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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6

       제국의 위상이란 대단했다.

        ​

        그저 제국에서 온 여행객이라는 말 한마디로 검문도 없이 성문을 통과했으니 말이다.

        ​

        엘프인 세레나, 거기다 드워프인 드잔트까지 동행하는 우리 일행은 오히려 환대를 받으며 성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

        클로셀 영감이 흥겨운 얼굴로 물어왔다.

        ​

        “그래서 이제 어찌할 셈인가?”

        ​

        어쩌긴 뭘 어쩌겠는가.

        ​

        하르프의 왕 부터 만나봐야 할 것 같았다.

        ​

        어쩌면 공식적으로 사신단과 같이 오는 게 더 빨랐을지도 모르겠다.

        ​

        “사신은 누가 파견된 건가요?”

        ​

        “자네도 아는 인물일세.”

        ​

        “제가요?”

        ​

        “노르딘 백작이 파견되었네.”

        ​

        그 사람이라면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

        기사의 표본.

        ​

        사람의 됨됨이도 훌륭했으니, 잘해낼 수 있을 것이다.

        ​

        “씁…애매한데…”

        ​

        네크로맨서가 작정하고 정체를 감출텐데 찾을 수 있으려나?

        ​

        “단서를 하나씩 찾아봐야겠네요.”

        ​

        “어디서부터 시작할 생각인가?”

        ​

        이번 여정은 대체적으로 이렇게 흘러 갔다.

        ​

        계획없이 내가 하고 싶은데로 한다.

        ​

        영감님들의 말로는 이렇게 하는게 더 정답에 빠르게 가까워지는 길이라고 했다.

        ​

        “얼른 한곳을 찍어 보시게. 그리로 가도록 하지.”

        ​

        “으음…”

        ​

        그렇게 말해도 아직은 딱히 촉이 오는 곳이 없었다.

        ​

        굳이 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

        “바다 쪽으로 가야겠어요.”

        ​

        “거기에 무언가가 있는가?”

        ​

        “용왕기를 쥐가 파먹었더라구요.”

        ​

        일행들의 시선이 슬그머니 나에게로 돌아왔다.

        ​

        설명이 필요한 것이리라.

        ​

        바다에 사는 용왕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데….

        ​

        고민할 필요도 없이 클로셀 영감이 나에게 되물었다.

        ​

        “드래곤을 말함인가?”

        ​

        “계속해서 흥미로운 인간이군. 방울 말고도 즐길게 많겠어.”

        ​

        “드래곤이라…”

        ​

        어쩌면 비슷한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

        날씨도 조종이 가능할 테고, 동양에는 용, 서양하면 드래곤 아닌가.

        ​

        문제는 드래곤이라는 게….

        ​

        “그게 진짜로 있는거예요?”

        ​

        “진짜로 있다네.”

        ​

        나와 루나를 제외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

        “나와 라몬은 드래곤을 처음 마주하는 날 죽을 뻔했지.”

        ​

        “영감님들이요?”

        ​

        “우리가 소드 마스터에 대마법사라고 불리지만 그들에게는 별것 아닌 존재라네.”

        ​

        솔직히 그 강함이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

        괴물 같은 영감님들이 쩔쩔매야 하는 존재라니.

        ​

        “그렇게 강한데, 대륙전쟁 때는 뭘 했데요? 같이 안싸우고?”

        ​

        조금 괘씸하지 않은가.

        ​

        “그들은 세상에 대해 지독하게도 권태로운가 보더군.”

        ​

        “흐음…”

        ​

        “초월적인 존재들을 이해하기란 어려운 법이지.”

        ​

        확실히 그렇기는 하다.

        ​

        당장에 신령님들조차 큰신이 되어갈수록 세상사에서 초탈해가니까 말이다.

        ​

        세상의 큰 흐름만을 볼 뿐.

        ​

        “인간적인 감정을 가진 드래곤도 존재한다네. 다만, 나서지 않는 이유가 있었지 싶네.”

        ​

        영감님들도 자세한 건 모르는 듯했다.

        ​

        드래곤이라는 게 전설에서나 나오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것도 많이 알고 있는 것이지만.

        ​

        “나서지 않는 이유…”

        ​

        “자네라면 드래곤도 동료로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

        “그건 좀….”

        ​

        무속의 세계에서도 용은 영험한 존재다.

        ​

        용왕신이 따로 있을 정도로.

        ​

        동료가 되기보다는 상부터 차려야 할 존재에 더 가까웠다.

        ​

        이곳에는 어떤 형태로 존재할지 모르지만 말이다.

