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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7

       오늘은 모옥을 이 대륙에서 없애러 가는 날. 라데아와 케일은 이미 마차에 탑승해있다.

         

       “진, 조심해야 한단다?”

       “알고 있습니다.”

       “내가 말한 거 명심하고?”

       “알고 있습니다…….”

         

       프란체는 만족스러운 듯 싱긋 웃으며 고개를 주억였다. 흐트러진 제복을 반듯하게 만들어주기까지.

         

       “기다리고 있을게.”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마치 아들의 여행길을 떠나보내는 어머니가 떠오르는 프란체를 뒤로하고, 우리는 국경으로 향하는 마차에 탑승했다.

         

       “작전은 어찌할 예정이지?”

         

       케일이 물었다.

         

       “우선 이걸 봐라.”

         

       나는 접힌 면지를 펼쳤다. 셀다스가 구해준 모옥 본거지의 내부 구조였다.

         

       이번에도 위치만 알려주고 땡 치려고 했기에 직접 찾아가 자세한 정보를 내놓으라고 따지니 귀찮다는 듯 내부를 상세하게 그려줬다.

         

       “여기가 출입구다. 이어지는 복도를 쭉 따라서 가면 마스터의 방이 나오지.”

         

       모옥의 본거지는 특이한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사하라의 수도인 스콜 지하에 있는데, 오래된 유적지 같은 신전에 가까운 형태였다.

         

       “나는 이대로 직진하면서 난장판을 피울 거다. 이 틈을 타서 너희들은 다른 쪽을 정리해. 라데아는 케일의 곁에서 떨어질 생각하지 말고.”

         

       침을 무겁게 삼키며 고개를 끄덕이는 라데아. 떨리는 손과 흔들리는 동공이 보였다.

         

       “라데아, 사람을 죽이는 게 두렵나?”

       “…네?”

       “떨고 있는데.”

         

       라데아는 흠칫하며 고개를 내려봤다.

         

       “아…….”

       “무리는 하지 마라.”

       “무리는 아니에요. 좀 긴장했을 뿐.”

       “그럼 다행이고.”

         

       나는 작전 브리핑을 이어갔다.

         

       “전투를 이어나가다가 조금 버겁다고 생각이 들면 빠진 다음에 다시 들어가라. 그리고 카아락을 만나면 무조건 도망쳐.”

         

       케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놈을 앞에 두고 도망치라고?”

       “그래. 너희들의 안전이 최우선이다.”

       “하, 내가 왜 이날을 기다렸는데…….”

         

       못마땅한 듯 한숨을 푹푹 내쉬며 고개를 휘젓는 케일.

         

       힘이 전부인 용병의 삶을 살아온 케일답게 나한테 직접 불만을 말하진 않았지만, 태도로 보인다.

         

       “그래, 알겠다. 카아락과의 접전을 허용하지. 다만 오기만 부리지 마라. 너의 판단을 믿겠다, 케일.”

         

       케일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좀 작전이 마음에 들기 시작하는군.”

         

       힘으로 증명하는 용병계의 왕, 케일. 그가 힘을 시험하고 누군가와 겨루고 싶어하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다르다.

         

       “케일, 놀러 가는 게 아니니까 진지하게 임해라.”

         

       눈을 부릅뜨고 쏘아봤다.

         

       “위험한 일이란 건 알고 있다만, 전에 당한 걸 돌려줄 수 있어 기쁜 걸 어떡하나?”

         

       구라치네. 그냥 방구석에서 술만 퍼마시면서 뭉그적거리다가 싸우러 가는 게 즐거운 거면서.

         

       “아무튼. 네 선택에 라데아의 목숨이 달려있다는 거 잊지 마. 라데아가 실전이 많다고 해도 마수와의 싸움이야. 사람과는 싸워본 적이 없다.”

         

       마수가 흉포하고 강력하다곤 하지만 사람과의 전투는 별개다. 심리, 전술, 함정 등등 온갖 변수가 작용해 실력의 차이가 나더라도 패배할 수 있다.

         

       “저기, 저도 제 목숨 하나는 건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아이고, 이 어린 소녀가 뭘 모르네.

         

       “라데아. 겁주고 싶은 건 아니다만, 우리가 지금 가는 곳은 대륙 최강의 길드 본거지다. 소드 마스터와 고위 마법사가 즐비한 곳이지.”

         

       솔직히 말해서 케일은 몰라도 라데아는 데려가고 싶지 않았다. 아직 재능이 피어나지 않았으니.

         

       “목숨이 날아갈 수 있는 곳이야.”

         

       너무 진지하게 말했나? 마차의 분위기가 숙연해지며 한껏 무거워졌다.

         

       “…겁주고 싶은 건 아니라면서요.”

       “위험성을 숙지하라는 소리였다.”

         

       옆에 있던 케일이 피식 웃었다.

         

       “걱정 마라. 이 처자의 솜씨는 내 확인했으니. 소드 마스터 중에서도 특출나다.”

         

       그건 알고 있다마는.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잖나.

         

       “아무튼. 작전은 이렇게 갈 거다.”

       “꽤 간단하군.”

