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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7

       클레어는 내 예상보다 박력 있었고, 레오는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신사적이었다.

        

       하긴 레오 성격이야 원작에서도 아주 많이 보긴 했다. 그 답답한 하렘물 주인공 같은 성격은 생각해보면 이 시대상에 딱 맞는 신사의 성격이었다. 숙녀 몸에 함부로 손대지 않고, 필요할 때도 최대한 부드럽게 대하는 것.

        

       레오가 실크햇 같은 것을 쓰고 다니는 걸 본 적은 없긴 했지만.

        

       내 앞에서 걷는 앨리스는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머리카락 옆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귀 끝부분까지 새빨간 것을 보면 부끄러워서 심장마비라도 걸릴 것 같은 표정이리라. 심지어 레오와 앨리스가 지나가는 것을 볼 때마다 남자들의 부러운 시선이 마구 쏟아진다.

        

       하긴, 바니걸이 좋다고 달려들더라도 그게 진심일 가능성은 별로 없다. 보통은 사랑에 빠져서라기보다는 그 남자에게 돈이 정말로 많아 보이기 때문일 테니까. 당연히 남자도 그 사실을 알고 있겠지만, 바니걸이 직접 나서서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굳이 마다할 남자는 별로 없다.

        

       반면에, 아직 얼굴을 가면으로 가리고 있기는 하더라도 앨리스가 보이는 모습은 말 그대로 ‘부끄러움’ 그 자체다. 여기서 구르고 구른 급사들이 지을 표정이 아니었다. 게다가 레오는 게임의 주인공답게 젊고 잘생겼으니 저 바니걸 앨리스의 반응에 더욱 설득력을 높여준다.

        

       겉보기로는 말 그대로 판타지에서나 나올법한 ‘어떤 여인에게나 친절한 신사에게 반한 여급사’같은 분위기가 되는 것이다. 그래, 남자 기준으로는 부러울 만도 했다.

        

       둘 다 따지자면 미성년자이긴 했지만, 아무튼.

        

       반면에, 나는 오히려 여성들의 시선을 더 많이 받고 있었다.

        

       아마도, 이유는 ‘불쌍함’일 것이다.

        

       여기 돌아다니는 남자들은 대부분 가면을 쓰지 않은 맨얼굴이었지만, 여성들은 거의 다 얼굴을 부채로 가리고 있거나 바니걸들처럼 반가면을 쓰고 있었다. 여성이 도박하는 것이 용인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떳떳하다고 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가면 너머로도 나를 보는 여성들의 시선에 ‘딱하다’라는 감정이 섞여 있는 것은 선명하게 느껴졌다.

        

       앨리스를 데리고 가면서도 그 몸에 손 하나 대지 않는 레오와는 다르게, 클레어는 내 손목을 꽉 붙잡고 끌듯이 걷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앨리스의 가슴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이 깨끗했지만, 내 가슴 사이에는…… 누가 봐도 ‘화대’라고 할만한 것이 끼어있었다.

        

       사람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이 세계에도 동성애자는 있다. 남색을 밝히는 남자도, 여색을 밝히는 여자도 있다. 그리고 이런 곳의 급사들에게 많은 돈을 주고 끌어안으려는 여성들도 있는 법이다.

        

       아마도, 나에게 동정의 눈빛을 보내는 여자들은 거의 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되돌릴까.

        

       그냥 처음으로 되돌려서 앨리스를 다시 설득할까.

        

       나는 클레어에게 끌려가듯 걸어가며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결국 그 생각을 포기했다.

        

       그래. 뭐.

        

       앨리스가 그렇게까지 원한다고 해서 따라왔으니까.

        

       애초에 부끄러우리라는 것을 알고 왔는데, 내가 누굴 또 탓하겠는가.

        

       나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클레어를 따라갔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그런 무념무상 한 상태는 무표정을 유지하기에 굉장히 좋았다.

        

       *

        

       “그러니까, 정보를 알아보겠답시고 여기까지 들어온 거야? 그런 차림으로?”

        

       클레어가 어이없다는 듯 묻자, 앨리스의 얼굴이 한층 더 붉어졌다.

        

       건물의 구석진 자리.

        

       다른 손님들은 거의 다니지 않는 복도 뒤편을 발견해 우리 둘을 끌고 들어온 두 사람은 팔짱을 끼고 우리 앞에 섰다.

        

       클레어는 당당하게도 가면도 쓰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차마 그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클레어가 무섭다기보다는, 지금 상황이 아주 심각하게 쪽팔렸기 때문이다. 입을 열었다가는 백 퍼센트 목소리가 갈라질 것이 뻔했다.

       

       

        

       앨리스와 나는 가면을 벗어 손에 들고 있었다. 나는 검은 반가면을 불안하게 만지작거리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었지만, 앨리스는 이미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며 자기가 쓰고 있던 하얀 반가면을 불안한 듯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여기 우리가 알아야 할 정보를 가진 사람이 급사로 잠입했으니까.”

        

       겨우겨우 입을 여는 앨리스의 말을 듣고, 클레어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굳이 이런 복장으로 잠입할 필요는 없지 않아? 우리처럼 손님 자격으로 올 수도 있었잖아?”

        

       “…….”

        

       이건 좀 신기하네.

        

       원작에서는 앨리스가 바니걸 복장이 된 가장 큰 원인이 클레어였는데 말이야.