        ​

        살아 있는 신령쯤 되려나?

        ​

        “일단 바다로 가보시죠. 근처에 가까운 바다가 있나요?”

        ​

        “공교롭게도 하르프 왕국의 수도는 바다에 있다네.”

        ​

        “어쨌든 드래곤하고 얽힐 일은 없을지도 몰라요.”

        ​

        용왕기라는 게 무조건 용왕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다.

        ​

        보다 관념적인 개념이니 말이다.

        ​

        바다 그 자체를 의미할 수도 있었다.

        ​

        “이것도 가 봐야 알겠네.”

        ​

        “그보다, 자네 지금 어디로 가는가?”

        ​

        이야기를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걷고 있었다.

        ​

        목적지도 없이 말이다.

        ​

        “왜 자꾸 발이 이리로 가지?”

        ​

        사람이 괜히 이상한 행동을 할 때가 있다.

        ​

        허전한 마음에 어딘가를 서성인다거나 하는 행동.

        ​

        내 말에 영감님들이 부리나케 손짓을 했다.

        ​

        “무조건 가고 싶은 곳으로 가게.”

        ​

        “자잘한 일들은 다 해결 해줄테니, 자네 마음대로 다 하시게나.”

        ​

        “참나…”

        ​

        이 영감들이 이상한 것에 꽂힌 모양이다.

        ​

        얼마 전부터 자꾸 저러고 있었으니….

        ​

        길을 따라 걸음을 옮기려던 순간이었다.

        ​

        “….?”

        ​

        우르르 –

        ​

        사람들이 한곳을 향해 몰려가기 시작했다.

        ​

        해괴한 소리들을 내뱉으며.

        ​

        “저곳에 운명을 봐주는 사람이 나타났다는군.”

        ​

        “제국에 나타났다는 그 성자말인가?”

        ​

        “그 사람이 확실하네! 벌써 그 굿이라는걸 시작했다는 모양일세.”

        ​

        굿?

        ​

        나 말고 굿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있던가?

        ​

        “벌써 줄이 길어졌어. 빨리 가 보자구!”

        ​

        “이름이 크라슬이라고 했던가?”

        ​

        “크리스가 맞을걸세.”

        ​

        갈수록 대화의 내용이 이상했다.

        ​

        “….?”

        ​

        영감님들도 흥미롭게 그들을 쳐다봤고, 세레나의 눈은 한없이 차가워졌다.

        ​

        “자네, 굿을 하기로 했는가?”

        ​

        “설마요.”

        ​

        “자네가 굿을 한다는 구만. 나도 보고 싶네.”

        ​

        “자주 봤지 않나요?”

        ​

        나는 이곳에서 굿을 하기로 한 적이 없었다.

        ​

        마땅히 굿을 할 거리들도 보이지 않고.

        ​

        그렇다는 건.

        ​

        그것이다.

        ​

        “사칭범이네.”

        ​

        “자네가 유명해지다 보니, 사기꾼이 나타난 것 같네.”

        ​

        사람들을 따라 함께 움직이니 곧 수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

        땡 – 땡 – 땡 –

        ​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작은 종.

        ​

        어디 영화에나 나올 법한 하인을 부르는 종이었다.

        ​​

        드잔트의 평은 이러했다.

        ​

        “졸렬한 소리군.”

        ​

        땡 – 땡 –

        ​

        웅성웅성 –

        ​

        “저게 그 언데드를 물리쳤다는 신성한 종이군.”

        ​

        “과연, 소문대로야.”

        ​

        종을 흔드는 사람의 덩치가 굉장했다.

        ​

        나보다 머리가 두 개나 더 있을 법한 크기.

        ​

        얼굴 또한 제법 흉악했다.

        ​

        이마부터 턱까지 긴 흉터가 생겨 있었으니 말이다.

        ​

        웃기는 건 사람들이 저 모습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는 분위기라는 것.

        ​

        “언데드가 두려움에 떨만한 외모야.”

        ​

        땡땡 –

        ​

        사칭범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

        “모두 모이시오!”

        ​

        움찔.

        ​

        웅성웅성 –

        ​

        “사람 목소리가 이렇게 크다니…”

        ​

        “마법이라도 쓰는 것 같군!”

        ​

        이윽고, 모두가 조용해진 가운데 목소리 하나가 울렸다.

        ​

        “다들 나의 소문은 익히 들었을 것이오!”

        ​

        “….?”

        ​

        “나는 제국의 북부에서 언데드를 몰아낸 크리스라고 하오!”

        ​

        “…???”