       “복잡한 전략은 약자들이나 짜는 거야.”

         

       몸이 나쁘면 머리가 고생하는 법이다.

         

       “좋아, 그럼 사하라에 도착하면 다시 브리핑하도록 하지.”

         

         

       * * *

         

         

       스콜의 지하, 모옥의 본거지에 있는 대욕장.

         

       “마스터, 사하라에서 당장 책임을 지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제국의 무역 견제가 들어왔습니다. 모옥에서 취급하는 물품들을 수출할 수가 없어요!”

       “마약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경계 자체가 강해져서 밀수가 불가능합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좋지 않은 소식들. 말렉도 이 정도는 예상했다.

         

       이 대륙에서 가장 크고 강한 국가인 제국의 공작가를 건드렸으니까.

         

       “쯧.”

         

       그 망할 초월 마법사만 아니었어도 이런 일은 없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의뢰를 받지 않으면 사하라 전체를 지워버리겠다는데.

         

       “어쩔 수 없군. 내가 국왕을 직접 만나겠다.”

         

       말렉은 사치품으로 가득한 욕실을 나왔다. 갈색 피부가 돋보이는 전신에 가득한 문신이 옷에 의해 가려졌다.

         

       “지금 당장 서신을 보내. 오늘 저녁에 만나러 가겠다고.”

         

       모옥의 어쌔신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그러고는 잔상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말렉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역 견제로 들어올 줄은 몰랐는데.”

         

       제국과의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을 거다. 분명 모옥을 처벌하려고 토벌대 보낼 것이다.

         

       “흐음…….”

         

       마스터의 좌에 앉아 턱을 어루만지고 있자니 카아락이 실실거리며 말했다.

         

       “무역 견제 때문에 그런 거야?”

       “그래. 여기에 토벌대까지 올 거다.”

         

       말렉의 심도 높은 고민도 모른 채 카아락은 비릿하게 웃었다.

         

       “토벌대? 사하라까지 보내는 토벌대인데 별거 있겠어?”

         

       맞는 말이다. 제국과 사하라의 거리는 완전 멀다곤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가깝지도 않다.

         

       거기에 중간에는 사막이 끼워져있어 제국민이 적응하기 어려울 거다.

         

       ‘토벌대가 두려운 건 아니야. 다만…….’

         

       그놈이 올까 두렵다.

         

       황실이나 데카르트 공작가에서 토벌대를 구축해 보내는 거라면 충분히 격퇴하고도 남는다만, 진 바렌베르크가 온다면 다르다.

         

       “이걸 어찌해야 하나.”

         

       모옥의 역사는 깊다. 대륙 최강의 길드라는 명성까지 있다. 심지어 마스터 자리까지 올라온 말렉은 초월자 반열에 든 강자.

         

       그러나 이 모든 게 초월 마법사의 협박과도 같은 의뢰 하나 때문에 단번에 무너지게 생겼다.

         

       “카아락, 모옥의 주술사들을 전부 모아서 특공대를 꾸려라.”

       “특공대? 굳이? 나 혼자만 움직이는 게 편한데.”

       “지금은 말을 들어라. 진 바렌베르크가 올 수도 있으니.”

         

       진 바렌베르크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카아락을 중심으로 주술사 집단을 만들면 쉽게 당하진 않을 거다.

         

       모옥에서 만든 주술은 완성형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오러와 마법을 반격할 수 있으니까.

         

       “혹시 모르니 준비해야겠어.”

         

       말렉은 직접 움직여 외부로 나가 있던 길드원들까지 총집합시켰다.

         

       “지금부터 조를 배치하겠다.”

         

       고위 마법사 하나에 검사 셋.

         

       소드 마스터 하나에 마법사 둘.

         

       이런 식으로 중심을 잡아 조를 만든다. 체계적인 전술로 나가면 쉽게 당하진 않을 거다.

         

       “전력이 얼마나 있지?”

       “18조까지 있습니다!”

         

       말렉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의 전력은 만만치 않다.

         

       ‘누구든 와보라 해. 우리가 쉽게 당하나.’

         

       비장한 얼굴로 결심한 그때.

         

       콰앙─! 콰앙─! 콰앙─!

         

       폭발음과도 같은 굉음이 연속으로 들려왔다.

         

       “설마 벌써?!”

         

       말렉은 서둘러 지휘했다.

         

       “다들 위치로! 제국에서 보낸 토벌대다! 무조건 3조씩 움직여라!”

       ─위치로!

         

       마치 오랜 기간 훈련된 군대처럼 착실하게 움직이는 길드원들. 모옥의 교육 수준은 높았다.

         

       “카아락. 주술사 집단은 맡기지.”

       “알았다고.”

         

       카아락은 비릿하게 웃곤 주술사들을 데리고 자리를 비켰다. 말렉은 두둑, 두둑. 목을 좌우로 꺾으며 몸을 풀어냈다.

         

       “그래, 한번 해보자고.”

         

         

       * * *

         

         

       당당하게 정문을 부수고 들어왔다. 이 정도로 커다란 굉음을 냈으니 분명 눈치챘을 터.

