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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6

   진짜 커즈 뉴먼이 가게 안으로 들어오기 무섭게 뉴먼 가문의 강아지가 물러섰다.

   

   방금 전까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성을 내던 사람은 어디로 사라져버린 듯한 얼굴을 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게 뒷세계의 사람이구나.

   

   메스가키 스킬이 아니었더라면 분명 그게 티가 났을 거다.

   

   그렇지만 메스가키 스킬은 내게 허술함을 허용하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고고하고 건방지고 오만해야만 했다.

   

   커즈 뉴먼은 다리를 꼰 채 미간을 찌푸리는 내 쪽으로 다가와선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알른 영애님. 이 노친네의 자그마한 장난을 간파하시다니. 과연 알른 가문의 피를 이은 분답군요.”

   

   ‘별 것 아닌 일입니다.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이 정도도 파악하지 못하리라 생각하셨나요? 허접이시라 허접스런 생각밖에 못하시는 군요?”

   

   고맙다는 단어가 들어가자마자 왜곡이 심해졌네.

   

   이제와서는 별 생각도 안 든다.

   

   하도 많이 겪다보니까 이 새끼가 또 지랄을 하는구나 싶을 뿐.

   

   할배가 도발해서 일이 생기면 오히려 좋다고 그랬으니까 문제될 것도 없잖아.

   

   메스가키 스킬아! 오늘 일 한 번 제대로 내보자!

   

   저기 여유로운 채 하고 있는 아저씨가 얼굴이 벌개져서 부들부들거리는 광경을 보고 싶지 않니?

   

   …아니 그건 아닌 것 같다.

   

   적당히 하자.

   

   그러다가 쟤가 진짜 온갖 수단을 사용해서 날 억까하려고 들면 곤란하니까.

   

   “이런 죄송합니다. 이 늙은이가 장난기가 좀 있는지라.”

   

   매도에도 불구하고 커즈 뉴먼은 느긋이 웃음을 짓고는 앞으로 걸어가 본래 뉴먼 가문의 강아지가 있던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는 품 안에서 장신구 상자를 꺼내더니 그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 있는 것은 분명 버로우 가문의 목걸이였다.

   

   저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할 수 없다는 게 문제지만.

   

   커즈 뉴먼이라면 지금 가품을 준비해놓고 심리전을 걸어도 이상하지 않을 위인이란 말이지.

   

   자아. 일해라 감정스킬!

   

   여태까지 활약한 적이 없으니까 이럴 때라도 뭔가를 해야 하지 않겠냐!

   

   [정체 모를 목걸이]

   [여러 보석이 박힌 정체 모를 목걸이입니다.]

   

   미안하다. 내가 네 숙련도를 많이 안 쌓아줬구나.

   

   평소부터 온갖 것을 감정하면서 스킬을 키워 놨어야 하는데 내가 전투 숙련도를 쌓는데 정신이 팔려서 널 잊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너한테도 신경을 써줄게.

   

   그래도 이번엔 잘했어.

   

   겉으로만 보기에는 감정스킬이 아무런 일도 못한 것 같지만 스킬은 제 역할을 해냈다.

   

   보통 저런 귀해 보이는 목걸이가 있으면 감정 스킬에 비싸 보이는 목걸이라던가 하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렇지만 보라.

   

   감정 스킬은 저 목걸이를 보고 비싸다던가 귀해 보인다던가 하는 수식어를 더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정체를 모르겠단 이야기를 했다.

   

   이건 저 목걸이에 무슨 사연이 숨겨져 있음을 증빙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그 사연을 모르는 커즈 뉴먼이 저를 복제했다한들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것까지 파악하진 못했을 테니.

   

   저것은 분명 진품이다.

   

   “협상을 시작하기 전에 물건부터 보여드리겠습니다. 이것이 알른 영애께서 바라는 물건입니다.”

   

   ‘그렇네요.’

   “이런 부분에서 사기를 치진 않으시네요. 워낙 음침하신 분이라 의심했었는데.”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커즈 뉴먼이 한쪽 눈썹을 살짝 치켜들었다.

   

   그건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자그마한 변화였지만 항시 여유를 지니던 이의 초조는 너무도 쉽게 눈에 띄었다.

   

   “믿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원하는 물건도 볼 수 있을는지요.”

   

   커즈 뉴먼의 물음에 나는 목에 걸어두고 있던 십자가를 벗어 건네주었다.

   

   아그라의 저주를 해주했음을 증빙하는 목걸이.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십자가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아르마디의 신성과 축복이 담겨져 있는 물건.

   

   교회에서 확인 후에 지급하는 물건인만큼 이에 거짓은 있을 수 없다.

   

   모양새가 특이한 만큼 평범한 사람들은 별 신경을 쓰지 않지만 커즈 뉴먼은 다를 것이다.

