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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7

       98. 취향존중과 선지자의 고난(1)

       

       

       나는 찝찝함을 느끼며 발자크 놈이 있던 방을 빠져나왔다. 방금 저지른 일에 대한 후회와 허무함의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물론 내가 병신도 아니고.

       

       복수는 허망한 거라든지, 적을 용서하여 증오의 연쇄를 끊어야 한다는 등의 헛소리를 지껄이려는 건 아니다.

       

       당했으면 당연히 갚아줘야지.

       그것도 감히 내 사람을 건드린 건데. 

       

       그러니 복수 자체는 괜찮았다.

       분명 그것까지는 완벽했는데.

       

       -응호오오옷!!!

       -오곡 오고곡♡

       

       그 신음소리.

       

       이젠 한계니까 제발 넣지 말아달라고 사정하는 40대 중반 아저씨의 모습.

       

       그것들이 내 정신을 오염시켰다.

       크툴루를 마주하면 이런 기분일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

       

       “…우욱.”

       

       자연스레 구역질이 올라온다.

       

       대체 어째서일까.

       복수란 건 분명 속이 시원해지는 행위일 텐데. 오히려 내 쪽이 고문을 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루비아 씨가 맞은 게 주사기 두 개 분량이였으니까. 그 백 배는 돌려줄 생각으로 싱글벙글 고문약품을 제조했는데.

       

       결국 50회 분량이나 남아버렸다.

       나는 내 비위를 너무 과대평가한 모양이다.

       

       시체는 좀 봐서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온몸에 구멍이란 구멍에서 체액을 질질 흘려대며 내게 매달려 애원하는 중년 아저씨라는 폭력적인 광경 앞에서, 나는 너무나도 무력했다.

       

       ‘미치겠네 진짜.’

       

       흰곰 효과라 하던가.

       떠올리지 않으려 의식하면 오히려 그것만 생각나게 되는 지랄맞은 현상이 날 괴롭혔다.

       

       그렇게 나는 썩어들어가는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가… 이내 반가운 얼굴과 마주쳤다.

       

       “몸은 좀 괜찮으세요? 어디 불편한 데는 없고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루비아 씨.

       성흔을 이용해 치료를 진행한 후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눕혀 두었었는데. 아무래도 방금 막 깨어난 모양.

       

       나는 그런 루비아 씨를 바라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아, 그러고 보니까 발자크 그놈이나 구경하러 가실래요?”

       

       생각해 보면 발자크에게 제일 많이 당한 건 루비아 씨인데. 그녀만 빼고 복수를 하는 것도 좀 이상하지 않은가.

       

       ‘분명 발자크는 지금 그 세 명이 맡고 있었지.’

       

       시엘과 루시 그리고 리엔.

       그놈들은 드물게도 내게 먼저 요구를 해왔다. 자신들도 저놈에게 처벌을 내릴 필요가 있다 주장한 것이다.

       

       나도 일단은 선량한 현대인인지라.

       그런 꼴이 되어버린 인간을 더 괴롭히고 싶다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싶어 말리려 했지만….

       

       -소중한 걸 빼앗아가려 했으니까.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해.

       

       시엘은 단호하게 그리 이야기했다.

       

       -제국의 소드마스터가 갑자기 사라지면 분명 큰 소동이 일어나겠지요. 위장공작이 필요합니다. 제가 그놈 육체에 다른 영혼을 집어넣는 건 어떨까요?

       

       루시는 나름 합리적인 이유도 제시했고.

       

       산 자의 몸을 탐내는 영혼은 많으니까.

       연기에 적합한 놈을 선발하여 발자크의 흉내를 내도록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일단 육체의 원주인의 자아를 완전히 망가트릴 필요가 있다는 모양이다.

       

       그렇게 완전히 의욕이 넘치던 둘.

       그 사이에 끼어 있는 리엔은 뭐랄까…. 둘 다 한다는데 자기만 안 하기엔 눈치가 보여 어중간하게 끼여 있는 눈치였지만.

       

       어쨌든 그 셋이서 지금 한창 빙의의 사전작업 절차를 진행하고 있으리라.

       

       루비아 씨도 그놈에게 고문당하며 울분이 쌓여 있을 테니. 속 시원하게 그 원한을 풀어버리자.

