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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7

       천변의 방은 이름처럼 입장하는 사람 모두에게 다른 종류의 시련을 부여한다.

        마법 창조, 학파 내에서의 입지 확보, 숙원의 달성이나 과거의 환영으로부터 벗어나는 등 종류나 난이도도 천차만별이다.

        유일한 공통점은 시련의 내용은 반드시 ‘이명’을 얻을 자격을 테스트한다는 것.

        사실 지금 프리나가 가진 능력이라면 중층에 오르기에는 충분했다.

        왜냐하면 그녀에겐 남들보다 유리한 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전 솔직히 성공할 줄 알았거든요. 워낙 자신있게 도전하기도 했고, 선배 실력이면 40층에서 좌절될 것 같진 않아서요.”

        “…….”

        “혹시 무슨 일 있었어요?”

       

        마녀.

        4대 재앙 중 하나인 ‘대마녀’를 중심으로 행동하고 사유하는 이질적인 집단.

        문헌에 따르면 먼 옛날, 삭일(削日)전쟁 시기에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이들은 극독과 역병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무엇보다 저주에 능통하다고 알려져 있다.

       

        마녀로 선택받은 이들에게는 신체 일부에 낙인이 새겨지는 것을 시작으로 공통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손, 발톱이나 머리카락이 빠르게 자라고 몸의 굴곡이 여성스러움을 더해가며 이성을 유혹하는 페로몬을 풍긴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폭발적인 마력의 성장.

        위계가 단숨에 몇 단계 뛰는 건 물론 마법 지식이나 마력의 정순함도 비교도 못할 정도로 올라간다.

       

        그렇기에 남들처럼 증명의 층에서 시련을 통과할 힌트를 찾으러 돌아다닐 필요 없이 압도적인 실력으로 밀어붙여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지만…….

       

        “아, 아, 안 실패했는데!?”

        “네?”

        “토, 통과했다고 40층의 시련쯤이야 나한테는 껌이지. 39층에 있었던 이유는 너 때문에 어그로 끌리기 싫어서 몰래 내려온 거고 사실은…….”

        “오, 정말인가요? 그럼 이명이 뭔데요?”

        “…….”

       

        그녀는 실패하고 39층으로 되돌아왔다.

        이유는 자신의 이명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마법사의 이명이 존재의 본질을 나타내는 이상, 그 이름은 프리나에게 뗄레야 뗄 수 없는 저주나 마찬가지였다.

       

        “전설의 0군 고닉? 아니면 프리나나나나나나님?”

        “그, 글쎄 뭐였더라? 너, 너무 길어서 잘 기억이 안 나네…….”

        “혹시 분탕의 왕은 아니겠죠? 그건 제가 찜해놓은 거라 먼저 가져가면 곤란한데…….”

        “넌 대체 이명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순수한 후배의 눈망울을 마주하며 차마 추악한 진실을 꺼낼 수는 없었다.

        탑이 자신에게 내민 이름이 다름 아닌 ‘마녀의 딸’이라는 것을.

        시련에 대한 이야기를 회피하고 싶어 짐짓 시선을 돌렸지만 한없이 부자연스러운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하는 수 없이 그녀는 다시 한 번 클락의 손가락에 옭아맨 ‘저주’를 이용해 그의 관심사를 다른 곳으로 돌려 놓았다.

       

        “그, 그보다 잊지 않았지? 누가 들을 수도 있으니 나랑 이야기하는 중에는 귓가에 대고 속삭여야 하잖아.”

        “아, 맞다 그랬었죠.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클락의 정신력은 도무지 뚫고 들어갈 방법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단단했지만 서서히 요령을 깨우쳐갔다.

        독문 학파의 유일한 선배와 후배라는 관계성, 밀실에 갇힌 남녀 둘뿐인 상황.

        경계심이 극도로 낮아진 상태에서 마녀의 씨앗이 발아하기 시작한 육체를 밀어붙여 사고의 전환을 유도한다.

       

        “이명이 뭔지 빨리 알려주세요. 그래야 저도 빼앗겼을 때를 대비해 다른 걸 생각해 놓을 거 아니에요.”

        “네, 네가 고른 거랑은 전혀 관련 없으니까 걱정할 거 없어. 그, 그리고 자꾸 귓볼 물려고 하지 마……!”

        “죄송해요 말랑해 보여서.”

       

        마치 손짓 한 번에 뭉개질 듯한 거대한 괴수를 새끼줄로 제어하려는 꼴이라 언제나 가슴이 두근거렸다.

        게다가 복부에 새겨진 낙인에 그의 손끝이 닿을 때면 영혼이 빨려나가는 듯한 아찔한 쾌감이 느껴졌다.

