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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7

       

       

       

       

       이건 그냥 단순한 궁금증이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도 아르가 암컷이란 걸 안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니까.

       

       “음….”

       

       하지만 실비아는 잠깐 생각해 보는 듯하더니, 씩 웃으며 별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냥 감이죠.”

       “…….”

       

       그냥 감이라니. 숙녀끼리는 숙녀를 알아본다, 뭐 그런 건가.

       

       실없는 대답에 내가 살짝 실망한 얼굴을 하자 실비아는 피식 웃었다. 

       

       “생각해 보세요. 레온 씨. 남자아이가 자기 무겁다는 말에 저렇게 눈물을 글썽이겠어요?”

       “아.”

       

       그제야 나는 무릎을 탁… 치려다가 아르를 안고 있어 그만두었다. 

       

       ‘물론 우리 착한 아르라면 그럴 수도 있긴 하겠지만…. 실비아 씨 말에도 일리가 있네.’

       

       나는 다시 잠들어 있는 아르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뀨우웅….”

       

       초코 마들렌 몇 개를 먹고 기분이 풀려서 행복한 표정으로 자고 있는 아르를 보니 가슴 한곳이 찡해 오는 것 같았다. 

       

       아마 아까 내가 한 말에 충격을 받긴 했지만 오래 꿍해 있으면 내가 곤란해하는 걸 아니까 금세 간식을 먹고 기분을 풀어 준 거겠지.

       

       고의는 아니었다지만 이런 착한 아르한테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들었다. 

       

       “푸흣.”

       

       내가 아련한 얼굴을 하고 있자 실비아가 별안간 웃음을 터뜨렸다. 

       

       “…왜 웃어요?”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하진 않으셔도 되지 않을까요? 아르도 레온 씨가 그렇게 죄책감 가지고 괴로워하는 걸 바라진 않을 것 같은데요.”

       “…듣고 보니 그것도 그렇네요.”

       

       우리 착한 아르라면 처음엔 나 때문에 삐쳐 있다가도 내가 풀 죽어 있는 모습을 보면 다가와서 젤리로 내 뺨을 꾹꾹 누르며 위로해 주려고 할 게 분명했다. 

       

       ‘진짜 착한 녀석이야.’

       

       나는 미소를 지으며 한 팔로 아르를 받쳐 안은 뒤 나머지 한 손으로 아르의 뚠뚠하고 넓어진 배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리고 잠시 후 팔이 조금 아파 손을 바꾸었다.

       

       ‘…근데 정말 솔직하게 말하면 아르가 무거워진 건 사실이긴 해.’

       

       평소 열심히 단검술 수련도 하고 체력 단련도 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르를 몇십 분씩 받쳐 안고 있어도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었다. 

       

       이건 단순히 힘이 세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벤치 프레스 120kg을 미는 헬스인이라고 해도 20kg짜리 물통을 받쳐 안고 있으라고 하면 십 분만 지나도 힘들어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리고 이런 무게 증가는 아르가 성장하면서 더더욱 가속화될 거고. 

       

       아직까지는 팔힘만으로 오래 받쳐 안고 있는 것만 아니면 버틸 만하지만, 앞으로 ‘성장’을 한두 번만 더 해도 안고 다니거나 내 어깨 위에 얹고 다니는 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아르가 평생 작은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것보다는 빨리 훌륭한 드래곤으로 성장하는 게 나으니까.’

       

       지금은 아르가 쑥쑥 커서 얼른 하무트교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때였다. 

       

       “후후, 레온 씨. 힘들어 보이시는데요.”

       “무, 무슨 소리예요. 하나도 안 힘들….”

       “이리 맡겨 주세요. 제가 잠깐 안고 있을게요.”

       

       실비아는 내가 슬쩍 무릎에 아르를 내려놓으려는 모습을 놓치지 않고 손을 내밀어 아르를 잡았다. 

       

       “뀨웅.”

       

       괜히 여기서 실비아와 실랑이를 하면 아르가 깰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아르를 넘겼다. 

       

       실비아는 아르를 넘겨 받자 곧바로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아르를 내려다보았다. 

       

       “아유, 안 깨고 잘 자네. 착하기도 하지.”

       “큐우우….”

       

       아르는 실비아의 품에 안긴 채로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더니, 이내 실비아의 부드러운 손길에 발을 편히 늘어뜨리고 깊은 잠에 빠졌다. 

