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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6

       베니의 공방으로 들어가는 순간. 시야를 가득 채운 어둠이 내게 몰려들었다.

       

       콰아아-!

       

       그림자의 안아줘요!

       

       효과는 굉장했다!

       

       “꺄아아악!”

       

       요나 살려!

       

       전신을 구석구석 휘감는 부드러운 건지, 물컹한 건지, 뾰족뾰족한 건지 모를 정체불명의 감촉.

       

       본능적으로 마구 발버둥 치자, 순간 움찔한 그림자가 천천히 내 몸을 휘감는 힘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그전에도 딱히 아픈 건 아니었지만, 한결 편안해진 기분.

       

       그렇게 이리저리 흔들리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나는 큼직한 원통 안에 갇혀있었다.

       

       “에.”

       

       그리고 바깥에서 나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는 그림자 괴물과 기겁하며 어버버거리는 베니.

       

       순식간에 우리에 갇혀 구경거리가 된 모습에 잠시 고민하다 외쳤다.

       

       “이 사악한 마녀 베니! 저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죠?!”

       

       “아, 아냐! 내가 시킨 게 아냐! 그냥 얘가 멋대로 저지른 거라니까?!”

       

       “거짓말하지 마세요! 다 알아요! 저를 이렇게 가둬두고 남들에게는 말하지 못할 이런저런 실험을 하려는 거죠?! 제가 실험을 돕는 게 아니라 저로 실험하려는 거였어요!”

       

       “아니래두! 내가 너로 실험하면 뭘 실험한다고 그래!”

       

       당황하면서도 빠르게 무언가를 조작하는 베니. 여전히 그림자 괴물은 그 뒤에서 나를 무슨 보물 바라보듯이 감상하는 중이었다.

       

       “무슨 실험이냐니…그걸 제 입으로 말하게 만들 생각이신가요!? 저한테 이상한 영상을 보여줘서 세뇌시킨다거나, 새로 만든 미약 절임으로 만든다거나, 옷만 녹이는 슬라임을 부어서 알몸으로 만든다거나!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야한 내용일 게 뻔하잖아요!”

       

       “그런 생각조차 한 적 없는데?! 여기서 제일 야한 생각만 하는 건 사실 너 아냐?!”

       

       “네에? 지금 제가 입은 아니라고 하지만 몸은 야하다고요? 어린이지만 어린이를 만들기에 충분하다고요?”

       

       “누굴 체포시키려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베니가 빼액 소리 지르며 신경질적으로 큼직한 버튼을 꾸욱 눌렀다. 그러자 낮은 신호음과 함께 열리는 원통의 문.

       

       하지만 바로 나가지 않고 경계하는 눈초리로 두리번거렸다.

       

       “…뭐해?”

       

       “또 나오자마자 덮쳐지는 거 아니에요?”

       

       “그렇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잠시만 기다려 봐.”

       

       베니가 무어라 중얼거리더니,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촤르륵!

       

       그와 동시에 바닥에서 튀어나온 은빛 쇠사슬이 여전히 눈만 꿈뻑이는 그림자 괴물을 감싼다.

       

       -크응….

       

       서럽게 울면서도 크게 반항하지 않는 녀석. 마치 그제야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알아챈 느낌.

       

       “베니. 방금 뭐였어요?”

       

       “나도 확실하지는 않은데…원래 저기가 그림자가 공방에서 생활하는 곳이거든?”

       

       “베니의 그림자 속이 아니라요?”

       

       “밖에서 따라붙을 수 있는 곳이 내 그림자 속이라, 안에 숨어있는 것뿐이야. 가장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곳은 여기고.”

       

       방금까지 내가 들어가 있던 원통을 가리키는 베니. 안에서는 몰랐는데, 바깥에서 보인 그 표면에 이런저런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이거. 특수 제작한 거야. 애초에 그림자 괴물은 이런 특수한 곳에서밖에 살 수 없는 녀석이고.”

       

       “…대체. 이 녀석 정체가 뭐예요? 아니, 그림자 괴물이라고 불러도 되는 거 맞나요? 제가 보기엔 완전히 다른 뭔가인데.”

       

       그 말에 베니가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요나 네 협력을 받으려면 그 부분도 설명해 줘야겠지. 전에도 말했던 것처럼 처음부터 이런 괴물은 아니었다는 거 기억해?”

       

       “네. 원래는 다들 베니의 친구였다면서요?”

       

       “뭐어. 덜 친한 애들도 있었지만 다들 아는 사이긴 했지. …그러니까 다시 한번 소개할게. 지금껏 그림자 괴물이라고 불렀지만 사실 그림자도 괴물도 아냐.”

