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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7

       에단에게 두 번째로 가슴을 내주고 난 날로부터 어느덧 5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해가 바뀌고, 겨울의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2월이 훌쩍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으니.

         

        이는 곧 나와 에단의 아카데미 입학 날짜가 머지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물론 아직 나와 에단의 아카데미 입학이 확정된 것은 아니었다.

         

        루미노르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귀족이든 평민이든 반드시 입학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으니.

         

        오귀스트 변경백 가문의 리지조차도 낙방한 전적이 있을 정도로 아카데미의 입학 규칙에는 예외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귀족과 평민 사이의 입학시험 난이도 자체에 차이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아카데미도 운영은 해야 하니까.’

         

         

        루미노르 아카데미의 학비가 비싸다는 것은 이미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사실 아카데미의 운영 비용에 비하면 오히려 턱없이 저렴한 수준이었다.

         

        배우고 싶은 모든 지식은 배울 수 있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풍부한 시설 인프라.

         

       근속 기간이 10년에서 20년 가까이 되는 교육 전문 베테랑 교수들의 제대로 된 커리큘럼.

         

        심지어 은퇴한 마탑의 현자나 황제의 검 기사단장, 혹은 전직 용사 파티 일원까지 일일 강사로 초청하는 현직 교장의 미친 인맥까지.

         

        이런 부분을 생각하면 학기에 금화 1개라는 비싼 학비로도 매년 적자를 낼 수밖에 없는 게 루미노르 아카데미의 현실이었고.

         

        실제로도 학비로 충당이 안 되는 부분은 제국의 국비를 통해 메워지고 있는 시설이기도 했다.

         

         

        이런 루미노르 아카데미의 운영비를 조금이나마 보조해주는 것이, 귀족 대상으로는 상대적으로 쉬워지는 아카데미 입학시험이었다.

         

        보통 루미노르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고위 귀족들은 등록금 이외에도 막대한 기부금을 아카데미에 지급하는 일종의 관례가 있었으니까.

         

        그래서 겉으로는 평민과 귀족에게 공평한 교육의 기회를 준다고 말하면서도 막상 까보면 귀족 학생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 루미노르 아카데미의 민낯이었다.

         

        안 그래도 어려서부터 개인 과외나 학습을 받아온 귀족들이 평균적으로도 평민보다 우수할 수밖에 없는데, 거기에 입학시험의 난이도에도 차이가 있으니 당연한 현상이지.

         

        물론 그것도 올해부터 시작되어 천천히 바뀔 예정이었지만.

         

         

        이전에도 한 차례 말했지만, 내년 입학생부터는 아카데미의 정원이 지금의 세 배로 늘어나게 된다.

         

        이미 커다란 스토리 자체는 원작 게임에서와 마찬가지로 흘러가고 있었으니까.

         

        황궁 습격 사건에 위기감을 느낀 황제가 국방 증진을 위해 발표한 안 중 몇 가지가 아카데미 정원 증원이었으니.

         

        아무리 귀족의 입학시험 난이도가 쉽다고 한들, 결국 절대적인 귀족의 수 자체는 정해져 있었다.

         

         

        ‘심지어 이 시기에는 게임 속 혐단 같은 캐릭터도 입학할 수 있을 정도로 정원 TO가 남아돌았으니까.’

         

         

        결국, 있는 귀족 없는 귀족을 전부 입학시키고 나서도 빈자리에는 결국 평민 학생이 채워질 수밖에 없었으니.

         

        올해를 기점으로 아카데미의 분위기는 점점 귀족주의에서 평등주의로 바뀌게 될 터였다.

         

        물론, 아무리 입학 기준이 완화되었다고 해도 입학시험 자체는 치러야 했으니, 나도 에단도 시험 날짜에 맞춰 루미노르 아카데미에 방문해야 했고.

         

        그렇기에 오늘은 그 입학시험을 치르기 위해 에단과 함께 마차를 타고 지식의 섬으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안녕히 다녀오십시오, 에단 도련님.”

