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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6

       “……아무 관련 없는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놓고 안식에 드는 게 인간이 할 짓이에요?”

         

       리브가가 말했다.

         

       “한 때 에스티님의 가족이었을 거 아니에요. 가족이라는 사람들이……한 왕국의 왕족이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저는 용서 못해요. 그 사람들이 멋대로 성불하는 거, 저는 절대로 용납 못해요.”

         

       상황이 묘해졌다.

         

       그렇다고 리브가에게 ‘사실 내가 주먹으로 패서 소멸시켰어.’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랬다간 분위기가 민망해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리브가와 사이도 나빠질테니까.

         

       그러니 침묵한다.

         

       리브가가 직접적으로 묻기 전까지는 입을 열지 않을 생각이었다.

         

       [흠…….]

         

       크라우첼에게서 상황을 전달받은 국왕이 침음성을 뱉어냈다.

         

       단기간에 어떻게 그 정도의 지분을 얻어냈나 했더니, 그런 방법을 사용했을 줄은 몰랐다.

         

       ‘희생이라니……역시 보통은 아니군.’

         

       성녀가 올리비아의 상처를 보고 오해를 할 만도 했다.

         

       국왕이 올리비아에게 전음을 보냈다.

         

       – 자네도 참, 몹쓸 인간이군.

       – ……눈치 채셨습니까?

       – 비록 멸망했다지만 일국의 왕이었네. 이 정도 눈치는 있어야지.

         

       올리비아가 침을 삼켰다. 만약 국왕이 이 일에 대하여 입을 뻥긋이라도 했다간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린다.

         

       – 걱정하지 말게. 자네에게 진 빚이 있으니, 이 정도는 짐이 처리해주지.

         

       국왕의 형체가 이쪽을 보며 찡긋 윙크를 하는 것도 같았다.

         

       [성녀여. 딸의 얼굴을 봐서라도 그들을 용서해줄 수는 없겠나? 제국의 대마법사를 저렇게 만든 자식 놈들은 짐이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교육하겠네.]

         

       딸이라는 말에 리브가가 멈칫했다.

       대륙을 막론하고 부모라는 단어에는 그 정도의 힘이 있었다.

       

       ‘여기서 가불기를 쓰네.’

         

       설마 국왕이 자신을 도와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것도 한 때 패왕이라고 불렸던 인간이 말이다.

         

       본래 국왕은 수(水)의 마경 아쿠아르의 보스 몬스터다.

       90에 육박하는 레벨. 수만 망령을 수족처럼 다루는 능력과, 전대 검성 크라우첼을 호위로 둔 국왕은 한 때 유저 절단기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괜히 마경이라고 이름붙은 것이 아닌데……이렇게 도움을 받게 될 줄은 몰랐다.

         

       역시 게임과 현실은 다르다 이건가.

         

       “……하지만.”

         

       리브가가 머뭇거렸다. 그래도 용서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국왕은 올리비아와 리브가를 차례대로 쳐다본 다음, 리브가에게 작게 중얼거렸다.

         

       [성녀여, 잠시 따라오겠는가?]

         

       국왕이 전음으로 덧붙였다.

         

       – 자네는 여기 있게.

       – 말씀 안하셔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 날 너무 믿는 것 아닌가? 내가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 그러면 다시 150년을 물 속에 갇혀 지내시겠지요.

       – 하하. 한 마디를 안 지는군.

         

       리브가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독대만큼 상대방을 설득하기에 좋은 방법은 없으니까.

         

       성녀는 국왕을 따라 복도를 걸었다.

         

       말라 비틀어진 정원에 도착했을 때 국왕이 말했다.

         

       [성녀여. 자네는 왜 대마법사가 짐에게 나흘의 시간을 요구했는지 아는가?]

       “……왜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것뿐이라더군.]

         

       리브가가 걸음을 삐끗했다.

         

       [짐이 망령이 되고 원치 않게 생긴 능력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눈이네. 대마법사의 신체를 확인해봤더니……시한은 아니더군.]