       

       나는 그런 생각으로 뒤로 돌아가 다시금 그 방문을 열었고…….

       

       닫았다.

       붉은색으로 도배된 참혹한 현장이 루비아 씨의 눈에 들어오기 전에 재빨리.

       

       ‘…어째 리엔이 제일 열심인 것 같네.’

       

       들려오는 웃음소리.

       아주 제대로 폭주한 것 같았다.

       

       나도 보기 힘들 정도로 그로테스크한 광경.

       가뜩이나 겁이 많은 편인 루비아 씨가 보기라도 한다면 실신은 확정이었다.

       

       “…저기.”

       

       그렇기에 내가 은근히 방문을 막고 있는데. 나에게 무언가를 말하려 하는 모습.

       

       “음…. 마음은 이해하는데 말이죠. 이건 진짜 안 보는 게 나을 거에요.”

       

       나는 진심을 담아 그리 조언했지만.

       루비아 씨의 표정을 보니 어째 저기 들여보내 달라는 이야기를 하려던 게 아닌 것 같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나는 계속해서 내 시선을 피하는 루비아 씨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한참이 지나서야 상기된 얼굴로 입을 열어 말했다.

       

       “고, 고마워.”

       

       구해줘서 고맙다고.

       위험한 걸 알면서도, 자칫 잘못했다간 모든 걸 잃게 될 수도 있는 걸 알면서도. 자기를 구하기로 선택해 줘서 고맙다고.

       

       훈훈한 이야기.

       하지만… 나는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그건 오히려 제가 해야 할 말이죠.”

       

       이번에 나는 감사를 받을 입장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해야 할 입장이었다.

       

       루비아 씨에게 갑자기 왜 황실 직속 호위기사쯤 되는 인물이 찾아왔겠는가. 생각해볼 수 있는 가능성은 하나밖에 없었다.

       

       포션 사업.

       내가 그녀에게 제안한 안건 때문이다. 거기에서 덜미가 잡힌 게 틀림없었다.

       

       그러니 사실 나를 원망해도 할 말은 없는데.

       그 겁 많은 사람이 고문을 당할 때에도 모두를 위해 꾹 참고 버텨주었다.

       

       내가 제국에 붙잡힐 것을 우려해서 자신을 버리고 도망치라고 하기까지 했다.

       

       그러니 내가 이 상황을 가만히 넘어갈 수가 있겠는가.

       

       나는 루비아 씨에게 이야기했다.

       당신은 내게 있어 정말로 소중한 존재라고.

       

       제국에게 정체를 들키든, 내가 잡히든 말든.

       당신의 목숨이 달려 있으면 뭐든 했을 거고. 그건 당연한 일이라고.

       

       그러니 다음에 위험에 처하게 되면, 상황 같은 건 따지지 말고 나에게 도움을 요청해 달라고.

       

       그렇게 내 일장연설이 마무리된 후…….

       

       “…….”

       “…….”

       

       무척이나 어색한, 당장이라도 숨이 막힐 것 같은 침묵이 이어진다. 우리는 한참 동안 서로를 마주보지 못했다.

       

       자연스레 후회가 밀려온다.

       

       ‘이건 좀 너무 나갔나?’

       

       내가 사과를 해야 하는 입장인데, 오히려 저쪽에서 감사인사를 건네오니까. 미안함과 고마움 같은 게 밀려와서 되는 대로 질러버렸는데.

       

       너무 부담스러운 발언 아니었나 싶다.

       근데 그렇다고 이미 뱉은 말을 주워담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다.

       

       그렇게 내가 어쩔줄몰라하고 있을 때였다.

       

       “그, 그러고 보니까. 그때 걸려온 연락은 네가 보낸 거였어?”

       

       갑작스럽게 화제전환을 시도하는 루비아 씨.

       말을 버벅거리는 것이 참으로 어색하기 그지없었지만.

       

       “연락이요?”

       

       나도 이 분위기를 어떻게 하고 싶은 건 마찬가지였기에. 계속해서 루비아 씨와의 대화를 이어나간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발자크를 잘 속여넘겨서 돌려보내려던 타이밍에 우연히 울린 통신장치 탓에 곤혹을 겪었던 모양.

