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늦은 거리.
나는 지붕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문 앞에 사칭범과 그의 동료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신기하네요.”
이렇게 우르르 몰려와서 보고 있는데도 알아차리지를 못하다니.
클로셀 영감님이 간만에 어깨를 피며 말했다.
“소싯적에는 이런 일들이 수도 없이 있었지, 그때 쓰던 마법들이라네.”
몸을 움직여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심지어 말을 해도 저쪽에는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주변을 훑어보니 마나가 신기한 형식으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보통은 말일세, 저런놈들은 쭉정이에 불과하다네.”
동감하는바였다.
저런놈들 몇 명 족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 것 같았으니까.
이윽고, 놈들이 주고받는 대화가 들려왔다.
“건너편 집에 아이가 둘.”
“훗.”
동료로 보이는 놈이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그놈이 꺼내놓은 말이 가관이었다.
“조금 더 들어가면 보육원이 하나 있어.”
“호오…”
“조용히 작업을 시작하면 꽤 빼돌릴 수 있겠더군.”
저놈들의 말에 파라몬 영감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처음만났을때보다 더 무서운 얼굴.
아마 이대로 두면 저놈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영감이 스산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하는 짓거리들을 보니, 이미 납치한 아이들이 제법 있을 것 같군.”
나는 이미 저게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어디에 숨겨뒀는지를 알아야 할 테지만.
“저놈들을 따라가 봐야 할듯하네.”
보통이라면 영감님의 말대로 진행하는 게 맞을 것이다.
알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럴 필요 없어요.”
“…그렇군.”
나는 손을 뻗어서 한곳을 가리켰다.
“저쪽 어디쯤인 거 같네요.”
그리고 확인을 하듯 물었다.
“꼬마야, 이쪽이 맞아?”
– ….
방향을 가늠하던 꼬마의 영혼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시죠.”
“저놈들은 어떻게 하는 게 좋겠는가?”
“흐음….”
“미리 말해 두지만, 지금 내가 제법 화가 났다네.”
인과응보라는 것이 있다.
어떤 식으로든 업보가 찾아올 터.
게다가 영감님 말고도 화가 나신 분이 한분 더 있다.
“가만히 두면 알아서 벌 받으러 올거예요.”
“…그럼 안내를 부탁하지.”
꼬마의 영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영감님이 이 아이의 상태를 봤다면 벌써 저놈들의 목과 몸이 분리 되었을 것이다.
먹지 못해 피골이 상접한 몸.
여러 곳에서 보이는 상처.
조금만 더 놔두었다가는 귀신이 되어 버릴 영혼이다.
이미, 반쯤 잡귀의 상태에 들어선 것 같기도 했고.
“얼른 해결해야겠네.”
놈들을 내버려두고선 아이의 영혼을 따라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영혼을 따라가면 갈수록 위치가 이상했다.
“이거 아무래도…”
“크게 엮여 있는 것 같구만.”
점점 눈에 띄기 시작하는 병사들.
지금 가는 방향은 명백하게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었다.
이러니, 안 들키고 아이들을 잡아 들일 수 있었던 거겠지.
“여기도 교단 만큼이나 개판이네.”
근처로 아이들의 영혼이 몰려들었다.
벌써 눈에 띄는 숫자만 열 명 남짓.
천도제를 올려도 작게는 안 될 숫자였다.
인적이 드문 곳.
군수물자들을 보관하는 창고.
저중 하나에 아이들이 갇혀 있었다.
“티 안 나게 빼 올 수 있을까요?”
파라몬 영감이 매섭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보는 나는 어째 느낌이 쎄했지만 말이다.
“걱정 말게. 젊었을 적에 자주 해봤던 일이니. 나와 로셀에게 맡기시게.”
***
화르륵.
횃불이 어둠을 밝히는 이곳.
하르프왕국의 국경을 지키는 병사들이 근무를 서고 있었다.
“이봐, 그거 들었어? 오늘 운명을 봐주는 사람이 다녀갔다는군.”
“난 아까 다녀왔지.”
말을 꺼낸 병사의 얼굴에 호기심이 들어찼다.
벌써 사람들 사이에 뜨거운 화제였다.
“올해 농사가 괜찮을 거라면서?”
“그게 무슨 상관이야? 또 세금으로 뜯겨나갈 텐데.”
“끄응….”
대화를 주고받을 때.
병사의 눈에 이상한 것이 들어왔다.
평범한 옷차림, 하지만 품격있어 보이는 옷.
그리고 얼굴을 가린 복면.
무성의하게 걸쳐진 그것이 누가 봐도 좋은 목적으로 이곳에 방문한 것이 아니라는 걸 나타내고 있었다.
“도둑치고는 당당하게 들어오는데?”
“미친놈인가 보지.”
가끔 있는 일이었다.
한몫을 챙겨보려 도둑이 찾아오곤 했지만, 결과는 항상 같았다.
사형을 당하거나, 어디론가 잡혀간다.
