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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7

     

     대마왕 벨 페고르는 쓰러졌다.

     인간계에 나타났던 마왕은 다시 바람의 성검을 쓰는 용사 루키우스에 의해 패배했고, 인류는 평화를 되찾았다.

     그리고.

     현재, 루키우스는 파티원으로서 시작부터 함께 했던 여인-로즈마스 테르베이션과 함께하기를 선택했다.

     루키우스 테르베이션.

     그는 로즈마스의 성을 따라 그녀의 반려가 되었고, 그의 도움을 받은 많은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하나의 왕국을 형성하는데 이르렀다.

     이것은.

     누군가의 상상 속에서 일어날 지도 모르는.

     혹은 어쩌면 미래에 일어날 지도 모르는 이야기.

     * * *

     “흐, 흐흥.”

     로즈마스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직접 파이를 구웠다.

     오븐에서 노릇노릇 익어가는 애플파이는 고소함과 달콤함을 동시에 풍기고 있었고, 로즈마스는 빨리 파이가 익어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가져다 주고 싶어 시간이라도 감고 싶었다.

     “왕비님, 왜 굳이 이런 시간에….”

     “국왕 폐하께 드리고 싶어하는 거잖아. 이해해.”

     하이엘프는 귀가 좋다.

     그래서 벽 너머, 다른 방에서 하는 작은 이야기조차 민감하게 들을 수 있다.

     “으으, 이 늦은 밤까지 근무라니.”

     로즈마스는 조금 미안했다.

     자신의 고집 때문에 메이드들은 이 늦은 밤에도 부엌으로 나와야 했고, 뒤에서 장작을 집어넣으며 오븐에 열이 끊이지 않도록 해야 했다.

     나중에 상을 줘야지.

     로즈마스는 자신을 도와 뒤에서 장작을 넣는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며, 애플파이가 마저 구워지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여왕님, 정말 모르고 계신 걸까?”

     쫑긋.

     “뭘?”

     “아니, 국왕폐하 말이야.”

     “아…. 밤마다 현자의 탑으로 가시는 거?”

     “…….”

     로즈마스는 침묵했다.

     국왕이 현자의 탑으로 간다는 게 의미하는 바는 하나밖에 없었다.

     현자를 만나러 간다.

     현자 벨.

     성은 없지만, 용사 파티의 유일한 마법사이자 일행의 길잡이가 되어준 최고의 대마법사.

     마지막 순간 까지도 용사 루키우스를 위해 목숨을 걸고 자신의 마나를 전부 희생했고, 전설 속 드래곤을 뺨치는 마나는 모두 고갈되어 지금은 한 명의 인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런 그녀를 위해 국왕 루키우스는 현자의 탑을 만들었다.

     현자 벨이 더 이상 마왕을 쓰러뜨리기 위한 용사가 아니라 새로운 존재로서 거듭날 수 있게.

     비록 현자의 탑이라는 장소에 누군가는 보호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는 유폐라는 이름으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현자를 탑에 두기는 했지만.

     현자는 썩 불만이 없는 눈치였고, 현자의 탑은 왕국 내에서도 극히 일부만 출입이 가능한 곳이었다.

     그리고.

     국왕 루키우스는 밤이 되었을 때마다 종종 현자의 탑을 찾아간다더라.

     “그게 후궁을 찾아가는 거랑 다를 바가 없지.”

     “쉿. 말 조심해. 누가 후궁이라는 거야?”

     “뭐?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솔직히 국왕 폐하께서 왕비님보다 현자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길잖아. 안 그래?”

     “그거야 그렇지만.”

     띵.

     오븐에서 소리가 났고, 로즈마스는 묵묵히 오븐을 열어 애플파이를 꺼냈다.

     노릇노릇하게 익었지만, 애플파이를 바라보는 로즈마스의 표정은 무척이나 무거웠다.

     “…후.”

     미리 타놓은 허브티를 준비한 뒤, 로즈마스는 애플파이와 허브티 두 잔을 가지로 왕의 집무실로 향했다.

     “루키우스?”

     “아, 로즈마스.”

     달이 중천에 떠 있는 시간에도 집무실에 앉아 서류를 살피던 루키우스는 인자한 미소로 몸을 일으켰다.

