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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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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란이 발생하기 10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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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두 팔 걷어붙이고 준비한 식사가 식당에 먹음직스럽게 차려지기 시작하자, 굶주린 배를 붙잡은 하이에나들이 부르지 않아도 식당으로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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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웬만하면 모두가 모여야 식사를 시작하기에 다른 곳에서 일을 처리하고 있는 이들이 급한 통신을 받고 식당으로 내려왔다. 리안이 마지막 음식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을 땐, 본관에 있던 대부분의 간부가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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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스는 언제 오시지?”
   “아으으, 배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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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간부들이 자리를 비우더라도, 보스가 식사를 시작해야 만찬이 시작되기에, 간부들은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보스의 위치를 서로 묻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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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벼운 의문으로 시작한 대화가 어느 순간부터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 동안 노아를 목격한 사람이 아무도 없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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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점 소란은 커져 식당 바깥까지 혼란이 그대로 옮겨붙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간부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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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부가 습격받은 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보스의 부재는 그 의미가 달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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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당 한쪽에서 노아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리안 또한 초조한 얼굴로 식당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식당에 앉아있던 간부 몇몇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 본격적으로 노아를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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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당이 반쯤 비었을 때, 문밖에서 하얀 책이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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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앗..! 줄리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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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낙 급한 상황이었던 탓에 리안은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줄리아나를 불렀다. 그러자 초조하게 엉덩이를 들썩이던 간부들의 시선이 리안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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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부들은 노아를 통해 줄리아나에 대한 이야기를 미리 들은 바 있었기 때문에 리안을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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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촤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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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앞에 책이 펼쳐지고 그 안에서 줄리아나가 나타났다. 책을 투명화하지 않아서 그런지 다른 사람들도 펼쳐지는 책을 볼 수 있었다. 다만, 줄리아나의 모습은 보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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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슬 노아를 찾을 것 같아서 와봤는데..역시 그렇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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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아나는 어수선한 식당을 쭉 훑어보며 팔짱을 끼었다. 리안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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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아나, 노아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 거야?”
   [ 응, 알고 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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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아나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허공에 새하얀 구를 만들어냈다. 리안의 상반신만 한 거대한 구가 리안의 앞까지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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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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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안을 들여다보자 우거진 숲속에서 검을 들고 있는 노아와 달려드는 몬스터들의 모습이 보였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노아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하얀 구가 연기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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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다시피 노아는 멀쩡한 상태야. 수련을 위해 잠시 다른 공간으로 이동했다고 생각하면 편해. ]
   “아아, 그러면 안전한 거야?”
   [ 그렇다고 볼 수 있지. ]
   “언제 돌아오는데?”
   [ 이르면 내일.. 늦어도 일주일 내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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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과 줄리아나의 대화가 이어질수록 간부들은 말소리를 죽였다. 리안이 보스의 현재 위치를 알아냈다는 걸 기민하게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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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아..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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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안도하며 표정이 느슨하게 풀리자, 간부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리안에게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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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 노아 형 지금 어디 있데?”
   “안전한 거 맞지?”
   “어딜 갔길래 돌아오는 기간을 물어봐? 멀리 나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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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르르 쏟아지는 질문에 리안이 주춤 뒤로 물러나며 두 손을 들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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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만 한꺼번에 말하면 무슨 말을 하는건지 알 수가 없잖아. 우선 내가 알게 된 정보 먼저 말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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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흥분한 사람들을 진정시킨 후, 노아가 수련을 위해 수련 공간 같은 곳에 이동한 상태이며, 일주일 안에 돌아올 것임을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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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 그런 거였어?”
   “미리 말해주고 가지..”
   “보스는 꼭 그럴 때가 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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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부들을 미친 듯이 굴렸던 노아의 과거 덕분에, 수련 때문에 말없이 자리를 비웠다는 말을 쉽게 믿고 넘겼다. 노아가 수련하겠다며 자리를 비운 게 처음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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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위기가 안정을 되찾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식사가 시작되었다. 노아를 찾기 위해 뛰쳐나갔던 이들이 뒤늦게 식당으로 돌아와 허겁지겁 식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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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손주, 손녀를 보는 할머니의 마음으로 흐뭇하게 간부들을 바라보며 식사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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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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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아나에게 노아가 수련을 위해 자리를 비웠다는 얘기를 들은 이후, 이틀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그동안 간부들의 치료를 끝내고 외부 본관의 사람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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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대적인 습격은 본관에서 이루어졌지만, 외부 본관에서도 소규모의 습격이 여러 차례 있었다고 한다. 외부 본관의 전력은 본관과 비교하면 훨씬 약한 편이었기에 죽은 사람은 없어도 중상을 입은 사람은 꽤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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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다수의 사람을 치유하기 위해 배 부분에 두툼한 옷을 껴입고, 어두운 톤의 옷을 골라 입었다. 갈아입을 옷을 반드시 챙기는 꼼꼼함까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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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에 젖은 옷은 다른 환자들의 옷과 함께 세탁실로 보내면 해결되었기에, 리안이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선 상처를 제 몸으로 가져와야 한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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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온 종일 의무실에서 외부 본관의 중상자들을 치료했을 때쯤, 리안은 알 수 없는 피로감에 비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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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읏… 머리가 지끈거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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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을 너무 과도하게 사용한 탓일까?’라고 결론 내리기엔 석연찮은 느낌이 들었다. 리안의 시선이 신음을 흘리며 괴로워하고 있는 환자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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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검은색 덩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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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시선 끝에 닿은 것은 환자의 환부 근처를 검게 물들이고 있는 알 수 없는 흔적이었다. 