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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7

       “자고 가.”

         

       유세하의 단호한 한마디가 울려 퍼진다.

         

       멀뚱멀뚱 그를 바라보는 문보라.

       처음에는 말뜻을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내, 말의 진의를 깨닫고 점점 눈이 커진다.

         

       “우, 우엥, 네?”

       “자고 가라고. 말 못 알아들어?”

         

       문보라는 입을 쩍하고 벌렸다.

         

       이, 이 남자가 대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원래의 문보라였다면 ‘미쳤어요!’ 하고 한마디 하겠지만, 상대는 다름 아닌 유세하.

         

       같이 다녔던 그이기에,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니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애초에 그럴 남자였다면, 옷이 녹아내렸던 시점에서 흑심을 드리웠을 테니까.

         

       …그,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한번 물어본다.

         

       “저, 저기…”

       “응?”

       “호, 호, 혹시…그, 그렇고 그런…의미는…아, 아니죠?”

         

       문보라는 은근슬쩍 가슴팍을 여몄다.

       눈동자가 빙빙 돌아가며 턱을 타고 식은땀을 흘렸다.

         

       기어들어 가는 문보라의 말에 바라보던 유세하는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찼다.

         

       애가 대체 날 뭘로 보는 거야?

         

       “아, 아니…아, 아무리 그래도 나,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것도 있는데…다, 다 큰 성인 남자 여자가 서로 같이 있기는 좀…그, 그것도 이리 좁은 방에…치, 침대도 하나인데-”

         

       횡설수설하는 문보라의 모습에 유세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는 끝이 없어 보였다.

         

       번쩍하고 그녀의 허리와 다리를 붙잡아 공주님 안기로 들어 올린다.

         

       ‘역시 가볍네.’

         

       이리 보면 참 신기한 여자이다.

       특정 부위가 그리 큰데, 이리 깃털처럼 가볍다니.

         

       주나용도 그렇고 애도 그렇고 뭘 좀 더 먹여야 할 것 같았다.

         

       “유, 유세하씨?!”

       “가만히 있어.”

         

       더 헛소리하기 전에 침대 위로 던진 다음 이불을 돌돌 말아 김밥처럼 만들어 두었다.

         

       “우, 엥?”

       “양치질은 다 했지?”

       “아, 아까 샤워하면서…전부…”

       “그러면 됐어.”

         

       말을 마친 유세하는 남은 장비를 모두 구석으로 치웠다.

         

       나머지 분배는 내일 마저 하기로 한 그는 즉시 방의 불을 껐다.

         

       지켜보던 문보라의 심장이 쿵쿵하고 뛰기 시작한다.

         

       서, 설마!

       지, 진짜로!?

         

       ‘도, 동침…?’

         

       단 하나밖에 없는 침대이다.

         

       여, 옆에 올라와 자, 자는 건가?

         

       무, 물론 유세하니까…

         

       건드리거나 그렇지는 않겠지만…

         

       ‘아, 아니…’

         

       그건 모르는 거다.

         

       어, 어찌 되었든 그도 한참 대의 남자가 아닌가.

         

       여기에 제 입으로 말해 부끄럽지만, 자신 또한 흑심을 품기에는 충분한 미모를 갖춘 여자이다.

         

       ‘어, 어떡하죠?!’

         

       사, 살면서…

       나, 남자랑은…

       아무런 경험이 없는데…

         

       그렇게 문보라가 짧은 시간 동안 온갖 망상을 펼치는 동안, 바닥에 침낭을 까는 유세하.

         

       “그럼 잘 자. 보라보라.”

       “우, 에?”

         

       그는 멋대로 말해버리고는 안으로 들어가 즉시 숙면에 취해버렸다.

         

         

       *

         

         

       “……”

         

       1분 뒤.

         

       졸지에 김밥말이가 된 채 침대에 멍하니 남겨진 문보라는, 몸에 둘둘 감긴 이불을 조심히 풀었다.

