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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6

       금요일 밤 서울의 한 호프집.

         

       “야이 씨~ 그래서 내가 부대에서 말이야~ 어…? 내 밑에 수십 명이 있다고, 알아들어?”

         

       “너 지금 그 얘기 수십 번째인 건 아냐?”

         

       “아 이 새끼 존나 취했네.”

         

       오랜만에 휴가를 나온 유창선 병장이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몇 달 만에 마시는 술이라 유창선 병장의 주량은 무지하게 줄어든 채였다.

         

       덕분에 유창선 병장은 잔뜩 취하여 친구들 앞에서 추태를 보였다.

         

       그리고 결국….

         

       “어? 내가 군대에서 어?”

         

       “알았다고 병신아.”

         

       “군대에서…, 내가…, 군대에서….”

         

       털썩.

         

       “뭐야, 이 새끼 벌써 뻗었네?”

         

       그는 자신의 취기를 견디지 못하고 테이블에 털썩 엎드려 잠에 빠졌다.

         

       친구들은 그런 유창선 병장을 버리고 갈까 생각하면서도 그를 집에 데려다주기 위해 부축하여 일으켰다.

         

       정말 오랜만에 휴가 나온 군인 친구가 불쌍했기 때문이었다.

         

       “어휴, 야 그쪽 어깨 잡아줘. 이 새끼 집 데려다 줘야지.”

         

       “아 오키, 그러면 일단 내가 먼저 계산할 테니까 나중에 돈 보내줘라.”

         

       “알았어, 아…, 이 새끼 때문에 밤새 놀지도 못하고 이게 뭐야, 지금 몇 시냐?”

         

       “음…, 11시 20분. 아직 버스랑 지하철 다니니까 택시 안 타도 되겠네.”

         

       그렇게 친구들이 유창선 병장을 데리고 술집을 나가려던 그때였다.

         

       스륵.

         

       “…지금 몇 시라고?”

         

       “아씨, 깜짝이야! 뭐야, 너 깼냐?”

         

       아까까지만 해도 인사불성에 몸을 주체하지 못해 흐느적대던 유창선 병장이 갑자기 시간을 듣자마자 돌변을 하며 몸을 세웠다.

         

       그리고는….

         

       “그게 문제가 아니라…, 지금 몇 시라고?”

         

       “11시 20분. 왜? 무슨 문제 있….”

         

       “시발.”

         

       털썩.

         

       …정확히 11시 20분이란 걸 듣자마자 하얗게 불태운 듯 넋을 잃으며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평소 진지한 모습이라곤 없던 유창선 병장이 진심으로 실망하며 넋을 잃자 친구들은 걱정하며 물었다.

         

       “…야, 왜. 무슨 일인데?”

         

       “……나아아.”

         

       “…뭐?”

         

       “…나아아 못 봤어. 10시에 하는 건데.”

         

       “……설마 그 아이돌 오디션 말하는 거야?”

         

       “…어. 우리 예린이…, 우리 예린이 꼭 봐야 하는데…, 어, 어떡해…, 우리 예린이 못…, 끄악!”

         

       퍼억.

         

       그리고 친구들은 결국 못 참고 유창선 병장의 머리를 후렸다.

         

       “끄악은 무슨 이 미친 새끼! 무슨 큰일 난 줄 알았네.”

         

       “…흐으.”

         

       “…뭐야, 너 울어?”

         

       당연히 유창선 병장이 장난을 치는 거라고 생각했던 친구들은 그가 눈물을 보이자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이내 유창선 병장은 사나이의 눈물을 닦으며 기죽은 목소리로 친구들에게 말했다.

         

       “…나한테는 큰일 맞다고 새끼들아…. 내가 지금 군생황을 예린이 보는 낙으로 버티는데 시발….”

         

       “와 이 미친놈 진짜 우네.”

         

       “이런 새끼가 친구라니 나 진짜 인생 헛살았네.”

         

       “흐윽…, 예린아아….”

         

       유창선 병장이 눈물을 흘리며 부르짖는 이름에 친구 중 한 명이 한숨을 한 번 쉬고는 물었다.

         

       “예린…. 걔가 나아아에서 네가 제일 빠는 애냐?”

