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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6

       할 말을 잃은 채 입만 뻐끔거리는 에덴을 놔두고 나와 프란체는 방으로 들어왔다.

         

       덜컥. 문이 닫히자 입꼬리를 씰룩이던 프란체가 푸핫! 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표정 봤니? 저 망할 소 공작의 저런 얼굴은 처음 보네.”

         

       계속해서 히죽거리는 프란체. 그 모습을 보니 나도 옅은 웃음이 나왔다.

         

       “그러게요. 저런 표정은 처음 봅니다. 항상 딱딱하고 위엄 챙기는 얼굴이었는데.”

         

       페델리안 사자 패는 철옹성 같던 에덴의 감정을 움직일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에덴을 엿 먹이는 보너스까지 올 줄은 몰랐는데.’

         

       뭐,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나? 가끔은 이렇게 좋은 소식이 딸려오는 법이지.

         

       그렇게 한참을 웃고, 분위기가 다운됐을 시점에 프란체가 말했다.

         

       “근데 있잖아.”

       “예.”

       “…사하라에는 혼자 가는 거야?”

         

       아까까지만 해도 웃음을 터트리던 프란체가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떨리는 녹음의 눈동자. 나는 황급히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그래야죠. 저 혼자 가는 게 가장 안전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입니다.”

         

       케일과 레데아를 데려가는 선택지도 고려는 해봤지만, 그냥 나 혼자 가는 게 가장 좋은 선택지라고 판단했다.

         

       모옥의 최대 전력인 칠성의 대부분이 죽었지만, 그들의 전력이 얼마나 남아있을지 미지수.

         

       괜히 케일과 라데아를 데려갔다가 문제라도 생기면 곤란하다.

         

       ‘거기에 타국이니까.’

         

       무슨 일이 있을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길에 소중한 인력을 데려갈 순 없지.

         

       “진, 여기서 확실히 말할게. 나는 반대야.”

       “…예?”

       “케일과 라데아를 데려가렴.”

         

       내가 “하지만……”하며 말을 이으려던 찰나 프란체가 끊었다.

         

       “네가 아무리 강해도 위험한 상황은 있는 거야. 그때 습격당할 때만 해도 완전 만신창이였잖아…….”

         

       만신창이라기엔 상처가 다 회복됐는데.

         

       ‘근데 만신창이가 맞는 거 같기도?’

         

       2m는 족히 되어 보이는 대검에 몸을 난도질당하고 관통당했다. 성벽은 가뿐히 무너트릴 만한 폭렬에 맞은 숫자는 셀 수도 없다. 안개를 들이마셔 감각기관과 장기가 망가졌다.

         

       ‘맞네.’

         

       나 용케도 저런 상황에서 버텼구나.

         

       “생각해보겠습니다.”

       “아니, 이건 명령이야. 케일과 라데아도 데려가렴.”

         

       이번만큼은 프란체도 단호했다.

         

       “상대는 대륙 최강의 길드라고 하지 않았니? 게다가 네가 가는 곳은 제국이 직접적으로 간섭하기 힘든 타국이야. 혼자 가는 건 절대 용납 못 해.”

         

       프란체는 “그래도 라데아와 가는 건 불만이지만.”하고 중얼거렸다.

         

       “내 호위는 걱정 말고 라데아와 케일을 데려가렴.”

         

       이걸 받아들여야 하나. 케일과 라데아를 데려가면 도움이 되는 건 맞다. 그러나 그들이 너무 위험해질 수도 있다.

         

       기껏 모은 내 대체자인데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잖나.

         

       “감히 제 의견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해보렴.”

       “반대입니다.”

       “…….”

         

       프란체가 눈을 얕게 뜨고 나를 응시했다. 나는 허공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성녀가 공녀님을 노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뒤숭숭한 분위기죠. 공녀님을 혼자 둘 순 없습니다.”

         

       나는 그리고, 하며 말을 이었다.