   

   아그라의 저주를 해주해 줄 사람을 찾아 헤매던 사람이 이걸 못 알아 볼 리가 없지.

   

   이런 내 생각은 이내 확신으로 돌아왔다.

   

   “확인했습니다. 이는 분명 교회에서 지급한 진품이군요.”

   <이제 저 자의 머릿속에는 어찌 아그라의 저주를 해주했는가.

   그 방법이 여전히 수중에 남아있는가.

   남아있더라도 아그라의 저주를 해주해줄 수 있는가.

   같은 여러 물음들이 떠오를 것이다.

   이제 그대야 해야 할 일은 단순하다.

   줄 듯 말 듯 약올리면서 얻을 물건만 얻어내면 족하지.>

   

   할배에몽. 든든해!

   

   이제 내가 바라는 물건만 얻어내면 된다는 거지?

   

   생각해 둔 것은 여러 가지가 있다.

   

   뒷세계에서 꽤 힘을 지닌 인간인 커즈 뉴먼이다.

   

   저 사람에게 요구를 한다면 어지간한 물건을 거의 다 얻어낼 수 있겠지.

   

   예전에 할배에게 뜯어먹을 물건이나 고민하라는 이야기를 듣고서 오랫동안 생각을 거듭했다.

   

   내가 루시가 되고나서 그렇게 깊은 고민을 한 건 처음 전생했을 무렵말고는 없을 걸?

   

   근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뜯어먹을 게 애매했다.

   

   장비는 바꿀 것이 없다.

   

   할배는 내가 죽는 그 순간까지 가지고 가야하는 물건이고.

   

   방패도 얼마 전에 새 걸로 바꿔서 다른 걸로 바꿀 이유가 없고.

   

   갑옷은 포셀이 선물해 준 건데 굳이 바꾸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다른 건?

   

   커즈 가문의 비기 같은 걸 뜯어내는 거야 가능하겠지만 나한텐 무의미한 스킬들뿐이다.

   

   저기 도적 직종 쪽 스킬밖에 없다고.

   

   맨 앞에서 얻어맞아야 하는 내가 그런 걸 배워봐야 의미가 없어.

   

   이외에도 이것저것 생각을 해보았지만 마땅한 보상이 있는가 하면 애매했다.

   

   뜯어먹어서 괜찮은 물건들이 있긴 하지만 뉴먼 가문을 겁박해서 얻어내는 것 치고는 미미한 느낌이라.

   

   어떻게 하면 최대한의 효율을 낼 수 있을지 생각하던 나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하나하나를 요구하는 게 애매하다면 그냥 다 내놓으라고 하면 그만이잖아.

   

   그러니까 게임 속에선 뉴먼 가문과 관계된 모든 퀘스트를 클리어해야지만 얻을 수 있었던 그 물건을 요구하자고.

   

   까마귀의 인장. 뉴먼 가문의 진정한 은인에게만 수여되는 징표.

   

   뉴먼 가문이 지닌 망을 언제든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아이템.

   

   그걸 손에 거머쥐자고.

   

   내가 그걸 내놓으라고 했을 때 커즈씨가 냉큼 고개를 끄덕일 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근데 그럼 어쩔 건데. 커즈 뉴먼.

   

   자기 아들을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당신이 아들의 수명을 카운트다운 하는 걸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협상을 해보자고.

   

   정 안 되면 뭐 적당한 물건이나 몇 개 요구하면 되는 거니까.

   

   나는 커즈 뉴먼이 다시 건네 준 목걸이를 차고서 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커즈 뉴먼도 같이 웃음을 지어주었다.

   

   ‘협상을 시작할까요?’

   “자. 좆밥 가문의 당주님. 저희 이야기를 시작해보죠.”

   

   *

   

   상상 이상으로 비범하군.

   

   그게 커즈 뉴먼이 루시 알른이라는 사람을 처음으로 마주하고서 든 생각이었다.

   

   처음 거래하는 상대를 만날 적에 대타를 먼저 보내는 건 커즈 뉴먼이 자주하는 일이었다.

   

   뒷세계에서 거래를 하는 그에게 상대의 눈썰미를 확인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었으니까.

   

   허나 루시 알른은 그의 장난을 너무나도 쉽게 돌파했다.

   

   평생토록 커즈 뉴먼이라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역을 보자마자 그가 아니라는 걸 간파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커즈도 그럴 수 있다 생각했다.

   

   어느 정도 정보망을 지녔을 걸로 추측되는 루시 알른이다.

   

   커즈가 치는 장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수도 있지.

   

   허나 그 다음은 달랐다.

   

   루시 알른은 커즈 뉴먼이 품에서 내놓은 목걸이가 진품이라는 것을 너무도 쉽게 확신했다.

