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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6

    시루드의 집에서의 하룻밤 이후, 메리와 루크는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시루드네 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라던가, 운동회의 이야기라던가.

     

    그러던 중, 시루드의 집에서 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다.

     

    “그래서, 어젯밤의 그건 어땠느냐? 메리, 네게도 첫경험이었을 텐데 그다지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구나. 반드시 나중에 제대로 된 장소와 환경을 준비해주겠다. 어떤가? 함께 하겠느냐?”

     

    -끼익-!

     

    허나 루크가 말하는 방식이 꽤 분쟁의 소지가 있었던 탓에, 아이델가에 고용된 운전수는 깜짝 놀라 운전을 실수하고 말았다.

    갓길에 차를 멈춘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설마……. 그, 첫경험이라는 건…….”

     

    메리역시 그게 무슨 소리지? 하고 고개를 갸웃 했다가 문득 깨닫고는 얼굴이 빨개져서 외쳤다.

     

    “그, 게임이에요! 어제 시루드네 집에서 처음으로 게임을 해봤거든요!”

     

    ‘루크는 가끔 주어를 생략하고 말하는 게 버릇이라니까!’

    오해를 부르는 언행은 일부러일까? 사실 루크는 이런걸 즐기는 걸까?

     

    메리의 의심은 타당했지만, 루크는 그저 무의식적인 행동이었기에 턱을 쓸었을 뿐이다.

     

    거기엔 사실 루크에게도 나름대로 고충이 있다.

    과거엔 주어를 생략하는 대화방식이 그다지 이상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과거엔 거의 모든 생물과 물체에 정령이 있었으며, 정령은 그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얼마든지 자신을 부른 사람이 누군지 확인하기 위해 얼굴을 내비친다.

     

    그러니까 ‘명사’의 무분별한 사용은, 어쩌면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어디든 나타나는 정령을, 대화중에 무의식적으로 부를 수 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정령의 존재는 결국 마나의 흐름을 의미했다.

     

    평범한 사람들이야 마나의 흐름 따위에는 별로 신경을 쓰진 않지만, 루크는 과거에 무려 마법사였다.

     

    마법사들은 그렇기에 미세한 마력의 흐름으로 자신이 의도했던 마나의 흐름에 오차가 생길지 모를 원인을 제거하고자 정령의 이름일지 모를 ‘명사’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생략하는 방식으로 대화의 방식이 발전한 탓이다.

     

    마법사들이 하는 말 대부분은 명사나 주어가 없는 문장으로도 상황에서 한발짝 떨어져 객관적으로 냉정히 생각해보는 것으로 무슨 말을 하는지는 잘 알 수 있고, 평소 그다지 많은 종류의 주제로 대화하지 않기에 대부분 말이 충분히 잘 통했으니, 마법사였던 루크 역시 그런 방식의 대화방식을 사용했다.

     

    따라서 지금도 가끔씩 신경을 쓰지 않으면 그런 식으로 주어가 생략되곤 하는 것이다.

    그것이 마법사로서는 익숙하기에.

     

    그렇다, 단순히 표현하자면 루크는 지금 그런 세세한 문장에 신경을 쓰지 못할 만큼 슈퍼 매직 리그에 푹 빠져있다는 이야기다.

    그야, 이 시대의 기술을 총 집약해 만들어진 오락거리가 아닌가.

    마법사는 학구열 만큼이나 경쟁심또한 높았다.

    오죽하면 마법사란 작자들은 늙어서도 아이같다는 말이 다 나올까.

     

    뭐, 이런 사정을 모르는 메리와 그녀의 운전수는 오해의 소지를 만든 루크를 미묘한 표정으로 볼 수 밖에 없겠지만 말이다.

    운전수는 루크를 흘겨보면서 사실 확인을 위해 물었다.

     

    “그 말이 정말입니까?”

     

    “음, 그래. 게임 이야기일세,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니, 아닙니다.”

     

    턱을 쓸며 도저히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루크의 시선을 받으니, 그녀는 말문이 막혀서 입술을 안쪽으로 말 수밖에 없었다.

     

    아니, ‘남자’인 친구네 집에서 자고 온 아가씨에게, ‘첫 경험’을 운운하니, 충분히 할 수 있는 오해가 아닌가?

    그런데 문제가 있는 건 자신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내가 이상한게 아닐텐데.’

     

    ——-

    “크윽. 제기랄.”

     

    남자는 욕지기를 뱉으며 가슴을 부여잡았다.

    오늘따라 서클의 박동이 강력하다.

    그는 심장에서 마구 날뛰는 마력을 의지로 갈무리하며 가쁜 숨을 내쉰다.

     

    ‘약, 약이 필요해.’

     

    요즘들어 점점 마나의 흐름을 걷잡을 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

    어째서지, 심장의 제어는 이제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벌써 발작의 날이 다가온건가.

