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96

     아서인지 루키우스인지 모를 양반과 대담을 나눈 뒤.

     나는 일행을 한 자리에 모아두고 선언했다.

     “현자님, 루키우스는요?”

     “아직 저기 밖에 있어. 아직은 이야기하기 조금 껄그럽나봐.”

     “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루키우스가 직접 말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 루키우스라는 이름과 아서라는 이름에 대해서. 하지만 본인이 부끄러워하니까 내가 대신 이야기를 해줄게.”

     “현자님께서요…?”

     “왜? 뭐 불만있어?”

     

     용사의 대변인이냐!

     라고 묻는다면, 현재는 그러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루키우스가 직접 말하는 거에 부끄러워하니까, 내가 대신 이야기를 하겠다는 거야. 루키우스도 인정했고.”

     “루키우스가….”

     로즈마스도, 드로니엘도, 얀도 모두 루키우스와 나를 번갈아봤다.

     도대체 루키우스가 ‘루키우스’라는 이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길래 이렇게 자신의 이름에 대해 걱정스러워하는 걸까.

     “루키우스는 말이야, 청년 사냥꾼 아서 시절의 자신과 용사 루키우스 사이에서 지금 정체성 갈등을 느끼고 있어.”

     “정체성…갈등이요?”

     “그래. 자기 자신에 대한 불확실함. 그게 지금 루키우스를 복잡하게 하고 있지. 이 건에 대해서는…나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어.”

     나는 일행에게 허리를 숙였다.

     “미안해. 내가 루키우스에게 용사로서의 책무를 다하라고 너무 압박을 했던 걸지도 몰라.”

     “아, 아니. 마녀님…!”

     “나는 루키우스가 용사이기를 바랐어. 하지만 우리가 여행을 한 지도 벌써 조금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루키우스에게는 과거의 모습들이 남아있는 거지.”

     “과거의 모습이라 함은…?”

     “루키우스가 아서였던 시절.”

     참고로.

     지금 말하는 모든 이야기는 거짓말이다.

     -스승님,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똑같이 루키우스라고 불리는 것에 익숙해져야하는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일단 루키우스라고 이름 불리는 건 통일해도 좋다는 거지?

     -…일단은 그렇습니다.

     루키우스는 자신이 루키우스로 불리는 것을 허락했다.

     정확히는 다른 파티의 사람들이 루키우스를 ‘루키우스’라고 부르는 것을 허락했다.

     

     -그래서 나한테는 왜 다른 사람들에게 루키우스라고 불리는 게 싫은 건지 말 못하겠다?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한테도 말 못하겠고?

     -…더더욱 그렇습니다.

     -에휴. 알았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아직 그가 왜 루키우스라는 이름을 듣는 것에 어색한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내가 루키우스라고 부르는 거는 부담이 없고, 다른 녀석들이 루키우스라고 부르는 것도 괜찮다고 했다?

     -네.

     -이유는 말 못하지만 그런 거로 알아달라 이거지?

     -…죄송합니다. 제가 이렇게밖에 말씀 드릴 수 없어서.

     -괜찮아. 괜찮아 용사들 이러는 거 뭐 한두 번 겪는 것도 아니라서.

     하지만 용사들이 ‘나는 말 못하지만 그런 상황이 있으니까 이해를 좀 해줘’라는 상황은 너무나도 많이 겪어본 일이고, 나는 그다지 이 일이 놀랍지 않았다.

     가끔은 때로 불합리한 이야기를 할 때가 있는 게 용사니까.

     그리고 그걸 수습하는 게 바로 용사파티 전문 수습 및 파괴범인 내 역할이다.

     “루키우스는 말이야, 지금 여러모로 혼란스러워하고 있어.”

     “혼란…이요?”

     “그래. 아서로서의 자신과 루키우스로서의 자신을.”

     

     이름에 따른 정체성의 혼란.

     ‘거짓말이지.’

     그냥 내가 루키우스가 곤란해하는 상황을 없애기 위하여 만들어준 변명에 불과하다.

     “루키우스는 아직 햇병아리 용사야. 하지만 용사로서 나서기로 했기 때문에, 용사 루키우스라고 스스로 몇 번이고 다짐하면서 루키우스답게 행동하려고 했어. 하지만 그게 조금은 부담이었나봐.”

     “…아서라고 부르라고 한 거는요?”

     시작은 로즈마스였다.

     그녀는 음울한 눈으로 나를 추궁했다.

     “왜 저한테만 아서라고 부르게 했던 거였죠?”

     “그건 너의 순수함 때문이야.”

