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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6

       아기새 두 마리가 뒤뚱뒤뚱 앞장섰다.

         

       ―삐약.

         

       멀쩡한 날개를 두고 걸어 다니는 광경이 나태해진 비둘기 같지만 어쨌든 훌륭한 안내자였다.

         

       사실 덩치가 사람만 하긴 해도 생긴 것도 연령도 병아리에 가까우니 비둘기는 너무한 평가야!

         

       “낯선 곳에 떨어졌다면~.”

         

       파스텔은 양팔을 휘저으며 척척 따라갔다.

         

       “현지인의 안내를 받으세요~.”

         

       순간 악마를 가리켰다.

         

       듀엣! 듀엣!

         

       악마가 쳐다보며 미간을 좁혔다.

         

       『노래 안 부른 지가 꽤 됐다.』

         

       아이참, 칙칙하시긴.

         

       “맛있는 식량과 포근한 둥지가 기다리니까요~!”

         

       악마 대신 아기새들이 호응했다.

         

       ―삐약~!

         

       정말 좋은 노래라는 반응이었다.

         

       응응!

         

       파스텔은 적극 찬동하다가 순간 멈칫했다. 교단이 제공하는 식량과 둥지가 너무 긍정적으로 표현된 거 같아.

         

       “긴급 속보! 긴급 속보!”

         

       양팔을 휘저었다.

         

       아기새들이 화들짝 놀라며 돌아봤다.

         

       ―삐약?

       “노래 가사에 잘못된 정보 전달이 존재했기 때문에 정정 보도하겠습니다! 맛있는 식량과 포근한 둥지가 아니라 수상쩍은 식량과 사악한 은신처였습니다!”

         

       허억, 완전 심각.

         

       아기새들이 생각하더니 고개를 도리도리했다.

         

       ―삐약.

         

       그거 틀렸다는 제스처였다.

         

       정말 맛있는 식량과 포근한 둥지라구?

         

       “그럴 리가! 너희는 스톡홀름 증후군 그러니까 납치범에게 너무 공감한 나머지 오히려 객관성을 잃어버린 거야!”

         

       완전 가여운 상태.

         

       교단이 얼마나 사악한지 알 수 있어.

         

       ―삐야악?

         

       아기새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흠. 상태가.』

         

       악마가 턱을 문지르며 고심했다. 그러더니 다가와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맞췄다.

         

       오잉.

         

       파스텔은 다소 침착해진 모습으로 시선을 마주했다. 붉은 눈동자가 뚫어지게 살펴 보고 있었다.

         

       이것은 무슨 의미.

       『억지로 힘써서 교단을 증오할 필요는 없다.』

         

       어라라…….

         

       파스텔은 당혹스러웠다. 눈을 굴리다가 양볼을 문지르곤 살짝 부끄러워했다.

         

       “티가 꽤 나요?”

         

       흑막 연기가 잘되길래 연기 실력이 뛰어나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복수심 연기가 잘 안 됐나 봐.

         

       이러면 날 살리겠다고 대저택에서 희생하고 저승에서 보고 있을 크래프트 가신들에게 너무 미안한데…….

         

       “이렇게 오래 누군가를 증오해야 한 적이 없어요.”

         

       손가락이 꼼지락거렸다.

         

       “그야 그렇잖아요. 아무리 악한이라도 사람이에요. 자신만의 삶이 있고 생각이 있고 마음이 있는.”

         

       파스텔은 심경이 복잡했다.

         

       “누군가는 재미만으로 사람을 죽이고 탐욕만으로 인생을 빼앗겠지만 모두가 그렇게 엉망인 건 아니잖아요. 모두를 뭉뚱그려 낙인찍고 역경도 사정도 무시한 채 증오해야 한다면 그건.”

         

       모르겠어.

         

       하지만 이 시대와 세상엔 맞지 않을까. 그래야만 타당한 복수가 아닐까.

         

       “악감정이 많이 죽었어요. 크래프트 저택에서 학살을 펼친 교단이나 가산을 모두 챙겨 달아난 아버지도 뭔가 사정이 있지 않을까. 잘못한 건 맞지만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했을 땐 어느 정도 이해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

         

       악마가 느리게 한숨을 쉬었다.

         

       『사람 좋은 생각이군.』

       “저도 알고는 있지마안.”

         

       파스텔은 몸을 비비 꼬았다.

