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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7

       “우와앙.”

         

       파스텔은 입이 헤 벌어졌다.

         

       이게 지하가 맞나 싶을 만큼 넓은 공간이었다. 빌딩을 세워도 넉넉한 높이에 지면으로는 수목이 우거졌고 머리 위로는 작은 동산들이 부유했다.

         

       그것만 해도 이상한 자연경관이라 생각되겠건만 동산엔 새하얀 건축물이 세워져 있어서 인지 부조화를 일으켰다.

         

       이게 성지?

         

       “우와아앙.”

         

       파스텔은 입을 헤벌레 벌리고 놀라다가 흠칫 떨었다. 서둘러 양손으로 입을 가렸다.

         

       헙.

         

       말하면 안 되지.

         

       악마와 아기새들을 돌아봤다.

         

       “쉿. 쉿. 쉿.”

         

       위치가 먼 거 같긴 하지만 교단의 인기척이 느껴지니 모두 조용히 하세요.

         

       안심하고 정신을 집중했다. 사람 목소리와 새의 날갯짓이 섞인 소리가 들려왔다. 동산과 동산을 오가는 소리였다.

         

       새를 이동 수단으로 쓰는 건가.

         

       하긴 원활한 비행 자체는 대마법사나 가능하다 했으니 가성비 좋은 방식을 쓸만해. 지하니 비공정을 통째로 가져오기도 난감했을 테고.

         

       으에에.

         

       무슨 엄청난 짓을 꾸미길래 새까지 납치하는 대규모 작업을 진행한 걸까. 필요한 업무량만 생각해도 심상치 않은 목적을 느낄 수 있어.

         

       파스텔은 옅게 부르르 떨었다.

         

       막상 나쁜 짓 하는 현장에 오니 심장이 콩닥콩닥 뛰고 이런 건 경찰에 맡겨야 하는 게 맞지 않나 겁이 났다.

         

       근데 그 경찰인 기사단이 일을 못 함.

         

       으이.

         

       스리슬쩍 악마를 바라봤다. 칙칙한 정장 차림과 생각에 빠진 붉은 눈동자를 보니 안도감이 들었다.

         

       내가 정신 놓고 별만 보며 걷다가 물에 빠져도 바로 구해줄 거 같은 모습.

         

       칙칙한 건 칙칙한 대로 나쁘진 않을지도.

         

       다가오라는 의미로 손짓했다. 악마가 다가오자 몸을 숙이라는 의미로 다시 손짓했다. 악마가 그대로 해주며 의아해했다.

         

       『왜 그러지?』

         

       헛.

         

       놀란 파스텔은 악마의 귀에 빠르게 속닥였다.

         

       “목소리를 내시면 어떡해요.”

         

       완전 바보바보 악마님.

         

       『목소리가 아니라 관념이다.』

         

       악마가 자신의 입술을 톡톡 쳤다. 입이 움직이지 않은 채 목소리가 들렸다.

         

       “그거 어떻게 해요?”

       『넌 지금 못한다.』

         

       그럴 수가.

         

       실망.

         

       파스텔은 다시 속닥였다.

         

       “교단이 근처니 앞으론 이런 식으로 소통할게요. 번거로워도 이게 맞아요.”

         

       소곤소곤 소곤소곤.

         

       『동의한다. 할 얘기가 있다면 손짓해라.』

       “네에.”

         

       이렇게 이렇게.

         

       파스텔은 괜히 손짓을 연습하다가 멈칫했다.

         

       으에.

         

       숙인 상체를 펴는 악마를 손짓으로 다시 숙이게 만들고 속닥였다.

         

       “근데 왜 저만 번거로워요. 악마님도 같이 번거로워지면 어때요?”

         

       권력자로서 의전이라는 게 있는데 아랫사람인 악마님만 빠지는 건 이상하지 않을까요.

         

       『호오.』

         

       악마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심했다.

         

       그러더니 파스텔의 귀에 속닥였다.

         

       『싫다.』

         

       싫다니……!

         

       파스텔은 비틀거렸다.

         

       잠시 뒤 진정하며 말했다.

         

       “저도 웃자고 한 말이었어요.”

         

       후우.

         

       긴장이 상당히 풀린 듯.

         

       확실히 악마님은 사람 모습이 좋은 거 같아. 얼굴을 마주 보고 하는 대화와 통화로만 하는 대화의 차이였다. 옆에 있으면 마음이 든든하고 편해진다.

         

       사람이 고플 때 마주친 첫 대상이라 그런지 뭔가 의존적인 감이 있긴 하지만 유일한 보호자니 별수 없지 않을까.