   

   멀리서 보고서도 저게 당연히 진품이라는 냥 이야기를 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는 마치 복제품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한 것 같지 않나.

   

   허세?

   

   아니다. 허세는 아니었다.

   

   허세를 부릴 것이라면 무언가 확인하는 척이라도 했겠지.

   

   루시 알른은 아직 성인이 되기에 먼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만한 눈썰미를 지닌 것이다.

   

   소울 아카데미 입학시험에서 1등을 차지할만한 지성을 지녔고.

   

   프레이 켄트를 정면적에서 박살낼 수 있을 정도의 무력을 지닌데다가.

   

   던전을 공략하는 그 실력은 어지간한 경력의 모험가를 압도할 수준이며.

   

   거기에 어지간한 뒷세계의 사람보다 괜찮은 눈썰미를 지녔다고?

   

   말이 안 되는 군.

   

   루시 알른 이 자는 무슨 신의 사랑이라도 받는 것인가?

   

   하기야 틀린 말도 아니군.

   

   1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알른 가문의 수치라고 불리던 자가 이만한 위치에 올라오는 건 신의 사랑을 받는 게 아니고서야 불가능하지.

   

   커즈 뉴먼은 그 사실을 곱씹으며 감탄을 함과 동시에 믿음을 얻었다.

   

   방금 전에 루시 알른이 보여주었던 목걸이는 진짜였다.

   

   그녀는 실제로 아그라의 저주를 해주해본 적이 있었다.

   

   이미 악신을 적으로 둔 사람이었다.

   

   이 어리고 건방지고 오만해보이는 아이가 어찌 아그라의 저주를 해주할 방법을 얻었겠는가.

   

   그는 분명히 신에게 사랑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속에 어떤 고민이 있고 고뇌가 있었는지 커즈는 모른다.

   

   알바도 아니었다.

   

   그에게 중요한 건 그저 그 방법을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높단 것뿐이었다.

   

   “좆밥 당주님께서 원하시는 거야 뻔하니 제가 원하는 걸 말할게요.”

   “예.”

   

   무엇을 바라느냐. 이 오만하고 건방진 아이야.

   

   결코 신의 사랑을 받을 것 같지가 않은데 신의 사랑을 얻은 아이야.

   

   무기를 원하느냐. 보석을 원하느냐. 마법을 원하느냐.

   

   나는 궁금하다. 네가 너의 가치를 얼마나 잘 알고 있을지에 대해서.

   

   “전 까마귀의 인장을 원해요.”

   

   허나 그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커즈의 상상을 한참은 뛰어넘은 것이었다.

   

   까마귀의 인장.

   

   하. 네 년이 그를 어찌 알고 있지?

   

   그는 뉴먼 가문의 사람이 아니라면 모르는 사실일 텐데?

   

   네가 지닌 정보망이 그렇게 뛰어난 것인가.

   

   아니면 네 뒤에 있는 신이 계시라도 내려주는 것인가.

   

   모르겠어. 모르겠지만 오히려 믿음이 생기는 군.

   

   그대가 진정으로 비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오만함이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한 신용처럼 느껴져서.

   

   좋아. 좋아. 마음에 들어.

   

   협상을 해보자고 했지?

   

   그래. 협상을 해보자꾸나.

   

   다만 그것은 보상을 줄이기 위한 협상은 아닐 것이다.

   

   원래라면 그랬겠지만 그대에게는 다르지.

   

   루시 알른.

   

   드높은 기사 가문에서 압도적인 재능을 지니고서 태어난 괴물이여.

   

   난 그대에게서 원석의 빛을 보았다. 그대는 머잖아 대륙을 호령하는 이가 되겠지.

   

   하늘에서 빛나는 압도적인 별이 되어서 세상에 영향을 펼치고 말리라.

   

   그대처럼 오만방자한 천재는 베네딕 알른이 그러하듯 가문에 박혀 왕국의 수호자로 사는 데 만족할 수 없을 테니까 .

   

   그 때 그대와 연을 맺고 있다면 분명 커다란 이익을 얻게 되겠지.

   

   그러니 이번 협상에서 난 그대에게 까마귀의 인장을 주겠다.

   

   허나 그 대신에 그대에게 뉴먼 가문의 연줄을 던지겠노라.

   

   “호오. 까마귀의 인장입니까?”

   

   협상을 시작하자꾸나.

   

   “그래요. 좆밥 당주님. 아직 젊으신 것 같은데 벌써 귀가 안 좋으신가요? 이마가 넓어지시는 걸 보아하니 노화가 빠르게 오시나 보네요. 불쌍하셔라.”

   

   …

   

   저 빌어먹을 어투를 계속해서 받아줘야한다 생각하니 좀 아찔하긴 하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과대평가를 당하는 루시.
…어. 저거 과대평가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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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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