         

       시한부는 아니다. 그것을 다행이라고 봐야 할지 리브가는 알 수 없었다.

         

       [짐의 입으로 스스로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한 때 패왕이라고 불렸던 몸이네. 사람 보는 눈 하나만큼은 탁월하다고 자부하지.]

         

       올리비아는 천재다.

       마법사로서도, 책략가로서도.

         

       [짐이 감히 판단하건데, 대마법사는 이미 제 목적을 달성하고도 남을 만한 능력을 지녔네. 세계를 구하겠다니. 다른 인간이 말했다면 광인으로 치부했겠지만, 대마법사는 달라. 그 자는 그럴 능력이 있어.]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국왕이 씩 웃었다.

         

       [말 그대로네. 대마법사는 자신의 목적이 세계를 구하는 것이라 했네. 150년을 고작이라고 할 정도면, 정말 오랜 시간 동안 그 목적을 위해 살아왔겠지.]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신 겁니까?”

         

       리브가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방금 말하지 않았던가. 짐에게는 인간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눈이 있다고. 일련의 예시로 자네의 나이가 열 다섯 살인 것도 곧장 알 수 있지. 하지만……대마법사는 아무리 봐도 이십대란 말이지.]

         

       마법으로 젊음을 유지할 수는 있어도, 망령의 눈을 속일 수는 없다. 올리비아는 분명 이십대였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 그보다 더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신체는 어린데, 정신만 나이를 먹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불가능해요.”

        [하지만 대마법사의 상황을 설명하려면 그 방법 뿐이지.]

         

       리브가는 이전에 했던 말을 되풀이 할 수 밖에 없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고.

         

       [스무 살에 세계를 구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쟁취한 인간이, 수천 수만 년을 살아왔네. 하나만 묻겠네. 자네가 보기에, 대마법사는 수만 년 동안 실패할 사람인가, 아니면 수만 년 동안 세계를 수백 번 구할 사람인가?]

         

       답은 정해져 있었다.

         

       “…….”

         

       당연히, 후자다.

         

       리브가의 눈이 천천히 커졌다.

         

       그녀의 고개가 절로 뒤로 돌아갔다. 올리비아가 기다리고 있을 방향이었다.

         

       – 네놈은 아무것도 모른다. 성녀.

         

       숨이 턱 막혔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마 나흘을 언급한 것도, 더는 정신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겠지. 150년으로도 미쳐버리는 것이 인간인데……수만 년? 감히 상상도 할 수 없군.]

         

       악마는 그 틈을 노리고 들어온 것이다.

         

       국왕은 물끄러미 리브가의 얼굴을 쳐다봤다.

         

       망령 앞에서도 담대했던 성녀가, 용기를 잃은 채 떨고 있었다.

         

       [알고 있겠지만, 성녀는 난세에만 나타난다네. 난세의 주체가 무엇일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다네. 대마법사가 그 주체가 된다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을걸세,]

         

       이런 말까지 할 필요는 없다. 굳이 이런 말을 하지 않다도 리브가는 지분을 에스티를 용서하는 데에 사용할 것이다.

       하지만, 이건 올리비아에 대한 국왕 나름의 보답이었다.

         

       ‘이대로 내버려 뒀다간 끝까지 말하지 않겠지.’

         

       상황을 일부러 최악으로 조성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그래야 리브가가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할테니까.

         

       인간은 소중한 이를 잃기 직전에 가장 절박해진다.

       잃지 않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한다.

         

       올리비아는 자신의 딸과 백성들을 해방한 은인이다. 마땅히 구원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어떻게 그런 말을……!”

       [그러니까, 그렇게 되지 못하도록 막게. 자네는 그럴 능력이 있네. 빛의 여신께서 직접 임명하신 성녀니까.]

         

       리브가가 입을 닫은 가운데, 국왕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이것이 자네가 대마법사를 그렇게 만든 짐의 자식놈들을 용서해야 할 이유네. 에스티가 자유로워진다면 자네에게 정말 큰 힘이 될거네.]

