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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7

    사신이가 발을 콩콩콩하고 3번 구르자, 공터 주변에 패인 배수로에서 불길이 확 치솟았다.

    박살 난 스포츠카에서 흘러나온 휘발유가 배수로로 들어간 건가? 

    휘발유가 이렇게 골고루 퍼진 건, 아마 사신이의 능력 때문이겠지.

    갑자기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 

    아귀 아종과 사신이가 싸우고 있는 공터는 불길에 둘러싸인 경기장처럼 변해버렸다.

    콰르릉.

    그리고 땅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부 터널이 내려앉고 있는 건가? 저 정도 충격에 무너질 리가 없을 텐데?”

    제임스는 말이 안 되는 현상을 목격한 표정이었다.

    “사신이는 뭐든지 할 수 있거든요! 마음만 먹으면 지구를 부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얼굴 가득 미소를 띠고 사신이의 멋진 점을 자랑했다.

    쾅! 

    갑작스러운 폭발과 함께 아귀가 있는 땅바닥이 부자연스럽게 움푹 꺼졌다.

    송파구 때는 엄청난 크기의 싱크홀이 발생했었는데.

    이번에는 아귀 맞춤형 구덩이처럼 스케일이 작은 귀여운 싱크홀이었다.

    송파구 때 일어났던 일을 작게 줄인 것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휘날리는 흙먼지가 사라지자, 아귀는 이미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간 상태였다.

    하지만 송파구 때와는 결말이 달랐다.

    쿵. 쿵.

    커다란 소리와 함께 싱크홀 가장자리 위로 튀어나온 거대한 괴물의 손.

    싱크홀로는 아귀 아종을 가둬둘 수가 없었다.

    퍼억.

    아귀 아종의 신체가 터져나가는 파열음 소리.

    단단히 지면을 움켜쥔 손은 그 소리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들려오는 지면을 울리는 커다란 낙하음.

    아귀 아종은 다시 싱크홀 바닥에 처박혔다.

    갑자기 나타난 황금 사신이가 뛰어들어서 아귀의 손을 없애버린 것이다.

    어느새 회색 사신이 주변을 가득 메운 황금 사신이들.

    회색 사신이가 앞으로 손을 뻗자, 황금 사신이들이 싱크홀 쪽으로 우르르 몰려가더니 하나둘씩 싱크홀 내부로 뛰어내렸다.

    황금 사신이가 한번 뛰어들 때마다, 아귀의 신체 일부가 소실하는 파열음이 들려왔다.

    펑. 펑. 펑. 펑.

    황금 사신이가 끝없이 싱크홀로 떨어져 내리니, 그 소리가 마치 팝콘을 튀기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크어어어어어! 

    아귀의 고통에 찬 비명이 싱크홀 내부에서 울려 퍼졌다.

    기세등등하던 자신감은 온데간데없고, 그 소리에는 공포만이 가득했다.

    콰앙! 

    커다란 소리와 함께 아귀 아종이 싱크홀에서 크게 점프해서 튀어나왔다.

    공중에 떠오른 아귀 아종의 모습은 온몸이 너덜너덜했다.

    황금 사신이 모양의 구멍이 잔뜩.

    마치 서류 펀칭기로 너덜너덜하게 만든 종이를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공중에서 떨어지고 있는 아귀 아종의 궤도가 이상했다. 

    목표가 회색 사신이가 아니야?

    아귀 아종은 공터 외곽에서 구경하고 있던 우리를 목표로 점프를 한 것이다.

    너덜너덜했지만, 여전히 사람 한둘은 피떡으로 만들 수 있는 거대한 질량을 가진 몸통이 우리를 향해서 떨어지고 있었다.

    갑자기 어째서?

    “어서 피하게!”

    갑자기 들려온 고함에 뒤를 돌아보니, 제임스는 기절한 남자를 짊어지고 뒤로 부지런히 도망치고 있었다.

    하지만.

    피하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다.

    ***

    송파구에서 싸웠던 때가 생각나서, 싱크홀을 만들어봤지만 역시 소용없었다.

    아귀는 왜 송파구 싱크홀에서 탈출하지 않고 있는 걸까? 

    누가 지하에 꿀이라도 발라놨나?

    아귀와의 전투를 재현해 보니, 확실히 강해진 게 실감이 됐다. 

    이 정도 전투와 재생은 이제 장작에 별로 무리를 주지도 않네.

    실험은 끝났으니, 약간 진심을 내서 싸워봐야겠어.