       

       쇠사슬에 감긴 채 우울하게 눈을 내리깐 것은 물론, 추욱 늘어진 촉수와 뾰족한 이빨을 감춘 괴물의 옆구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린 베니가 말을 이었다.

       

       “얘는 키메라야.”

       

       그리고는 자신의 하트 문양이 그려진 눈동자를 구슬프게 깜빡였다.

       

       “나도 마찬가지고.”

       

       ***

       

       언제나 그러하듯 미궁 도시에서 일어나는 문제의 대부분은 황혼을 삼키는 자가 원흉이다.

       

       아직 어렸던 베니에게 닥친 사건 또한 그러했다.

       

       그녀가 살고 있던 고아원이 통째로 납치당한 것이다.

       

       어른들은 죽고, 아이들만 잔뜩 가둬둔 미궁 어딘가. 그곳에서 이단자들은 금기로 여겨져 금지된 실험을 진행 중이었다.

       

       인위적으로 조정한 광기를 인간의 몸에 이식해, 이성을 유지한 채로 강해질 수 있는가.

       

       이론은 간단하다.

       

       모든 몬스터는 평범한 동식물이 광기의 신이 내린 최후의 저주에 저항하지 못한 결과다.

       

       그렇다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광기만 흡수한다면 이성을 유지하면서, 아무런 코스트 없는 영구 강화 버프를 얻을 수 있으리라.

       

       이는 곧, 광기의 신의 권능을 우리의 것으로 삼아 여신께 바칠 수 있다는 뜻이다.

       

       어린아이도 떠올릴 법한 이 발상을 토대로 황혼을 삼키는 자는 온갖 미친 실험을 자행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심장에 마석을 이식한다거나, 신체 일부를 몬스터의 것으로 교체한다거나, 인간과 몬스터를 교배하는 등등.

       

       대부분은 이렇다 할 이론 없이 막무가내로 이루어진 인체실험이었고, 당연히 대부분은 끔찍한 고통 속에서 죽어갔다.

       

       심장에 마석을 이식당한 아이는 몸의 형태를 고정하지 못하고 흐물흐물 녹아내렸으며.

       

       몬스터의 팔다리를 얻은 아이는 그 팔다리를 제외한 전신이 끔찍하게 일그러져 죽었고.

       

       교배의 경우, 모판이 된 몬스터는 멀쩡했지만, 종자가 된 남자 아이들이 농밀한 신체접촉으로 전염되는 광기와 자괴감을 견디지 못해 자해를 일삼았다.

       

       하지만 그중에서 그나마 괜찮았던 실험체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서큐버스의 마안을 이식당한 베니였다.

       

       서큐버스의 종특인 매료는 전혀 사용할 수 없지만, 젊음을 유지하는 능력과 마법적 소양을 손에 넣은 최초의 성공 사례.

       

       베니는 그날 채 자라지 못한 어린 몸에 갇혔고, 그렇게 하나둘 친구들이 죽어 나가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야. 놈들은 시체마저도 모독하기 시작했어.”

       

       녹아내린 시체를 하나로 섞었다. 형형색색의 점액이 검게 물들 때까지.

       

       뒤틀린 시체에서 멀쩡한 몬스터의 파편을 꺼내 점액에 묻었다. 충혈된 눈, 날카로운 이빨, 촉수, 산성 체액 등등.

       

       그렇게 만들어진 징그러운 혼합물에 미쳐버린 아이들에게서 뽑아낸 정기와 생명력을 들이부었다.

       

       본래 생명을 갖지 못한 것이 생명 비슷한 것처럼 움직일 수 있도록.

       

       그렇게 태어난 것이 그림자 괴물…아니, 이름 없는 키메라였다.

       

       “마지막으로 놈들은 이제 막 태어난 이 녀석을 내 영혼에 동화시켰어. 어떻게 한 건지는 나도 몰라. 무슨 신물을 썼다는 건 확실한데, 어떤 신의 권능이 깃들었는지 감조차 안 잡히거든. 다만 확실한 건….”

       

       잠시 말을 고르던 베니가 조심스레 그림자 괴물을 쓰다듬었다. 녀석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으르렁거렸으나 결국 손길을 받아들였고.

       

       “나와 이 녀석은 하나가 됐고, 우리는 힘을 얻었어. 적어도 그 빌어먹을 장소에서 도망치기엔 충분한 힘을.”

       

       베니와 그림자가 연결된 순간. 둘은 서로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다.

       

       황혼을 삼키는 자를 향한 적의. 자기 자신을 불태워서라도 이뤄야 하는 복수. …그리고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광기를.