모든 환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10명 중 1명꼴로 상처 주변이 먹물이라도 묻은 것 같은 흔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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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주와 비슷한 계열의 힘이었는지 힐을 사용할 때마다 말끔하게 사라져 별 신경 쓰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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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은 얼룩이 신경 쓰이기 시작한 건, 우연히 검은 얼룩을 가진 사람을 연속적으로 세 명 치료했을 때였다. 머릿속이 울렁거리며 시야가 작게 흔들렸다. 마치 멀미를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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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는 피곤해서 그런가보다 -.. 하고 가볍게 넘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멀미를 느끼는 횟수가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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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상황에서 가장 의심되는 건 당연히 수상하게 생긴 검은 얼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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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마 저 상처를 내 몸으로 가져올 때 무슨 문제가 생기고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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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장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은 그게 전부였다. 찝찝하긴 했지만 검은 얼룩을 가진 환자를 내버려 둘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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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가 아프긴 하지만 일시적인 거니까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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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속적으로 아파봐야 다음 환자를 보러 가면 금방 멀쩡해졌다. 거슬리긴 했지만 아픈 사람을 방치할 정도로 짜증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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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또 하루가 흘러, 외부 본관에 있는 환자까지 거의 다 치료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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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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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가 알 수 없는 말이 리안의 귓가에 웅웅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물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는 것처럼 먹먹하기도 하고, 귀를 기울이면 알아들을 수 있을 것도 같은 그런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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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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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그 소리에 집중하느라 종종 멍을 때리는 일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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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법사님 피곤하시면 쉬시면서 하세요.”
   “맞아요. 너무 무리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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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에게 치료받았던 이들은 리안을 치료사가 아닌 마법사라고 생각했다. 손이 닿는 것만으로도 상처가 치유되는 모습은 마법사들이 흔하게 사용하는 치료 마법과 굉장히 유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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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주변에서 쏟아지는 걱정스러운 시선들을 향해 가볍게 웃어 보이며 별거 아니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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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이 부족해서 그런가? 마침 환자들도 줄었으니까. 내일 늦게까지 푹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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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릴리에게 내일 늦잠을 잘 생각이라, 늦게 출근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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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내일 나오지말고 푹 쉬어. 오빠 덕분에 치료가 급한 환자도 더 없으니까.”
   “하지만..”
   “응? 족쇄 채워달라고?”
   “아,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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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긋, 예쁘게 웃으며 살벌한 말을 입에 담는 릴리의 모습에 리안은 깨갱거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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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보다 일찍 방으로 쫓겨난 리안은 피로가 파도처럼 밀려오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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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실히 피곤하긴 하네. 빨리 씻고 푹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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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멍하게 풀린 눈으로 기계적으로 씻은 후 이불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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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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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이 몽롱해지자 이해할 수 없는 말이 더욱 크게 귓가에서 웅웅 울려댔다. 북을 치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기도 했고, 여자의 비명이 들려오는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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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던 리안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까무룩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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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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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웅, 두웅, 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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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선가 북을 치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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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웅,쿠웅,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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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아니다. 이건 전혀 다른 소리였다. 생명체가 요동치는 소리, 맥박과 같은 그런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웅장하게 귓가를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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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헐벗은 상태였다. 그의 영혼이 전부 까발려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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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긴…어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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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오랜만에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몽롱한 정신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은 우주 공간이었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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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익숙한 몸이 보였다. 실오라기 하나 입지 않은 헐벗은 인간의 몸이었다. 리안은 이상하게 수치스러움이나 이상함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이게 내 몸이구나 싶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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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제 몸에 흥미가 떨어졌는지 우주 공간처럼 보이는 곳에 시선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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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 공간과 비슷할 뿐 같지 않다고 생각한 이유는, 우주를 가득 메워야 할 별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광활한 어둠 속에 간간이 별이 반짝거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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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간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시야 끄트머리에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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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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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또 그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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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할 수 없는 소리가 또다시 귓가에 질척하게 달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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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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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미간을 구기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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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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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진심으로 귓가에 울리는 괴이한 말을 이해하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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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야. 」
   “…!”
   「 나의 말에 귀 기울이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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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뜩하면서도 오싹한, 경외감이 드는 목소리가 리안의 머릿속에 내리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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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후원해주신 소설너무재밌당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연재하겠습니다!