     “……네?”

     로즈마스의 눈에 드리웠던 그림자가 서서히 사라졌다.

     “로즈마스. 노르망스에 도착했을 때, 당시에 파티에 너랑 나밖에 없었지?”

     “네, 네.”

     “그 때는 내가 그에게 용사 루키우스를 한창 강요하고 있던 시기였어. 용사로서의 책무 때문에 애써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속은 나도 몰랐지. 그 때 너를 만난 거야.”

     나는 로즈마스의 어깨를 두드렸다.

     “처음으로 자신이 직접 구한 여자. 용사의 힘으로 구했지만, 누구보다도 순수한 여자. 루키우스는 너를 구하면서, 아서였던 자신에 대해서 다시금 되돌아 볼 시간을 가지게 된 거야. 순수했던 시기를 생각하며.”

     “그런….”

     “…….”

     드로니엘이 뭔가 입술을 삐죽이며 불만을 드러냈지만, 얀은 ‘나도 만났었는데….’하면서 작게 중얼거렸지만, 일단 지금 가장 먼저 관리해야 할 대상은 로즈마스다.

     “루키우스가 그랬지? 자기를 아서라고 불러달라고. 그건 네가 아서로서의 자신을 기억해주기를 바랐기 때문이었어.”

     “아서로서의…루키우스?”

     “네가 아서라고 불러줄 때마다 그 녀석은 마을에서의 자신을 떠올릴 수 있었지. 아마 그게 큰 힘이 되었을 거야. 마을 사람들이 모두 죽어버린 건 분명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마을에 대한 추억은 여전히 아서라는 이름에 남아있으니까.”

     “아….”

     로즈마스는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제가…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아서는….”

     “그래. 용사 루키우스가 아닌 편안하고 행복했던 자신을 떠올릴 수 있었지. 그게 노르망스에서 활약하기 ‘이전’의 시점.”

     나는 로즈마스에서 쭉 손을 이어 드로니엘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노르망스에서 활약하고, 또다른 용사들을 만나면서 녀석도 성장했지. 달라졌어. 마을 청년 아서는 추억으로 들어가고, 이제는 어엿한 용사 루키우스로서 거듭나기를 바랐지. 거기서 나타난 사람이….”

     “…저군요.”

     드로니엘.

     과거 루키우스가 아서였던 시절을 알고 있는 여인.

     “기껏 삶의 의지를 용사 루키우스로 살기로 다잡았는데, 드로니엘 네가 나타나면서 조금 생각이 흔들렸나봐. 이해하지? 너도 네가 드로니엘인 걸 숨겼잖아.”

     “…압니다. 압니다만.”

     “알면 됐어. 거기서 더 말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지금의 불안요소는 드로니엘이 아니다.

     드로니엘과는 아직 이야기를 덜 마친 상황이고, 나중에 따로 다독여줄 필요가 있다.

     “딱히 너를 탓하는 건 아니야. 탓하려면 네가 살아있다는 걸 알고 혼란스러워한 루키우스 탓이지-”

     “루키우스는 잘못이 없어요! 아, 아니, 아서는….”

     “괜찮아. 이해해. 그리고…다들 이제부터는 루키우스라고 불러.”

     나는 셋에게 엄지를 척 들어올렸다.

     “루키우스는 앞으로도 루키우스가 될 거야. 그리고 언젠가 마왕을 물리치고 평화를 되찾는 날, 그 녀석은 선택하게 되겠지.”

     선택.

     여러모로 의미심장한 단어에 셋은 동시에 침을 꿀꺽 삼켰다.

     “어떤 존재로서 살아갈 지. 그러니까 잘 기억해둬. 너희가 진짜로 신경써야 할 건 아서인지 루키우스인지가 아니라….”

     나는 검지를 들어, 셋을 각각 가리켰다.

     “테르베이션. 오드론. 디에레.”

     셋은 똑똑한 여인이다.

     “내가 무슨 말 하는 건지, 알지?”

     “뭔데?”

     “마녀님은 따로 성씨가 없나요?”

     “나?”

     아아.

     뭔지 알겠다.

     ‘신경쓰이는 건가.’

     내가 루키우스와 맺어지는 경우라.

     발상이 너무 우스워서 웃음 밖에 나오지 않지만, 이들에게는 1% 이하의 가능성도 간과할 수 없는 걸까.

     “미안하지만 나는 성씨가 없어. 앞으로도 그렇고. 그리고 너희, 한 번 잘 생각해봐. 나는 500년 전의 사람이야. 타종족도 아닌 ‘인간’.”