       

       “광기에 몸을 맡기고 미친 듯이 날뛰었어.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를 가두던 우리는 부서졌고…입에서는 피 맛이 느껴지더라. 아, 이빨도 이렇게 됐네.”

       

       입을 크게 벌려 상어의 그것처럼 뾰족뾰족한 이빨을 보여주는 베니. 그 모습은 그림자 괴물과 똑 닮아있었다.

       

       촤르륵.

       

       그제야 그림자를 감싼 쇠사슬을 풀어주는 베니. 자연스레 그녀의 그림자 속에 녹아든 녀석이 눈만 빼꼼 내밀어 이쪽을 살펴본다.

       

       베니가 자신의 발밑을 바라보며 처연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보니 이 녀석은 기본적으로 모든 걸 미워해. 자신이 받은 고통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어 하는 거야. …하지만 너는 예외야.”

       

       “저요?”

       

       “응. 나도 자세한 이유는 몰라. 다만, 요나 너한테는 엄청난 호의를 보이고 있잖아? 조금 전에 냅다 수조에 넣은 것도, 이 녀석이 가장 편하게 느끼는 장소니 너한테 양보한 거고.”

       

       “그건…확실히 좀 고맙네요.”

       

       묘한 눈빛으로 그림자를 바라보고 있자니, 베니가 조금 굳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마 이유는 짐작이 가. …너도 우리랑 비슷하잖아?”

       

       “넹?”

       

       동질감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베니. 그 시선에 당황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니 그녀가 그림자를 끌어안는다.

       

       “요정과 은화에서는 침식을 멈추거나, 이 녀석을 내게서 떨어뜨릴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했잖아?”

       

       그리 말하고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마치 인생의 마지막 숨이라도 되는 것처럼 깊게.

       

       “조금 더 정확히 말해줄게. 나는 이 아이가 빼앗긴 평안을 돌려줬으면 해. 그리고 내가 빼앗긴 미래를 돌려받았으면 해.”

       

       “…제가 그걸 할 수 있을까요?”

       

       “몰라.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만들 거야.”

       

       하트 문양이 그려진 베니의 눈동자가 보라색으로 반짝였다.

       

       “마법은 기적이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어린이 날이래요.

    응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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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6

EP.96





       베니의 공방으로 들어가는 순간. 시야를 가득 채운 어둠이 내게 몰려들었다.


       


       콰아아-!


       


       그림자의 안아줘요!


       


       효과는 굉장했다!


       


       “꺄아아악!”


       


       요나 살려!


       


       전신을 구석구석 휘감는 부드러운 건지, 물컹한 건지, 뾰족뾰족한 건지 모를 정체불명의 감촉.


       


       본능적으로 마구 발버둥 치자, 순간 움찔한 그림자가 천천히 내 몸을 휘감는 힘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그전에도 딱히 아픈 건 아니었지만, 한결 편안해진 기분.


       


       그렇게 이리저리 흔들리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나는 큼직한 원통 안에 갇혀있었다.


       


       “에.”


       


       그리고 바깥에서 나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는 그림자 괴물과 기겁하며 어버버거리는 베니.


       


       순식간에 우리에 갇혀 구경거리가 된 모습에 잠시 고민하다 외쳤다.


       


       “이 사악한 마녀 베니! 저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죠?!”


       


       “아, 아냐! 내가 시킨 게 아냐! 그냥 얘가 멋대로 저지른 거라니까?!”


       


       “거짓말하지 마세요! 다 알아요! 저를 이렇게 가둬두고 남들에게는 말하지 못할 이런저런 실험을 하려는 거죠?! 제가 실험을 돕는 게 아니라 저로 실험하려는 거였어요!”


       


       “아니래두! 내가 너로 실험하면 뭘 실험한다고 그래!”


       


       당황하면서도 빠르게 무언가를 조작하는 베니. 여전히 그림자 괴물은 그 뒤에서 나를 무슨 보물 바라보듯이 감상하는 중이었다.


       


       “무슨 실험이냐니…그걸 제 입으로 말하게 만들 생각이신가요!? 저한테 이상한 영상을 보여줘서 세뇌시킨다거나, 새로 만든 미약 절임으로 만든다거나, 옷만 녹이는 슬라임을 부어서 알몸으로 만든다거나!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야한 내용일 게 뻔하잖아요!”


       


       “그런 생각조차 한 적 없는데?! 여기서 제일 야한 생각만 하는 건 사실 너 아냐?!”