Ilham Senjaya님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소란이 발생하기 10분 전.

리안이 두 팔 걷어붙이고 준비한 식사가 식당에 먹음직스럽게 차려지기 시작하자, 굶주린 배를 붙잡은 하이에나들이 부르지 않아도 식당으로 모여들었다.

웬만하면 모두가 모여야 식사를 시작하기에 다른 곳에서 일을 처리하고 있는 이들이 급한 통신을 받고 식당으로 내려왔다. 리안이 마지막 음식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을 땐, 본관에 있던 대부분의 간부가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보스는 언제 오시지?”

“아으으, 배고파.”

다른 간부들이 자리를 비우더라도, 보스가 식사를 시작해야 만찬이 시작되기에, 간부들은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보스의 위치를 서로 묻기 시작했다.

가벼운 의문으로 시작한 대화가 어느 순간부터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 동안 노아를 목격한 사람이 아무도 없던 탓이다.

점점 소란은 커져 식당 바깥까지 혼란이 그대로 옮겨붙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간부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갔다.

본부가 습격받은 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보스의 부재는 그 의미가 달랐기 때문이다.

식당 한쪽에서 노아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리안 또한 초조한 얼굴로 식당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식당에 앉아있던 간부 몇몇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 본격적으로 노아를 찾기 시작했다.

식당이 반쯤 비었을 때, 문밖에서 하얀 책이 날아왔다.

“앗..! 줄리아나!”

워낙 급한 상황이었던 탓에 리안은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줄리아나를 불렀다. 그러자 초조하게 엉덩이를 들썩이던 간부들의 시선이 리안을 향했다.

간부들은 노아를 통해 줄리아나에 대한 이야기를 미리 들은 바 있었기 때문에 리안을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촤르륵.

리안의 앞에 책이 펼쳐지고 그 안에서 줄리아나가 나타났다. 책을 투명화하지 않아서 그런지 다른 사람들도 펼쳐지는 책을 볼 수 있었다. 다만, 줄리아나의 모습은 보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 슬슬 노아를 찾을 것 같아서 와봤는데..역시 그렇네. ]

줄리아나는 어수선한 식당을 쭉 훑어보며 팔짱을 끼었다. 리안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줄리아나, 노아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 거야?”

[ 응, 알고 있어. ]

줄리아나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허공에 새하얀 구를 만들어냈다. 리안의 상반신만 한 거대한 구가 리안의 앞까지 이동했다.

“어?”

그 안을 들여다보자 우거진 숲속에서 검을 들고 있는 노아와 달려드는 몬스터들의 모습이 보였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노아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하얀 구가 연기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 보다시피 노아는 멀쩡한 상태야. 수련을 위해 잠시 다른 공간으로 이동했다고 생각하면 편해. ]

“아아, 그러면 안전한 거야?”