     

    ‘칫, 이틀은 더 시간이 있을 줄 알았는데.’

     

    점점 빨라져가는 발작의 주기를 탓하며 그는 몸을 일으켜서 서랍을 뒤적였다.

    언제나 그곳에 둔 약을 찾기 위해서.

     

    ‘잠깐.’

     

    그러고보니 아직 약의 대금을 내지 않았던 사실이 떠올랐다.

    오늘이 며칠이지?

    머릿속에 스쳐가는 불길함에 그는 아예 서랍을 통째로 뽑아버렸다.

     

    즉시 뽑힌 서랍을 뒤집자, 툭 투둑, 내용물이 모조리 쏟아져 바닥에 팽개쳐진다.

    그는 들고있던 서랍을 저리로 던져버리고는 쓰레기처럼 바닥에 널부러진 물건들을 마구 흐트리며 무언가를 찾았다.

     

    젠장, 모조리 쓰레기들이다.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정보들이 적힌 종잇조각과 사용을 마친 스크롤들.

    이제는 죽은 자 들의 사진을 비롯한 여러가지 잡동사니들.

    그가 살아온 삶을 증명하는 듯이 정리되지 못하고 지저분한 것들만이 묻은 물건들이었다.

     

    하지만 그 혼돈의 틈 속에서 찾는 것은 없었다.

     

    ‘젠장.’

     

    약이 없으면 안되는데.

     

    다급한 몸부림.

     

    더 이상 그가 행하는 것은 무언가를 찾는 행위, 라기보다는 현실도피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약이 없을 리 없다.’라는, 찾아보면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하는 덧없는 희망을 품고 몸을 비트는 행위에 가까웠다.

     

    점차 떨려가는 손을 부여잡고, 온몸의 가려움증을 입술을 깨물어 버티며, 무언가를 찾는것에 몰두한다.

    또 다른 서랍을 뽑아 내용물을 쏟아내고, 부엌의 찬장을 열어젖혀 온갖 잡것들을 치워버리고.

    마치 광인처럼.

     

    그것이 비록 무의미할 지라도…….

     

    “……!”

     

    아니.

    무의미한게 아니었다.

     

    먼지쌓인 쓰레기들 사이에 먼지와 별로 구분도 안가는 가루들, 분명 남은 약의 찌꺼기일 것이다.

    먼지는 이토록 짙은 분홍색이 아니니까.

     

    노력에는 보답이 따른다고 했던가?

    이런 곳에도 사용할 수 있는 말인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그는 허겁지겁 그 분홍색 티끌들을 침 묻힌 손가락으로 찍어대며 혀에 가져갔다.

     

    그리고 약기운은 빠르게 돌았다.

     

    “큭, 하아…….”

     

    남자의 깊은 호흡은 마치 오랫동안 물 속에서 숨을 참던 사람이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내뱉는 달콤한 생존의 호흡과 닮았다.

     

    고통에서 어느정도 자유로워진 그는, 마구 어지럽혀둔 실내를 바라보았다.

    더럽고 혐오스러웠다.

     

    마치 자신의 처지처럼.

     

    “제기랄.”

     

    남자는 전화기를 열었다.

     

    “이거 웬일이야, 그쪽에서 연락을 먼저 다 하고.”

     

    “급하게 일이 필요해.”

     

    “오호. ‘급한’ 일이라고. ”

     

    언제 들어도 기분나쁜 목소리, 수화기 너머로 지은 표정이 선하다.

    돼지 같은 놈.

     

    “마침 괜찮은 일이 하나 있지.”

     

    ——

     

    “여기가 루크네 집이구나, 루크네 집은 처음봤어.”

    “그렇구나, 그러고보니 아카데미에서 내 거처를 육안으로 확인한 것은 메리 아이델, 너 뿐이로구나.”

    “헤에, 그거 진짜야?”

    “정말이고말고. 음, 잠시 들어왔다 가겠는가?”

    “헤헤, 왠지 기쁘네. 아니야, 오늘은 너무 늦어서, 2일 연속으로 외박을 하면 부모님이 뭐라고 할거야.”

    “그렇다면 어쩔 수 없겠구나. 그럼 나중에 괜찮을 때 얼마든지 말하거라.”

    ”정말? 그럼 나중에 나도 우리집에 초대할게! 그런데, 그렇게 짐이 많은데 무겁지 않겠어?”

    “괜찮단다. 걱정 말거라.”

     

    그런 인사를 마친 후, 루크는 메리의 차에서 내려 첼로케이스를 등에 진채, 옷가지와 컴퓨터가 들어간 캐리어를 품 안에 안고 여기까지 운전해준 운전수를 향해 꾸벅, 고갤 숙였다.