       


       “네에? 지금 제가 입은 아니라고 하지만 몸은 야하다고요? 어린이지만 어린이를 만들기에 충분하다고요?”


       


       “누굴 체포시키려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베니가 빼액 소리 지르며 신경질적으로 큼직한 버튼을 꾸욱 눌렀다. 그러자 낮은 신호음과 함께 열리는 원통의 문.


       


       하지만 바로 나가지 않고 경계하는 눈초리로 두리번거렸다.


       


       “…뭐해?”


       


       “또 나오자마자 덮쳐지는 거 아니에요?”


       


       “그렇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잠시만 기다려 봐.”


       


       베니가 무어라 중얼거리더니,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촤르륵!


       


       그와 동시에 바닥에서 튀어나온 은빛 쇠사슬이 여전히 눈만 꿈뻑이는 그림자 괴물을 감싼다.


       


       -크응….


       


       서럽게 울면서도 크게 반항하지 않는 녀석. 마치 그제야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알아챈 느낌.


       


       “베니. 방금 뭐였어요?”


       


       “나도 확실하지는 않은데…원래 저기가 그림자가 공방에서 생활하는 곳이거든?”


       


       “베니의 그림자 속이 아니라요?”


       


       “밖에서 따라붙을 수 있는 곳이 내 그림자 속이라, 안에 숨어있는 것뿐이야. 가장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곳은 여기고.”


       


       방금까지 내가 들어가 있던 원통을 가리키는 베니. 안에서는 몰랐는데, 바깥에서 보인 그 표면에 이런저런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이거. 특수 제작한 거야. 애초에 그림자 괴물은 이런 특수한 곳에서밖에 살 수 없는 녀석이고.”


       


       “…대체. 이 녀석 정체가 뭐예요? 아니, 그림자 괴물이라고 불러도 되는 거 맞나요? 제가 보기엔 완전히 다른 뭔가인데.”


       


       그 말에 베니가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요나 네 협력을 받으려면 그 부분도 설명해 줘야겠지. 전에도 말했던 것처럼 처음부터 이런 괴물은 아니었다는 거 기억해?”


       


       “네. 원래는 다들 베니의 친구였다면서요?”


       


       “뭐어. 덜 친한 애들도 있었지만 다들 아는 사이긴 했지. …그러니까 다시 한번 소개할게. 지금껏 그림자 괴물이라고 불렀지만 사실 그림자도 괴물도 아냐.”


       


       쇠사슬에 감긴 채 우울하게 눈을 내리깐 것은 물론, 추욱 늘어진 촉수와 뾰족한 이빨을 감춘 괴물의 옆구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린 베니가 말을 이었다.


       


       “얘는 키메라야.”


       


       그리고는 자신의 하트 문양이 그려진 눈동자를 구슬프게 깜빡였다.


       


       “나도 마찬가지고.”


       


       ***


       


       언제나 그러하듯 미궁 도시에서 일어나는 문제의 대부분은 황혼을 삼키는 자가 원흉이다.


       


       아직 어렸던 베니에게 닥친 사건 또한 그러했다.


       


       그녀가 살고 있던 고아원이 통째로 납치당한 것이다.


       


       어른들은 죽고, 아이들만 잔뜩 가둬둔 미궁 어딘가. 그곳에서 이단자들은 금기로 여겨져 금지된 실험을 진행 중이었다.


       


       인위적으로 조정한 광기를 인간의 몸에 이식해, 이성을 유지한 채로 강해질 수 있는가.


       


       이론은 간단하다.


       


       모든 몬스터는 평범한 동식물이 광기의 신이 내린 최후의 저주에 저항하지 못한 결과다.


       


       그렇다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광기만 흡수한다면 이성을 유지하면서, 아무런 코스트 없는 영구 강화 버프를 얻을 수 있으리라.


       


       이는 곧, 광기의 신의 권능을 우리의 것으로 삼아 여신께 바칠 수 있다는 뜻이다.


       


       어린아이도 떠올릴 법한 이 발상을 토대로 황혼을 삼키는 자는 온갖 미친 실험을 자행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심장에 마석을 이식한다거나, 신체 일부를 몬스터의 것으로 교체한다거나, 인간과 몬스터를 교배하는 등등.


       


       대부분은 이렇다 할 이론 없이 막무가내로 이루어진 인체실험이었고, 당연히 대부분은 끔찍한 고통 속에서 죽어갔다.


       


       심장에 마석을 이식당한 아이는 몸의 형태를 고정하지 못하고 흐물흐물 녹아내렸으며.


       


       몬스터의 팔다리를 얻은 아이는 그 팔다리를 제외한 전신이 끔찍하게 일그러져 죽었고.