        

       ‘나는 이렇게 현장에서 직접 뛰는 데 너는 편하게 앉아만 있구나’하는 식의 대사를 듣고 성질 뻗친 앨리스가 홧김에 클레어와 똑같은 방식으로 잠입하게 된 것……이 원작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참 절묘하게도 지금 여기에서는 클레어가 아니라 벨라한테 자극받은 거고.

        

       어떤 의미에서는 앨리스가 벨라를 진짜 자매로 인정하고 있다는 단서이기도 했다. 같은 황녀인 벨라가 직접 현장에서 뛰고 있으니, 똑같은 황녀인 자신이 뒤에 물러나 있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원작에서 앨리스가 클레어에게 느끼던 감정대로.

        

       어떤 의미에서는 참 한결같다.

        

       “너도 뭐라고 좀 해봐.”

        

       “어? 나?”

        

       숙맥답게 우리 쪽으로 차마 시선을 돌리지 못하고 천장의 조명 수만 세고 있던 레오가 깜짝 놀라서 클레어 쪽을 보았다가, 우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시선을 원상 복귀 시켰다.

        

       “…….”

        

       레오의 도움 안 되는 반응을 보고 클레어는 다시 얼굴을 쓸어내렸다.

        

       원작에선 레오가 ‘첫 만남’ 때 앨리스를 바로 알아보지는 못했다. 이틀째까지도 밤시간의 의뢰에 앨리스가 나오지 못한다고 하고 나서야 의심을 하기 시작하고 앨리스를 찾으러 오니까.

        

       지금 반응이 이상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언니.”

        

       “……예.”

        

       나는 일부러 클레어와 마주치지 않던 시선을 다시 돌렸다. 클레어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왜 그런 복장으로 있어?”

        

       음.

        

       왠지 ‘그러면 안 됩니까?’하고 물어보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이다.

        

       클레어가 왜 이렇게 화났나 고민하는 것은 아까 클레어에게 한쪽 손목을 잡혀 끌려오던 와중에 떠올릴 수 있었다.

        

       클레어와 내가 지내던 그 고아원이 그런 곳이었으니까. 그때 당시에는 알지 못했어도, 나중에 나를 찾는 과정에서 다시 조사하고 나서 알게 되었겠지.

        

       그러니까…… 까놓고 말해서 ‘몸을 팔 수도 있는’ 직업의 옷을 입고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나 때문이야.”

        

       내가 뭐라고 변명하기도 전에 앨리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여기에 잠입하겠다고 해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 똑같은 복장으로 입고 왔을 뿐이니까.”

        

       “……그건 그렇다 치고.”

        

       다행히 클레어는 앨리스의 말에 대해서는 이해한 모양이었다. 앨리스는 내 표정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런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보아온 클레어도 이해할 수는 있었으리라.

        

       “그 복장은 또 어디서 난 거야?”

        

       “그건…….”

        

       이번 질문에는 앨리스도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용의주도하게도 내가 입을 바니걸 복장까지 준비해둔 사람은 바로 벨라였으니까. 우리한테 이런 옷을 입도록 유도해놓고 정작 그런 모습을 즐길 거라고 생각한 벨라는 눈에 띄지 않았지만.

        

       생각해보면 정작 내가 시간을 돌리기 전에도 보이지 않았었다. 키아라 베라티가 보였던 반응을 생각하면 벨라는 그 옆에 꽤 가까이 접근했던 것 같았는데.

        

       ……혹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우리를 느긋하게 감상하고 있거나 한 건 아니겠지.

        

       “그럼, 너희들은 여기 갑자기 왜 온 건데? 클레어, 너는 가면도 쓰지 않았고.”

        

       “어?”

        

       대답이 곤란해진 앨리스는 곧장 클레어에게 그렇게 물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무척 당당하던 클레어는 막상 갑자기 그런 질문을 받자 조금 당황한 것 같았다.

        

       “그전에 내 질문에 대답—”

        

       “이런 복장이야 구하려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거야. 솔직히 여기서 이런 복장을 하고 일하는 사람 중에서 자기 과거를 떳떳하게 밝힐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해?”

        

       “…….”

        

       “내가 일하겠다고만 하면 바로 구할 수 있는 게 이런 복장이야. 옷을 주는 사람은 내가 누구인지 신경도 쓰지 않으니까. 설마 내가 황녀일 거라는 생각도 하지 못할 거고.”

        

       조금 억지스럽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없을 법한 이야기도 아니다.

        

       세상 누가 여기 급사로 일하겠다는 사람이 실제로는 황녀라고 생각하겠어. 그냥 닮은 사람이라고 보는 게 훨씬 그럴듯하지.

        

       “자, 됐지? 그러니까 너희들도 이유를 말해. 레오라면 몰라도—”

        

       앨리스의 그 말을 들은 레오가 조금 상처 입은 표정이 되었지만, 앨리스는 그런 반응을 무시하고 곧장 클레어에게 물었다.

        

       “—여자가 얼굴도 가리지 않고 여기를 막 돌아다니는 이유가 뭐야? 그리고 조금 전에 실비아 가슴에 당당하게 돈을 끼워 넣은 건 또 뭐고.”

        

       “…….”

        

       그제야 나는 시선을 내렸다.

        

       아직도 내 가슴 사이에는 파운드화 지폐가 몇 장 꽂혀있었다.

        

       나는 얼른 그 지폐를 뽑아서 클레어한테 돌려주려다가 그만두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미지근하고 축축하게 젖은 지폐를 돌려주는 건 좀 그렇지 않나?

        

       클레어도 복잡한 표정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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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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