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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6

   크라슈가 정신을 잃은 뒤.

   릴리쉬는 멍하니 자기 동생을 내려다보았다.

     

   크라슈가 방법이 있다고 했을 때 그녀의 이드는 또 한 번 발동 됐었다.

     

   크라슈는 분명 위험한 짓을 할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릴리쉬는 이드의 판단보다도 동생을 믿었다.

     

   위험을 함께 해야지만 강해질 수 있는 삶을 살아온 동생이다.

   앞으로 나아가고자 기어코, 저주까지 삼킨 동생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동생을 지키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릴리쉬는 자기 동생을 너무 얕보았음을 깨달았다.

   크라슈의 행동은 위험한 수준을 넘었다.

     

   처음부터 자신의 목숨은 상정하지 않고 있다는 듯이.

   크라슈는 악착같이 오직 목표로 정한 것 하나를 위해 싸웠다.

     

   다리를 무너트린 뒤 쏟아지는 팔들을 피한 릴리쉬가 뒤늦게 척추를 타고 오른 순간.

   그녀의 눈에 크라슈가 비췄다.

     

   멸화천뢰를 쏟고 나서 도망치려던 아가레스의 망토에 미친 듯이 검을 쑤셔 박는 크라슈가 말이다.

     

   이미 정신이 반쯤 날아간 듯 눈은 초점조차 맞춰져 있지 않았지만.

   크라슈는 광기를 넘어선 집념으로 망토 안에 마구잡이로 검을 박아 넣었다.

     

   그 모습은 릴리쉬조차 압도되어 숨을 삼킬 정도였다.

     

   그 결과 결국 망토가 짓이겨지며 그 안에 깃든 어둠이 사라졌다.

   멈추지 않던 크라슈의 검이 기어코 아가레스의 목숨을 끊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 대가는 처참했다.

   크라슈의 내부는 멸화침식의 열기로 진탕이 났고, 그건 월음지체로도 누를 수 없을 지경이었다.

     

   오죽하면 바깥의 피부가 열기에 짓무르고 있을 지경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그니스가 사라지며 저주가 마구잡이로 크라슈의 몸에 스며든 결과.

     

   그는 지금 수십 가지 저주가 중복으로 걸려 있었다.

     

   그 와중에 악착같이 자신을 죽일 만한 저주는 상쇄시키긴 했지만, 목숨을 부지한 게 고작이다.

   저주는 크라슈를 실시간으로 깎아 먹고 있었다.

     

   릴리쉬는 급히 품 안에 있는 포션이란 포션은 다 크라슈에게 부었다.

   목이 타버려서인지 못 삼키길래 자기 입으로 머금어서라도 어떻게든 안쪽에 밀어 넣었다.

     

   그러나 이걸로는 응급처치밖에 안 됐다.

   제대로 된 치료가 필요했다.

     

   무너지는 뼈에서 박찬 릴리쉬가 급히 크라슈를 데리고, 바닥에 내려왔다.

     

   “미리엘! 당장, 당장 여기로 와라!”

     

   그러곤 주천 기사단원 중 회복 비술을 익힌 이를 불렀다.

   서둘러 달려온 주천 기사단원은 크라슈의 참상을 보곤 넋을 놓았다.

     

   수많은 세계침식을 전전하며 사람을 살린 그가 보기에도 크라슈는 처참한 꼴이었기 때문이었다.

     

   “릴, 릴리쉬 님, 이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그는 어떻게든 회복 비술을 크라슈에게 퍼부으면서도 낯빛이 어두웠다.

   지금 크라슈의 상태는 숨이 붙어 있는 게 기적이라 여겨질 정도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의 몸 내부에 이그니스가 다시 불씨가 되며 저주를 일부나마 태우고 있다는 점이지만.

   그건 바깥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아닌지라 미리엘이 보기에 크라슈는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다.

     

   그도 크라슈를 살리고 싶었다.

   크라슈는 아가레스의 전투 중에도 주천 기사단원들을 몇 번이나 구해줬다.