    내가 황금 사신을 부르자, 황금 사신 정원에서 수많은 황금 사신이 몰려나왔다.

    이미, 몇몇 황금 사신이들은 인간에게 지극히 해로운 아귀 아종을 향해 돌진해서 그 팔을 잘라버렸다.

    나는 싱크홀을 향해서 손을 뻗었다.

    황금 사신들에게 명령.

    자, 저기 인간에게 해로운 오브젝트가 있어! 해치워!

    뚜방뚜방.

    폴짝폴짝.

    황금 사신들은 각자의 스피드로 싱크홀로 몰려갔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그 아래로 뛰어들었다.

    펑. 펑펑.

    불규칙하게 울리는 파열음이 듣기가 좋았다.

    역시 황금 사신 쪽이 연비가 훨씬 좋았다. 

    황금 사신 정원이 생긴 뒤로는 부활할 때 필요한 장작이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까 말이다.

    아귀 아종의 재생 속도가 점점 느려지는 게 느껴졌다.

    이대로 순조롭게 처리하게 되나 싶었지만, 아귀 아종은 마지막 발악을 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예린이 쪽으로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뭘 모르는구나.

    내가 예린이를 위험하게 내버려 둘 리가 없잖아?

    양손을 쭉 벌리고, 황금 사신 정원을 현실로 불러들였다.

    내가 전력을 다해서 정원을 펼치자, 주변 공장 일대는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주변을 가득 채운 건.

    침대의 대지, 핫초코의 바다, 그리고 과자와 푸딩의 천국이었다.

    “어? 갑자기 황금 사신이의 집이네?”

    예린이의 깜짝 놀란 목소리.

    쿠웅.

    그리고 아귀 아종은 예린이가 있던 곳과는 전혀 다른 곳에 떨어졌다.

    아귀 아종은 갑작스럽게 변한 환경.

    그리고 자신의 점프가 빗나간 이유를 알지 못해서 혼란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아귀 아종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예린이를 향해서 달려가기 시작했다.

    소용없는 짓을 하네. 

    ***

    “와!”

    사신이가 양팔을 펼치자, 주변의 풍경이 온통 황금 사신이의 집으로 바뀌어버렸다.

    “오브젝트는 이런 것도 할 수 있었나.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공간 치환? 공간 이동?”

    제임스는 뭔가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크르르.

    아귀 아종은 이런 괴현상에도 포기하지 않고 우리를 향해서 집요하게 달려들었다.

    생각보다 집요한 아귀 아종에게 놀랐지만, 더욱 놀랄만한 일이 일어났다.

    사신이가 한쪽 발로 콩하고 내리찍자, 공간이 그대로 접혀서 아귀 아종과 우리들 사이에 벽처럼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사신이가 손을 뻗고 양손을 둥글게 모으자, 아귀가 있는 공간이 둥글게 말려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 둥글게 말린 공간 속에서 마치 어안 렌즈 세상 속에 갇힌 것처럼 이리저리 늘어나고 일그러진 아귀 아종이 보였다.

    그리고 사신이가 뀩하고 양손을 꽉 움켜쥐자, 그 구형의 잘려 나간 공간이 우그러들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태연한 표정으로 우리들을 돌아보는 사신이.

    “이건… 마치 신과 같군.”

    제임스의 표정은 걱정스러운 것을 넘어서 이젠 허탈해 보였다.

    “사신아 괜찮아?”

    사신은 평소대로 무표정에 태연해 보였다.

    그래도 왠지 사신이가 지쳐 보여서 달려가서 안아주었다. 

    사신이는 내가 안아주면 괜찮아질 때가 많았으니까, 이번에도 괜찮아지겠지?

    다행히도 내려다본 사신이의 표정은 한결 나아져 있었다.

    ***

    아마 오늘 일은 잊지 못할 것 같다.

    언젠가 미국은, 더 나아가 인류는 오브젝트를 따라잡고 정복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오늘 본 광경은 과연 어떨지 잘 모르겠다.

    과연 인류가 이 현상을 재현할 수 있을까?

    다행인 점은 이런 현상을 일으키는 일이 회색 사신에게도 힘들어 보인다는 점이었다.

    회색 사신의 표정은 읽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내가 보기에도 힘들어 보일 정도로 지친 상태였다.

    현실을 뒤덮었던 정체불명의 공간은 순식간에 나타났던 것처럼 어느새 물거품처럼 사라진 상태였다.

    “자, 우리의 앞을 막던 마지막 장애물도 사라졌으니, 공장을 탈환하러 가보자고.”