         

       “…어, 하예린. 제일 예쁜 애.”

         

       하예린.

         

       아이돌에 관심 없는 그였지만 이름은 한 번 들어 본 것 같다.

         

       인별 숏츠 넘기다가 한 번씩 스쳐 넘겼던 것도 같고.

         

       “아니, 예쁘면 얼마나 예쁘다고. 이 난리를 피우는 거냐. 나 참, 나는 아이돌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애들은 진짜 이해가 안 가.”

         

       “그…, 그….”

         

       “뭐라고?”

         

       “그 말 취소해!!!”

         

       친구의 말을 듣고 유창선 병장은 취기 때문에 벌게진 얼굴과 꼬인 혀로 속사포를 터트리듯 우다다 말했다.

         

       “우리예린이외모는탈지구급천상강림급이라고네가뭔데그런말을해너도한번이라도제대로예린이를본다면나처럼될…, 끄악.”

         

       퍼억.

         

       물론 말을 미처 다 끝내기 전에게 또다시 친구에게 얻어맞았지만 말이다.

         

       “제발 닥쳐 이 새끼야. 다른 사람한테 민폐야.”

         

       “아니…, 우리 말고 손님도 없는데 무슨….”

         

       “그냥 닥쳐. 존나 쪽팔리니까.”

         

       “에휴…, 시발. 너도 군대 가 봐라. 진짜 삶의 낙이 아이돌 밖에 없어. 그래서 그래.”

         

       “군대가 안 그래도 병신이었던 애를 구제불능으로 만들어 놨네.”

         

       그렇게 친구와 유창선 병장이 티격태격하던 그때였다.

         

       “야, 근데 아직 나아아하는 것 같은데?”

         

       “…뭐?”

         

       또다른 친구의 말에 유창선 병장이 엄청난 반응속도로 고개를 돌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검색해 보니까 오늘 분량 많아서 추가 편성했대. 자정까지 방송한다 했으니까 분명히 아직 하고 있을….”

         

       “사장님! 사장님!!!”

         

       유창선 병장은 그 말을 듣자마자 몸을 틀어 tv 앞으로 달려갔다.

         

       tv 앞에서는 금요일인데도 손님이 너무 적어 한숨을 푹푹 쉬는 호프집 사장님이 자연인 프로를 보고 있었다.

         

       “사장님! 저 후라이드 한 마리 포장해 갈 테니까 지금 당장 리모컨 좀 주세요!”

         

       “어? 아, 어어…. 그래, 여기.”

         

       유창선 병장은 그렇게 16000원 짜리 리모컨 소유권을 얻자마자 바로 Nnet으로 채널을 돌렸다.

         

       그리고…

         

       [자, 그러면 ‘하예린 팀’의 무대를 시작하겠습니다!]

         

       …기적적으로 하예린 팀의 무대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와! 시발! 섹스! 세상에 이런 일이!”

         

       “진짜 염병을 떤다 아주.”

         

       “와 시발 진짜 존나 기대돼! 예린이네 무슨 노래 부를까? 음? 또 테일로즈 노래네?”

         

       테일로즈의 <Cheer up my friends>.

         

       분명 치어리더 컨셉의 노래였다. 유창선 병장은 곧바로 치어리더 입은 하예린의 모습을 상상했다.

         

       …상상만 해도 흐뭇했다.

         

       그런데….

         

       “…어?”

         

       정작 무대의 불이 켜지자 유창선 병장을 반긴 것은….

         

       쫑긋.

         

       살랑.

         

       고양이 귀, 고양이 꼬리, 고양이 수염 거기에 검은 스타킹과 검은 팬츠를 입고 있는 검은 고양이 하예린의 모습이었다.

         

       “…….”

         

       두근.

         

       치어리더 컨셉의 하예린도 분명히 잘 어울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모습의 하예린은….

         

       “으핫…, 예, 예린…, 고, 고양…, 으헉…! 오아…! 으읏…! 허억…, 허억…, 와파…, 크아…, 흐엇…! 오고곡…, 으으윽…!”

         

       “…이 새끼 결국 인간의 언어를 잃었어!”

         

       1년 5개월 차 군인에게 너무나도 폭력적이었다.