         

       “모옥의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닥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핵심인 칠성의 대부분이 사망했다 해도 그곳엔 알 수 없는 전력이 많습니다.”

         

       주술사가 가장 큰 변수다. 케일도 카아락의 앞에선 쪽도 못 썼으니.

         

       “진, 제발. 내 말 들으렴.”

       “…….”

       “나는 네가 전부인 거 알잖니.”

         

       아직도 그 마음을 버리지 못한 건가.

         

       “물론, 카자르나 케일이 나를 위해 움직이는 건 알겠어. 나도 그들을 믿어보기로 했지. 하지만 내게 있어 가장 소중한 건 너란 말이야.”

         

       프란체의 간절한 눈빛. 이렇게 대화하다간 끝이 없을 거 같은데. 그냥 받아주도록 할까.

         

       ‘핵심 인력들은 전부 내가 맡으면 되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녀님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어쩔 수 없겠군요. 알겠습니다.”

         

       그제야 화색이 도는 프란체.

         

       “그래, 잘 선택했어.”

         

       프란체는 흐뭇하게 웃으며 마주 보고 앉은 내 뺨을 쓰다듬었다. 나는 눈동자를 옆으로 굴려 시선을 피했다.

         

       “조심하렴?”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

         

       만족스러운 듯 천천히 고개를 주억이는 프란체. 그러고는 고대 마법서 해독에 집중하는가 싶더니.

         

       “아, 라데아와는 거리를 유지하렴,”

       “거리를 유지하라고요?”

       “그래. 각인으로 명한다.”

         

       지잉─!

         

       프란체가 쥔 노예 구속구가 붉은빛을 내더니 내게 명령이 새겨졌다.

         

       [라데아와는 거리를 유지하렴.]

       [라데아와는 거리를 유지하렴.]

       [라데아와는 거리를 유지하렴.]

         

       각인까지 사용한다고? 일순 미간이 찌푸려졌다.

         

       “설마 헬레나한테도 이런 식으로 명령하신 겁니까?”

         

       전부터 분위기가 묘하다는 걸 느꼈다. 헬레나가 나를 피하는 것도, 프란체가 라데아를 아니꼬운 시선으로 보는 것도.

         

       그때는 그저 별거 아닌 거로 넘겼는데, 이번 명령으로 확신했다. 프란체는 명백하게 내가 다른 여성과 엮이는 걸 막고 있다.

         

       “문제라도 있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 프란체. 일순 시선이 싸늘해지고 주변이 서늘해졌다. 암전을 사용한 건가.

         

       “혹시 라데아나 헬레나에게 특별한 마음이라도 품고 있던 거니?”

       “그건 아닙니다만…….”

       “그럼 딱히 문제없잖아?”

       “…….”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 단순한 소유욕인가? 아니면 내가 다른 이와 눈 맞는 걸 막기 위해서?

         

       ‘이 공녀님의 마음을 모르겠어.’

         

       나에게로 향하는 마음이 사랑인지, 의존인지.

         

       여기서 캐묻고 들어가기엔 좀 그렇다. 그럼 더 분위기가 이상해질 테니. 나는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어.”

         

       그제야 싱긋 웃으며 다시 마법서를 읽는 프란체.

         

       “…….”

         

       어떻게든 일을 빨리 끝내야 할 것 같다.

         

       왠지 더 늦으면 도망치기 힘들 거 같아. 싸한 느낌이 들어.

         

         

       * * *

         

         

       며칠 뒤. 엑시드에서 전서가 도착했다. 모옥의 위치를 정확하게 찾아냈다는 모양.

         

       ‘본거지가 수도에 있는 건가.’

         

       젠부코로스도 황도가 거점이었으니 이상할 것도 없지.

         

       나는 프란체와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케일과 라데아를 데리고 공작령에 위치한 버려진 숲으로 향했다.

         

       “저기, 뭐 때문에 모인 건가요?”

         

       라데아가 물었다.

         

       “우리 셋이서 모옥을 치러 갈 거다.”