     

   아가레스를 잡자고, 주천 기사단원이 줄면 세계침식에 맞설 전력이 줄어드니까.

   그들 단 한 명도 죽게 둘 생각 없었다.

     

   아가레스와의 전투는 사실상 지옥도나 다름없었다.

   그 난리 통에 몇 번이고 자신들을 구해준 크라슈를 그들은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었다.

     

   발하임의 직계가 아니라 크라슈라는 한 사람으로서 말이다.

     

   그러니 자신의 전력을 다해 미리엘 또한 회복 비술을 퍼부었지만, 크라슈를 살려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헛소리 마라. 달리면서 계속 치료해라.”

     

   그러니 릴리쉬는 크라슈를 즉시 등에 업었다.

   또다시 동생을 잃을 생각은 없었다.

     

   크라슈의 말대로 성녀에게 데려갈 작정이었다.

     

   “내가 데려가지.”

     

   그 순간 릴리쉬의 앞에 한 인물이 도착했다.

     

   “당신은?”

     

   그는 분명 세이랑의 옆에 있던 호위 역이었다.

   그를 본 릴리쉬가 의문을 가졌을 때, 블라비는 말했다.

     

   “의문은 나중에. 그쪽이 더 급할 텐데.”

     

   지금까지 아가레스와 격전을 벌인 탓에 릴리쉬도 애저녁에 한계에 봉착한 상태였다.

   그녀의 두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는 것이 그 증거였다.

     

   블라비도 쉬지 않고, 계속 달려오긴 했으나 그건 아가레스의 전투로 인한 체력 소모와 비교할 바는 아니었다.

     

   그의 정체는 몰라도 그가 세이랑의 호위라는 것은 안다.

   그러니 릴리쉬는 그를 믿고, 크라슈를 넘겼다.

     

   “먼저 가겠다.”

     

   그 말을 마친 블라비가 순식간에 바닥을 박차 사라졌다.

   릴리쉬는 그 엄청난 속도에 놀랐다.

     

   자신이 정상적인 체력일 때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속도였다.

   때마침 하늘 위 까마귀가 그 뒤를 쫓아 날아갔다.

     

   휘청-

     

   그것을 보며 릴리쉬는 주저앉을 뻔한 걸 겨우 버텼다.

     

   애써 냉정을 유지했지만, 크라슈를 봤을 때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크라슈의 걱정만을 할 수는 없었다.

   여기저기 엉망인 상태인 주천 기사단원이 전부 그녀의 명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멀리서 아가레스의 군주령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침식종들을 상대했던 녹해 기사단도 오고 있었다.

   아가레스가 죽고 나서 겨우 오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은 이곳의 지휘관.

   맡은 일을 끝까지 해내야만 한다.

     

   크라슈는 블라비가 부디 잘해주기를 믿고, 그녀는 등을 곧추세웠다.

   지휘관은 마지막까지 지휘관인 법이다.

     

   “전원, 녹해 기사단과 합류해서 즉시, 귀환한다.”

     

   귀환할 시간이었다.

     

     

   * * *

     

     

   “하아, 이놈의 새장 안 신세. 지긋지긋하네.”

     

   과할 정도로 하얀색으로 물들어 버린 듯한 신전 안쪽.

   한 여성이 걸음을 옮기며 조용한 숨을 내쉬었다.

     

   금 자수로 하나하나 수놓은 흰색의 드레스 안쪽.

   나이에 걸맞지 않은 두드러진 몸매가 드러났다.

     

   그런 그녀는 아름다운 얼굴 위에

   자리한 태양을 떠올리게 하는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 올렸다.

     

   그러자 그녀의 손등에 찍힌 성흔이 창문을 타고 들어온 빛을 받아 선명히 빛났다.

   그 성흔은 그녀의 신분을 나타내었다.

     

   신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신성 왕국의 자랑.

   

   

   

   

   아스트리아 스티그마 프리만.

   신성 왕국 프리만의 성녀였다.

