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96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클레어가 하는 질문에 레오의 어깨가 화들짝 놀라 떨렸다.

        

       “뭐야, 너였어?”

        

       말을 건 상대가 클레어라는 것을 알고 나서야 레오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뭐지? 그 안심한 표정을 보니까 묘하게 열받는데.”

        

       자기를 여자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는지, 클레어가 짜증난 표정을 지었다. 물론 클레어도 레오를 남자로 보지 않는 것은 당연했으니, 애초에 서로 그런 것으로 화를 낼 이유는 없었다.

        

       그냥, 뭐랄까, 짜증 날법한 이유이기는 하지만.

        

       ……자기도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레오는 생각했다.

        

       야심한 밤. 바깥 날씨도 이제 슬슬 견딜 수 있을 법한 날씨였다. 노스우드는 이름과는 다르게 제도보다 아래에 있는 곳이라, 이런 밤에도 제도보다 기온이 조금 더 높았다.

        

       노스우드라는 이름은 과거에 다른 왕국이었을 때 얻은 이름이었다. 지금은 제국에 완전히 편입되어 왕국이라는 이름조차 남아있지 않았지만.

        

       “여긴 또 왜 왔냐?”

        

       “왜 왔긴. 나도 산책 정도는 할 수 있잖아.”

        

       하지만 레오에게 그런 말을 하는 클레어의 표정에는 조금 고민하는 기미가 보였다.

        

       레오가 그 고민이 뭔지 물어보기도 전에, 클레어는 금세 레오를 약 올리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왜, 아직도 그 가슴이 머릿속을 맴돌아?”

        

       “…….”

        

       레오가 클레어를 흘겨봤지만, 클레어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그게 아니라, 벨라 씨가 그런 상황에 처해있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야. 그리고 그런 사람이 여기 엄청 많을 수도 있잖아.”

        

       “그건…….”

        

       하지만 클레어는 레오가 막상 그렇게 말하자 레오를 계속 놀리지는 못했다.

        

       레오는 클레어에게 과거를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클레어가 팔려나가던 날 밤에 실비아가 아이들과 함께 고아원을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덕분에 클레어와 아이들은 별다른 일 없이 그레이스 가에 맡겨질 수 있었다.

        

       정작 실비아는 그사이에 황실로 가버린 듯했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실비아가 처음부터 황실 소속이었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지만…… 아무리 실비아의 나이를 많게 생각해도 클레어와 두 살 이상 차이 날 것 같지는 않았다. 두 살 많게 잡아도 실비아는 그때 일곱 살이었다는 소리인데, 아무리 유능하다고 해도 황실에서 일곱 살짜리 아이를 요원 비슷한 존재로 써먹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으음.”

        

       레오의 말을 듣고, 클레어는 팔짱을 낀 채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깐 고민하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좋아.”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면서 그렇게 말했다.

        

       “좋다니?”

        

       “카지노로 가자.”

        

       “엉?”

        

       레오가 클레어의 사고를 따라잡지 못하고 그렇게 되물었다.

        

       “걱정되잖아? 벨라 씨가.”

        

       클레어는 다시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말했다.

        

       “사실 나도 걱정되거든.”

        

       “…….”

        

       레오가 입을 멍하니 벌리고 클레어를 바라보자, 클레어는 손가락으로 옆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맞아. 그냥 괜한 오지랖일지도 모르지. 사실 따지자면 여기 있는 사람 중에서 사연 없는 사람도 없을 거고. 하지만, 그래도…….”

        

       클레어는 레오에게 씩 웃어 보이며 말했다.

        

       “눈앞에 있는 곤경에 처한 이를 그냥 두고 지나갈 수는 없지. 우리는 그레이스니까.”

        

       “모든 이를 다 구할 수는 없어도, 눈앞의 어려운 이를 못 본 척하지 마라.”

        

       클레어의 말에 레오가 가언을 중얼거렸다.

        

       “그 가언 덕분에 지금 내가 여기 있는 거잖아.”

        

       클레어가 시원하게 웃으며 말했다.

        

       *

        

       ……굉장히 허전하다.

        

       나름대로 멋진 대사를 날리며 앨리스와 함께 왔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다른 방법을 찾아봤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는 옷 갈아입을 때나 씻을 때가 아니면 바깥으로 내놓을 일이 없는 부위가 시원하게 노출되어 있었다.

