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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6

       

       

       

       

       돌돌돌.

       덜커덩.

       

       “쀽.”

       

       조금 거친 길을 지나던 마차의 바퀴가 잠깐 돌에 걸려 덜컹이자, 의자에 앉아 있던 아르의 엉덩이가 크게 들썩였다.

       

       “어이쿠, 죄송합니다! 이 근방만 지나면 그래도 좀 평탄해지니 조금만 양해 부탁드립니다!”

       

       앞쪽에서 마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네, 괜찮아요.”

       “양해 감사드립니다!”

       

       나는 대답하면서 양손을 아르의 겨드랑이에 넣고 슥 들어올려 내 무릎에 앉혀 주었다. 

       

       “읏차. 아르야, 여기 지나갈 동안은 내 무릎에 앉아 있어.”

       “쀼우!”

       

       아르는 고개를 쭈욱 뒤로 젖혀 나를 올려다 보며 ‘레온 무릎 조아!’라는 뜻의 쀼 소리를 냈다. 

       

       ‘귀여워라….’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런 아르의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턱밑을 만져 주었다.

       

       “뀨우.”

       

       아르는 눈을 감은 채 내 손길을 즐기는 듯하더니, 곧 아예 내 허벅지 위에 드러누운 채 꼬리로 내 다리를 톡톡 두드렸다. 

       

       나는 아르가 뻗은 손을 잡고 젤리를 만지작거렸다. 

       

       ‘역시 젤리가 최고야….’

       

       아르의 몸집이 커지면서 아르의 손과 발 역시 커졌기에, 만질 수 있는 분홍색 젤리의 영역은 전보다 늘어나 있었다.

       

       ‘이게 힐링이지.’

       

       비록 캐머해릴을 떠난 이후 고급 여관에서 즐기던 뜨끈한 목욕, 그리고 폭신폭신한 침대는 당분간 이용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런 훌륭한 환경에서 벗어나 덜컹거리는 마차에 앉아 이동하고, 적당한 마을이 없으면 텐트를 치고 침낭에서 자야 하는 환경에 놓이고 나니 이런 소소한 힐링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뀨우.”

       

       그러고 보면 아르에게도 고마웠다. 

       그동안 캐머해릴에서 편안한 생활을 누리다가 다시 불편한 환경에 놓였는데도 불평 하나 없이 이렇게 무릎 위에 드러누워 손을 잡은 것만으로도 즐거워해 주니 말이다.

       

       ‘어린 마음에 칭얼거릴 법도 한데, 역시 의젓한 면이 있다니까.’

       

       빙의 전, 자취를 하면서 전전했던 아르바이트 중에는 아이들을 상대해야 하는 아르바이트도 꽤나 있었다. 

       백화점에서 어른들이 쇼핑하는 동안 기다리는 아이들이 노는 공간에서 안내 및 정리하는 아르바이트도 했었고, 짧은 기간이지만 키즈 카페 아르바이트도 했었다. 

       

       ‘정말…. 장난 아니었지.’

       

       내가 했던 아르바이트 중 가장 육체적인 난도가 높았던 아르바이트가 상하차였다고 한다면, 정신적인 난도가 높았던 아르바이트는 키즈 카페 알바였다. 

       

       물론 힘든 지분의 많은 부분을 진상 부모가 차지하긴 했으나, 요즘 식으로 MBTI 첫 글자가 대문자 I였던 나에게는 그 나이대 아이들을 상대하는 것 자체가 굉장한 정신 노동이었다. 

       

       -얘야, 지금 다른 아이들은 착하게 줄 서서 기다리고 있잖니? 이용하고 싶으면 저 뒤로 가서 줄을 서렴.

       -싫어어어!! 나 지금 할 거야! 지금 들어가서 뱅뱅이 탈 거야아아아!!!

       

       동생이었으면 꿀밤 한 대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대놓고 억지를 부려도 손님이라는 이유로 엄하게 대하지 못하는 을 중의 을.

       

       ‘아, 떠올리기만 해도 벌써 PTSD 오네.’

       

       그 꼬마는 줄을 서는 척하다가 내가 잠깐 다른 일을 하러 간 사이에 기어코 새치기를 해서 희한한 자세로 미끄럼틀을 타다가 떨어져 발목을 삐었었다.