     “나를 위해 구워온 거야?”

     “응. 천천히 해.”

     “괜찮아. 아직 이 정도는. 후우.”

     루키우스는 자신이 살피던 서류를 옆으로 치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별로 볼 생각은 없었지만, 종이에는 ‘엘프 교류 지구 설립 반대 시위에 대한 건’이라는 문구가 분명히 적혀있었다.

     “…미안해.”

     “뭘?”

     “나 때문에 네가 고생하는 것 같아서.”

     “뭐? 아냐, 아냐.”

     루키우스는 단걸음에 로즈마스에게로 다가와 그녀를 끌어안았다.

     

    “이건 종족이 서로 화합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일일 뿐이야. 지금까지 서로 다른 영역에서 살아왔잖아? 그러니까 서로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 것 뿐이야.”

     “그렇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해.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 세계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거야.”

     토닥토닥.

     루키우스의 따스한 손길에 로즈마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말이야, 네가 정말로 고마워. 하이엘프, 그것도 엘프의 공주님인데도 대수림이 아니라 내 곁을 선택했잖아. 나는 정말, 진심으로 네게 감사하고 있어.”

     “루키우스….”

     “마지막 순간, 모두가 마왕과 싸우다 쓰러졌지. 드로니엘도, 얀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오직 남은 건 너와 스승님 뿐이지만….”

     쪽.

     루키우스는 로즈마스의 앞머리에 키스를 하며 히죽 웃었다.

     “내게는 너뿐이야, 로즈마스.”

     “…고마워. 그렇게 말 해줘서.”

     “진심이야. 후후, 파이 식겠다. 잘 먹을게.”

     루키우스는 응접용 의자에 앉았다.

     로즈마스는 상석에 앉는 그를 보며 잠시 손으로 팔을 쥐어뜯었지만, 어쩔 수 없이 그에게서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저기, 루키우스. 혹시나 하는 말이지만, 어머님이 하신 말씀에 관해서는….”

     “안 해.”

     루키우스는 애플파이 조각을 집어들며 칼같이 말을 잘랐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누군가에게 무릎을 꿇지 않아. 그게 특히 종족의 화합을 위한다는 핑계로 협박하는 거라면 결코.”

     “루키우스….”

     “인간의 국왕이 엘프의 여왕에게 무릎을 꿇는다면 엘프가 인간과 하나가 되겠다고? 그런 건 진정한 화합이 아니야. 나는 그렇게 배웠어. 그리고….”

     루키우스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남자가 어떻게 함부로 무릎을 꿇을 수 있겠어? 더군다나 나는 국왕인데.”

     “…그래. 고마워. 나는 혹시나 나 때문에 그런 선택을 내릴까봐 조금 두려웠어.”

     “그럴 리가.”

     뭔가.

     로즈마스는 속으로 ‘이 대답은 뭐지’하는 생각을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루키우스. 하나 물어볼 게 있어.”

     “응?”

     “밤마다 현자님을 만나러 간다고 하는 소문이 있던데….”

     “누가?”

     다소.

     루키우스는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로즈마스. 너는 내가 아직도 모든 일을 스승님께 물으러 다니는 꼬맹이인 줄 알아?”

     “아, 아니. 그게….”

     “나도 이제 어른이야. 심지어 국왕이라고. 이제 내 한 마디, 내 한 발자국에 이 나라 백성들 모두의 명운이 달려있어. 그런데 내가 나라의 운영을 함부로 다른 사람에게 맡길 것 같아?”

     루키우스는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언은 구할 수 있겠지. 하지만 나는 이 나라의 국왕이야. 언젠가 인간과 엘프가 하나로 화목하게 지낼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그런데 내가 여전히 500년 전에 살고 계신 분께 매일같이 찾아갈 리가 없잖아.”

     “루키우스….”

     “물론, 정말 답답할 때는 스승님께 찾아가서 이야기를 하고는 해. 하지만 로즈마스, 네가 뭔가 착각을 하는 게 있는데.”

     루키우스는 분명한 목소리로 화를 냈다.

     “내가 언제 힘들고 어려운 일을 너한테 상의하지 않은 적 있어?”

     “……아니.”

     생각해보니.

     현자에게 찾아갔을 때는 로즈마스와 먼저 이야기를 나누고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을 때 뿐이었다.