         

       “이젠 굶지도 않을 돈이 생기고, 여러 친구도 사귀며 의지할 곳도 많아지니까 마음에 여유가 생겨 버렸는걸요.”

         

       여유 속에서 증오가 진심이 되긴 너무 어려워.

         

       “당장 요즘을 봐요. 이전이라면 여유가 없어서 진지한 모드로 정색하며 마인드를 전환했을 텐데 평소 상태로 행동하고 있잖아요.”

         

       스스로를 척 가리켰다.

         

       “봐봐요! 인기척만 상시 점검하며 떠들고 있죠! 목소리를 죽이긴 했어도 진지하게 말해서 이건 아니죠!”

         

       권력도 무력도 생기니 마음이 풀어졌다.

         

       정말 보라보라 파스텔이야.

         

       『그건 내가 보증할 수 있다. 지금 네 목소리가 미치는 범위보다 네 청각이 듣는 범위가 더 넓다. 목소리 크기는 습관대로 일반인의 범주지만 청각은 사람을 벗어났어.』

         

       파스텔은 예의 없게 삿대질했다.

         

       “만약의 경우가 있잖아요! 객관적으로 말해 악마님은 감옥에 갇혀 계셨는데 세상을 얼마나 아시겠어요?”

       『뭐?』

         

       악마가 당혹스러워했다.

         

       배덕감 뿜뿜할 상황이지만 지금 진지하다.

         

       “교단 사안은 사람들 안전도 달린 문제인데 철저히 처리하는 게 맞죠! 당장 도서관에서 아기새의 접근을 뒤늦게 눈치챘잖아요? 사실 이건 굉장히 위험했어요! 교단의 훈련된 정찰 동물이면 어떡해요!”

       『그건 내가 사람의 모습으로 같이 있으니 네 경각심이 느슨해진 거다. 피보호자로서 자연스러운 현상이야.』

       “어쨌든요!”

         

       열심히 외친 파스텔은 헥헥댔다.

         

       “그리고 그리고.”

         

       볼을 문지르다가 허공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으아아.

         

       아마도 다들 듣고 있겠지?

         

       “이, 이렇긴 해도 복수를 포기하겠다는 건 아니고요! 정신적으로 몰렸을 때 한 맹세였긴 했지만 복수는 무조건 할 거예요! 지켜진 사람으로서 그건 마땅한 도리잖아요!”

         

       말하곤 어깨가 조금 움츠러들었다.

         

       “하, 하지만 상대 사정도 살짝 궁금하다는 거죠. 교단에 들어가 왜 저러고 사시는가 고민이 들기도 하고.”

         

       노골적으로 말해 바로 앞에 교단원을 발견한다고 해서 복수심에 불타 달려드는 건 제정신으론 불가능하다.

         

       “가신 여러분, 이런 가주라 미안해요.”

         

       파스텔은 미안해하며 양손을 비볐다.

         

       『누구에게 말하는 거냐.』

       “듣고 계실 유령 가신 친구들. 으아, 잘못 말했어요. 유령 가신 분들에게요.”

       『흠.』

         

       악마가 허공을 살펴봤다.

         

       “유령은 없다고 말하지 마세요. 무조건 있어요. 밤중에 간식 훔쳐 먹으러 나갔다가 부엌 커튼 보고 유령으로 착각해서 호들갑 떠는 거 아니거든요.”

         

       악마가 살짝 감탄했다.

         

       『그랬었군. 그때인가. 어쩐지 이상하다 했다.』

         

       허억, 들킴.

         

       파스텔은 그대로 굳었다.

         

       설마 그 이후 부엌에서 챙겨온 파이 조각을 복도 도자기 속에 숨겨뒀던 일까지 들킨 건 아니겠지?

         

       어쩐지 다음날 몰래 먹으려고 들여다보니까 텅 비어있더라. 쥐 친구가 먹은줄.

         

       악마가 검지를 길게 뻗었다. 파스텔의 이마가 톡 건드려졌다.

         

       『삶의 풍파에 스스로를 잃지 마라. 버겁다면 원하는 만큼 덜어내고 나중에 되짚어봐도 그리 늦지 않아.』

         

       파스텔은 다정하게 바라보는 붉은 눈동자를 응시했다.

         

       다소 뾰로통한 표정이 됐다.

         

       “그건 마치 가족을 위해 노력하던 사람이 너무 지친 나머지 꿈속에서 가족과 만나고 포기를 합리화하는 거 같은 말이네요.”