         

       눈이 휘둥그레진 케일.

         

       “혼자 가는 거 아니었나?”

       “원래 그러려고 했는데, 공녀님이 명하시는 바람에.”

         

       케일은 고개를 주억이곤 호기로운 미소를 지었다.

         

       “후, 그 카아락이라는 놈과 결착을 짓고 싶었는데 잘 됐군.”

         

       쌓아두고 있었나. 그런데 듣자 하니 카아락은 상대하기 버거워 보인다.

         

       ‘오러도 통하지 않고 마법도 무효화시키는 먼치킨이 어딨어.’

         

       게임에서는 주술이 나오지 않았다. 이런 사기적인 기술이니 나오지 않을 만도 하다.

         

       “아무튼. 모옥을 치기 전에 라데아의 실력을 판단하기 위해서 모인 거야.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라데아가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뭔가요?”

       “뭐가.”

       “작업 치시는 거예요?”

         

       뭐래.

         

       “허튼소리 그만하고. 케일? 라데아의 솜씨 좀 봐줘라.”

       “네가 직접 보지 않는 건가?”

       “내가 하면 의미가 없어지잖아.”

         

       케일로 비교하는 게 정석이다. 솔직히 나는 검술을 읽을 줄도 모르고 전투에 대한 센스도 잘 모르니까.

         

       그저 진 바렌베르크라는 인물의 감각과 경험을 중심 삼아서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일 뿐이다.

         

       “그럼 바로 시작하지.”

         

       스릉. 케일이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고 보니 케일의 검은 일반적인 검이라기보다는 도의 형태에 가깝다.

         

       전류 특성을 가지고 기척을 없애는 것과 빠른 속도가 특기.

         

       ‘자신이 가진 오러에 맞췄군.’

         

       근데 여기는 서양이 배경이라 도를 만들기 어려웠을 텐데? 아직 동양이 밝혀지지 않았으니.

         

       “케일.”

       “뭐지?”

       “무기는 네가 직접 주문해서 제작한 건가?”

       “아니, 내 스승이 제안했다.”

       “스승?”

         

       내가 몰랐던 설정이다.

         

       “내 오러와 검술. 그리고 특기에 맞춰서 주문제작 해주신 검이지. 베어내는 거에 집중되어있다.”

         

       어째 애니메이션에서 본 거 같은 건 기분 탓인가. 동기화가 심해져서 잘 기억은 안 난다마는…….

         

       ‘벽력 머시기였던 거 같은데.’

         

       모르겠다.

         

       “그렇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라데아에게 말했다.

         

       “준비해라, 라데아. 케일이 너의 실력을 봐줄 거다.”

         

       꿀꺽. 침을 무겁게 삼키고 긴장한 채 검을 뽑는 라데아. 칼자루에 분홍색 꽃문양이 박혀있는 검이었다.

         

       “한 수 부탁드립니다.”

       “그래,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봐라. 나는 방어만 하지.”

         

       항상 잡던 달려나가기 자세도 잡지 않은 케일. 반면 라데아는 경직된 얼굴로 숨을 들이쉬고 있다.

         

       “가겠습니다.”

         

       타앗! 진각을 내딛는 동시에 움직이는 검.

         

       “…?!”

         

       순간적으로 검이 두 개로 보였다. 잔상인가?

         

       챙─! 챙─!

         

       날이 부딪히며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잔상은 아닌데?’

         

       저 검술은 뭐란 말인가? 게임에서는 그냥 오더만 내려서 몰랐는데, 직접 보니까 물리 법칙을 무시하는 것 같다.

         

       “흐읍…!”

         

       숨을 크게 들이쉬고 검격을 이어나가는 라데아. 이번에는 검이 세 개로 나뉘었다.

         

       “무슨…!”

         

       챙─! 챙─! 챙─!

         

       당황한 기색이 가득한 케일. 어떻게든 막아내고 있지만, 검술이 아닌 순수 기량의 차이로만 막아내고 있다.