        정상적인 마법사라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좋아해줄 리가 없었기에 벌인 비열한 행동.

        그러나 대체 어느쪽이 조종당하고 있는건지 때로는 스스로도 헷갈리는 프리나였다.

       

        어쨌거나 겨우 주의를 돌리는데 성공한 그녀는 잠시 후,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는 핑계로 자리에서 벗어났다.

        지금부터는 어느때보다 냉철한 판단력이 요구되었으니까.

        그녀는 현재 시련과는 별개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길목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

        — 관리자 : 똑똑똑

        — 관리자 : 저희 소통해요~

        — 관리자 : 갤러리 보셨죠? 지금 성신제 때문에 유저분들 원성이 자자해서 퓨ㅠㅠ

        — 관리자 : 지금 제물…… 아니, 완장이 필요한데 생각 있으실까요?

        ====

       

        주딱이 보낸 메시지에 답을 해야만 했으니까.

       

       

       

        *

       

        ====

        관리자

        [성신제 때문에 갤 관리 인원이 부족해진 관계로 임시 파딱을 한 명 뽑겠습니다]

       

        하고 싶은 분들은 개인적으로 메시지를 보내 주세요~

       

        — 헉 

        — 왔다!!

        — 차단 피하기 on

        — 흠, 이 타이밍에 파딱 징집?

        — 조금 전까지 떠들던 고닉들 일제히 잠수하는거 보소 ㅋㅋㅋ

         ㄴ 다음 파딱인 새끼들은 여기 댓글 단 새끼 중엔 없을 거임

         ㄴ 왜?

         ㄴ 이미 한놈 정해서 차단시켜 놓은 상태고 그거 항의하려고 메시지 보내면 하고 싶은 걸로 간주 -> 그대로 임명할 테니까

         ㄴ ㄷㄷ 왤캐 고단수임

         ㄴ 거기까지 생각하고 올린 공지라고?

         ㄴ 나 주딱이 무서워지기 시작했어…….

        ====

       

        나는 프리나가 화장실 간 틈을 타 잠시 바깥으로 나왔다.

        시스테인 파크를 포함한 1층의 상업지구 곳곳에는 벌써부터 온갖 부스가 설치되고 있었다.

        기숙사를 돌아다니며 행사의 판촉물이 덕지덕지 붙은 기둥과 벽을 청소하며 프리나의 답장이 오길 기다렸다.

        아마 지금쯤 변기에 앉아 인고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겠지만 결국 포기하고 운명을 받아들일 것이 분명했다.

       

        — 띠링.

       

        “오, 벌써 왔나?”

       

        ====

        — 성신께메테오 : 주딱 제 차례에요 저 할래요 파란 관리자

        — 성신께메테오 : 지금 넘기면 극지에 대기중인 일천만 얼음마법사들이 갤러리를 점거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에요

        — 성신께메테오 : 보고 있나요 주딱?

        — 성신께메테오 : 대답하세요 주딱, 주따악?

        ====

       

        스팸이었군.

        비나의 스물 한번째 부계정을 ‘내란죄’로 차단한 나는 청소를 마저 이어갔다.

        파딱 후보로 점찍어놓은 건 프리나뿐 다른 이들은 별로 관심 없었다.

        며칠간 잠적하거나 부계정으로 활동한다면 계획은 물거품이 되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부계정을 쓰면 포인트가 아까울 것이고 프리나 같은 고닉이 며칠 동안 갤질을 끊는 건 불가능할 테니까.

       

        예상대로 슬슬 청소를 마치고 슬슬 돌아가려던 찰나 그녀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관리자의 입장에서 대화하는 건 마법제 이후로 처음이었다.

       

        ====

        — 프리나나 : 조건이 있는데

        ====

       

        글댓합이 30만을 향해가는 1군 고닉답게 일단 지목당한 이상 완장직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다는 건가.

        곧장 연봉협상으로 넘어가는 프리나였다.

        갤러리는 능력우선 주의이니 그녀가 성신제 동안 갤 관리만 잘 해준다면 나로서도 적절한 보상을 해줄 용의가 있었다.

        요구사항을 적으라고 말하자 기다렸다는 듯 장문의 메시지가 쏟아졌다.

       

        ====

        — 프리나나 : 어차피 성신제 때 할 일도 없으니까 관리 전권을 나한테 맡겨줘. 대신 포인트로 시급은 좀 많이 챙겨주고 이 기간 끝나면 버튼 시스템도 다시 활성화할 것을 약속해줘.

        — 관리자 : 누르고 싶은 버튼이 있나요?