         

        “그래, 그러지.”

         

        “만약 입학시험에서 실수해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각오하도록 하여라.”

         

        “…명심하겠습니다.”

         

         

        해럴드의 말에 조금 긴장한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이는 에단.

         

        뭐, 에단의 수준이라면 귀족 기준은 물론이고 평민 기준의 시험에서도 무난히 통과할 수준이었으니 별다른 걱정은 없었다.

         

        오히려 굳이 문제가 있다면…내가 치를 마법 시험 쪽이 조금 더 문제였지.

         

         

        “리, 릴리스! 입학시험 잘 봐야 해?”

         

        “응, 잘 볼 거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리, 릴리스 아가씨 힘내세요…!”

         

        “응원 고마워요, 카타리나 선배.”

         

         

        귀족 신분을 얻은 이후 가장 편해진 것 중 하나가, 카타리나가 나를 아가씨라 불러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이 없어졌다는 점이었다.

         

        물론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난 이후에는 카타리나에게 아가씨 소리를 들을 일도 그리 많지는 않겠지만.

         

        아카데미 입학시험에 관하여 약간의 걱정을 마음속에 담은 채, 나 또한 이사벨과 카타리나의 응원을 받아 지식의 섬으로 출발할 준비를 했다.

         

        사흘 분량의 옷과 수건, 그리고 그 외에 여러 필수품이 든 짐가방을 양손에 챙기면서.

         

         

        참고로 옷과 수건을 사흘 치나 들고 가는 이유는, 앞으로 사흘 동안 아카데미 근처 숙소에서 머물러야 하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시험 하나만 보고 돌아오는 것이라면 하루만 묶고 돌아오면 될 테니 이렇게 많은 짐이 굳이 필요하지도 않겠지만, 애석하게도 나와 에단이 봐야 할 시험은 각각 검술부와 마법부 시험의 두 가지였으니.

         

        입학시험의 첫날 이루어지는 검술부 시험, 그리고 사흘째에 이루어지는 마법부 시험까지 치르고 돌아오기 위해서는 그동안 머무를 숙소를 잡아야만 했다.

         

        아무래도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학생의 수와 종류를 생각하면, 모두의 입학시험을 하루 만에 다 볼 수는 없을 테니까.

         

         

        심지어 몇몇 부서는 귀족과 평민의 시험 날짜가 아예 다르기까지 할 정도였으니 자연스레 시험 주간이 길어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다.

         

        황도라면 어떻게든 마차를 타고 반나절 만에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거리였으니 굳이 숙소를 잡을 필요까지도 없었겠지만, 아카데미가 있는 지식의 섬은 블랙우드에서 마차를 타고 거의 한나절 간 움직여야 하는 곳이었고.

         

        그렇기에 만일의 사태가 발생할 것을 대비하여 넉넉하게 사흘을 잡고 출발하는 편이 여러모로 안전했다.

         

         

        블랙우드 영지에서 지식의 섬까지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하루에서 이틀.

         

        지식의 섬에서 숙소를 잡고, 이동하는 동안 모인 빨랫감을 세탁하며 시험을 보고 머무르는 기간이 다시 사흘 정도.

         

        그리고 블랙우드 영지로 돌아오기까지 또 하루에서 이틀.

         

        짧게는 닷새에서 길게는 일주일까지 걸리는 기나긴 일정에 정신이 좀 아득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위해서라면 이 수고는 얼마든지 버틸 수 있지.

         

        그렇게 최대 일주일의 여정을 위해 준비한 짐을 마차 짐칸에 싣고 에단을 따라 객실에 들어서려는 순간, 마차에 올라타려는 나를 느닷없이 멈춰 세운 해럴드가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릴리스, 자네.”

         

        “네?”

         

        “만약 자네가 아카데미 입학시험에 떨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계약은 유효하다는 것을 잊지 말게나.”

         

        “…….”

         

        “에단이 아카데미에 다니는 4년 동안, 에단의 전속 메이드를 이어가기로 한 계약 말일세.”