         

       그러고는 슬쩍 시선을 내린다.

         

       “…쿠울…”

       “……하.”

         

       태풍처럼 휘몰아친 그가, 아주 편안한 얼굴로 잠에 빠져 있었다.

         

       벌써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오는 게…

         

       어느 환경에서든 잠에 드는 수련이라도 한 건지 의심스러웠다.

         

       “…우우.”

         

       문보라는 가슴속에 일렁거리는 미묘한 기분을 달래며, 한숨을 쉬었다.

         

       생각해 보니, 지금 이것도 그때랑 다른 게 없었다.

         

       ‘멋대로 망상하고…’

         

       멋대로 생각하고…

       멋대로 기대하고…

       자신도 참 학습 능력이 없구나 싶다.

         

       “……힐끗?”

         

       다시 밑을 내려다보았다.

       타이밍이 좋다고 해야 할지…

         

       으음 거린 유세하가 몸을 돌리며, 이불을 툭 하고 쳤다.

         

       스르륵 하며 드러난 상체.

         

       안으로 비춰 보이는 속살에 문보라의 양 볼이 붉게 달아올랐다.

         

       ‘저, 정신 차려요. 문보라!’

         

       상대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는데.

         

       이리 이상한 생각을 하며 의식해야 되겠는가.

         

       아무튼, 겨우겨우 마음을 진정시킨 문보라가 본격적으로 잠에 들려던 때였다.

         

       ‘…어라?’

         

       주머니에 무엇인가 이물감이 잡힌다.

         

       정체는 약간의 땀과 옅은 핏자국이 묻은 손수건이었다.

         

       ‘아…’

         

       그제야 기억났다.

         

       주나용이 주었다는 손수건.

         

       유세하가 가지고 있으라고 건네준 거였다.

         

       정황이 없어서 돌려주는 걸 깜박하고 말았다.

         

       ‘……’

         

       말없이 손수건을 바라보던 문보라는 의아한 기분을 느꼈다.

         

       ‘그리도 돌려주기 싫었는데…’

         

       빨아서 건네준다는 핑계로 일부러 주머니에 깊숙이 넣었는데…

         

       왠지, 지금은 아무런 미련이 없었다.

         

       ‘…그 이유는…’

         

       지금 목에 차고 있는 이 아름다운 목걸이 때문이겠지.

         

       은은한 푸른빛이 감도는 목걸이를 매만지지는 문보라.

         

       다시 손수건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내일 빨아서 돌려드려야겠네요.’

         

       잠시 뒤.

         

       피곤했는지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면서도 문보라는 조금도 목걸이를 풀지 않은 채 꼭 손으로 움켜쥐었다.

         

         

       * * *

         

         

       다음 날 아침.

         

       자동으로 눈이 떠진 나는 옆의 시계를 바라보았다.

         

       새벽 6시라는 시간대에 작게 숨을 고른다.

         

       ‘…어우.’

         

       좀 늦게까지 자보려고 해도 이게 쉽지 않았다.

       머릿속에 무슨 경보음이라도 있는지, 이 시간만 되면 자동으로 떠졌으니까.

         

       쭉~ 기지개를 켜고 고개를 돌리자, 진귀(?)한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우헤헤…’

         

       침대 위 문보라.

       양다리로 이불을 걷어찬 그녀가, 침을 줄줄 흘리며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참으로 보기 드문 진귀한 광경이다.

         

       “…이것 참.”

         

       설정상 문보라는 잠버릇이 험했다.

       캐릭터 설정으로 알고는 있었다만…

       막상 이렇게 두 눈으로 직접 보니 묘하게 웃겼다.

         

       언제나 철두철미하고 단단히 가드를 올리는 캐릭터가 이리 풀어지다니…

         

       참으로 귀엽기 짝이 없었다.

         

       ‘…아침 식사라도 할까.’

         

       지금 준비해서 나가지 않으면 여기저기 구설에 오를지 모른다.