[ 그렇다고 볼 수 있지. ]

“언제 돌아오는데?”

[ 이르면 내일.. 늦어도 일주일 내로? ]

리안과 줄리아나의 대화가 이어질수록 간부들은 말소리를 죽였다. 리안이 보스의 현재 위치를 알아냈다는 걸 기민하게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하아..다행이다.”

리안이 안도하며 표정이 느슨하게 풀리자, 간부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리안에게 달려왔다.

“형! 노아 형 지금 어디 있데?”

“안전한 거 맞지?”

“어딜 갔길래 돌아오는 기간을 물어봐? 멀리 나갔어?”

우르르 쏟아지는 질문에 리안이 주춤 뒤로 물러나며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잠깐만 한꺼번에 말하면 무슨 말을 하는건지 알 수가 없잖아. 우선 내가 알게 된 정보 먼저 말해 줄게.”

리안은 흥분한 사람들을 진정시킨 후, 노아가 수련을 위해 수련 공간 같은 곳에 이동한 상태이며, 일주일 안에 돌아올 것임을 말해주었다.

“아아, 그런 거였어?”

“미리 말해주고 가지..”

“보스는 꼭 그럴 때가 있다니까.”

간부들을 미친 듯이 굴렸던 노아의 과거 덕분에, 수련 때문에 말없이 자리를 비웠다는 말을 쉽게 믿고 넘겼다. 노아가 수련하겠다며 자리를 비운 게 처음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안정을 되찾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식사가 시작되었다. 노아를 찾기 위해 뛰쳐나갔던 이들이 뒤늦게 식당으로 돌아와 허겁지겁 식사를 시작했다.

리안은 손주, 손녀를 보는 할머니의 마음으로 흐뭇하게 간부들을 바라보며 식사를 이어갔다.

***

줄리아나에게 노아가 수련을 위해 자리를 비웠다는 얘기를 들은 이후, 이틀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그동안 간부들의 치료를 끝내고 외부 본관의 사람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대대적인 습격은 본관에서 이루어졌지만, 외부 본관에서도 소규모의 습격이 여러 차례 있었다고 한다. 외부 본관의 전력은 본관과 비교하면 훨씬 약한 편이었기에 죽은 사람은 없어도 중상을 입은 사람은 꽤 많았다.

리안은 다수의 사람을 치유하기 위해 배 부분에 두툼한 옷을 껴입고, 어두운 톤의 옷을 골라 입었다. 갈아입을 옷을 반드시 챙기는 꼼꼼함까지 보였다.

피에 젖은 옷은 다른 환자들의 옷과 함께 세탁실로 보내면 해결되었기에, 리안이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선 상처를 제 몸으로 가져와야 한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렇게 온 종일 의무실에서 외부 본관의 중상자들을 치료했을 때쯤, 리안은 알 수 없는 피로감에 비틀거렸다.

‘으읏… 머리가 지끈거리네.’

‘힘을 너무 과도하게 사용한 탓일까?’라고 결론 내리기엔 석연찮은 느낌이 들었다. 리안의 시선이 신음을 흘리며 괴로워하고 있는 환자를 향했다.

‘저 검은색 덩어리…’

그의 시선 끝에 닿은 것은 환자의 환부 근처를 검게 물들이고 있는 알 수 없는 흔적이었다. 모든 환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10명 중 1명꼴로 상처 주변이 먹물이라도 묻은 것 같은 흔적이 있었다.

저주와 비슷한 계열의 힘이었는지 힐을 사용할 때마다 말끔하게 사라져 별 신경 쓰지 않았었다.

검은 얼룩이 신경 쓰이기 시작한 건, 우연히 검은 얼룩을 가진 사람을 연속적으로 세 명 치료했을 때였다. 머릿속이 울렁거리며 시야가 작게 흔들렸다. 마치 멀미를 하는 것처럼.

처음에는 피곤해서 그런가보다 -.. 하고 가볍게 넘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멀미를 느끼는 횟수가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의심되는 건 당연히 수상하게 생긴 검은 얼룩이었다.