         

       인기인 파스텔로서 이런 비자립적 관계는 매우 곤란했겠지만 보호자는 친구가 아니니 괜찮다.

         

       아기새 친구들에게도 손짓해 가까이 불렀다.

         

       “본격적으로 계획을 세워보죠. 현재 저희 전력이 객관적으로 어느 수준인 거예요? 악마님 역량이 어떻죠?”

         

       봉인이 느슨해졌으니 기대해 볼 만한가? 여차하면 때려 부수고 꽁꽁 숨기는 계획이 뭔지 확인해 볼 수 있을 정도?

         

       『흠.』

         

       악마가 주먹을 쥐었다 폈다.

         

       『이기는 건 몰라도 네 안전을 보장할 정도는 되겠군.』

         

       그게 어느 정도 수준이지.

         

       『대상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기사급이 와도 네가 죽을 일은 없다. 본래도 대략 그렇긴 했다만.』

         

       허억.

         

       성지라 봉인이 좀 느슨해졌을 뿐인데 바로 실력이 나오시는구나!

         

       이것이 대악마!

         

       이런 사람이 제 보호자예요!

         

       완전 든든!

         

       파스텔은 콩닥콩닥 흥분했다.

         

       “그러면 저는 호랑이 머리 위에 올라탄 핑크 토끼가 될게요.”

         

       토끼 귀를 쓸어올리듯이 분홍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의기양양한 표정~.

         

       『왜 굳이 머리에 올라타는 거냐.』

         

       악마가 어이없어했다.

         

       후후, 그것은 그것은.

         

       “엄정한 상하관계라고 할까요.”

         

       권력자로서 매우 중요.

         

       『이젠 아주 노골적이군.』

       “헤헤.”

         

       악마님은 전력에 전혀 문제없나.

         

       “충돌은 삼가고 정찰하는 게 맞겠죠. 정보 질적으로도. 너희 현지인으로서 뭔가 안전하게 정찰할 방법을 알고 있어?”

         

       동산이 떠다니니 꽤 까다롭네.

         

       ―삐약.

         

       아기새가 날개로 스스로를 툭 쳤다.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대단한 아이디어를 설명했다.

         

       ―삐약 삐약. 삐이약. 삐약. 삐약 삐약.

       ―삐야악?!

         

       다른 아기새가 부리를 벌리며 경악했다. 어떻게 그런 엄청난 생각을 할 수 있냐는 반응이었다.

         

       말한 아기새가 가슴팍을 부풀리며 뿌듯해했다.

         

       ―삐약!

         

       허억.

         

       그렇구나!

         

       그랬던 거구나!

         

       파스텔은 드디어 깨달았다.

         

       나 새 언어 못 알아들어.

         

       뭔가 대단한 방법을 말해줬다는 건 알겠지만 얘네 무슨 얘기하는지 모르겠어.

         

       “미안, 아기새 친구. 전혀 못 알아듣겠어.”

         

       인기인 파스텔도 한계가 있다고 할까.

         

       ―삐약……?

         

       아기새가 가슴팍을 부풀린 자세 그대로 얼어붙었다. 다른 아기새가 위로하듯이 날개로 토닥였다.

         

       “으아, 미안미안.”

         

       파스텔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주변 환경을 훑다가 상공에서 부유하는 동산을 확인했다.

         

       “아까와 위치가 다른 거 같죠? 이동 중인가 봐요.”

         

       건축물도 있으니 저기 숨으면 좋을 텐데.

         

       파스텔은 마석 나이프를 꺼냈다. 빗자루는 두고 왔으니 이걸로. 하던 대로 나이프에 오르려다가 멈칫했다.

         

       분홍 눈동자가 악마를 돌아봤다.

         

       “악마님 날 줄 아세요?”

       『본래 사람은 날지 못하지.』

       “앗, 악마님은 그러면 날 수 있어요? 악마 날개 파닥파닥이에요?”

         

       악마가 황당해했다.

         

       『나도 못 난다는 얘기다.』

         

       그럴 수가.

         

       『마왕이 특이했던 거지 아무리 강자라도 마법 쪽이 아니라면 못 나는 게 맞다.』

       ―삐약!

         

       아기새가 돌연 날개를 번쩍 들었다.

         

       오잉.

         

       “무슨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 미안. 말해도 못 알아들어.”

       ―삐약삐약.

         

       아기새가 머리를 저었다. 살짝 떨어지더니 날개를 파닥였다.