     나는 로즈마스와 나를 번갈아 가리킨 뒤,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희 같으면 500년 동안 산 할망구랑 같이 살고 싶겠어?”

     미치지 않고서야.

     “그렇지?”

     셋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잠시 뒤.

     

     현자가 다시 루키우스를 부르러 간 사이, 셋은 서로를 바라보며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할래?” 

     “어떻게 하긴.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잖아.”

     드로니엘은 주먹을 움켜쥐며 눈을 부라렸다.

     “루키우스가 정체성의 혼란을 겪어? 너는 루키우스가 그런 것 때문에 고민을 할 사람처럼 보였어?”

     “…결코 아니지.”

     “그럼 무슨 말입니까?”

     얀은 멀뚱멀뚱 눈을 뜨며 현자가 사라진 방향을 가리켰다.

     “루키우스가 정체성 혼란을 겪는 게 거짓이다?”

     “현자님이 만들어준 변명 같아.”

     “변명…?”

     “루키우스가 자기 이름을 루키우스라고 불리는 걸 꺼리는 이유는 그런 게 아니거든. 당신, 눈치 못 챘어?”

     “눈치를 채고 자시고…저는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입이라.”

     

     얀의 말에 드로니엘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아. 그래. 당신은 이 미묘한 차이를 모를 수 있지. 응, 이해해. 하지만 우리 입장은 달라. 저 말은 정체성의 혼란 같은 걸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하아.”

     “아니라?”

     “루키우스가 말 못할 무언가가 있는 거예요. 그걸 현자님은 대충 자기가 만들어준 변명으로 얼버무린 거고.”

     “그렇습니까? 전 또.”

     얀은 두 손을 가슴 위에 모으며 미소지었다.

     “저 때문에 괜히 용사 루키우스가 신경을 쓰는 것 같아 걱정했는데, 다행이군요.”

     “루키우스가 무슨 당신 때문에 걱정을….”

     “아니었습니까? 저는 저 때문에 걱정하는 줄 알았습니다.”

     “하….”

     둘은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자의식 과잉도 정도가 있지, 성녀님. 당신 아무리 성녀라도 그렇게 루키우스가 자기를 생각해준다고 생각하지마. 그거, 착각이야.”

     “음…. 그렇군요.”

     얀은.

     “그럼 루키우스와 현자 님은 사귀는 사이입니까?”

     “…….”

     “…….”

     조용히, 폭탄을 터뜨렸다.

     “현자님이 루키우스를 감싸려고 그런 말을 한 거라면, 아무리 생각해도 그 경우 같습니다만.”

     “그 경우?”

     “현자님이 같은 여자인 저희를 견제하려는 경우.”

     둘은 침묵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 경우라면 충분히 가능성 있습니다.”

     “그럴 리가 없어요. 현자님이 방금 그렇게 말을 했지만, 현자님은 루키우스를 연애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고요.”

     “그렇게 저희를 속일 수도 있죠. 500년 전의 봉인? 겉모습이 일단 저희와 비슷한, 아니 저희보다 한 살이라도 더 어린 모습 아닙니까. 루키우스가 만약 내면이 아니라 외형을 신경쓰는 사람이었다면?”

     “그럴 리가 없어.”

     

     드로니엘은 당당히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두드렸다.

     “루키우스는 내가 꼬셔도 안 넘어왔으니까!”

     “…그건 자기가 예쁘다는 말인 건가요.”

     “흥, 당연하지. 마을에서도 그랬지만, 영지에서도 나보다 예쁜 여자는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지금까지 만난 여자 중에 나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은….”

     

    드로니엘은 좌우를 둘러보고는 가볍게 혀를 찼다.

     “아니, 됐어.”

     “음…. 저는 말입니다, 그런 미래가 떠오르는 군요.”

     “무슨 미래?”

     “현자님과 루키우스가 연인이 되는 미래가.”

     얀은 눈을 반짝이며 손으로 턱을 만지작거렸다.

     “한 번, 생각해볼까요? 그들이 연인이 되었을 때의 일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12일 15일 00시 00분 기준 공지

    15일 12시 공모전 결과 발표입니다.

    12시 이후에 공모전 소감 및 플러스에 관해 공지사항으로 다시 안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Hero’s Mentor is a (Demon) Witch

The Hero’s Mentor is a (Demon) Witch

Status: Ongoing Author:
I, who was once the Demon King, have become a terminally ill beautiful girl who can't do anything. To survive, I became the witch of the Hero's party. ...No, I don't like the Hero!!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