         

       어서 밥 먹이고 원래 숙소로 들여보내야지.

         

       “야, 야, 문보라. 일어나.”

       “…우헤헤…”

         

       순간, 나의 손을 붙잡는 문보라.

         

       “헤헤…할아부지…국밥 한 그릇…더요…헤헤…”

       “…얼씨구?”

         

       가지가지 하네 정말.

       나는 한참을 어이없어하다가, 귀여우니 봐주자 하는 심정으로 피식거리며 내려다보았다.

         

       약 20분 정도가 더 지난다.

         

       정신이 좀 들었는지 ‘쓰읍…’하고 침을 닦은 문보라의 눈이 게슴츠레 떠진다.

         

       “…우엥?”

       “안녕?”

       “……?”

         

       끔벅끔벅 눈을 깜박이는 문보라.

       그녀는 지금, 이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기분 좋게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시내를 걸어가고 있었는데…

       국밥도 잘 먹었는데…

       어째서 눈앞에 난생처음 보는 미남자가 서 있는 걸까.

         

       “…우…엥?”

         

       10초 정도 끔벅이던 문보라는 곧 상황을 인지하였다.

       너무 늦은 시각이라 그의 숙소에서 머물게 되었다는 기억과…

       자신의 잠버릇이 심하다는 정보가 결합한다.

         

       “우,우,우,우,우…!”

       “할아버지예요~보라보라~”

       “우이이이이이익!!!”

         

       그 이후, 한 기숙사에서 <설빙>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는 기괴한 소문이 생도들에게 퍼지기 시작했다.

         

         

       * * *

         

         

       이틀 뒤.

         

       “흐흥~”

         

       기분 좋은 콧노래와 함께 한 여성이 당찬 발걸음으로 아카데미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밝은 불꽃처럼 윤기 있게 타오르는 적발을 사이드 테일로 묶어 내린 미인.

         

       그녀의 정체는 바로 주나용.

         

       주변 생도들의 선망 어린 시선이 느껴지지만, 주나용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은 오로지 ‘만난다. 그리고 전해준다.’라는 생각만으로도 꽉 차 있었으니까.

         

       ‘…용헤헤.’

         

       ‘분명 기뻐하겠지?’라고 생각하는 주나용.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귀여운 용 마스코트 캐릭이 그려진 도시락통이었다.

         

       안에 담긴 것은 ‘멘보샤’였다.

         

       다만, 특이하게도…

         

       민트색의 무엇인가 수상쩍은 소스가 발라져 있었다.

         

       ‘깻잎민초 멘보샤!’

         

       주나용이 생각하는 특식이자 별미 중 하나.

         

       ‘깻잎민초’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구하기 어렵기로 정평 나 있는 음식이었다.

         

       어렵게 구한 주나용은 자신도 먹고 싶은 걸 꾹 참고 걸어가고 있었다.

       전해줄 상대는 당연히 유세하였다.

         

       ―와, <염룡>이다…사인 달라고 하면 줄려나?

       ―아서라, 우리랑은 보법이 다른 인물이라고.

       ―아 맞다, 너 들었어? 이번 <기숙사 사건>. 팽진아 교수님이 처리했다며? 듣자 하니 원인이 되는 <슬라임 킹>을 잡으셨다고 하던데.

       ―아, 그거 교수님이 직접 처리한 거였어? 역시 <패천검>인가…

         

       주나용은 마지막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이것저것 여러 내용이 나왔지만, 전부 유언비어에 불과하기에 ‘흥~’하고 고개를 털었다.

         

       ‘나는 다 알고 있지용~’

         

       모든 사건의 전말을 직접 전해 들은 주나용은 잘 알고 있었다.

         

       이번 사건을 해결한 사람은 존경하는 팽진아 언니가 아닌, 바로 유세하라는 것을.

         

       그저 여러 말소문이 나오는 게 껄끄러우니, 팽진아 언니가 나서준 사실을 말이다.