       

       아르를 뺏긴 나는 조금 부루퉁한 채 실비아를 바라보았다. 

       

       만약 실비아가 팔이 아픈 기색을 조금이라도 보이면 바로 다시 되찾아 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자장, 자장. 우리 아르.”

       “…….”

       

       십 분이 지나고, 삼십 분이 지나고.

       

       “어쩜 이렇게 귀여울까. 배는 또 어쩌면 이렇게 부드럽고 말랑한지….”

       

       한 시간이 지나도, 실비아는 전혀 팔이 아프지 않은 듯했다. 

       

       오히려 아르를 안은 채 아기를 재울 때처럼 팔을 약간씩 기울여 주며 가볍게 흔들어 주기까지 했다. 

       

       ‘이제 나도 나름 힘 스탯이랑 체력 스탯이 30이 넘어가는데…. 실비아 씨는 대체 스탯이 몇이길래 아직까지 하나도 안 힘들어 보이는 거지?’

       

       힘들기는커녕 한 팔로 안은 채 배를 쓰다듬어 주면서도 안은 팔이 미동도 없이 굳건해 보였다. 

       

       “뀨우….”

       “자장, 자장….”

       

       실비아는 뀨 소리를 내며 손을 허공에 쥐었다 폈다 하는 아르를 보고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나는 문득 어느새 나 역시 미소를 짓고 있음을 깨달았다. 

       

       ‘…뭐지?’

       

       분명 방금까지 실비아 씨가 빈틈을 보이면 아르를 되찾아 오겠다는 일념으로 실비아 씨를 노려보고 있었던 것 같은데.

       

       왜 나는 미소를 짓고 있는 거지.

       

       눈을 몇 번 깜박인 뒤, 다시금 아르를 안고 있는 실비아를 바라본 나는 그 이유를 곧 깨달았다.

       

       ‘생각해 보니…. 이거야말로 내가 원하던 그림이었던 것 같아.’

       

       나와 아르 둘이서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사는 것도 물론 더없이 좋은 일이다. 

       

       카르사유가 말하길 내 수명은 아르와 영혼의 계약을 맺은 시점에서 인간을 초월했다고 하니, 아르보다 몇천 년 일찍 늙어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기도 하고.

       

       ‘하지만 내가 빙의 초부터 계획했었던 건실한 청년 레온의 행복한 라이프 플랜에는 마음 맞는 사람과 함께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지.’

       

       객관적으로는 몰라도 내 눈에 아름답고, 마음 맞는 여인과 함께 알콩달콩 사는 것.

       

       그게 내가 꿈꾸던 행복한 삶이었다. 

       

       ‘아르를 만나게 되면서 그런 삶은 사실 반쯤 포기했었는데.’

       

       아무리 마음이 잘 맞는 여인이라도, 드래곤을 키우는 남자와 가정을 이루고 살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애초에 드래곤이라는 걸 밝힐 수도 없고.’

       

       하지만 지금의 실비아는 아르를 진심으로 좋아해 주고 있다. 

       아르도 실비아를 잘 따르고 있고.

       

       아마 아르가 실비아에 대한 경계를 완전히 풀고 있지 않았다면, 아무리 자고 있다고 해도 내 품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 품에 안긴 시점에서 깨어나 울먹거릴 게 분명하다.

       

       ‘그리고 나도 좋아해 주고 있…나? 적어도 말로는 계속 좋아한다고 해 주시는 걸 보면 완전히 날 놀리려고 하는 말인 것만은 아닌 것 같은데.’

       

       이렇게 나와 아르를 둘 다 좋아해 주는, 거기다가 외모도 완벽하고, 심지어 검술 실력까지 엄청난 사람이 지금 내 앞에 있다.

       

       아르를 안고, 진심을 담은 미소를 지으면서.

       

       꿀꺽.

       

       ‘어쩌면…. 진짜 어쩌면…. 실비아 씨한테라면 아르가 드래곤이라는 걸 털어 놔도 될지도 몰라.’

       

       그런 생각이 나도 모르게 스멀스멀 머릿속에서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비밀을 혼자 간직한다는 건, 생각보다 가끔 나를 힘들게 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사람들에게 아르가 와이번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들키지 않도록 쀼레임 스피어, 쀼로스트 같은 마법을 써 가면서 연기를 했지만.