         

       결국 냥예린에게 심장을 폭행당한 유창선 병장은 가슴을 부여 잡은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진짜 지랄을 한다, 지랄을.”

         

       친구는 그런 그의 모습을 한심하게 바라보다가 tv 속 하예린에게 시선을 돌렸다.

         

       ‘…확실히 예쁘긴 하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냥 예쁜 정도가 아니긴 했다.

         

       고양이 분장을 한 하예린은 지금까지 그가 본 그 어떤 여자 중 가장 예뻤다.

         

       하지만….

         

       ‘아이돌이 예쁜 건 당연한 거 아닌가.’

         

       그들만의 세상이란 것이 있다.

         

       다소 염세적인 성향이 있던 친구는 tv 속 아이돌들의 모습을 평행우주의 다른 곳 정도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자기는 저런 사람과 사귀지도… 아니? 만나 보지도 못할 테니까.

         

       저런 신기루나 다름없는 아이돌을 저리도 좋아하는 유창선 병장의 심정이…, 그는 전혀 이해 가지 않았다.

         

       그렇게 친구가 하예린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과 동시에 무대는 시작되었다.

         

         

       -매일 똑같은 표정

         

       -마치 로봇같지 넌

         

       -늘 괜찮다 말하긴 해도

         

       -괜찮지 않아 보이는 너

         

         

       ‘아 이거….’

         

       친구도 들어 본 적 있는 노래였다.

         

       워낙 히트했던 테일로즈의 곡이였으니까.

         

       하예린 팀은 원곡의 밝은 분위기를 그대로 가져갔다.

         

       기존의 테일로즈의 무대와 다른 것이 있다면….

         

       모든 멤버가 시종일관 웃으면서 무대를 잇던 테일로즈와 달리 하예린팀의 리더인 하예린은 시종일관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는 것.

         

       물론 그것이 어울리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오히려 혼자서 차가운 표정으로 무대를 하니 그쪽으로 시선이 가는 것과 동시에 도도한 고양이의 모습을 실감 나게 떠올리게 했다.

         

         

       -그런 너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뭘까

         

       -Cheer up 너를 위해 준비한 쇼

         

         

       이쪽에 문외한인 친구가 볼 때도 하예린의 춤은 달라도 뭔가 달랐다.

         

       뭔가 더…, 보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느낌이랄까.

         

       게다가….

         

       살랑살랑.

         

       “귀, 귀엽…. 읏.”

         

       춤을 출 때마다 살랑이는 꼬리가 자꾸 그의 가슴을 간질였다.

         

       친구는 자기도 모르게 귀엽다고 말했다가 입을 막았다.

         

       그렇게 친구가 입을 틀어막은 채로 무대는 계속되었다.

         

         

       -힘을 내 우리가 있잖아

         

       -밖에서 그 누가 너를 괴롭혀도

         

       -안에서는 너만을 바라보는 우리가 있어~

         

         

       ‘오…, 쟤 노래 잘 부른다…. 메인보컬…, 그런 건가?’

         

       그는 서유진의 보컬을 듣고 잠시 감탄했다.

         

       서유진은 검은 고양이 분장을 한 하예린과 달리 상반된 하얀 고양이 분장을 하고 있었다.

         

       하예린 만큼은 아니지만…, 그는 서유진을 볼 때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우리는 항상 네 곁에~

         

         

       이어서 펼쳐지는 박유정의 댄스 브레이크.

         

       고양이 하예린, 서유진과 달리 골든 리트리버 분장을 한 그녀는 그에게 색다른 매력을 선보였다.

         

       팔랑.

         

       쫑긋 세워진 고양이 귀들 대신 축 처진 귀를 가진 박유정은 격한 댄스를 선보이며 귀를 팔랑였다.

         

       그리고 그렇게 시선이 집중된 채로 펼쳐지는 단체 후렴.

         

         

       -언제나 힘을 내

         

       -네 곁엔 항상 우리가~

         

         

       각양각색 매력의 참가자들이 조화를 이루며 시너지를 냈다.

         

       하지만 역시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하예린.

         

       ‘…아.’