         

       파닥파닥 파닥파닥.

         

       병아리 같은 둥근 몸체가 서서히 떠올랐다.

         

       허억.

         

       파스텔은 눈이 동그래졌다.

         

       “너희 날 수 있었어?”

         

       아니아니 새니까 당연하지만!

         

       아기새가 바로 머리 위에서 느리게 날아다니며 내려봤다.

         

       ―삐약.

         

       뭐 그런 말을 다 하냐는 눈빛이었다.

         

       “우와우와.”

         

       파스텔은 빠르게 속닥였다.

         

       “악마님 악마님! 사람은 못 날지만 아기새는 날 수 있는 거였어요!”

         

       상상도 못 했던 사실!

         

       “교단도 새를 타고 다니니 악마님도 아기새를 타고 다니면 되는 거죠!”

         

       아기새 탄 악마님!

         

       『흠. 그렇군.』

         

       악마가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살짝 삐딱하게 섰다. 긍정은 하지만 미묘하게 떨떠름한 기색이었다.

         

       오잉.

         

       파스텔은 그 감정의 톤을 빠르게 포착했다.

         

       분명 좋은 일인데 왜 이런 반응을?

         

       설마설마.

         

       파스텔의 입꼬리가 슬쩍 풀렸다. 손가락이 악마를 콕콕 찔렀다.

         

       “악마님 악마님. 설마설마 아기새를 타야 한다는 사실이 창피하신 건 아니죠?”

         

       목소리가 재잘거렸다.

         

       “다 큰 어른이 덩치 큰 병아리에 탑승해 이동해야 한다니. 그것도 이제 마주칠 교단원은 성체 새를 타고 멋지게 다니는데 악마님만 병아리.”

         

       귀염귀염 병아리!

         

       악마가 잠시 말없이 쳐다봤다.

         

       『네 상상력을 속박할 생각은 없지만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재단하는 건 좋지 않은 판단이다.』

         

       아앗! 아앗!

         

       파스텔은 표정이 해맑아졌다.

         

       “혹시혹시 아까 전에 제가 악마님 귀가 붉어졌다느니 그 장면을 꼭꼭 기억해서 자손 대대로 전하겠다느니 했던 것 때문에 그래요?”

       『그것도 있다.』

         

       뿌뿌! 뿌뿌!

         

       “맞아요! 그때는 귀가 안 붉어지시긴 했죠! 그건 제 상상이었어요!”

         

       상상력 풍부한 파스텔!

         

       『이제야 인정하는군.』

       “그런데요, 그런데요.”

         

       파스텔은 속닥였다.

         

       “악마님 솔직히 말해보세요. 아기새를 타고 가야 하는 미래가 쪼끔은 민망한 게 맞죠?”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다 이해할 수 있어요. 사람인데 그럴 수 있죠. 오히려 거짓말이 안 좋지 않을까요? 제가 보고 있잖아요! 교육에 좋지 않아요!”

         

       진짜진짜.

         

       『흠.』

         

       악마가 날아다니는 아기새를 올려봤다. 거대 병아리가 날아다니는 광경이 동화 같았다.

         

       『조금 말인가.』

       “네! 아주 쪼끔!”

         

       개미 친구의 더듬이만큼!

         

       악마가 삐딱하게 섰던 자세의 무게중심을 반대편 다리로 바꿨다. 손을 살짝 움직이더니 팔짱을 꼈다.

         

       『조금 정도는 민망할 수 있겠지.』

         

       푸핫!

         

       파스텔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아냈다. 양손으로 입을 꾹꾹 누르자 볼이 파르르 떨렸다.

         

       이건 평생 기억해야지!

         

       액자로 만들어 소장할 테야!

         

       악마가 굉장히 떨떠름해했다.

         

       『어서 출발하는 게 좋겠군. 지금은 교단원의 활동이 여기까지 미치지 않지만 상황은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

         

       주제 전환이 이유가 아니라면 지당하신 말씀.

         

       파스텔과 악마는 각자 아기새에 올라탔다.

         

       “와아, 완전 푹신!”

         

       아기새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휘청이고 느리긴 했지만 어쨌든 괜찮게 날았다.

         

       동산이 가까워졌다.

         

       『하아.』

         

       악마가 포기한 목소리로 얼굴을 쓸었다.

         

       『체면이 말이 아니군.』

         

       아하하!

         

       파스텔은 깃털 속에 얼굴을 파묻었다. 몸이 가늘게 떨렸다. 숨죽인 웃음소리가 꺅꺅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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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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