     그마저도 나라의 대신들과 논의를 하고도 뚜렷한 답이 나오지 않았을 때였다.

     “로즈마스. 부부는 일심동체야. 나라에 무슨 일이 있으면 내가 너와 이야기를 가장 먼저 나누지, 누구랑 또 이야기를 나누겠어?”

     “그, 루키우스.”

     “아무래도 안 되겠네. 로즈마스.”

     루키우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로즈마스를 번쩍 안아들었다.

     “나, 네게 할 말이 있어.”

     “뭐, 뭔데…?”

     “하자.”

     로즈마스는 순식간에 얼굴이 벌게졌다.

     “루, 루키우스! 지금은 네가 할 일이….”

     “내일 하면 돼. 그리고 이것도 국왕이 할 일이야. 인간과 엘프의 화합에 둘의 피가 섞인 아이만큼 확실한 증거가 또 어디있겠어?”

     “아, 아아…!”

     털썩.

     로즈마스는 침대에 던져졌다.

     “딱 대.”

     “……네♡”

     그 날.

     로즈마스는 실신하고 또 실신할 때까지 부부의 시간을 보냈다.

    * * *

     그리고.

     늦은 새벽.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슬립 마법’을 적당한 시간에 ‘해제’하는 마법의 약을 마시고 잤던 로즈마스는 조용히 잠에서 깨어났다.

     “…….”

     침대의 옆은 비어있었다.

     창틀에는 익숙한 발자국 흔적이 하나 남아있었고, 창문의 너머에는 장미의 정원 한 가운데에 우뚝 솟은 탑이 하나 있었다.

     현자의 탑.

     마치 어둠을 밝히는 등대와 같이, 현자의 탑 꼭대기 층에는 방 하나에 불이 켜져 있었다.

     “…….”

     로즈마스는 바로 창을 향해 달려가 허공을 달렸다.

     다른 이들에게는 들키지 않게 바람의 정령까지 이용하며, 그녀는 정말 조용히 움직여 현자의 탑 근처에 접근했다.

    현자의 탑에는 결계가 펼쳐져 있다.

     그리고 결계는 현자가 허락하지 않은 자들은 결코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그러나 결계는 로즈마스를 막지 않았다.

     그게 로즈마스가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동료라서?

     아니다.

     “도발하고 있어….”

     까드득.

     현자는 로즈마스를 초대했다.

     로즈마스는 주먹을 불끈 쥐고 묵묵히 탑 위로 올라갔다.

     하아, 하아.

     “…….”

     귀에 분명히 들어오는 소리는, 분명 거친 숨소리였다.

     너무나도 싫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소리가 점점 커질수록 로즈마스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소문은 소문으로 끝날 때 별 일이 없는 거지, 그게 진실이 되는 순간 로즈마스는 겉잡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설마…. 아니, 그럴 리 없어.”

     루키우스가. 

     그 루키우스가.

     자신을 향해 오늘 밤만 하더라도 사랑한다고 속삭여준 루키우스가.

     설마…?

     저벅.

     로즈마스는 탑의 꼭대기에 도착했다.

     좌우로 여는 넓은 문의 너머, 현자의 회랑의 끝 쪽, 또다른 문의 뒤에는 현자의 방이 있었다.

     문이 두 개나 있지만, 일직선 상에 놓여 문이 살짝 열려있다면 그 틈을 이용해 방이 보이는 구조.

     “!!”

     로즈마스는 보고 말았다.

     책상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있는 현자, 마녀 벨을.

     그리고 그 아래에 무릎을 꿇은 용사-남편 루키우스를.

     

     히죽.

     마녀 벨은 자신을 눈치챘다.

     하지만 마녀는 루키우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

     할짝.

     로즈마스는 충격으로 제자리에서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하아, 하아….”

     엘프의 귀는,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마참내

    덧) 19금 편은 19금일 뿐입니다. 안 보셔도 스토리 이해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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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ro’s Mentor is a (Demon) Witch

The Hero’s Mentor is a (Demon) Witch

Status: Ongoing Author:
I, who was once the Demon King, have become a terminally ill beautiful girl who can't do anything. To survive, I became the witch of the Hero's party. ...No, I don't like the H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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