         

       “…용헤헤.”

         

       주나용은 기뻤다.

       별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유세하가 사건의 해결한 주인공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그 사실이 미묘한 기쁨을 선사하였다.

         

       ‘…나라도 칭찬해 줘야지.’

         

       그렇기에 ‘깻잎민초 멘보샤’를 구해온 거다.

         

       은근슬쩍 그에게 다가가 ‘오다가 주웠어…먹을래?’ 하고 전해주는 거다.

         

       그리고 옆에서 식사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본다.

         

       이후 한두 개 뺏어 먹으며, 서로 대화의 문을 여는 거다.

         

       당연하지만, 이것으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자,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거야.’

         

       오늘 오후에 있을 1학년 ‘공통 과목 수업.’

       깐깐미 교수의 [전략과 지휘체계 구성] 수업.

       유세하도 분명 그 수업을 들을 거다.

         

       ‘…같이 들어가서 옆에 앉아야지.’

         

       마지막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그의 어깨에 팔을 두르는 거다.

         

       요즘 이것이 주나용이 밀고 있는 유세하에 대한 친근감의 표시였다.

         

       ―티, 팀장 언니 정말이야? 파, 팔 두르는 게 그리 효과가 크다고?

       ―은근, 애매한 영역에 있어서 그렇지. 굉장히 강력한 무기입니다. 손을 잡는 것보다 덜 부끄럽고, 그렇다고 스킨십이 약한 것도 아니니까요. 특히 아가씨는 <설빙>에 뒤지지 않는 흉부를 가지고 있으시니, 자연스럽게 어필을…

       ―요, 용아앗! 이, 이상한 소리 하지 마!

         

       다시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참 나 원.

         

       ‘그, 그냥 친근감의 표시인 건데…’

         

       팀장 언니도 대체 뭘 오해하는 건지 모르겠다.

         

       음, 그렇다. 그렇고말고.

         

       그냥, 유세하에게 여러모로 빚을 진 것도 있고…

         

       그래서 챙겨주는 거다.

         

       별다른 감정 따위 없었다.

         

       그렇게 모퉁이를 지나던 때였다.

         

       “…!”

         

       타이밍 좋게 복도에서 멀뚱히 서 있는 유세하를 발견하였다.

         

       언제나 봐도…

         

       참 조각 같은 옆 모습이었다.

         

       ‘흠흠.’

         

       좋아, 이대로 자연스럽게…?

         

       “…어?”

         

       그제야 눈치채는 다른 한 사람.

         

       유세하의 바로 옆.

         

       눈길이 절로 가는 미인이 한 명 서 있었다.

         

       ‘…문보라?’

         

       바로 <설빙> 문보라.

         

       뭐라 뭐라 대화하던 두 사람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서로 웃음꽃을 피웠다.

         

       멀어서 잘 들리지 않았다.

         

       ‘……’

         

       주나용은 아주 약간, 묘한 기분이 가슴속에서 울렁이는 걸 느꼈다.

         

       그리고…

         

       뒤를 이는 장면에서, 이 울렁임이 미칠 듯이 강해졌다.

         

       곱게 접은 손수건을 꺼내 새침한 표정으로 건네주는 문보라.

         

       그리고 그것을 받으며 개의치 말라는 듯 손을 젓는 유세하.

         

       주나용의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저 손수건…

         

       틀림없었다.

         

       “…내가.”

         

       유세하한테 쓰라고 병실에서 건네준 거잖아…?

         

       그걸 왜…

         

       “…문보라가 돌려주는 거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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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Cheat-Level Munchkin 5★ Character

I Became a Cheat-Level Munchkin 5★ Character

사기급 먼치킨 5★ 캐릭터가 되었다
Score 6.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Gonis Archive Life》 ‘GAL’ for short. I found myself possessed into the world of this game. Not only that, but I became a 5★ character from the very start, The only male character with ridiculously OP abil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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