이번에도 같으리라.
돌연 검은 복면인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들려오는 소리.
짜악 – !
“….!!!”
어느새 나타난 복면인의 손이 한 병사의 머리를 후려치고 있었다,
손으로 투구를 후려쳤는데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난다는 말인가?
“이,이익!”
반사적으로 창을 내지른 병사는 마치 신비로운 마법을 경험하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찔러도 창이 닿지 않았다.
아주 미세한 차이로.
“도둑이다! 침입자가 나타났다!”
소리를 지른 병사는 곧 이상함을 깨달았다.
주변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분명히 소리를 들은 다른 동료들이 몰려와야 함에도 말이다.
“조, 종…!”
경보음을 울리는 종으로 달려간 병사가 그것을 힘껏 두드렸다.
하지만.
“이거 왜 이래?”
크게 울려야 할 종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분명히 손에 종을 치는 느낌이 있었다.
그럼에도 소리가 나지 않는 종.
이윽고, 검은 복면을 쓴 도둑이 말을 걸어왔다.
“이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아는가?”
주춤.
주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한 병사가 뒷걸음질을 칠 때.
짜악 – !
투구가 통째로 울리고, 직접 얼굴을 맞은 것처럼 눈앞이 핑 돌았다.
풀썩 –
쓰러진 병사의 앞에 복면을 쓴 다른 사람들이 나타났다.
“아니, 영감님! 몰래 들어가야지 때려눕히면 어떡해요?”
“잠입은 원래 이렇게 하는 것이네.”
“이게 정면 돌파지 잠입인가요?”
파라몬에게 따지고 있는 사람은 크리스였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경우란 말인가.
잠입을 정면으로 한다는 소리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다 아이들에게 문제라도 생긴다면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이윽고, 옆에 있던 또 다른 복면인이 입을 열었다.
“안 들키면 잠입이 맞네. 소싯적에 이렇게 여러 번 해먹었지. 걱정 마시게.”
복면인들이 휘적휘적 걸어들어가고,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짜악 –
“이안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가?”
“치,침입…!”
짜악 –
풀썩 –
“영감님! 왜 자꾸!”
짜악 –
제법 큰 소리가 울렸음에도 주변은 조용했다.
마법에 의해 소리가 완전히 차단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복면인들의 침투가 깊어지고 조금씩 다른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이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아는가?”
“다,당장 상부에 보고를…!”
우드득 –
뼈가 부러지는 소리였다.
“그대는 여기가 무엇인지 아는 모양이로군. 그대도 역시…”
콰직 –
우드득 –
“영감님, 그놈은 움직일수록 사람들이 다쳐요.”
“알겠네.”
다시 한번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드드득.
“내 다리가…!”
풀썩 –
목적지로 하는 창고까지 일직선으로 이어진 길.
그곳에 있는 모든 병사들이 바닥에 기절해 있었다.
침투하는 곳이 깊어 질수록 경비도 삼엄해졌다.
드문드문 기사들도 보이는 수준.
하지만 이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영감님! 저 새끼 엄청 나쁜새끼예요!”
갑자기 나타난 복면인들.
쓰러진 병사들.
그것을 발견한 기사가 다급하게 검을 뽑아 들었다.
채앵 –
“감히, 이곳이 어디인 줄 알고 침입을 한 것이냐!”
그의 검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시퍼런 오러가 실린 검이 그림처럼 휘둘러졌다.
날카롭게 정돈된 검술.
상대가 파라몬이라는 강자만 아니었다면 훌륭한 공격이 되었으리라.
빠악 –
기사가 제압되는데는 눈 한번 깜빡일 시간이면 충분했다.
풀썩 –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쁜 놈인가?”
“돈도 횡령한 것 같고, 사람도 죽인 것 같네요.”
“평민을 죽인 것인가?”
“네.”
곧바로 섬뜩한 소리가 울렸다.
우지직 –
“다시는 검을 잡지 못할 것이네.”
한차례의 소란이 있고, 크리스가 허공에 중얼거렸다.
“여기가 맞아?”
아무것도 없는 공간과 대화를 나누는 크리스.
대화는 한참이나 이어졌다.
누군가가 봤다면, 미친놈으로 보았으리라.
“저쪽 건물?”
이윽고, 크리스가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저기 지하에 있다네요.”
“경비가 많다고 해요.”
“천 명 단위인가?”
그 말에 설명을 하던 크리스의 얼굴이 황당하게 바뀌었다.
이 영감들은 스케일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애초에 이렇게 당당하게 들어오는 건 생각지도 못했으니까.
“많아야 백명 정도…?”
“먼저 들어가 있겠네. 조금 있다가 들어오시게.”
옆에 있던 클로셀이 복면을 고쳐 썼다.
“반대쪽에 군량창고가 있더군.”
“….?”
“아이들을 데리고 빠져나가려면 시선을 돌려야 하네.”
복면이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미소를 숨길 수는 없었다.
“불을 지르고 오겠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