‘설마 저 상처를 내 몸으로 가져올 때 무슨 문제가 생기고 있는 건가?’

당장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은 그게 전부였다. 찝찝하긴 했지만 검은 얼룩을 가진 환자를 내버려 둘 순 없었다.

‘머리가 아프긴 하지만 일시적인 거니까 뭐…’

지속적으로 아파봐야 다음 환자를 보러 가면 금방 멀쩡해졌다. 거슬리긴 했지만 아픈 사람을 방치할 정도로 짜증나진 않았다.

그렇게 또 하루가 흘러, 외부 본관에 있는 환자까지 거의 다 치료했을 때.

「 – 」

뭔가 알 수 없는 말이 리안의 귓가에 웅웅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물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는 것처럼 먹먹하기도 하고, 귀를 기울이면 알아들을 수 있을 것도 같은 그런 소리였다.

‘무슨 소리지?’

리안은 그 소리에 집중하느라 종종 멍을 때리는 일이 늘었다.

“마법사님 피곤하시면 쉬시면서 하세요.”

“맞아요. 너무 무리하셨어요.”

리안에게 치료받았던 이들은 리안을 치료사가 아닌 마법사라고 생각했다. 손이 닿는 것만으로도 상처가 치유되는 모습은 마법사들이 흔하게 사용하는 치료 마법과 굉장히 유사했기 때문이다.

리안은 주변에서 쏟아지는 걱정스러운 시선들을 향해 가볍게 웃어 보이며 별거 아니라고 말했다.

‘잠이 부족해서 그런가? 마침 환자들도 줄었으니까. 내일 늦게까지 푹 자자.’

리안은 릴리에게 내일 늦잠을 잘 생각이라, 늦게 출근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럼 내일 나오지말고 푹 쉬어. 오빠 덕분에 치료가 급한 환자도 더 없으니까.”

“하지만..”

“응? 족쇄 채워달라고?”

“아,아냐…”

방긋, 예쁘게 웃으며 살벌한 말을 입에 담는 릴리의 모습에 리안은 깨갱거릴 수밖에 없었다.

평소보다 일찍 방으로 쫓겨난 리안은 피로가 파도처럼 밀려오는 걸 느꼈다.

‘…확실히 피곤하긴 하네. 빨리 씻고 푹 자자.’

리안은 멍하게 풀린 눈으로 기계적으로 씻은 후 이불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 –」

정신이 몽롱해지자 이해할 수 없는 말이 더욱 크게 귓가에서 웅웅 울려댔다. 북을 치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기도 했고, 여자의 비명이 들려오는 것 같기도 했다.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던 리안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까무룩 잠에 빠져들었다.

***

두웅, 두웅, 둥.

어디선가 북을 치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두웅,쿠웅,쿵.

아니,아니다. 이건 전혀 다른 소리였다. 생명체가 요동치는 소리, 맥박과 같은 그런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웅장하게 귓가를 두드렸다.

리안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헐벗은 상태였다. 그의 영혼이 전부 까발려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긴…어디지?’

리안은 오랜만에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몽롱한 정신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은 우주 공간이었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리안은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익숙한 몸이 보였다. 실오라기 하나 입지 않은 헐벗은 인간의 몸이었다. 리안은 이상하게 수치스러움이나 이상함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이게 내 몸이구나 싶을 뿐이었다.

리안은 제 몸에 흥미가 떨어졌는지 우주 공간처럼 보이는 곳에 시선을 두었다.

우주 공간과 비슷할 뿐 같지 않다고 생각한 이유는, 우주를 가득 메워야 할 별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광활한 어둠 속에 간간이 별이 반짝거릴 뿐이었다.

공간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시야 끄트머리에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 – 」

‘아, 또 그 소리다.’

이해할 수 없는 소리가 또다시 귓가에 질척하게 달라붙었다.

「 — 」

「 – 」

「 — – 」

리안은 미간을 구기며 생각했다.

‘도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리안이 진심으로 귓가에 울리는 괴이한 말을 이해하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

「 아이야. 」

“…!”

「 나의 말에 귀 기울이거라. 」

섬뜩하면서도 오싹한, 경외감이 드는 목소리가 리안의 머릿속에 내리 꽂혔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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