       

       가끔 아르와 실비아가 먼저 잠들고, 혼자서 잠이 오지 않아 바람을 쐬며 하늘에 뜬 달을 바라볼 때면 비밀의 무게를 혼자 감당하고 있는 내 가슴이 답답하게 느껴지곤 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사람만이라도.’

       

       아르를 제외하고 이 비밀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딱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자장, 자장, 우리 아르….”

       “뀨움….”

       

       그리고 세상에서 공유를 할 사람을 딱 한 사람만 고를 수 있다면, 아마 나는 실비아 씨를 택하겠지.

       

       하지만.

       

       ‘다 망상일 뿐이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실비아에게 이 비밀을 말한다 해도, 그건 내가 멋대로 실비아에게 비밀의 무게를 감당하게 만드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다. 

       

       ‘그리고 조금은 두려워.’

       

       이렇게 아르를 좋아해 주던 실비아가, 아르가 드래곤이라는 말을 듣고 혹시라도 아르를 멀리하게 될까 봐.

       

       혹은 멀리하는 것 이상으로, 갑자기 돌변해 버릴 가능성도 있다. 

       

       -드래곤…? 드래곤이라면 인류를 위협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종족이잖아요! 레온 씨, 아르야. 실망이야. 나를 지금껏 속여 왔다니!

       -아니, 실비아 씨. 제 말을 들어 주….

       -변명은 필요없어요! 레온 씨, 미안하지만 저는 지금 인류의 위협을 제거해야겠어요.

       -쀼, 쀼우우…!

       

       ‘만에 하나라도 이런 일이 벌어지면….’

       

       설마 이렇게 되기야 하겠냐마는, 정체를 들은 실비아가 실망했다며 우리를 떠나는 일은 충분히 있을 법했다. 

       

       ‘그렇게 되면 전력을 잃는다든지, 내가 후회한다든지 하는 상황이 문제가 아니겠지.’

       

       진짜 문제는 아르다. 

       저렇게 온니, 온니 하면서 나 이외에 처음으로 진심으로 따르던 사람을 이런 걸로 떠나보내면, 아르가 느낄 슬픔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만약 일이 정말 잘 풀려서 아르가 드래곤인 걸 알고도 함께한다고 해도 결국 실비아 씨는 인간인 걸.’

       

       정말 모든 게 내가 원하는 대로 다 잘 풀리고 우리 셋이 알콩달콩 살게 된다고 해도 나는 아르와 함께 몇천 년을 보내게 될 거고, 실비아 씨와는 길어야 몇십 년 후에 이별하게 될 수밖에 없다. 

       

       마음을 정리한 나는 다시 실비아를 바라보았다. 

       

       실비아는 여전히 아르를 안은 채 행복한 표정으로 부둥부둥해 주고 있었다. 

       

       “쀼, 쀼우…?”

       “앗, 아르야. 깼니?”

       “쀼우…!”

       “레온 씨 찾아? 레온 씨는 바로 앞에 있어.”

       “쀼!”

       

       실비아는 일어나자마자 나를 찾는 아르를 보며 조금 씁쓸한 미소를 짓더니 나에게 아르를 내밀었다. 

       

       “아르, 잘 잤어?”

       “쀼우움!”

       

       내게 안긴 아르는 안심이 되었는지 팔다리, 꼬리까지 쭈우우욱 펴며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내 손을 딛고 일어나 내 얼굴을 껴안았다. 

       

       “프흣, 아르야. 간지러워.”

       “쀼우!”

       

       아르는 내 뺨에 얼굴을 마구 부비고 나서야 내려와서 의자에 앉았다. 

       

       언제 삐쳤었냐는 듯 쀼쀼 소리를 내며 의자에서 발을 콩콩 두드리는 아르를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그래. 나중 걱정은 해서 뭐 하냐.’

       

       일단 지금 아르랑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게 중요하지. 

       

       “오늘은 이쯤에서 텐트를 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마침 마부가 야영을 할 만한 장소를 발견해 마차를 멈추었고,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날씨가 좀 꿀꿀하네요. 비가 오려나.”

       “그러게요.”

       “이런 날씨면….”

       

       나는 아르를 내려다 보며 말했다. 

       

       “아르야, 오랜만에 감자떡이나 해 먹을까?”

       “쀼우웃?!”

       

       감자떡이라는 말에 아르의 귀가 꼬리와 함께 쫑긋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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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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