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97

       

       

       해수면 위에 에스티가 서 있었다.

       자신의 주박을 해제한 사람을 찾아 여기까지 온 것이다.

         

       아쿠아르의 존재 자체는 그녀도 알고 있었다. 다만 그녀가 올때마다 망령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기 때문에, 들어가지 못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젠 그녀를 막아세울 망령이 없었다.

         

       올리비아는 숨을 삼킨 채 해수면을 노려보았다. 파도에 너울거리는 저 그림자는 분명 에스티의 것이었다.

         

       다행히, 아직 들키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이대로 나갈 수도 없고.’

         

       바로 옆에 리브가가 있는 탓이다.

       그나마 에스티와의 거리가 멀어서 망정이지, 만약 조금만 가까워진다면 그 즉시 경고창과 함께 정신이 튕겨나갈 것이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역시 리브가를 보내야 하나?’

         

       관전을 사용할 생각은 없었다. 올리비아는 더 이상 ‘올리비아’를 맹신하지 않았다.

       마지막이니만큼 직접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리브가. 이카일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을래?”

         

       그녀가 허락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물어본다.

         

       “……싫어요.”

         

       역시 어림도 없었다.

       도대체 국왕한테 무슨 말을 들었는지, 분리 불안증에 걸린 아이처럼 다리에 딱 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올리비아는 내심 혀를 차며 리브가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잠시 쓰다듬는 척을 하며 시간을 끌던 올리비아는 티나지 않게 마력을 움직여 마법진을 만들어냈다.

         

       [스킬, ‘텔레포트’를 사용합니다.]

         

       츠츠츠츠츳!

         

       리브가의 몸이 환한 빛으로 물들었다.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한 그녀는 눈을 부릅뜨고 올리비아를 올려다보았고, 재빨리 신성력을 끌어올려 저항하려 했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언니!”

         

       비명에 가까운 외침을 끝으로 리브가의 신형이 사라졌다.

       좌표는 파로스 등대로 설정해두었으니 갑자기 나타난 것 때문에 주변인들의 시선을 끄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올리비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도시를 뒤덮고 있던 안개가 완전히 걷히자, 기다렸다는 듯 사방에서 물이 쏟아졌다.

         

       콰아아아아!

       

       물은 순식간에 발치까지 차올랐다.

         

       그 순간이었다.

         

       “……혹시나 했는데, 정말 너였군.”

         

       익숙한 목소리가 파동을 타고 사방으로 퍼져나가는가 싶더니, 이내 바닷물이 분수가 솟구치듯이 움직이며 올리비아의 몸을 순식간에 해수면까지 끌어올렸다.

         

       “그 밑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거지?”

         

       고개를 뒤로 돌리자, 익숙한 여자가 수면에 발을 딛고 서 있었다.

         

       “보다시피요.”

       “네가 방금까지 있던 곳이 어딘지는 알고 말하는건가? 저 밑에 있는 건 이지(理智)를 잃은 망령들 뿐이다. 내가 바로 눈치챘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늦었더라면 그대로 물고기 밥이 되었을거다.”

       “설마요.”

       “너무 자만하지 마라. 네가 강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망령들의 왕은 매우 강하다. 너로서는…….”

       “괜찮아요. 앞으로 망령들은 나타나지 않을거니까요.”

         

       그리고 그 망령에는, 에스티의 가족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에스티는 헛숨을 들이켰다. 말문이 막힌 탓인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확실한가?”

         

       올리비아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답했다.

         

       “네. 더 이상 ‘목소리’를 들을 일은 없으실거에요.”

       “…….”

         

       에스티는 대답하는 대신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정말로 머릿속을 어지럽혔던 목소리들이 들리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간에 여유를 두고 기다려봤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들리지 않아.’

         

       수천 명, 아니, 자그마치 수만 명에 이르는 목소리들. 쉴새 없이 이카일을 지키라고 속삭이던 무수한 목소리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곳 바다의 망령들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에스티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망령은커녕, 검은 안개조차 찾기 힘들었다.

         

       시기가 너무 공교로웠다.

         

       “……설마.”

         

       에스티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녀는 멍한 눈으로 올리비아를 바라보았다. 언뜻 보면 담담해 보였지만, 감정이 마모된 사람 치고는 극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반응이었다.

         

       올리비아는 남몰래 감탄했다.

         

       ‘……그래. 원래 이게 정상이지.’

         

       가히 광녀라고 불릴 만한 ‘현재’의 에스티만 보다가, 무감각하고, 매사 무기질적인 에스티를 보니 마음이 절로 편안해졌다. 역시 익숙한 게 최고다.

         

       물론 이 에스티도 회귀한다면 ‘현재’의 에스티와 똑같아지겠지만.

         

       “그 설마가 맞을 겁니다. ‘목소리’는 아쿠아르의 망령 분들이 냈던 거니까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에스티가 인상을 찌푸렸다.

         

       “……여기서 기다려라.”

         

       촤아아악!

         

       순간 파도가 일렁이더니, 에스티의 신형이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그녀가 다시 나타난 것은 한참 뒤였다.

         

       눈에 뭐라도 들어간 것일까, 남색 눈동자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네 말대로 정말 사라졌더군. 남은 거라고는 잔해 뿐이었다. 흔적조차 남지 않은 도시에 망령이 남아 있을 턱이 없지…….”

         

       얼마나 깊은 곳까지 잠수했는지, 에스티의 머리카락에서 깊은 바다 특유의 내음이 풍겼다.

         

       에스티는 살짝 메인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설마 주박을 만든 것도……망령들 짓인가?”

       “안타깝지만, 예. 그렇습니다.”

        “하하…….”

         

       에스티는 허탈하게 웃었다.