        — 프리나나 : 그건 알 거 없고. 마지막으로 저번에 내 후배 회복시켜준 거 기억해? 잘은 모르겠지만 충분히 마탑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거 같은데, 부탁 하나만 들어줘.

        — 관리자 : 어떤 부탁이죠?

        — 프리나나 : 수리해야 할 마도구가 있는데 영석(靈石)이 필요해. 하급품이라도 좋으니까 하나만 구해주면 일 열심히 할게.

        ====

       

        영석이라, 마법제 때 받은 그거 말하는 건가?

        내게는 없는 물건이지만 행사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상품으로 나온 부스가 있을 것 같았다.

       

        ====

        — 관리자 : 노력해보겠습니다

        — 프리나나 : ㅇㅋ

        ====

       

        대량의 포인트와 영석, 그리고 버튼을 누르게 해주는 대신 성신제 기간 동안 프리나를 고용하는데 성공했다.

        평소라면 이걸로 안심했겠지만 지금은 이른바 전시 상황.

        아니나 다를까 프리나가 파딱 명단에 올라가자마자 ‘수상하게 화가 잔뜩 난 유동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성신제와 맞물려 친목질에 대한 반감이 과하게 올라온 탓이었다.

       

        ====

        마린이099

        [새 파딱을 벌써 뽑았다고?]

       

        공지 올리고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나만 이상하냐

       

        — 헉, 내정자?

        — 하필 갤러리에서 자주 보이시던 1군 고닉이라 흠…….

        — 이건 좀 호감 가네요

        — 성신제 아니랄까봐 완장들도 친목질 시작하나

        ====

        ====

        마린이557

        [하필이면 평소에도 주딱 부르짖던 ‘그 고닉’이 완장을 단다라]

       

        마법제 때부터 갤러리에 중계 달리는게 심상치 않았는데 결국 권력을 손에 쥐셨네요!

       

        새벽에 다시 인사드리러 올게요!

       

        — 어어 벌써 하나씩 튀어나온다

        — 일단 떡밥은 성공적으로 바뀐 것 같은데요

        — ㅍㄹㄴㄴ는 주딱 섹스 테이프라도 갖고 있나

         ㄴ 있으면 파딱 했겠음? ㅋㅋㅋ 

        ====

        ====

        마린이674

        [속보 : 조금 전 완장들 단톡방 유출 내역 공유]

       

        (개구리가 담배피는 사진)

       

        다시는 완장 떡밥이 돌 때 유동이 올린 글을 클릭하지 마라

       

        다음은 없다

       

        — 휴

        — 살려줘서 고맙다…….

        — 프리나나나님이 완장 차자마자 갤러리가 곱창나기 시작한 거에요~

         ㄴ 니들이 곱창내고 싶은 건 아니고? ㅋㅋㅋ

        ====

       

        프리나는 갤러리에서 열성적으로 활동한 고닉이었기에 알게 모르게 적도 많았다.

        여느 유저들처럼 심심하면 떡밥이 도는 주딱에 대해 쓴 글도 있었기에 나와의 커넥션이 있는 게 아니냐는 반응이 다수.

        정작 평소에는 노예취급하면서 이럴 때만 의구심을 던지는 모습이 아이러니했지만 본인이 스스로 헤쳐나가야 할 문제였다.

        우선 관망하는 입장에서 사태를 지켜보던 도중 프리나가 공지를 올렸다.

       

        ====

        프리나나

        [이 위로 파딱 카르텔 떡밥 밈]

       

        주딱이랑 모종의 관계 없고 만난 적도 없고 부탁 받아서 잠깐 맡았을 뿐이고

       

        주딱 섹스 테이프 안 갖고 있고 파딱 다는 동안 갤에 중계 안 달릴 거고 성신제 기간 동안 니들이랑 똑같이 방구석에 박혀있을 거고

       

        성신제 떡밥 막진 않겠지만 의도적으로 갤 곱창내는 글들은 걍 밀어버릴 테니까 꼬우면 해주학파로 찾아오던지

       

        (가운데 손가락 사진)

       

        그럴 용기도 없으면 이거나 드셔

        ====

       

        척 보기에는 자신을 음해하는 세력에 분노가 치밀어 올린 글.

        백이면 백 불난 민심에 기름을 부어 화형대로 직행할 악수였지만 나는 오히려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유는 단 하나.

       

        ====

        [방금 공지에 올라왔다 삭제된 사진 뭐임]

       

        프리나나님 ㄹㅇ 여자였음?

       

        — 손 보니까 빼박임

        ====

       

        그녀가 게시글의 내용 따위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로 자신을 향한 분노를 잠재울 한 수를 던졌기 때문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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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

[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

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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