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위상이란 대단했다.
그저 제국에서 온 여행객이라는 말 한마디로 검문도 없이 성문을 통과했으니 말이다.
엘프인 세레나, 거기다 드워프인 드잔트까지 동행하는 우리 일행은 오히려 환대를 받으며 성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클로셀 영감이 흥겨운 얼굴로 물어왔다.
“그래서 이제 어찌할 셈인가?”
어쩌긴 뭘 어쩌겠는가.
하르프의 왕 부터 만나봐야 할 것 같았다.
어쩌면 공식적으로 사신단과 같이 오는 게 더 빨랐을지도 모르겠다.
“사신은 누가 파견된 건가요?”
“자네도 아는 인물일세.”
“제가요?”
“노르딘 백작이 파견되었네.”
그 사람이라면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기사의 표본.
사람의 됨됨이도 훌륭했으니, 잘해낼 수 있을 것이다.
“씁…애매한데…”
네크로맨서가 작정하고 정체를 감출텐데 찾을 수 있으려나?
“단서를 하나씩 찾아봐야겠네요.”
“어디서부터 시작할 생각인가?”
이번 여정은 대체적으로 이렇게 흘러 갔다.
계획없이 내가 하고 싶은데로 한다.
영감님들의 말로는 이렇게 하는게 더 정답에 빠르게 가까워지는 길이라고 했다.
“얼른 한곳을 찍어 보시게. 그리로 가도록 하지.”
“으음…”
그렇게 말해도 아직은 딱히 촉이 오는 곳이 없었다.
굳이 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바다 쪽으로 가야겠어요.”
“거기에 무언가가 있는가?”
“용왕기를 쥐가 파먹었더라구요.”
일행들의 시선이 슬그머니 나에게로 돌아왔다.
설명이 필요한 것이리라.
바다에 사는 용왕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데….
고민할 필요도 없이 클로셀 영감이 나에게 되물었다.
“드래곤을 말함인가?”
“계속해서 흥미로운 인간이군. 방울 말고도 즐길게 많겠어.”
“드래곤이라…”
어쩌면 비슷한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날씨도 조종이 가능할 테고, 동양에는 용, 서양하면 드래곤 아닌가.
문제는 드래곤이라는 게….
“그게 진짜로 있는거예요?”
“진짜로 있다네.”
나와 루나를 제외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라몬은 드래곤을 처음 마주하는 날 죽을 뻔했지.”
“영감님들이요?”
“우리가 소드 마스터에 대마법사라고 불리지만 그들에게는 별것 아닌 존재라네.”
솔직히 그 강함이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괴물 같은 영감님들이 쩔쩔매야 하는 존재라니.
“그렇게 강한데, 대륙전쟁 때는 뭘 했데요? 같이 안싸우고?”
조금 괘씸하지 않은가.
“그들은 세상에 대해 지독하게도 권태로운가 보더군.”
“흐음…”
“초월적인 존재들을 이해하기란 어려운 법이지.”
확실히 그렇기는 하다.
당장에 신령님들조차 큰신이 되어갈수록 세상사에서 초탈해가니까 말이다.
세상의 큰 흐름만을 볼 뿐.
“인간적인 감정을 가진 드래곤도 존재한다네. 다만, 나서지 않는 이유가 있었지 싶네.”
영감님들도 자세한 건 모르는 듯했다.
드래곤이라는 게 전설에서나 나오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것도 많이 알고 있는 것이지만.
“나서지 않는 이유…”
“자네라면 드래곤도 동료로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그건 좀….”
무속의 세계에서도 용은 영험한 존재다.
용왕신이 따로 있을 정도로.
동료가 되기보다는 상부터 차려야 할 존재에 더 가까웠다.
이곳에는 어떤 형태로 존재할지 모르지만 말이다.
살아 있는 신령쯤 되려나?
“일단 바다로 가보시죠. 근처에 가까운 바다가 있나요?”
“공교롭게도 하르프 왕국의 수도는 바다에 있다네.”
“어쨌든 드래곤하고 얽힐 일은 없을지도 몰라요.”
용왕기라는 게 무조건 용왕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다.
보다 관념적인 개념이니 말이다.
바다 그 자체를 의미할 수도 있었다.
“이것도 가 봐야 알겠네.”
“그보다, 자네 지금 어디로 가는가?”
이야기를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걷고 있었다.
목적지도 없이 말이다.
“왜 자꾸 발이 이리로 가지?”
사람이 괜히 이상한 행동을 할 때가 있다.
허전한 마음에 어딘가를 서성인다거나 하는 행동.
내 말에 영감님들이 부리나케 손짓을 했다.
“무조건 가고 싶은 곳으로 가게.”
“자잘한 일들은 다 해결 해줄테니, 자네 마음대로 다 하시게나.”
“참나…”
이 영감들이 이상한 것에 꽂힌 모양이다.
얼마 전부터 자꾸 저러고 있었으니….
길을 따라 걸음을 옮기려던 순간이었다.
“….?”
우르르 –
사람들이 한곳을 향해 몰려가기 시작했다.
해괴한 소리들을 내뱉으며.
“저곳에 운명을 봐주는 사람이 나타났다는군.”
“제국에 나타났다는 그 성자말인가?”
“그 사람이 확실하네! 벌써 그 굿이라는걸 시작했다는 모양일세.”
굿?
나 말고 굿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있던가?
“벌써 줄이 길어졌어. 빨리 가 보자구!”
“이름이 크라슬이라고 했던가?”
“크리스가 맞을걸세.”
갈수록 대화의 내용이 이상했다.
“….?”