        

       비록 몸의 절반 이상을 가린다고는 하지만, 검은 천이 가리는 것은 가슴의 아랫부분 정도 뿐. 그 위쪽의 하얀 피부는 고스란히 남들의 눈에 노출되었다.

        

       그나마 키아라 베라티가 했던 것처럼 가슴에 반짝이 같은 것을 뿌리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너무 떨어지면 안 돼, 알았지?”

        

       “뒤에 있으니 안심하십시오.”

        

       막상 자신감 넘치게 ‘황녀의 재목을 증명하겠다’라고 해놓고는, 정작 자기도 이 복장이 어마어마하게 민망한 모양이다.

        

       앨리스는 평소에는 몹시 정갈한 복장을 하고 다녔다. 주변에 귀족뿐이니 누가 안 그렇겠냐마는, 내 기억 속에서 클레어는 원래 그렇게 정갈한 복장을 하고 다니던 캐릭터는 아니니까.

        

       물론 클레어도…… 게임 속의 그 모델링을 생각해보면 분명 크겠지. 음.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는 클 것이다.

        

       그리고 그건 앨리스도 마찬가지였다.

        

       게임에서도 배경 텍스쳐는 날려 먹고 캐릭터 모션은 우려먹더라도 가슴 부분의 모델링은 캐릭터별로 크기를 다르게 해가며 신경 써서 했었다. 특히 이런 바니걸 복장을 모델링 할 때는 그 살이 눌린 부분까지 정성스럽게 만들어두어서 플레이어 커뮤니티에서는 제작진들이 진짜 변태들이 아닌가 하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애초에 캐릭터 게임에 그런 장면이 없는 것도 예의가 아니긴 해.

        

       앨리스에게 하늘색 바니걸을 입혔던 제작진이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앨리스의 황금빛 머리카락과 그 하늘색 바니걸 복장은 너무나 잘 어울렸다. 색이 너무 튀지도 않았고, 스타킹 너머로 연하게 보이는 살결이 엄청나게 잘 어울린다.

        

       거기에 하얀 반가면 너머로도 너무 선명하게 보이는 ‘부끄러움’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채기 너무나 좋았다.

        

       ……아까 시간을 돌리기 전의 내가 어떻게 못 알아봤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을 정도다.

        

       그리고, 이렇게 표현하기는 조금 그렇다만—

        

       내 가슴, 음, 이렇게 표현하기는 조금 이상한가.

        

       ‘실비아 팬그리폰’의 가슴도, 앨리스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크기였다.

        

       이건 평소에도 자주 보기는 한다만, 뭐랄까, 이렇게 위 가슴이 위로 보일 정도의 옷이니, 아래에서 ‘받쳐 올린다’는 분위기 때문에 가슴의 모양이 조금 변형되어서 평소보다 훨씬 강조되어 보인다.

        

       휘유—

        

       하고 누군가가 우리에게 휘파람을 부는 소리가 들렸지만, 우리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이상하게 생각할 것도 없다. 여기 처음 와서 꺾이기 전인 사람이라면 콧대 높게 행동하는 사람도 많을 테니까. 그런 사람을 꺾는 것을 즐거움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지 모르고.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만, 누가 만지려고 한다면—”

        

       “—고간을 차버리라고. 알았어. 이미 몇 번이나 들었으니까.”

        

       경비원이 달려온다고 하더라도 얼른 우리 정체를 말해버리면 그만이다. 아무리 그래도 황녀를 함부로 건드릴 사람이 있겠어.

        

       ……물론 그보다는 시간을 돌려서 앨리스한테 다른 방향으로 갈 기회를 주는 쪽이 안전하겠지만.

        

       “정보는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나도 시간 낭비할 생각 없으니까.”

        

       아무래도 벨라에게 어느 정도 언질을 받아둔 모양이었다.

        

       “어이, 여기—”

        

       사람들한테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하며 열심히 앨리스의 뒤를 따르고 있는데, 누군가가 그렇게 소리친다. 번쩍 치켜든 손가락 사이에는 지폐가 몇 장 끼워져 있었다.

        

       물론 우리는 신경도 쓰지 않고 지나가려고 했지만—

        

       “거기, 무시해?”

