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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6

       웬만한 일에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백우진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제법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그림 속 여인이, 수석 장인이라고?”

         

       너무나도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 들었기 때문에.

         

       “…확실하오. 내 어찌 잊겠소?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그년은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진짜배기 악마요.”

       “수석…, 장인이란 말이지.”

         

       정종구에게 향해 있던 그림을 돌려 제 눈앞에 가져가는 백우진.

         

       아무리 봐도 자신과 비슷한 또래로 밖에 보이지 않는 예쁘장한 얼굴이다.

         

       순진하게 웃으며 자신을 유혹하던 어설픈 첫날 밤, 생선 가시를 발라주며 요염하게 웃고 있던 아침이 떠오른다.

         

       “수석 장인이 올해로 몇 살이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 환갑은 넘었을 거요.”

       “그래….”

         

       환갑이란다.

         

       ‘그럼 내가 잘못하고 홀라당 넘어갔으면 환갑 먹은 노인네랑 할 뻔했단 거네.’

         

       허허.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우웨에에엑!”

         

       속에 있는 것들을 전부 게워냈다.

       

       그는 생각보다 비위가 약했다.

         

         

       * * *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밤.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한 당선영은 자신이 머무는 당가의 심처에 조성된 연못가를 거닐었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면 기분이 제법 나아질 거라 여겼건만, 그녀의 어두운 표정은 좀처럼 나아질 생각을 않고 있었다.

         

       온갖 상념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괴롭히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답답해….’

         

       당가에 암운이 드리웠다. 가주인 아비는 진짜인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원로회의 의견대로 돌아가기 시작한 이후부터 방계 혈족의 힘이 거세져 직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녀는 구태여 직계와 방계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결국 같은 성씨요, 따지고 보면 자신에게 삼촌, 사촌이나 다름없는 이들이 아닌가.

         

       허나, 그들은 생각이 달랐다. 당가는 오랫동안 직계가 더 큰 힘을 지니는 형태로 운영되었다.

         

       은밀한 차별 속에서 억눌린 채 살아왔던 이들은 시간이 갈수록 권력에 대한 탐욕을 드러내며 더욱 공격적으로 직계의 권한을 하나둘씩 빼앗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가문이….’

         

       가주가 의욕을 잃은 뒤로 직계는 방계로부터 계속 빼앗기며 살아왔다. 자신들의 앞에서 이끌어야 할 이가 처소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 이르니 그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허나, 그러한 상황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이대로 모든 걸 내어줄 수는 없다며 직계의 혈족들 또한 가주의 명을 도외시한 채 맞서기로 한 것이다.

         

       돌이킬 수 없게 되기 전에 몸을 일으키는 데에 성공한 이들은 방계와 치열한 암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그들 모두가 당가의 소중한 전력이다. 이대로 소모전이 계속되고, 감정의 골이 깊어지게 된다면 암투보다 더 심각한 혈투가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당가가 몇 조각으로 쪼개져 버릴지도.

         

       ‘이런 상황에서 난….’

         

       한시바삐 움직여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살얼음판 위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하염없이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다는 것이, 그녀는 답답하고 화가 났다.

         

       “하아….”

         

       그녀는 폐에 찌꺼기처럼 들러붙어 있는 상념들을 뱉어내며 고개를 저었다.

         

       ‘내일은 백우진을 찾아가 조금이라도 얘기를 나눠봐야겠어.’

         

       그라면 이제부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조금이나마 알게 해줄지도 모른다.

         

       ‘…사실은 그냥 보고 싶은 거지만.’

         

       한참을 보고 있다가 등을 돌리면 금세 보고 싶어지는 그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녀는 다가올 내일을 조금이라도 앞당기기 위해 침소에 들려 했다.

         

       “밤이 늦었는데 예서 무얼 하십니까, 아가씨.”

         

       늙수그레한 음성이 들려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짙은 어둠 속에서 기괴한 가면을 쓰고, 살짝 굽은 허리에 뒷짐을 지고 있는 노파가 걸어 나왔다.

         

       이를 바라보는 당선영의 눈빛이 거세게 흔들렸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가씨.”

         

       노파가 깍듯하게 고개를 숙이며 그녀에게 인사를 올렸다.

         

       그녀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간 강녕하셨는지요.”