         

       “한 번 더 가겠습니다!”

         

       투웅! 묵직한 소리와 함께 라데아의 다리가 앞으로 나아갔다. 이번에는 오러를 전보다 많이 담았다.

         

       “하앗!”

         

       힘찬 기합과 함께 검을 휘두른다.

         

       ‘검신이 네 개?’

         

       당혹스럽다. 저 환각과도 같은 검술은 뭐란 말인가? 하지만 실체가 있다. 마치 검이 분신술이라도 쓰는 것만 같다.

         

       케일이 막음과 동시에 다시 한번 차가운 소리가 네 번 울려 퍼진다.

         

       “잠깐, 기다려라.”

         

       동그래진 눈을 연이어 끔뻑이던 케일이 손을 뻗으며 휘저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었습니까?”

       “그 검술은 대체 뭐지?”

       “네?”

       “검신이 여러 개로 나뉘는데.”

         

       라데아는 “아, 이거요?” 하면서 멋쩍게 웃었다.

         

       “스승님이 알려주신 건데, 순간적으로 검신에 가속을 넣어서 잔상을 만들어내는 거예요. 제 오러의 성질을 활용한 기술인데 아직 미약한지라 완성되지 않았어요.”

         

       말을 들으니 알겠다. 가속을 넣을 수 있는 오러. 라데아의 성질은 바람이다.

         

       ‘가속으로 저런 검술을 보여주다니, 확실히 재능이네.’

         

       게임 할 때는 전체 오더랑 소미레 컨트롤하기 바빠서 몰랐는데 신기한 오러 활용법을 가지고 있었구나.

         

       “케일, 어떻지?”

       “합격점을 넘어도 한참 넘었군.”

         

       케일은 손목을 털며 말을 이었다.

         

       “검격 자체도 강하지만, 검술이 훌륭하다. 누구에게 배웠는지 몰라도 대단하군.”

         

       극찬까지.

         

       “감사합니다…….”

         

       수줍은 듯 고개를 돌리는 라데아.

         

       “다만 다수를 상대로 싸울 때는 좋지 않군. 일 대 일을 중심적으로 한 검술이다. 모옥을 칠 때 나와 같이 움직여야겠어.”

         

       정확한 판단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러니 모옥을 쳐들어갈 때는 나와 너희들이 나뉘어서 습격한다.”

         

       내가 난장판을 치는 사이 라데아와 케일이 천천히 제거한다. 이러면 빠지는 놈 없이 다 없앨 수 있겠지.

         

       “저기, 대련은 이제 끝인가요?”

         

       아쉬워 보이는 라데아.

         

       “그래, 끝이야. 강점과 실력을 확실하게 알았으니.”

         

       라데아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그러고는 내 앞으로 도도도 달려왔다.

         

       “…?”

         

       멀뚱멀뚱 서 있자니 라데아가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젠 머리 안 쓰다듬어주시네요? 오빠처럼 행동하시는 건 그만 두시기로 한 건가?”

         

       나랑 접촉하기 싫은 게 아니었나? 얘도 잘 모르겠단 말이지.

         

       “그래, 그래…….”

         

       라데아의 머리에 손을 올리려던 그 순간. 쿠웅! 진동과 함께 별안간 등이 불타오르는 고통이 느껴졌다.

         

       “커헉…!”

         

       옅은 신음을 흘리고 멈칫거리자 라데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왜 그러세요?”

       “아니, 됐어. 해산이다.”

       “머리는…?”

       “다음으로 미뤄.”

         

       라데아는 “네…….”하곤 아쉬워 보이는 얼굴로 검을 집어넣었다.

         

       ‘이럴 줄 알고 각인으로 명한 거였군.’

         

       프란체는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던 건가. 라데아의 눈빛이나 행동을 보고 이럴 줄 알았던 건가?

         

       ‘여자의 촉이 무섭긴 하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하렘 드리프트는 절대 없으니 안심하십시오.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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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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