영감님들도 흥미롭게 그들을 쳐다봤고, 세레나의 눈은 한없이 차가워졌다.
“자네, 굿을 하기로 했는가?”
“설마요.”
“자네가 굿을 한다는 구만. 나도 보고 싶네.”
“자주 봤지 않나요?”
나는 이곳에서 굿을 하기로 한 적이 없었다.
마땅히 굿을 할 거리들도 보이지 않고.
그렇다는 건.
그것이다.
“사칭범이네.”
“자네가 유명해지다 보니, 사기꾼이 나타난 것 같네.”
사람들을 따라 함께 움직이니 곧 수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땡 – 땡 – 땡 –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작은 종.
어디 영화에나 나올 법한 하인을 부르는 종이었다.
드잔트의 평은 이러했다.
“졸렬한 소리군.”
땡 – 땡 –
웅성웅성 –
“저게 그 언데드를 물리쳤다는 신성한 종이군.”
“과연, 소문대로야.”
종을 흔드는 사람의 덩치가 굉장했다.
나보다 머리가 두 개나 더 있을 법한 크기.
얼굴 또한 제법 흉악했다.
이마부터 턱까지 긴 흉터가 생겨 있었으니 말이다.
웃기는 건 사람들이 저 모습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는 분위기라는 것.
“언데드가 두려움에 떨만한 외모야.”
땡땡 –
사칭범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모두 모이시오!”
움찔.
웅성웅성 –
“사람 목소리가 이렇게 크다니…”
“마법이라도 쓰는 것 같군!”
이윽고, 모두가 조용해진 가운데 목소리 하나가 울렸다.
“다들 나의 소문은 익히 들었을 것이오!”
“….?”
“나는 제국의 북부에서 언데드를 몰아낸 크리스라고 하오!”
“…???”
웅성웅성 –
“소문에는 흰머리라고 하지 않았는가?”
“소문이 그렇지 뭐, 머리는 헛소문이었던 거지.”
왜 멀쩡하게 잘난 소문을 놔두고 이상한 것만 믿느냐는 말이다.
이번에는 또 다른 사칭이 시작되었다.
“내가 성녀를 모시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오. 대지의 신 일리아께서 나를 보내며 말씀하시길….”
꿀꺽 –
“힘없는 사람들과 아이들의 운명을 봐주라 하였소!”
“오오! 역시…!”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안 나올 지경이었다.
저런놈이 신의 음성을 들어?
당장 옆에 붙은 원혼들만 해도 다섯이나 되는 놈이었다.
“한 명씩 앞으로 나서시오!”
“내,내가 먼저! 저는 이곳에서…!”
땡- 땡- 땡 –
“농사를 짓는 농부로군.”
“그, 그걸 어떻게?”
그걸 어떻게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아까 보냈던 오크새끼가 와도 농부인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봐도 농부의 옷을 입고 있었으니까.
문제는 사람들이 놀라고 있다는 것.
“역시 소문대로야.”
“뭐든 척척 맞추는군.”
정말로 지랄이 풍년이었다.
“신께서 말씀하시길 그대의 농사는 올해 무사히 지나갈 것 같다고 하시는 군.”
“가, 감사합니다!”
순간, 사칭범이 한 사람을 가리켰다.
“이리로 오라.”
흠칫.
“저 말입니까?”
“그대는 일찍이 부모를 먼저 떠나보낸 사람이로군.”
“허억…!”
한 번 더 정확하게 들어맞는 놈의 말.
클로셀 영감마저 나에게 물어왔다.
“저건 어떻게 한 것인가?”
간단하다.
“짜고 친거에요.”
방금 놀라는 척을 한 저놈은 부모님이 멀쩡하게 살아 있을 것이다.
바람잡이라는 말이다.
놈이 이런 식으로 몇 번을 더 연기하자 주변 사람들이 홀라당 넘어가기 시작했다.
“우리 아들은 올해로 세살이요! 무엇을 시키면 좋겠소?”
땡 – 땡 –
“마나의 자질이 뛰어나니, 저녁에 나에게 보여주시게. 집을 알려주는 것도 좋겠군.”
“그,그게 사실이오? 아니, 입니까? 감사합니다!”
평민의 아들이 마법사의 자질을 지녔다는데 기뻐하는 게 당연한 일.
대부분 무속을 바탕으로 한 사기는 저렇게 이루어진다.
욕망을 살살긁어서 키워 놓는 식으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넘어오도록 말이다.
“악질이네, 악질이야….”
“어떻게 하겠나?”
“일단 두고 보시죠.”
주변에 붙은 원혼들이 모두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곱게 죽지도 못한 아이들.
온몸이 상처투성이었다.
거기다가 놈에게 붙어 있는 금전운.
“저 새끼 노예 상인인 거 같은데…”
확실히 나라가 바뀌니, 벌써 저런놈들이 보이는 것 같았다.
– ….
아이들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은 공포.
그 밖에도 낯설음, 허기짐, 외로움이 섞여 있었다.
– ….
순간, 나와 마주치는 아이의 눈.
머릿속으로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어둡고 캄캄한 곳.
검은색의 로브를 입은 사람들.
“….설마.”
무언가를 선별하듯 아이들을 살피더니, 몇몇을 데리고 사라지는 듯했다.
그리고 선택되지 못한 아이들은.
“증거를 없앴네.”
저놈이 공급책이었다.
자기를 납치한 놈에게 아이들의 원혼이 들러붙은 것이다.
표지를 바꿔 보았습니다!
다 여러분들이 관심을 쏟아주신 덕분입니다.
다들 만수무강, 백년해로 아무튼 좋은거 다 하세요!
금전운 빵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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