         

       그 뻔뻔스러운 물음에 무심코 쏟아낼 뻔한 살의를 끝끝내 억누르며 그녀는 숨을 몰아쉬었다.

         

       당선영에게 있어 노파는 증오의 대상 아니, 그 근원이었다.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비틀리게 만든 장본인이니 당연했다.

         

       “오랜만에 보는군요, 수석 장인.”

         

       기괴한 가면을 쓴 그 노파가 바로 그녀에게 끔찍한 실험을 자행한 수석 장인, 진미연이었다.

         

       “홀홀홀! 정말 아름답게 잘 자라셨어요.”

         

       가면 너머에 숨어 있는 두 눈이 그녀를 위아래로 흘겨보았다.

         

       “정말…, 질투가 날 정도로 말입니다.”

       “읏…!”

         

       진한 탐욕이 묻어 나오는 말투에 당선영은 저도 모르게 뒤로 한걸음 물러나고 말았다.

         

       진미연은 그녀에게 있어 증오의 대상임과 동시에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녀를 만날 때마다 당선영은 어린아이의 몸으로 차마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그때의 공포가, 그녀의 뼛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절대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야.’

         

       당선영은 천천히 기운을 끌어 올렸다.

         

       모두가 잠든 야심한 밤에 찾아오는 이가 좋은 뜻을 가지고 왔을 리가 없었다. 하물며 그것이 증오해마지 않는 대상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홀홀! 그리 긴장하실 것 없어요. 오랫동안 뵙지 못한 아가씨의 몸에 이상이 있을까 염려되어 잠시 살펴보고자 할 뿐이니.”

         

       어린 날의 기억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매번 그랬다. 거센 고통을 느끼는 날이면 진미연은 저리 말했다.

         

       “자아, 저와 함께 잠시 가시겠어요?”

         

       그때 느꼈던 고통이 떠오르자 온몸이 저려왔다. 지금 겪어도 참아내기 힘든 수준의 격통이었다. 그녀는 이제 와서 그것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밤이 늦었으니 다음에 다시 찾아오는 게 좋겠어요.”

         

       완곡하게 거절 의사를 표명하자 진미연은 별안간 웃으며 가면 뒤에 숨은 안광을 빛냈다.

         

       “괜찮아요, 괜찮아. 가주님께 이미 허락을 받고 온 길이니까요.”

       “뭣…!”

         

       그 순간, 등을 지고 있던 연못가로부터 기척이 느껴졌다.

         

       당선영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보았다.

         

       웬 거한이 제 그림자 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는 것을.

         

       “치잇…!”

         

       그녀는 황급히 뒤로 물러나며 태세를 정비하려 했으나, 뒤를 완벽하게 빼앗겼을 때 싸움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여린 그림자 속에서 몸을 일으킨 사내는 그녀가 물러나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다가와 어깨뼈와 양팔의 뼈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대마혈을 정확히 짚어냈다.

         

       “아…!”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른 그녀의 몸이 우뚝 멈춰 섰다. 마혈을 짚인 탓에 온몸이 마비가 된 탓이었다.

         

       “홀홀! 거친 방법을 사용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아가씨.”

         

       당선영은 느린 걸음으로 제 앞까지 다가온 진미연을 향해 눈동자를 굴렸다.

         

       “당신…!”

         

       거칠게 타오르는 듯한 말투에도 노파는 홀홀 웃는 소리를 내며 말을 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 실험은 예전처럼 아프진 않을 터이니.”

       “이…!”

         

       원독어린 눈빛을 쏘아내며 무어라 말하려 할 때, 그녀의 뒤에 서 있던 사내가 수혈을 짚었다.

         

       영영 닫히지 않을 것 같았던 그녀의 눈 위로 눈꺼풀이 빠른 속도로 내려앉기 시작했다.

         

       ‘백… 우진….’

         

       꺼져가는 의식 속에서, 당선영은 백우진의 얼굴을 그리며 눈을 감았다.

         

         

       * * *

         

         

       정종구의 심문 도중 속을 말끔히 비워낸 백우진은 이후 몇 가지 더 물어본 뒤에 밖으로 나왔다.

         

       어느덧 동이 터오르고 있었다. 빈속을 채우기 위해 객잔 식탁에 앉아 간단한 요깃거리로 배를 채웠다.

         

       “괜찮아요…?”

