만 신경을 쓰는 것 같은게 원흉이었을 거다.

     

     

    그 생각이 머리에 각인되고 나니 모든게 불만족스럽기만 했다.

     

     

    싸움도 네르를 위해 벌였다. 아르윈 자신에게도 모욕이 간혹 던져졌다지만, 주된 이유는 네르였다. 싸우지 말라는 자신의 말은 듣지 않았다.

     

    목에 흔적도 둘끼리만 남겼다. 대화도 둘이서 주로 나눈다.

     

    최근들어 궁술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글도 알려줄 기회가 없었고.

     

     

    …심지어는 자신과의 반지도 오른손에만 끼는 베르그였다. 같은 아내임에도.

     

     

    다른 걸 다 떠나, 이런 차별 대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모욕이라 부를 수 있는 정도가 아닐까?

     

    신경쓰고 싶지는 않았지만, 신경이 안쓰일 수가 없다.

     

     

    …함께할 시간은 60년 뿐인데 말이다.

     

    ‘…짧아.’

     

    아르윈이 자신도 모르게 생각했다.

     

    이내 그 속내에 그녀 또한 놀라, 눈을 깜빡였다.

     

     

    고개를 저으며 끝내 생각을 털어냈다.

     

     

    저 멀리서 자신을 발견한 네르가 천천히 다가온다.

     

    “잘 주무셨어요?”

     

    네르가 인사했다.

     

    “…”

     

    아르윈은 짧은 순간 답하지 못했다.

     

    어젯밤은 혼자 잤다.

     

    춥게 말이다.

     

    베르그의 온기도 느끼지 못하고, 깍지도 끼지 못한채로.

     

     

    근데 잘 잤냐고 물어보는 걸까.

     

     

    “…잘 잤어.”

     

    하지만 아르윈은 가식적인 미소와 함께 네르의 인사를 받았다.

     

    수줍은 얼굴로 네르가 제 상처를 매만졌다.

     

     

    아르윈은 그녀가 왜 저런 표정을 짓는건지 알수가 없었다.

     

    배신을 준비하는 주제에.

     

     

    “베르그 보셨어요?”

     

    네르는 잠깐의 침묵 후 물어왔다.

     

    아르윈은 베르그가 저 언덕 너머에서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고개를 저었다.

     

    “아니? 못봤어.”

     

     

    그리고는 무심히 주변을 살폈다.

     

    다들 스탁핀으로 귀환 준비를 하느라 바쁘다.

     

    그들을 신경 쓰는 사람 하나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개인적인 시간이 날때면…나올 주제는 오로지 하나였다.

     

    아르윈은 네르를 올려다보았다.

     

    어쩌면 그녀의 속내를 물어볼 시간이 온걸지도 몰랐다.

     

     

     

    ****

     

     

     

    네르는 아르윈의 근처에 자리했다.

     

    베르그가 돌아올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그녀는 또 자신도 모르게 베르그가 남긴 상처를 만졌다.

     

    이상하게도 흉터가 화끈거리는 느낌이다.

     

    상처를 만질때마다 자신을 꽉 깨물던 베르그가 생각나 몸이 뜨거워졌다.

     

     

    그때 느꼈던 통증과, 그의 목을 안으며 느꼈던 감정들이 생생했다.

     

     

    “…생각보다 문란하네, 네르.”

     

    그 순간 아르윈이 속삭인다.

     

    네르는 잠시 놀라 답하지 못했다.

     

    아르윈이 이어 말했다.

     

     

    “아직 발정기도 아닐텐데 말이야. 보름달도 안찾아왔잖아?”

     

    “…”

     

    네르는 아르윈의 일침에 잠시 놀랐다.

     

    보름달이 아니었던 걸까.

     

    …분명 어제 발정기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그럼 어제 왜 그토록 멈출수가 없었던걸까?

     

     

    네르는 그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지나간 일이었다.

     

    대신, 변명을 내뱉었다.

     

    “…베르그를 위해서 이 정도는 해야죠. 저를 위해 싸우다 다쳤는데.”

     

    “네 운명의 상대가 그 상처를 본다면 그리 좋아하지 않을걸.”

     

    “………….”

     

    네르는 아르윈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마음같아서는 말해주고 싶었다.

     

     

    신경쓰지 말라고.

     

    최근들어 베르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싫지 않다고. 외려 같이 있고 싶다고. 아르윈이 베르그를 싫어한다면, 동침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내가 하겠다고.

     

     

    하지만…그때 보았던 약병이 마음에 걸린다.

     

    그 약병을 발견함으로써 생겨난 심리적 거리감이 솔직해지는 걸 방지했다.

     

    이런 식의 불편한 대화도 그에 대해 한몫했을 것이다.

     

    베르그에 대한 감정들이 깊어지는만큼, 그때 베르그의 죽음에 대해 말했던 아르윈이 점차 위협적으로 다가온다.

     

     

    아르윈의 속내를 알수 없는만큼, 제 속내를 다 드러낼수가 없다.

     

    어쩌면 귀족으로서의 습관인걸지도 몰랐다.

     

     

    …그리고 혹시라도.

     

    그 약병이 독이었고, 아르윈이 그걸 사용할 생각이 있는거라면.

     

    그녀와 척을 지는 건 옳지 못한 선택일 것이다.

     

    가까이서 속내를 듣는 편이 편했다.

     

    적은 가까이 두라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 모든게 아니더라도, 이제는 말을 아끼고 싶은 네르였다.

     

    베르그와 공유하는 감정들을 굳이 아르윈에게까지 알려주고 싶지 않다.

     

    소중하고 개인적인 생각들이었다.

     

    애초에 그의 근처에서 느끼는 생소한 감정들은 말로 표현할 수도 없었다.

     

     

    “걱정 고마워요.”

     

    그러니 네르가 답했다.

     

    이어서 아르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속내가 궁금해지기는 했다.

     

     

    그 약병은 뭐였을까.

     

    훔쳤지만, 아직 아르윈은 그에 대해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다.

     

    사라진걸 아직 모르는 것처럼.

     

    그만큼 흔하게 찾는 액체는 아니었나보다.

     

    그럴수록 네르의 입장에서는 궁금증만 피어난다.

     

     

    기회가 온김에, 넌지시 묻기로 한다.

     

    “…그래서, 아르윈님.”

     

    “응?”

     

    “…어떠세요. 베르그가 죽고 난 뒤, 여행할 곳들은 생각하고 계신가요?”

     

    “…”

     

     

    아르윈은 침묵했다.

     

    한참토록 말이 없던 그녀가 대답한다.

     

    “…갑자기?”

     

    “아르윈님 기준에서는 곧 다가올 미래 아닌가요?”

     

    중의적인 의미로 떠본다.

     

    아르윈은 턱을 괴며, 무심히 답했다.

     

    “…나라고 시간이 빨리 흐르는건 아니야.”

     

    “…”

     

    어떠한 함정도 밟지 않는 아르윈.

     

    그럴 생각이 없어서인지, 혹은 함정을 잘 피한 것인지는 알수가 없다.

     

     

    미묘한 분위기가 흐른다.

     

    대화주제는 이전과 달라진 것 같지 않았지만, 흐르는 공기는 달라져있다.

     

    네르는 대화를 끝마칠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애초에 오랜시간 나눌 수 있는 주제도 아니었다.

     

     

    네르는 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르윈님, 나중에 뵐게요.”

     

    그러며 아르윈에게 인사했다.

     

     

    아르윈도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중에 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연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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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IW 섞일 수 없는 이종족 아내들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Polygamy is abolished.

We don’t have to force ourselves to live together any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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