       

       안 그래도 속이 터지는데 엄마는 아들이 다쳤다며 어떻게 보상할 거냐고 한참을 난리를 쳤었다.

       

       ‘후…. 생각하기도 싫네.’

       

       그에 비하면 우리 아르는….

       

       ‘천사가 따로 없지.’

       

       내가 아르의 보호자라서 콩깍지가 씌인 게 아니라, 이건 진짜 객관적으로 봐도 맞는 말이다. 

       

       호기심이 좀 많아 가끔씩 넘어지거나 할 때가 있긴 해도, 금방 씩씩하게 일어서고 얌전히 있을 땐 또 아주 얌전히 있고.

       

       말도 잘 듣고, 심성이 착하고, 순진무구하고.

       

       ‘갓 태어났을 때부터 떡잎이 남다르긴 했지.’

       

       처음 카르사유의 레어에서 나왔을 때, 주머니에 딱 하나 들어 있던 감자떡을 먹다가 조금밖에 남지 않자 나 먹으라며 한사코 밀어 냈던 그때는 아마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거다.

       

       ‘그땐 진짜 쬐끄만 말랑콩떡이었는데. 어느새 요렇게 귀여우면서도 의젓하게 컸지.’

       

       물론 지금 아르의 몸이 성장한 건 아르 내부에 있는 ‘천 년의 힘’ 덕분이고, 정신은 아직 조금 진화한 말랑콩떡 정도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엄청 의젓한 거지.’

       

       나는 아르의 젤리를 놓고 이번엔 배를 쓰다듬었다. 

       아르는 내 따뜻한 손길에 풀어진 표정으로 연신 뀨 소리를 냈다.

       

       ‘이렇게 의젓한 어린 해츨링이 세상에 또 있을까.’

       

       덜커덩.

       

       그 뒤로도 종종 덜컹거림이 있었으나, 내 엉덩이가 한 번 충격을 흡수해 준 덕분에 아르는 비교적 편안하게 누워 있을 수 있었다. 

       

       한동안 자잘한 덜컹거림이 이어지고 얼마나 지났을까.

       

       “이제 평탄한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마부의 외침과 함께, 정말 아까까지의 덜컹거림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휴우. 아르야, 이제 다 지났다. 이제 다시 의자에 앉을까?”

       “뿌우.”

       

       하지만 우리 의젓한 아르는 내 시선을 피하면서 내 품으로 더 파고들었다. 

       

       “하하. 하지만 아르야, 나도 이제 허벅지가 좀 저려서 말이야. 이따가 다시 무릎에 앉혀 줄게, 응?”

       

       나는 살살 달래듯이 말했다. 

       그런데 아르의 반응이 조금 이상했다.

       

       “쀼, 쀼우?”

       

       왠지 조금 당황한 것 같은, 조금은 충격을 받은 것 같은 눈빛.

       

       “으응? 갑자기 왜 그러니, 아르야?”

       “후우. 레온 씨. 너무하네요.”

       

       그때 내 말에 대답한 건 조용히 있던 실비아였다. 

       

       “네?”

       

       실비아는 영문을 몰라 되물은 나를 흘겨보았다. 

       

       “숙녀한테 무겁다고 하다니, 너무하잖아요. 실망이에요, 레온 씨.”

       “……!”

       

       실비아의 말을 들은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는 얼른 아르를 내려다보았다. 

       

       “아, 아르야?”

       

       아르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글썽이고 있었다. 

       

       ‘맙소사.’

       

       나는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면 평소에 내 후드에 들어가 있거나 어깨에 앉아 있을 때도 나한테 부담이 될까 봐 걱정하던 아르인데…. 지금까지 전혀 안 무겁다고 괜찮다고 하던 내가 이렇게 말해 버렸으니….’

       

       나는 얼른 아르를 번쩍 안아 들었다. 

       

       “미안, 아르야! 내 말은, 아르가 무겁다고 한 게 아니라…. 아니, 자라기 전보다 무거워진 건 맞지만….”

       

       나는 횡설수설하며 실비아에게 도와 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

       

       하지만 실비아는 ‘우우, 쓰레기’라는 눈빛으로 조금 더 물러나 앉을 뿐이었다. 

       

       “삐유우우….”