     

   성녀로 태어났기에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어른의 신체를 지니고 만 그녀는 오늘도 따분한 얼굴이었다.

     

   “디오나, 오늘은 재밌는 일 없어?”

   “그런 게 있으셨다면 성녀님께서 먼저 찾으셨겠죠.”

   “얘 좀 보래. 성녀님께 무슨 말버릇이니.”

     

   그녀의 뒤를 따라오던 디오나라 불린 성기사는 씁쓸히 웃었다.

   작년까지는 이런 투덜거림도 별로 없던 그녀지만, 최근 유달리 땡깡이 늘어나셨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의 또래들이 잔뜩 모이는 라헬른 아카데미를 듣고, 대뜸 마음이 동한 그녀가 아카데미에 가고 싶다고 했더니 그대로 반려 당했던 탓이다.

     

   조금의 의견 수용도 없이 반려 당한 이후.

   그녀는 최근 새장이라는 말을 하며 툴툴거리는 일이 잦아졌다.

     

   ‘성녀님도 사춘기가 오실 때이니.’

     

   불경하지만 교단이 매일 같이 그녀를 완벽한 성녀로 키우고자 하여도 그녀 또한 사람이다.

   평생토록 그녀의 수발을 들고 있는 성기사 디오나는 그 사실을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안타깝기도 했다.

   그녀는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누릴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인물이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최근 신기한 일이 하나 들리던데.”

   “새로운 성녀가 나타났다는 말이라면 헛소리이니 흘려들으시는 게 낫습니다.”

   “왜? 그거야말로 내가 가장 주의 깊게 들어야 하는 위치잖아. 세계 유일의 성녀인데 말이야.”

     

   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녀는 장난기 가득 담은 얼굴을 지었다.

   디오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성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성녀님은 세상에 단 한 명뿐입니다.”

   “이 세상에 신이 얼마나 많은데 한 명뿐인 성녀라. 사실 신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은 전부 성녀나 성자로 봐야 하는 거 아닐까?”

   “아뇨. 다수의 신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전 세계를 통틀어 성녀님 딱 한 명뿐입니다. 새로운 성녀라는 것은 결국 가짜 성녀. 성녀님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스트리아는 눈을 게슴츠레 떴다.

     

   “디오나가 보기에 정말로 성녀는 그런 고귀한 인물이야?”

     

   디오나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한다 한들 아스트리아가 원하는 대답은 아닐 테니 말이다.

     

   “난 가짜 성녀라도 좋은데. 내가 유일무이한 성녀가 아니라면 새장 밖을 훨훨 날아갈 수 있는 카나리아가 될 수 있지 않겠어?”

   “성녀님.”

     

   말이 지나치다고 디오나가 조언하자 그녀는 씁쓸히 웃었다.

   그러곤 버릇처럼 자신의 옆 머리카락을 손으로 천천히 꼬았다.

     

   “하긴, 먼저 나는 법부터 알아야 하겠지.”

     

   아스트리아는 그 말을 남긴 채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예배 시간이 다가온 탓이었다.

     

   “성녀님!”

     

   그 순간이었다.

   예배당을 들어서기 전 그녀의 뒤쪽에서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한 인물이 등장했다.

     

   나이 지긋한 중년인 그는 교단의 고위 신관 중 한 명이었다.

   그를 본 아스트리아는 의문을 가졌다.

     

   그는 본디 교단의 외교 담당을 맡은 고위 신관이다.

   그런 그가 이렇게나 땀을 뻘뻘 흘리면서 달려온 것은 무언가 사건이 하나 터졌다는 소리였다.

     

   “사건의 냄새.”

     

   아스트리아가 눈을 반짝인 순간 디오나가 눈치를 줬다.

   자신 앞에서는 괜찮지만 다른 이 앞에서까지 그러지는 말라는 뜻이었다.

     

   아스트리아는 하는 수 없이 자세를 가다듬곤 곧 성녀 표 자애로운 미소를 머금었다.

     

   “멜피오레 신관님, 무슨 일이신가요.”