        

       그래, 당연히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나오는 놈들도 있어야지.

        

       클리셰잖아?

        

       ……별로 반갑지 않은 클리셰였지만.

        

       우리가 그냥 지나가 버린 것이 기분 나쁘다는 듯 뒤쪽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애초에 손에 딱히 음료도 들고 있지 않은 우리더러 뭘 시키려는지 잘 모르겠지만……아니지, 그냥 무릎 위에 앉히고 놀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일어난 인간의 키를 보니 하이힐을 신은 우리 둘보다 더 작기는 했지만.

        

       하지만 키는 작아도, 우락부락한 인상의 사내였다.

        

       “가자.”

        

       앨리스도 그 목소리를 들은 듯했지만, 곧장 내 손목을 잡아서 끌었다. 그것만 보면 참 믿음직했지만.

        

       평소에 자주 신지도 않는 하이힐로 급하게 걸어봐야 빨라지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거기 너, 못 들었냐? 내 마음에 들었다니까.”

        

       덥석, 내 손을 잡는 것이 느껴졌다.

        

       거칠거칠한 손이었다.

        

       그대로 곧장 발을 움직였다면 좋으련만, 서두르려고 내 손목을 잡은 앨리스와 반대쪽 손을 잡힌 나는 양 팔이 쭉 벌려져서 이도 저도 못하는 모습이 되어버렸다.

        

       ……아니, 이 복장으로 양쪽에서 그렇게 잡아당기면 진짜 엄청나게 민망해지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순간 정신이 멍해지려는 찰나에—

        

       “거기.”

        

       정말 놀랍지 않게도, 이런 장면의 클리셰가 한 번 더 다가왔다.

        

       “이 손, 놓으시지.”

        

       “엉? 너는 또 뭐으아갸갹!?”

        

       겉보기와는 다르게 악력이 엄청나게 단련된 클레어다.

        

       게다가, 지금 얼굴이 조금 화나 보였고.

        

       ……게임에서 몇 번 봤던 표정이었는데, 게임에서보다 지금의 표정이 훨씬 더 박력 있었다.

        

       내 손목을 쥐고 있던 남자의 손이 떨어지고,

        

       “……굳이 남자가 아니더라도 데리고 갈 수 있는 거지?”

        

       나나 앨리스가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클레어는 주머니에서 지폐 한 장을 꺼내 내 가슴 사이에 아무렇게나 꽂아 넣었다.

        

       ……그 와중에 손가락이 닿지 않은 것도 기술이라면 기술이겠다.

        

       “황…… 앨리스, 이쪽으로.”

        

       그리고 클레어가 있으면 거의 언제나 따라오는 레오도 어느 사이에 앨리스 옆에 나타나서, 허리에 손을—

        

       —차마 얹지는 못하고, 그 근처까지 손을 가지고 간 채 앨리스를 자기 쪽으로 끌어오고 있었다.

        

       어, 그러니까, 음.

        

       조금 전에 앨리스와 레오, 클레어가 한꺼번에 쏟아진 건 이런 이유였나보네.

        

       클레어에게 끌려가면서 나는 부끄럽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그렇게 생각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에어프라이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실비아콘에 대해서는 생각중입니다. 시간이 조금 걸릴 수는 있지만, 일러스트와 마찬가지로 언젠가 반드시 뽑을 생각입니다! 아이디어는 구상중이구요. 제가 지금까지 유료로 연재한 소설은 전부 이모티콘이 나왔는데, 그 중에서 가장 조회수가 높게 나온 이 소설은 이모티콘 없이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다만 이모티콘에 실비아만 들어가지는 않을 겁니다. 일러스트를 한 장 한 장 뽑는 것은 여러모로 오래 걸리지만, 이모티콘은 그 안에 캐릭터를 넣음으로서 캐릭터가 각각 어떻게 생겼는지 독자 여러분께 알려드릴 수 있는 기회니까요. 깊게 생각해보고 모든 분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뽑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나 저의 소설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소설을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 덕분에 오늘도 힘이 납니다. 단순히 글을 쓸 힘 뿐만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즐거운 기분으로 버틸 수 있는 버팀목이 됩니다. 제가 글을 쓰는 동안 느꼈던 즐거움이 독자 여러분께 조금이나마 전달될 수 있으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