       


       교배의 경우, 모판이 된 몬스터는 멀쩡했지만, 종자가 된 남자 아이들이 농밀한 신체접촉으로 전염되는 광기와 자괴감을 견디지 못해 자해를 일삼았다.


       


       하지만 그중에서 그나마 괜찮았던 실험체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서큐버스의 마안을 이식당한 베니였다.


       


       서큐버스의 종특인 매료는 전혀 사용할 수 없지만, 젊음을 유지하는 능력과 마법적 소양을 손에 넣은 최초의 성공 사례.


       


       베니는 그날 채 자라지 못한 어린 몸에 갇혔고, 그렇게 하나둘 친구들이 죽어 나가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야. 놈들은 시체마저도 모독하기 시작했어.”


       


       녹아내린 시체를 하나로 섞었다. 형형색색의 점액이 검게 물들 때까지.


       


       뒤틀린 시체에서 멀쩡한 몬스터의 파편을 꺼내 점액에 묻었다. 충혈된 눈, 날카로운 이빨, 촉수, 산성 체액 등등.


       


       그렇게 만들어진 징그러운 혼합물에 미쳐버린 아이들에게서 뽑아낸 정기와 생명력을 들이부었다.


       


       본래 생명을 갖지 못한 것이 생명 비슷한 것처럼 움직일 수 있도록.


       


       그렇게 태어난 것이 그림자 괴물…아니, 이름 없는 키메라였다.


       


       “마지막으로 놈들은 이제 막 태어난 이 녀석을 내 영혼에 동화시켰어. 어떻게 한 건지는 나도 몰라. 무슨 신물을 썼다는 건 확실한데, 어떤 신의 권능이 깃들었는지 감조차 안 잡히거든. 다만 확실한 건….”


       


       잠시 말을 고르던 베니가 조심스레 그림자 괴물을 쓰다듬었다. 녀석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으르렁거렸으나 결국 손길을 받아들였고.


       


       “나와 이 녀석은 하나가 됐고, 우리는 힘을 얻었어. 적어도 그 빌어먹을 장소에서 도망치기엔 충분한 힘을.”


       


       베니와 그림자가 연결된 순간. 둘은 서로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다.


       


       황혼을 삼키는 자를 향한 적의. 자기 자신을 불태워서라도 이뤄야 하는 복수. …그리고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광기를.


       


       “광기에 몸을 맡기고 미친 듯이 날뛰었어.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를 가두던 우리는 부서졌고…입에서는 피 맛이 느껴지더라. 아, 이빨도 이렇게 됐네.”


       


       입을 크게 벌려 상어의 그것처럼 뾰족뾰족한 이빨을 보여주는 베니. 그 모습은 그림자 괴물과 똑 닮아있었다.


       


       촤르륵.


       


       그제야 그림자를 감싼 쇠사슬을 풀어주는 베니. 자연스레 그녀의 그림자 속에 녹아든 녀석이 눈만 빼꼼 내밀어 이쪽을 살펴본다.


       


       베니가 자신의 발밑을 바라보며 처연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보니 이 녀석은 기본적으로 모든 걸 미워해. 자신이 받은 고통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어 하는 거야. …하지만 너는 예외야.”


       


       “저요?”


       


       “응. 나도 자세한 이유는 몰라. 다만, 요나 너한테는 엄청난 호의를 보이고 있잖아? 조금 전에 냅다 수조에 넣은 것도, 이 녀석이 가장 편하게 느끼는 장소니 너한테 양보한 거고.”


       


       “그건…확실히 좀 고맙네요.”


       


       묘한 눈빛으로 그림자를 바라보고 있자니, 베니가 조금 굳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마 이유는 짐작이 가. …너도 우리랑 비슷하잖아?”


       


       “넹?”


       


       동질감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베니. 그 시선에 당황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니 그녀가 그림자를 끌어안는다.


       


       “요정과 은화에서는 침식을 멈추거나, 이 녀석을 내게서 떨어뜨릴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했잖아?”


       


       그리 말하고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마치 인생의 마지막 숨이라도 되는 것처럼 깊게.


       


       “조금 더 정확히 말해줄게. 나는 이 아이가 빼앗긴 평안을 돌려줬으면 해. 그리고 내가 빼앗긴 미래를 돌려받았으면 해.”


       


       “…제가 그걸 할 수 있을까요?”


       


       “몰라.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만들 거야.”


       


       하트 문양이 그려진 베니의 눈동자가 보라색으로 반짝였다.


       


       “마법은 기적이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어린이 날이래요.

    응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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