     

   부디 오늘의 지루함을 달래줄 수 있는 새로운 일이기를.

   그녀는 속으로 간절히 바랐다.

     

   “세, 세이랑 세피라 님이 아니, 발하임 직계가.”

     

   생각이 제대로 정리가 안 되는지 그는 계속 말을 버벅댔다.

   그것을 본 아스트리아가 서서히 참을성을 잃어 갈 때쯤 멜피오레가 겨우 외쳤다.

     

   “어쨌든 성녀님의 치료가 필요한 이가 있습니다!”

   “정말, 그거부터 진작 말했어야죠. 안내하세요.”

     

   아스트리아는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멜피오레의 안내를 재촉했다.

   지루함을 달랠 일이고 뭐고, 이제는 상관없었다.

     

   자신한테 치료 요청할 정도의 이라면 상태가 심각한 이라는 거다.

   그러니 그녀는 치료 요청이 왔을 때 다른 것은 전부 제쳐두고 그곳으로 먼저 달려갔다.

     

   아스트리아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녀가 성녀로서 불릴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쿵!

     

   “환자는요.”

     

   평소 치료실로 사용하는 방의 문을 열어젖힌 아스트리아가 물었다.

   품위도 잊고 달려온 만큼 그녀는 거칠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런 내부에는 여러 인물이 아스트리아의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은 그녀가 처음 보는 인물들이었다.

     

   한쪽에는 거의 탈진 직전까지 울며 버둥거리고 있는 백색의 머리카락을 지닌 소녀.

   그런 소녀를 가까스로 붙잡고 있는 세피라 3계급관의 여성.

     

   그리고 그 옆에는 어딘가 수상쩍어 보이는 검은색 머리카락의 호위와 면사포를 쓴 복숭앗빛 머리색의 여성이 있었다.

     

   그리고 아스트리아는 그녀가 누군지 잘 알았다.

     

   “세이랑.”

   “아스트리아.”

     

   둘 다 면식이 있는 사이였기에 구두 식으로 인사만 대충 한 그녀는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곤 쳐져 있던 커튼을 걷은 순간 아스트리아는 무심코 손으로 코를 감쌌다.

     

   인상을 찌푸리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로 안에서는 진득한 저주의 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코끝을 저릿하게 만드는 강인한 저주의 향은 머릿속을 혼미하게 할 정도였다.

     

   침대에는 한 소년이 누워 있었다.

   그러나 그 소년의 상태는 심각했다.

     

   겉 피부부터 시작해 내부는 불로 전부 지져버린 양 녹아 내렸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월음지체였기에 화기의 영향이 줄었다는 거지만.

   이미 예전부터 지속해서 몸을 혹사해 왔는지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문제는 저주의 양이었다.

     

   ‘대체 뭘 어떻게 해야.’

     

   인간이 이토록 많은 저주를 몸에 품고 있을 수 있는 걸까.

     

   그녀는 이곳에 우선으로 불러야 하는 건 자신이 아니라 해주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낮은 계급의 저주는 그녀도 해결할 수 있지만, 이 정도의 저주는 해주사가 더 적합하니 말이다.

   누구든 전문 분야가 있는 법이었다.

     

   ‘됐어. 생각은 그만하자.’

     

   여기 온 시점에서 그녀가 할 일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마치, 불구덩이에 빠졌다가 나온 꼴인 소년을 치료하는 것.

     

   그녀는 즉시, 커튼을 다시 침과 함께 소년의 몸 위에 손을 올렸다.

   그러곤 바로 신성력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신들의 축복을 듬뿍 머금은 그녀는 세계에서 단 한 명뿐인 다중 스킬 사용자라 평가받고 있다.

     

   그녀가 사용하는 스킬은 총 일곱 가지.

     

   그 일곱 가지는 전부 치료와 관련된 스킬이며 오직 사람을 살리기 위해 터득한 것이었다.