         

       올리비아가 무너졌을 경우를 생각하라는 말이다.

         

       리브가는 입술을 악물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옳다고 인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대마법사는 어쩌면, 자신이 무너질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있을 수도 있겠지. 자네 같은 강자들을 모으는 이유 중 하나도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하네.]

       “…….”

         

       사시너무처럼 떨리는 리브가의 눈동자를 마주하며, 국왕은 확신했다.

       이것으로 올리비아의 정신이 무너질 염려는 덜었다. 성녀가 한시도 떨어지지 않을테니까.

         

       [대마법사가 무엇을 위해 그 오랜 삶을 반복했을지, 한 번 잘 생각해보게나.]

         

       하지만 국왕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

       

       리브가는 생각했다.

       

       ‘당신은 몰라.’

         

       그는 올리비아의 정신을 파고든 악마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저렇게 말할 수 있는거야.’

         

       리브가는 멍한 얼굴로 제 손을 쳐다보았다.

         

       피.

         

       시야가 흐려진 탓일까, 그도 아니라면 환각일까.

         

       최악의 상황이 닥쳤을 때, 자신은 과연 올리비아를 단죄할 수 있을까.

         

       대화는 그것으로 마무리됐다.

         

         

       *****

         

         

       “무슨 대화를 그렇게 오래 하십니까?”

         

       올리비아가 따지듯이 물었다. 국왕은 전음으로 답했다.

         

       – 이제 걱정할 것 없네. 잘 마무리됐어.

       – 그렇다기엔 표정이 영 쎄한데요.

         

       리브가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했길래, 화났던 사람이 삼십 분 만에 저렇게 애절한 얼굴로 바뀔까.

       

       ‘……에스티 이야기라도 한건가?’

         

       확실히, 리브가가 감수성이 풍부하기는 하니까.

         

       “괜찮니?”

       “…….”

         

       쪼르르 달려온 리브가가 올리비아의 품에 안겨들었다.

         

       ‘……무슨 힘이.’

         

       얼마나 세게 껴안았는지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 정도였다. 올리비아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국왕을 노려보았다.

         

       “……풀어줄래?”

       “싫어요. 절대 안 풀거에요.”

         

       풀려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올리비아는 체념했다는 듯 리브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슬슬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국왕 전하.”

         

       올리비아의 손 끝에서 긴 사슬이 나타났다.

         

       [당신의 지분은 26.3%입니다.]

       [‘국왕 프람’의 지분은 4.2%입니다.]

         

       “리브가.”

       “…….”

       

       가시에 찔린 것처럼 리브가가 멈칫했다.

         

       꾹.

         

       기분탓일까. 껴안는 힘이 더 강해진 것 같았다.

         

       [‘성녀 리브가’의 지분은 21.5%입니다.]

         

       사슬이 촤르륵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시간이 잠시 흐르자, 사슬이 먼지가 흩어지듯 소멸했다.

         

       동시에 떠오르는 알림창 하나.

         

       [‘파도잡이 에스티’의 주박을 해제하셨습니다.]

         

       [칭호, ‘해방자’를 획득하셨습니다.]

         

       국왕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크라우첼 또한 마찬가지였다. 국왕이 설득한다던 우호적인 망령 중, 크라우첼 또한 포함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고맙네. 이 은혜는 저승에 가서도 잊지 않겠네.]

         

       그리고 녹아내렸다.

         

       – 고맙네.

         

       국왕의 신형이 물처럼 흘러내렸다. 왕성 복도, 도로, 나무, 모든 것이 흩어지듯 녹아내렸다. 흔적도 없이 무너지는 아쿠아르 한가운데, 리브가와 단 둘이 서 있었다.

         

       [수(水)의 마경, 아쿠아르 클리어.]

         

       올리비아는 고개를 하늘을 향해 치켜들었다.

         

       쏴아아…….

         

       걷히는 어둠 너머, 누군가 파도를 타고 다가오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Ilham Senjaya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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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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