       

       하지만 나는 통신 같은 건 보낸 적 없었다.

       혹시나 싶어 그 세 명에게도 물어보았지만. 저쪽에서도 연락은 한 적 없다는 모양이고.

       

       “이상하네. 정보원은 보통 연락을 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거든. 그냥 광고 같은 거였나?”

       

       루비아 씨가 그리 중얼거린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산산조각난 통신장치의 잔해를 모으기 시작했다.

       

       ‘뭐, 사실 그렇게까지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내가 성검의 수리를 지휘할 수 있을지. 아니면 드워프에게 전부 맡기는 게 좋을지.

       

       그걸 판단하기에는 썩 나쁘지 않은 기회였으니까.

       

       전작에서 플레이해온 미니게임.

       그것을 떠올리며 부서진 잔해를 요리조리 끼워맞춘다. 딱히 복잡한 장비 같은 건 필요없었다.

       

       아직도 적응이 안 되지만. 이미 이 육체는 평범의 범주를 아득히 뛰어넘었으니까.

       

       망치질은 주먹질로 완전히 대체 가능하다. 불도 간단한 마법으로 해결하면 되고.

       

       30분도 안 되는 시간.

       그 사이에 통신장치는 완전히 제 형태를 되찾았다. 새겨져 있던 술식도 복원했으니 아마 제대로 작동할 거다.

       

       나는 시험삼아 부재중 메시지를 재생해 보았다.

       

       [안녕하세요 루비아 고객님! 다름이 아니라 고객님께서 주문하신 상품에 문제가 생겨서 연락했습니다.]

       

       주문한 상품?

       연무장 수리용 자재 같은 거라도 구매했나?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의문스러워하고 있는 사이.

       

       “……!”

       

       루비아 씨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든다.

       창백해진 얼굴. 그녀는 식은땀을 흘리며 나에게로 뛰어들었다.

       

       갑작스러운 상황.

       혹시 힘조절을 잘못했다간 루비아 씨가 다칠 수도 있었기에. 나는 피할 수가 없었고….

       

       이내 무언가 보드라운 것이 내 얼굴에 닿았다.

       시야를 완전히 가리고 내 숨을 막히게 하는 무언가.

       

       그것의 정체를 눈으로 확인하는 건 불가능했지만. 전해지는 감촉이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었기에.

       

       자연스레 내 얼굴이 당황으로 물든다.

       

       “이, 이거 정지 버튼이 뭐야?!”

       

       헌데 그런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지. 내게서 빼앗은 통신장치를 들며 그리 묻는 루비아 씨.

       

       나는 대체 왜 그러는 거냐고 그녀에게 물었다.

       

       ……아니, 물으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물음을 입에 담기도 전에 의문에 대한 대답이 돌아온다. 그것도 아주 뜻밖의 화자에 의해서.

       

       [루비아 고객님이 주문하신 성인 여성용 기저귀 50개 세트 하얀색이 품절돼서요. 파란색이랑 핑크색 중 하나를 고르셔야….]

       

       쾅, 하고 통신장치가 박살나는 소리가 들리지만.

       늦어도 너무 늦어버렸다.

       

       날 깔고뭉개던 루비아 씨가 일어선다.

       

       어색한 아이콘택트.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루비아 씨가 먼저 변명이라도 하듯 입을 열었다.

       

       “별 괴상한 장난도 다 있네. 제국의 유행은 정말 따라가기 힘들다니까. 아하하….”

       

       웃으면서 울고 있는 모습.

       나는 최대한 저 거짓말에 설득당한 것 같은 표정을 지어보려 애썼지만.

       

       아무래도 실패한 모양이다.

       루비아 씨는 어디 가고 울먹거리는 홍당무 하나가 내 앞에 나타난다.

       

       홍당무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도망치다가….

       

       -쿠당당탕!

       

       넘어졌다.

       그것도 아주 거하게.

       

       필사의 도주가 무색하게도, 다리를 다친 홍당무는 다시금 나에게 돌아와 치료를 받아야 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참 여러 의미로 나잇값을 못하는 누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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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How did you create a dark organization? 어쩌다 흑막 조직 만들어버림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game spoilers turned out to be fake. The characters I gathered thinking they were heroes are actually all villains. In other words, 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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