         

       “케일, 라데아. 움직여라.”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곧장 이동하는 케일과 라데아. 스릉! 나는 검을 뽑아 들고 사선으로 쭉 뻗은 뒤 정면으로 천천히 걸어나갔다.

         

       “토벌대가 도착했다!”

         

       가장 처음으로 만난 모옥의 길드원들. 숫자는 열 명.

         

       ‘소드 마스터 둘에 마력이 커다란 마법사 하나인가.’

         

       그 외에도 기사단 수준의 검사들이 즐비하다. 이러니 대륙 최강의 암흑 길드지.

         

       “마법사를 중심으로 대열을 유지해라! 침착하게 대응한다!”

         

       마치 국가의 군대처럼 움직이는 모옥의 길드원들. 젠부코로스마냥 무작정 덤벼들지 않는다.

         

       ‘수준이 다르긴 하군.’

         

       나는 피식 웃으며 걸음을 내디뎠다.

         

       “다들 의뢰를 받은 마스터를 원망해라.”

         

       쿵! 하체에 오러를 흘려 넣자 진각을 밟은 오른쪽 다리 아래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생겨났다.

         

       콰앙─! 마치 폭발의 영향을 받아 날아가는 것처럼 몸이 쏘아져 나간다. 오러를 담은 검을 횡으로 크게 휘둘렀다.

         

       “어?”

       “응?”

         

       콰과과과──!

         

       한 번 휘두른 검에 주변 벽들이 으스러지며 열 명의 길드원이 반으로 갈라지며 몰살당했다.

         

       뒤따라오던 길드원들이 사색이 되었다.

         

       “지, 진 바렌베르크다! 도망쳐!”

       “마스터에게 알려야 한다!”

         

       칼자루를 세게 쥐고 다시 진각을 밟았다. 콰앙─! 이번에도 몸이 화살처럼 쏘아져 나가며 순식간에 그들의 앞에 당도했다.

         

       “허, 헉!”

       “진 바렌베르크!”

         

       사선으로 검을 휘두르자 두부가 갈라지듯 몸이 토막나는 길드원들.

         

       건물이 무너지고 천장이 흔들리며 떨어진 먼지에 가래가 끼고, 피로 이루어진 호수에 온 것처럼 피비린내가 솟구친다.

         

       “…….”

         

       이 끔찍한 광경을 보고도 아무런 감응이 없었다.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지금은 그저 괘씸한 이놈들에게 벌을 내려야겠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저쪽은 잘 하고 있나 볼까.’

         

       청각에 오러를 담아 강화했다. 파지직! 전류가 퍼지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저쪽도 한참 전에 전투를 시작한 모양.

         

       ‘여기서 더 시선을 끌어야겠군.’

         

       우우웅─! 오러를 끌어모으자 진동이 일었다. 여기가 지하인지라 무너질 가능성을 대비해 최대로 뽑진 않았다.

         

       검을 횡으로 크게 휘두르자.

         

       콰과과과─!

         

       쓰나미처럼 몰려간 오러의 폭풍이 닿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소멸시켰다.

         

       모래폭풍이라도 온 것처럼 노란 먼지로 가득해져서 앞이 보이지 않는다.

         

       “진 바렌베르크를 막아라!”

       “또 왔구나.”

         

       아까보다 숫자가 더 많다. 소드 마스터로 보이는 놈이 셋. 마력이 거대한 놈들이 둘.

         

       “후욱…!”

         

       발밑에 오러를 모은다. 살짝 뛰어오른 뒤 모았던 오러를 폭발시켜 반동으로 튀어나간다.

         

       쐐애액! 마치 유성이 떨어지듯 몸이 쏘아져 나간다. 그대로 호흡을 죽이고 막힘없이 검격을 이어나갔다.

         

       스각! 스각!

         

       비명을 가장한 진혼곡이 울려 퍼지고, 검신으로 뼈를 깎는 느낌이 손목을 타고 느껴진다. 그렇게 한참 검을 휘두르고, 누런 먼지 폭풍이 사라지자.

         

       “…….”

         

       끈적한 피로 붉게 변한 광장에 나 혼자만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터벅. 터벅.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점점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190은 되어 보이는 장신에 우락부락한 근육의 사내가 나왔다.

         

       옷 틈새로 보이는 피부에는 알렉산드로처럼 불길한 문신이 가득하고 근육의 밀도가 높다.

         

       “네가 마스터인가?”

       “그렇다.”

       “이름이 뭐지?”

       “말렉이다.”

         

       나와 같은 초월자. 과연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을까. 하지만 그전에 질문.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을 거 같은데. 의뢰는 왜 받았지?”

         

       모옥에 의뢰한 놈의 정체를 알아야 한다.

         

       “미안하지만, 그건 대답해줄 수가 없네. 우리도 입막음 당한 입장이거든.”

         

       ……모옥이 입막음을 당했다고?

         

       ‘성녀 대신 움직이는 놈이 누군지 대충 가닥이 잡히는군.’

         

       더 물어볼 것도 없다. 나는 오른손에 쥐어진 검을 앞으로 겨누었다.

         

       “누군지 알 것 같으니 됐어. 맞다가 아프면 손 들어. 알겠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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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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