     

   신관 중에는 그녀에게 자기 몸을 지킬 수 있는 스킬을 하나쯤은 지녀야 하지 않냐고 말하기도 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치료와 관련된 스킬만을 익혔다.

     

   자신을 지킬 호위들이 이토록 많은데.

   공격 스킬을 익혀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녀는 역대 성녀 중 치료계의 최고 스페셜 리스트라 평가받는다.

     

   ‘무른 피부의 재생과 부서진 뼈의 재조립, 내부 장기 기관 쪽도 살펴야 해. 체력 공급도 지속해서 해줘야 할 거고, 저주 쪽은 약화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약물은 얼마나 퍼부은 거야. 응급처치는 되어도 뼈나 근육이 어정쩡하게 자리 잡았어. 이쪽도 무르고, 다시.’

     

   그녀는 크라슈의 상태를 살피며 신성력과 스킬을 동시에 사용했다.

     

   뚝뚝-

     

   소년의 상태가 상상 이상이었던 만큼 그녀의 이마에도 땀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그러면서 그녀는 점차 한 가지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소년의 몸에 깃들어 있던 저주는 소년을 해치고 있지 않았다.

   그저 오러와 똑같이 잔잔히 흐르고 있을 뿐이었다.

     

   난생처음 보는 상황에 그녀도 당황했지만, 치료를 방해하지 않는 만큼 오히려 다행이었다.

     

   몸을 이루는 커다란 저주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녀는 우여곡절 끝에 겨우 치료를 마쳤다.

   얼굴에 흐르는 땀방울을 훔치자 그녀는 그제야 소년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푸른빛을 머금은 검은색 머리.

   짙은 속눈썹과 확연하게 드러나는 날카로운 눈매.

     

   또래에 비해 성숙해 보이는 외모이나.

   치료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그가 자신과 나이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눈치챘다.

     

   ‘잘생겼네.’

     

   그녀는 자신이 타인의 얼굴을 평가했음을 알고, 놀랐다.

     

   평소 시녀들이 잘생겼다며 속닥거리는 성기사를 봐도 별 감흥 없었는데.

   또래 남자애를 보고, 잘생겼다고 말할 줄이야.

     

   ‘나 이런 취향이었나?’

     

   따지고 보면 날카로운 눈매가 심해 오히려 외견을 해치는 수준인데 말이다.

   환자 상대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그녀가 헛기침을 내뱉었다.

     

   이걸로 치료는 마쳤다.

   체력 회복과 관련된 축복들도 걸어 놨으니 금방 회복하리라.

     

   뻐근한 어깨를 느낀 그녀가 이제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소년의 상태를 알려주려던 순간이었다.

     

   “아, 스트리아.”

     

   갑자기 소년의 입에서 대뜸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는 사이도 아니고, 성녀의 이름을 냉큼 부르다니 어이가 없었지만, 그녀는 힐끗 그를 돌아보았다.

     

   아직 정신을 차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닐 텐데도 소년은 희미하게 푸른빛을 띠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엄청난 정신력이었다.

     

   “데이, 트는 일부러 못 간 게 아니라니까.”

     

   그리고 소년이 중얼거리는 말을 들은 순간 그녀의 눈에 의문이 서렸다.

     

   데이트? 일부러 못 간 게 아니라고?

     

   뜬금없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그녀는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금세 색색거리는 숨소리를 내는 그를 보곤 옆머리를 손으로 넘겼다.

     

   ‘잠꼬대인가 보네.’

     

   잠꼬대로 자기 이름이 우연히 나올 확률이 몇이나 될까 싶다마는.

   그녀는 소년에게서 시선을 떼고 커튼을 젖혔다.

     

   그러자 거기에는 아까 보았던 백발의 소녀가 서 있었다.

   눈물을 얼마나 많이 흘린 건지 눈이 새빨갛게 충혈되기까지 한 그녀를 보고, 아스트리아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환자는 무사해요. 확인해 보세요.”

     

   누구보다 환자를 걱정하던 가족들에게 안도감을 줄 수 있는 가장 뿌듯한 시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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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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