     

    운전수는 그런 루크의 모습에 예의는 바른 아이구나 싶어서 같이 고개를 끄덕여주고는, 성큼성큼 뒤로 돌아 걸어나가는 루크의 뒷모습을 보며 참 아이가 씩씩하기도 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다녀왔다네.”

    “어서와. 루.”

     

    예르나의 배웅에 루크가 살포시 미소를 지어주자, 예르나 역시 그것을 미소로 받아주었다.

    인사 후 루크는 시루드의 집에 가져갔던 첼로케이스와 옷가지가 든 가방들을 주섬주섬 내려놓는다.

    예르나는 그런 루크를 거들어준다.

     

    “루, 도와줄게.”

    “음, 고맙군. 아참, 거기서 빨래는 해줬다네. 그러니 따로 빨래를 할 필요는 없겠지.”

    “그래? 그럼 개놔야겠네.”

     

    가져갔던 옷가지를 가방에서 꺼내서 개던 중, 예르나는 문득 동물잠옷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거, 없어진 걸 보고 혹시나 했는데 역시 가져갔었구나.

    내심 마음에 든 것이 분명하다.

     

    “루, 잘 놀다가 왔어? 친구는 어때?”

    “음, 시루드라면 더 이상 내가 걱정할 것은 없어 보이더군. 금방 나을 것 같다. 참 다행이지.”

    “그러니?”

     

    예르나는 루크의 안심한 듯 한 표정을 보면서 나름대로 친구의 걱정을 많이 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사실은 루크가 친구를 앓아눕게 만든 원흉이기에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탓 이지만, 그런 사정을 예르나에게까지 일일히 설명하진 않은 것이었다.

     

    ‘흠. 그나저나, 생각보다 병문안을 가서 얻은 소득이 많군.’

     

    루크는 이번 외출로 얻은 것들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았다.

    메리와 시루드의 관계를 더 가깝게 해주었고, 시루드의 할아버지, 이 시대의 ‘3서클 유저’와 연락처를 나누었다.

    게다가 스스로는 객관적으로도 괜찮은 연주를 하고 있다는 확신을 얻기도 했으며, 한 아이에게 슈퍼 매직 리그의 재미를 알려주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르나. 내가 거기서 레시피를 하나 배워왔다! 아마 그대도 먹어보면 정말 좋아할거라 생각하는데. 어떤가? 혹시 벌써 식사를 했는가? 안했다면 내 음식을 만들어주지.”

     

    루크는 팔을 걷어붙이는 자세를 취하며 당당하게 가슴을 내밀었다.

    예르나는 그런 루크의 모습에 가볍게 박수를 치면서 호응해준다.

     

    “정말이니? 마침 배고팠어. 와, 기대되는걸?”

    “그래. 엘프가 아닌 내게도 정말로 맛있었으니, 그대도 분명 좋아할터.”

     

    루크는 스스로 앞치마를 차려입고 예르나에게 머리를 묶어줄 것을 부탁하며 레시피를 떠올려보았다.

     

    음식을 떠올리는 탓일까, 루크의 얼굴 옆까지 다가온 파이는 자신을 잊지 말라는 듯 웅얼거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누누히 말하지마는, 정령은 식사를 못하는데.

    그렇게 파이를 달래고 있자,

     

    머리를 묶이며 콧노래를 부르는 루크를 바라보고 예르나는 뿌듯함을 느꼈다.

    뭐랄까. 아이가 벌써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할까?

    아이가 점점 밝아지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뭘 만들어 줄 거니?”

    “그러니까, 내가 만들어 주려는 것은…….”

     

    루크는 그리 말하며 냉장고의 문을 열었다.

     

    냉장고의 사정을 확인하자 루크의 밝았던 표정은 급격히 굳어가고 말았다.

    텅텅, 있는거라곤 당근 한개와 어린잎채소 약간, 양상추 조금이 전부.

    루크의 옆으로 걸어와 냉장고상태를 확인한 예르나도 입가에 손을 가져가며 앗. 하는 소리를 냈다.

     

    “아차, 장보는 걸 깜빡했다.”

     

    “예르나, 일단 장부터 봐야겠구나…….”

     

    “음…… 그래야겠네. 그런데 오늘은 너무 늦었다. 그냥 있는 걸로 먹자.”

     

    하하, 실없이 웃어버리는 예르나.

    루크는 그런 예르나를 바라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요즘들어 예르나가 정신을 어디에 팔고 다니는 지 모르겠다.

    일이 바빠서 그런걸까?

    그러고보니 요즘 귀가도 늦고, 뭔가 열심히 한다는건 알겠지만…….

    이래선 역시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르나, 일도 좋지만, 가끔은 쉬는 것도 좋겠구나.”

    “응…….”

     

    안그래도 그럴 참이었긴 한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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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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