         

       맞은편에는 제갈연지가 걱정어린 눈빛을 쏟아내고 있었다.

         

       백우진은 환하게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걱정을 덜어주었다.

         

       “그럼, 괜찮고 말고.”

         

       당황스럽고, 화가 났을 뿐이다.

         

       속으로 나이를 어마어마하게 잡아먹은 노인이 자신을 노려서? 아니다.

         

       판타지 세계에서는 수백 년을 살아가는 종족들도 있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취향에만 맞으면 나이야 무슨 상관이냐 싶을 정도로 백우진은 그런 쪽으로는 제법 관대한 편이었다.

         

       다만 역겨웠다. 수많은 생명을 해치고도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여전히 어딘가에서 잔인한 실험을 이어가고 있을 게 분명한 추물과 함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참을 수 없이 역겹고 더러웠다.

         

       “후우.”

         

       오랜만에 술을 연거푸 들이켰다. 당가에 들어온 이후로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운기가 가능한 수준만 마시고 있었는데, 오늘만큼은 조금 더 취기가 올라왔으면 했다.

         

       가득 차오른 호리병을 세 번 연달아 비워낸 백우진은 적당하게 올라온 취기를 느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슬슬 가볼게.”

       “아…, 벌써요…?”

         

       그녀가 아쉽다는 투로 얘기했다.

         

       백우진과 만난 이후로 이토록 오래 떨어져본 적은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더 오랜 시간 붙잡아두고 싶지만, 그것이 불가능함을 알았기에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자, 잘 다녀오세요. 빨리 오셔야 해요…?”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배웅하여 그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고 싶었건만, 그것이 마음처럼 쉽지가 않았다.

         

       축축하게 젖은 듯한 음성에 백우진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히웁…!”

         

       예상치 못한 포옹에 그녀가 달뜬 신음을 내뱉으며 당황하고 있을 때, 그의 손길이 뒷머리를 가볍게 쓸어내렸다.

         

       “조금만 더 기다리고 있어. 금방 끝내고 올 테니까.”

       “녜, 녜헤….”

         

       품에서 떼어낸 제갈연지는 살짝 맛이 가버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고작 포옹에 이렇게 되는 순수한 그녀를 보고 있자니 더부룩했던 속이 조금은 가라앉는 듯했다.

         

       조금 시간이 필요해 보이는 그녀를 뒤로한 채 객잔을 나섰다.

         

       “저, 저기…!”

         

       그곳에는 신예화가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기다리고 있었다.

         

       “왜?”

       “나, 나아, 있잖아….”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언제나 당차게 얘기하곤 했던 그녀가 오늘따라 무슨 이유에선지 몸을 배배 꼬며 같은 말만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너, 너 올 때까지 내가 조원들 지키고 있을 테니까!”

         

       그녀가 눈을 질끈 감았다.

         

       “나, 나, 나도…, 그러니까 나도…, 하, 한 번만 안아주지 않을래?!”

         

       그러면서 팔을 쭉 내뻗는 모습에 백우진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애정을 갈구하는 모습이 위태롭고, 안쓰럽다.

         

       매몰차게 거절하는 것도, 그렇다고 마음을 받아주는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그저 속을 쓰리게 만들었다.

         

       백우진은 가볍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제 머리에 닿은 기분 좋은 손길에 촉촉한 눈망울로 이쪽을 올려다보는 신예화.

         

       “간다.”

         

       잠깐이나마 붕 떠오르게 만들었던 손길이 떠나간다.

         

       그의 손이 머물렀던 머리를 자신의 손으로 매만져보았다. 따스함이 느껴졌다. 그러나 옛날의 그에게서 느꼈던 따스함과는 어쩐지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대체 그 차이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신예화는 기쁜 건지, 슬픈 건지 모를 눈으로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보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정말 죄송합니다, 독자님들…!

    새벽 두 시 경에 마지막 한 페이지를 남겨두고 있던 상황에서 의자에 앉은 채로 깜빡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최근에 자꾸 밤에 글 쓰는 속도가 더 빨라서 밤낮이 살짝 바뀐 상태였는데,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밖에 드릴 수가 없네요…

    이것은 이후 스택 1로 쌓아서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연참으로써 사죄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말씀 올립니다.

    그럼 저는 오늘 밤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편안한 밤,,, 이 아니라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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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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