       “진짜 미안해, 아르야. 그래, 간식. 간식 먹을까? 아르가 좋아하는 간식 많이 사 왔잖아.”

       

       나는 급한 대로 옆쪽에 있는 커다란 가방에서 간식을 꺼내려 했다. 

       

       캐머해릴을 떠나기 전, 나는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보관이 용이한 간식들을 미리 구매해 두었다. 

       

       그중에는 무려 마이어 씨가 납품한 고급 간식들도 있었다.

       아르가 좋아하는 젤리, 그리고 고급 초코 쿠키 같은 간식들이 그것이었다.

       

       거기다 비록 마이어 씨가 납품한 건 아니지만 나름 캐머해릴 안에서 솜씨 있는 제과점으로 유명한 가게에서 사 온 케이크도 있었으니, 아르가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터.

       

       나는 얼른 손에 집히는 간식을 꺼내 아르 앞에 내밀었다.

       

       하지만.

       

       “뿌우….”

       “…?!”

       

       나는 또다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르가 간식을 거부하다니?’

       

       그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삐유우. 삐유.”

       “아.”

       

       아르는 ‘간식 머그면 더 살 쪄. 아르 다이어트 할 꼬야! 히잉.’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런, 레온 이 멍청이.’

       

       무겁다고 해서 삐친 아이한테 간식을 먹으라고 하다니, 이 무슨 망언이란 말인가.

       

       나는 간식을 내려놓고 황급히 아르의 토실한 엉덩이를 토닥여 주었다. 

       

       “아르야, 들어 봐. 응? 이건 아르가 간식 많이 먹고 살이 쪄서 그런 게 아니라, 아르가 성장을 하면서 당연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야. 전혀 아르 탓이 아니고, 반대로 아르가 자라지 않으면 그게 더 큰일인 걸?”

       

       쫑긋.

       

       삐친 표정으로 내 말을 듣던 아르의 귀가, 나의 마지막 말에 드디어 반응을 해 주었다. 

       

       ‘이건가!’

       

       희망의 빛을 본 나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내가 저번에 말했잖아. 아르가 나중에 아주 크고 멋있어질 날을 기대하고 있다고.”

       “쀼.”

       

       아르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아르가 만약 간식도 밥도 잘 안 먹고 그러면 크고 멋있어질 수가 없으니까 큰일이지. 지금 아르가 잘 자라고 있는 건 나한테 아주 기쁜 일인 거야. 허벅지 좀 저리면 어때. 우리 아르가 잘 크는 게 더 중요하지.”

       

       다행히도, 내 말에 아르는 조금 기분이 풀린 것 같았다. 

       아르는 밀어 냈던 간식을 힐끔 바라보았다. 

       

       나는 재빨리 포장지를 벗겨 맛있어 보이는 초코 마들렌을 아르의 입 앞에 가져다 주었다. 

       

       “앞으로도 잘 먹고 쑥쑥 크자, 아르?”

       

       꼴깍.

       

       아르는 침을 꼴깍 삼키더니, 결국 바로 눈앞에 있는 초코 마들렌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챱, 하고 베어물었다. 

       

       “쀼우우…!”

       

       첫 입을 먹자마자 아르는 훌륭한 맛에 감동을 받은 듯 쀼 소리를 냈고, 곧 초코 마들렌을 두 개나 게눈 감추듯 더 먹은 뒤에야 만족한 얼굴로 다시 드러누웠다. 

       

       “쀼우.”

       

       내 허벅지 위에 드러누웠던 아르는 내가 허벅지 저리다고 한 게 다시 생각났는지 몸을 일으키려 했다. 

       

       “아냐, 아르야. 지금은 괜찮아. 내 품에서 자도 돼.”

       “뀨우.”

       

       나는 배부른 아르가 금방 잠들 수 있도록 팔로 아르를 받쳐 안아 주었다. 

       

       “큐우우…. 큐웅….”

       

       곧 아르가 잠들자,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쿡쿡.”

       “…실비아 씨. 너무해요.”

       “쿠쿡, 하지만 원인 제공은 레온 씨가 하셨는 걸요?”

       “그렇긴 한데….”

       

       쿡쿡거리며 웃는 실비아를 보던 나는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아, 참. 근데 아까 한 말이요. 아르가 숙녀인 건 어떻게 아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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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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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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