         

         

        ……아.

         

        뭔가 했더니 그 이야기였구만.

         

        하긴, 애초에 해럴드가 에단의 전속 메이드를 맡으라고 요구했던 것에 내 아카데미 입학 여부는 그리 중요한 부분이 아니겠지.

         

        오히려 해럴드의 처지에서는 내가 아카데미에서 떨어지기를 바랄 가능성도 있었다.

         

        어쨌든 제 아들의 전속 메이드 역할을 하기에는 아카데미 학생이라는 직함이 없는 쪽이 훨씬 더 믿음직하긴 할 테니까.

         

         

        뭐, 당연하게도 나는 입학시험에서 떨어질 생각 따위 추호도 없었지만.

         

        그리고 만약 떨어진다고 해도, 일 년에 금화 40개짜리 꿀 직장을 포기할 생각도 없었고.

         

        그렇기에 나는 해럴드에게 고개를 숙이며 형식적인 대답을 돌려줄 뿐이었다.

         

         

        “굳이 염려하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주인님. 제 아카데미에 입학 여부가 주인님의 전속 메이드 임무를 저버릴 이유가 될 일은 없을 테니까요.”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그럼 잘 다녀오도록.”

         

        “도련님을 모시고 무사히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럴드에게까지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마차에 올라타고, 마부의 채찍 소리와 함께 지식의 섬 방향으로 움직이는 2인승 마차.

         

         

        『루미노르 아카데미』의 본편 무대로 드디어 출발하게 된 순간이었다.

         

         

         

       ⁎ ⁎ ⁎

         

         

         

        나와 에단을 태운 마차가 블랙우드 영지의 성벽을 지난 순간으로부터, 약 두 시간.

         

        마차 운전사의 고삐 소리만이 드문드문 들려오는 마차 안쪽은, 블랙우드 저택에서 출발한 이후 꽤 오랫동안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

         

        “…….”

         

         

        딱히 할 이야기가 없어서라든가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오히려 해야 할 이야기는 차고 넘치는 수준이었지.

         

        지금 당장 향하는 루미노르 아카데미와 지식에 섬에 관한 이야기라든가, 앞으로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후 생활에 관한 이야기라든가.

         

        아니면 하다못해 며칠 뒤 있을 입학시험에서 실수하지 말라고 서로 격려만 하더라도 할 이야기는 충분히 많았으니까.

         

        다만 지금 에단하고 눈을 마주치기가 묘하게 어색해서 이야기하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에단과 눈을 마주쳤다가는 괜히 어젯밤 그의 방에서 있었던 일이 다시금 떠오를 것 같았으니까.

         

         

        에단이 본격적으로 쌍수 검술을 배우기 시작한 지, 어느덧 5개월.

         

        내 조언대로 쌍수 검술에 본격적인 공을 들이기 시작한 에단은 최근 몇 달 동안 새로 배운 검술에 관해 엄청난 재능을 선보이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오히려 일도로 해럴드와의 대련에 임하던 과거보다도 더욱 성장했다는 걸 요즘 나는 온몸으로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정말, 말 그대로 ‘온몸’으로 느끼면서.

         

         

        ‘하아…. 진짜 멍청한 년아….’

         

         

        최근 거의 2주일에 한 번꼴로 해럴드와의 검술 대련에서 한 판을 따내는 에단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나는 머릿속으로 과거의 성급했던 나 자신을 몇 번이나 타박했다.

         

       

        진짜,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거냐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지난화 요약 : 에단이 아버지와의 대련 승리 보상으로 릴리스와 좋은 시간을 보내고, 두 사람의 사이가 천 한 장 만큼 가까워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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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id of the Lout Prince

I Became the Maid of the Lout Prince

망나니 공자의 메이드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transmigrated into a character from my favorite game in my previous life. Moreover, as the character I despise second most in the game. (Not a wasteman) The cover was designed by Deep Dark Wolf, and the typography was done by 유일유화 (Yu Ilyu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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