        ​

        웅성웅성 –

        ​

        “소문에는 흰머리라고 하지 않았는가?”

        ​

        “소문이 그렇지 뭐, 머리는 헛소문이었던 거지.”

        ​

        왜 멀쩡하게 잘난 소문을 놔두고 이상한 것만 믿느냐는 말이다.

        ​

        이번에는 또 다른 사칭이 시작되었다.

        ​

        “내가 성녀를 모시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오. 대지의 신 일리아께서 나를 보내며 말씀하시길….”

        ​

        꿀꺽 –

        ​

        “힘없는 사람들과 아이들의 운명을 봐주라 하였소!”

        ​

        “오오! 역시…!”

        ​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안 나올 지경이었다.

        ​

        저런놈이 신의 음성을 들어?

        ​

        당장 옆에 붙은 원혼들만 해도 다섯이나 되는 놈이었다.

        ​

        “한 명씩 앞으로 나서시오!”

        ​

        “내,내가 먼저! 저는 이곳에서…!”

        ​

        땡- 땡- 땡 –

        ​

        “농사를 짓는 농부로군.”

        ​

        “그, 그걸 어떻게?”

        ​

        그걸 어떻게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

        아까 보냈던 오크새끼가 와도 농부인걸 알 수 있을 것이다.

        ​

        누가 봐도 농부의 옷을 입고 있었으니까.

        ​

        문제는 사람들이 놀라고 있다는 것.

        ​

        “역시 소문대로야.”

        ​

        “뭐든 척척 맞추는군.”

        ​

        정말로 지랄이 풍년이었다.

        ​

        “신께서 말씀하시길 그대의 농사는 올해 무사히 지나갈 것 같다고 하시는 군.”

        ​

        “가, 감사합니다!”

        ​

        순간, 사칭범이 한 사람을 가리켰다.

        ​

        “이리로 오라.”

        ​

        흠칫.

        ​

        “저 말입니까?”

        ​

        “그대는 일찍이 부모를 먼저 떠나보낸 사람이로군.”

        ​

        “허억…!”

        ​

        한 번 더 정확하게 들어맞는 놈의 말.

        ​

        클로셀 영감마저 나에게 물어왔다.

        ​

        “저건 어떻게 한 것인가?”

        ​

        간단하다.

        ​

        “짜고 친거에요.”

        ​

        방금 놀라는 척을 한 저놈은 부모님이 멀쩡하게 살아 있을 것이다.

        ​

        바람잡이라는 말이다.

        ​

        놈이 이런 식으로 몇 번을 더 연기하자 주변 사람들이 홀라당 넘어가기 시작했다.

        ​

        “우리 아들은 올해로 세살이요! 무엇을 시키면 좋겠소?”

        ​

        땡 – 땡 –

        ​

        “마나의 자질이 뛰어나니, 저녁에 나에게 보여주시게. 집을 알려주는 것도 좋겠군.”

        ​

        “그,그게 사실이오? 아니, 입니까? 감사합니다!”

        ​

        평민의 아들이 마법사의 자질을 지녔다는데 기뻐하는 게 당연한 일.

        ​

        대부분 무속을 바탕으로 한 사기는 저렇게 이루어진다.

        ​

        욕망을 살살긁어서 키워 놓는 식으로.

        ​

        혹시나 하는 마음에 넘어오도록 말이다.

        ​

        “악질이네, 악질이야….”

        ​

        “어떻게 하겠나?”

        ​

        “일단 두고 보시죠.”

        ​

        주변에 붙은 원혼들이 모두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

        곱게 죽지도 못한 아이들.

        ​

        온몸이 상처투성이었다.

        ​

        거기다가 놈에게 붙어 있는 금전운.

        ​

        “저 새끼 노예 상인인 거 같은데…”

        ​

        확실히 나라가 바뀌니, 벌써 저런놈들이 보이는 것 같았다.

       

       – ….

        ​

        아이들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은 공포.

        ​

        그 밖에도 낯설음, 허기짐, 외로움이 섞여 있었다.

        ​

        – ….

        ​

        순간, 나와 마주치는 아이의 눈.

        ​

        머릿속으로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

        어둡고 캄캄한 곳.

        ​

        검은색의 로브를 입은 사람들.

        ​

        “….설마.”

        ​

        무언가를 선별하듯 아이들을 살피더니, 몇몇을 데리고 사라지는 듯했다.

        ​

        그리고 선택되지 못한 아이들은.

        ​

        “증거를 없앴네.”

        ​

        저놈이 공급책이었다.

        ​

        자기를 납치한 놈에게 아이들의 원혼이 들러붙은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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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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