         

       팔짱을 꼈다.

         

       “스스로 만들어 낸 꿈결이 그러하듯 악마님 또한 가신을 대표하진 못해요.”

       『그럴지도 모르지.』

         

       악마가 한 방향을 가리켰다.

         

       『하지만 주변부에 시선을 돌리는 건 필요할 거다. 기분 전환 없이 마음에 매몰되는 건 좋지 않아. 무리하면 너와 주변이 상처 입을 뿐이다.』

         

       손이 가리킨 곳엔 아기새들이 있었다.

         

       “으아아!”

         

       악마님과 단둘이 다른 세상에 있던 파스텔은 기겁했다.

         

       “미안, 친구들!”

         

       데려다 놓고 뻘쭘하게 방치해 버렸어! 너희 반응을 무시하고 교단은 나쁘다고 우기기까지 했었는데도 말이야!

         

       “내가 꽤 억지를 부렸지? 미안해! 교단이 나쁘긴 해도 경우에 따라 맛있는 음식과 포근한 둥지를 대접하는 인심이 있을 수도 있었는데!”

         

       대놓고 면박당하며 얼마나 상처받았을까.

         

       얼마나 상처인지 두 마리 다 아예 뒤돌아서 지면에 부리를 박고 있었다.

         

       ―삐약?

         

       아기새가 돌아봤다.

         

       말 걸었냐는 의아한 표정으로 보더니 부리에 물린 거대 지렁이를 후루룹 빨아들였다.

         

       지렁이가 면발처럼 휘날리다가 부리 속으로 사라졌다. 지렁이의 소리 없는 비명이 들리는 듯했다.

         

       으에.

         

       파스텔은 분홍 눈동자가 떨렸다.

         

       “너, 너희 뭐 먹는 거야?”

         

       왜 지렁이 친구를.

         

       아니지 아니지.

         

       새니까아, 지렁이.

         

       응응.

         

       파스텔은 표정이 밝아졌다.

         

       “밥 먹는 중이었구나!”

       ―삐약.

         

       면박당한 과거는 잊은 쿨한 표정.

         

       허억.

         

       “너희 정말 대인배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알아봤어!

         

       둥지에 떨어진 파스텔을 먹이인 양 쪼아댔던 거나.

         

       찾아온 늑대무리를 처단하며 구해줬더니 안면몰수하며 무시한 일이라거나.

         

       그래 놓고 교단에게 납치된 걸 발견하니까 구출해달라고 애원했던 거나.

         

       오잉.

         

       되짚고 보니 딱히 대인배는 아니었다.

         

       그래도그래도.

         

       방금 모습을 보면 중인배쯤은 되지 않을까아.

         

       대인배 말고 중인배.

         

       파스텔은 다시 밝게 외쳤다.

         

       “너희 정말 소인배야!”

       ―삐약?

         

       허억.

         

       말이 헛나옴.

         

       아기새 둘이 서로를 쳐다봤다. 우리가 소인배가 맞는가 논의하는 듯한 시간이 흐르더니 파스텔을 돌아봤다.

         

       ―삐약.

         

       끄덕끄덕.

         

       “긍정하는 거야?!”

         

       파스텔은 입이 벌어졌다.

         

       경악.

         

       충격.

         

       본인이 소인배라는 걸 인정하는 소인배는 얼마나 소인배인 거야.

         

       이런 친구, 계속 친하게 지내도 되는가.

         

       갑자기 보증 서달라고 하는 거 아니야?

         

       으이.

         

       악마가 복도 저편을 바라봤다. 새하얀 복도에 진흙 묻은 거대 지렁이 몇 마리가 꿈틀대며 기어 왔다.

         

       『아무리 신이 방치했다고는 하나 성지답지 않은 광경이군. 교단이 침입하며 성지 외부와 내부의 경계가 무너진 건가. 혹시 저 너머부턴 교단의 간접적인 활동 영역인가?』

       ―삐약.

         

       질문받은 아기새가 긍정했다.

         

       그렇구나아.

         

       사람 기색은 없지만 주의해야겠네.

         

       파스텔은 입가에 검지를 댔다.

         

       “그럼 지금부턴 모두 쉿.”

       ―삐약.

       “삐약도 안 돼! 쉿! 쉿!”

         

       신신당부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나만 조용히 하면 되는구나!

         

       바보바보.

         

       아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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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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