    나는 애써 밝은 목소리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찢긴 문을 통과해서 들어가니, 아귀가 점거하고 있던 푸딩 생산 오브젝트와 재회할 수 있었다.

    “당장 생산 재개는 힘들겠군.”

    푸딩 생산 오브젝트는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파괴된 생산 시설도 다수. 

    거기다가 가장 중요한 토끼 인형이 전부 파괴되거나 탈출한 상태였다.

    이래서야 공장 정상화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 같군.

    ***

    아귀 아종이 지키고 있던 공장 최심부에는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생긴 오브젝트가 있었다.

    “이게 푸딩을 생산하는 오브젝트에요? 푸딩 생산 공장이라길래 좀 더 대형 설비 같은 오브젝트를 상상했었는데….”

    이건 공장이라고 보다는 소꿉놀이용 장난감에 가까워 보였다.

    우리를 습격했던 토끼 인형 사이즈의 조리대와 조리도구들이 배치된 앙증맞은 주방이었다.

    주변 구조물이 이리저리 물어뜯기고 박살 난 것에 비하면 몇몇 미니 주방의 상태는 매우 양호해 보였다.

    “이 정도면 멀쩡한 것 같은데, 생산 재개가 힘든가요?”

    “힘들지, 가장 중요한 토끼 인형이 없어. 토끼 인형 생산에는 꽤 걸리니까 정상화까지는 꽤 걸릴 거야. 푸딩 구매를 위해 여기까지 왔는데, 미안하게 됐군.”

    제임스와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사신이가 뚜방뚜방 걸어서 미니 주방 앞에 섰다.

    설마 사신이가 직접 하려는 건가? 

    사신이가 들어가기에는 너무 작은데?

    사신이가 손을 펼치자, 특이하게 생긴 황금 사신이들이 손바닥에서 뿅뿅 생겨났다.

    조리모를 쓰고 토끼 귀가 돋아나 있는 귀여운 황금 사신이였다.

    황금 사신이들은 능숙한 동작으로 미니 주방 안에 들어가서 각자 자리를 잡았다.

    “설마 토끼 인형을 대신할 수 있는 건가?”

    제임스는 당혹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나도 약간 놀랐다.

    사신이가 너무 만능이야!

    사신이는 당연히 할 수 있다는 표정으로 우리들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럼, 한번 시도를 해보자고.”

    제임스가 애지중지하던 책을 어떤 장치 위에 올려두자, 책 위에서 황금색 불꽃이 치솟더니 미니 주방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뭔가 앙증맞은 조리가 시작되었다.

    분업화된 조리 작업이었는데, 이상한 점은 미니 주방 내부의 시간이 10배속은 되어 보인다는 점이었다.

    순식간에 완성된 푸딩은 미니 주방에 달린 굴뚝으로 보내졌고, 그 굴뚝에서 푸딩이 거품에 싸인 채 둥실둥실 떠올랐다.

    “와, 푸딩이 엄청나게 빨리 나오네요.”

    “저 주방 안쪽은 시간이 가속되고 있으니 그렇지. 공장을 정비하고 나머지 미니 주방들도 가동을 시작하면 훨씬 빨리 나오기 시작할 거야.”

    푸딩을 보며 좋아할 사신이를 상상하며 고개를 돌렸더니, 뭔가 불만족스러워 보이는 사신이가 있었다.

    이번에는 왜 이렇게 심통이 난 거지?

    사신이는 뚜방뚜방 걸어가서 책을 집어 들고는 제임스 쪽으로 집어 던졌다. 

    그리고 사신이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더니, 책이 올라갔던 장치 위에 자기 손을 올렸다.

    그러더니, 사신의 몸에서 황금색 불꽃이 치솟더니 기계 쪽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 어어?”

    그랬더니, 미니 주방이 조금씩 가속하기 시작했다.

    10배 100배 1,000배 10,000배.

    시간이 너무 가속해서 잔상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고속으로 움직이는 황금 사신이들.

    제임스가 멈춰! 라고 소리쳤지만, 이미 사태는 벌어져 버렸다.

    그리고 거품에 싸인 푸딩이 대포처럼 굴뚝에서 뿜어져 나왔다.

    거품 푸딩의 격류가 공장을 습격했다!!

    콰앙! 

    푸딩의 격류는 공장의 천장을 부숴버리고 하늘을 타고 자유롭게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와, 온 세상에 푸딩이 가득해.

    이거 어떡하지? 서아 언니한테 엄청 혼날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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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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