         

       따지고 보면 처음부터 이상하였다.

         

       자신의 머리를 울렸던 ‘목소리’에는 하나같이 지독한 원한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누군가를 죽이라고 속삭이지 않았다.

       그들이 원한 것은 단 하나. ‘적’들로부터 이카일을 지키는 것.

       올리비아가 말했다.

         

       “아쿠아르의 나머지 반쪽은 이카일이지요. 그날 목숨을 잃었던 분들은 당신을 진심으로 증오하면서도, 동시에 깨닫고 있었습니다. 후손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신의 보호가 필수 불가결하다는 사실을.”

       “……내 삶은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졌는데, 그깟 말 몇 마디로 납득하라는 말이냐?”

       “아니요.”

         

       자조하는 듯한 웃음에, 올리비아가 품에서 녹화용 수정구를 꺼내 에스티에게 건넸다.

         

       에스티도 떳떳하지는 못하다. 아무리 주변 왕족들이 부추겼다고 한들, 수많은 백성들을 수장시켰다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른 왕족들과 다르게 그녀는 적어도 죗값을 치뤘다.

         

       그것도 몇 배로.

         

       그러니 보상받아야 마땅하다.

         

       “이건……?”

       “한 번 재생해 보세요.”

       

       에스티는 별 생각 없이 수정구를 재생했다.

         

       빠악! 빠아아악!

         

       – 끄아아아아악!

       – 꽤애액! 꽤애애액!

         

       쉴새없이 두드려 맞는 왕족들. 그들의 영체가 작살날 때마다, 에스티의 얼굴이 묘하게 변해갔다.

       무려 이틀 분량의 녹화본. 콧대 높은 양반들의 행세가 점점 추해질수록, 그녀의 입꼬리 또한 올라갔다.

         

       “……설마 이틀 내리 팼나?”

       “당연하죠.”

       “하하……하하하핫!”

         

       에스티가 눈물을 닦았다. 울어서가 아닌, 웃어서 나온 눈물이었다.

       환하게 웃는 그녀의 모습은, ‘현재’의 모습을 꼭 빼닮아 있었다.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다. 왕족이라는 작자들이 개처럼 맞고, 체면도 내던지고 살려달라며 돼지처럼 꽥꽥댔지만, 나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끼는구나.”

       “이해하셨다니 다행이네요.”

       “그래, 네 말이 맞다. 고의였든 실수였든, 나는 패륜을 저질렀고, 수많은 백성들을 죽였다. 150년이면 싸게 먹힌게지.”

         

       에스티는 올리비아를 잠시 바라보다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모두 네 덕분이다. 감사를 표한다. 제국의 대마법사여.”

         

       올리비아가 멈칫했다.

       그 에스티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듣다니. 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

         

       크흠.

         

       올리비아가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감사는 말로 하는 게 아니랍니다. 공주님.”

         

       에스티의 입꼬리가 아까보다 더 높이 올라갔다.

         

       “역시, 소문은 믿을 게 못된다. 세상 천지가 네게 속고 있구나. 이런 능글이가 어찌 착하며, 어찌 온화하단 말인가?”

        “본래 감정이란 상대적이니까요.”

       

       에스티는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아득한 과거, 세상 물정 모르던 공주였을때나 느꼈던 감정이었다.

         

       사건의 전말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그도 아니라면 오랜 세월 자신을 속박하던 굴레에서 벗어났기 때문일까.

         

       그도 아니라면…….

         

       “말해라. 내게 따로 원하는 것이 있나?”

       “아직은 없습니다. 이게 사흘 만에 끝날 줄은 저도 몰랐거든요.”

       “빠르긴 했지.”

       “원래는 백 일 내내 팰 생각이었는데 말입니다. 이틀 밖에 못 버티는 게 말이 됩니까? 누구는 150년을 버텼는데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에스티는 올리비아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며 풋, 하고 웃었다. 그러다가 다시 한 번 눈물을 흘리며 폭소했다.

         

       “아하하핫! 아부도 잘하는구나!”

         

       에스티가 미소를 지은 순간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파도잡이 에스티’의 호감도가 대폭 증가합니다.]

         

       그리고 올리비아는 생각했다.

         

       어찌저찌 잘 마무리됐다고.

         

       [남은 시간 : 14시간 23분]

         

       ‘……시간이 조금 남기는 했는데.’

         

       리브가만 적당히 달래주고 마무리하면 될 것 같았다.

       

       ‘이걸로 넷인가?’

       

       키엘, 멜리나, 리브가, 에스티까지.

       

       황녀에게 된통 당할 염려는 덜었다.

       

       

       ……라고 생각했었다.

       

       

       *****

       

       

       투콰아아아앙!

       

       바다 건너에서 들려온 굉음에, 알테어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항구도시, 이카일이 있는 방향이었다.

       

       “……번개?”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졌다.

       그러나 한 순간, 알테어의 얼굴이 일변했다.

       

       “에리야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역시, 올리비아 그 년이 순순히 뒈졌을리가 없지.”

       “당장 아리아에게 알려야 한다.”

       

       잠시 망설이던 에리야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혀를 찼다.

       

       황녀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스승인 알테어의 말만큼은 잘 따랐으니까.

       

       “쯧.”

       

       에리야스의 외형이 변하기 시작했다.

       미형의 남성에서, 종말을 상징하는 레드 드래곤으로.

       

       아득한 용언이 마키나에 울려퍼졌다.

       

       [타라. 암주(暗主)여.]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Ilham Senjaya님!

    참고로 암주는 남성입니다.

    ▪︎뀨이잉 님 5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 세멸마 콘은 만들 생각이 아직 없습니다!

    ▪︎ pia1655669477648님 3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 추파춥스 맛있게 먹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