         

       그 순간 친구는 유창선 병장이 왜 이리 하예린을 좋아하는지 이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하예린은 다르다.

         

       무엇이 다르냐고 물어본다면….

         

       저 쫑긋 세워진 고양이 귀가.

         

       차갑지만 중간중간 피어나는 작은 미소가.

         

       하얗고 작은 얼굴과 찰떡으로 잘 어울리는 저 고양이 수염이.

         

       진짜 고양이처럼 요염하고 유연한 그녀의 춤선이.

         

       그리고….

         

       살랑살랑.

         

       한 번이라도 만져 보면 소원이 없을 것 같은 저 꼬리가…!

         

       …너무나도 매혹적이었다.

         

       너무나도 요망했다.

         

       …아니, 요망하다는 천박한 말은 그녀와 어울리지 않는다.

         

       ‘너무나도…, 너무나도…, 시발…! 도저히 표현할 말이 없어…!’

         

       그렇게 유창선 병장을 한심하게 생각하던 그는 어느새 자기 또한 빠진 채로 화면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땐….

         

       [와아아아아아-!!!]

         

       [하예린-!!!!]

         

       [앵콜!!!!!]

         

       ‘…뭐, 뭐야 벌써 끝났어?’

         

       이미 무대가 끝나고 모든 멤버들이 각자 엔딩포즈를 잡고 있는 채였다.

         

       파앗.

         

       그렇게 무대가 암전되고….

         

       ‘아, 아니 왜 이렇게 빨리 끝나는…, 아, 아니지 정신 차려.’

         

       그는 무대가 끝난 것에 아쉬움을 느끼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큰일 날 뻔했다.

         

       하마터면 이성을 잃고….

         

       “하…, 이번 예린이 무대도 쩔었다….”

         

       저기 앉아 있는 유창선 병장처럼 경계를 넘고 아이돌 같은 환상이나 좋아하는 한심한 놈이 될 뻔했다.

         

       “야, 그치? 우리 예린이 미쳤지?”

         

       “아니 뭐…, 글쎄….”

         

       그렇게 그가 맹공을 버텨 낸 스스로를 향해 속으로 칭찬을 하던 그때였다.

         

       파앗.

         

       “…음?”

         

       갑자기 화면 속 무대의 불빛이 다시 켜지더니….

         

       [하예린(형제기획) : 아…, 그….]

         

       백스테이지로 돌아가던 하예린이 머뭇거리는 태도로 다시 무대에 나섰다.

         

       “엥? 뭐지?”

         

       “…….”

         

       유창선 병장과 친구는 하예린이 다시 나오자 곧바로 화면에 집중했다.

         

       [하예린(형제기획) : 제가 할 말이 있는데…, 으으…, 못하겠….]

         

       [박유정(레비) : 그런 게 어딨어요, 언니! 가위바위보 졌으면 빨리 해요!]

         

       [서유진(SAV) : 빨리 언니가 하는 거 보고 싶어요!]

         

       아무래도 가위바위보에서 지고 벌칙 느낌으로 잠시 나온 것 같은데….

         

       ‘뭐지?’

         

       하예린은 도저히 못 하겠다는 듯 얼굴을 붉히고 발을 동동 구르다가 이내 팀원들의 원성에 결심했는지….

         

       스윽.

         

       양 주먹을 볼에 붙이고 외쳤다.

         

       [하예린(형제기획) : 우, 우리 팀 많은 투표 부탁한다…, 냥.]

         

       “…….”

         

       “…….”

         

       순간 세상이 멈췄다.

         

       그리고…, 멈춘 시간이 다시 흘렀을 땐….

         

       [꺄아아아아아아앙악-!!!!]

         

       [우와아아아앙아아악-!!!]

         

       “와…, 시, 시발…, 어흑…, 어흐윽…! 으흐읏…!”

         

       “허우씨…, 어우…, 우아아악…! 아아아아…!!”

         

       “학생들 후라이드 포장한 거 나왔…, 뭐, 뭐여 왜 이래…!”

         

       그는 유창선 병장 그리고 tv 속 관객들과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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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빚을 갚기 위해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Status: Ongoing Author:
"What? How much is the debt?" To pay off the debt caused by my parents, I became an id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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