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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7

       슬며시 주변을 둘러보며 빈틈을 찾았다. 건물의 경비는 그리 삼엄하지 않았다.

       

       이는 허술함일까 아니면 누가 쳐들어와도 괜찮다는 자신감일까.

       

       어느 쪽이건 내게는 반가운 일이었다.

       

       – 님?

       – 불법 침입하게?!

       – 이 사람 정식 루트가면 죽는 병이라도 있음?

       

       시청자들의 만류를 무시하고서 담벼락의 앞에 섰다.

       

       그리곤 그 위로 뛴 후 다시 한 번 허공으로 뛰어 오른다.

       

       허공을 계단 삼아서 툭툭 위로 오르니 어느새 옥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건물의 옥상에는 선객이 있었다.

       

       허공을 바라보며 곰방대를 피우던 남자는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한 쪽 눈썹을 찌그러트렸다.

       

       “또 외인인가.”

       

       그리 놀라는 모습이 없는 걸로 보아 이런 침입이 한 두 번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옥상의 턱을 넘어 착지하자 남자는 기미가 잔뜩 낀 눈으로 나를 노려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제발 정문으로 들어와 주면 안 되겠나? 이 건물은 그대들의 놀이터가 아닐세.”

       “미안하군. 정문으로 들어올 수 없는 몸인지라.”

       “그럼 더더욱 안 되지. 허락도 안 받고 건물에 들어오는 게 말이 된다 생각하는가.”

       

       화를 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임에도 남자는 나를 질책하며 다그칠 뿐이었다.

       

       천성이 착한 것인지 아니면 수많은 사고 끝에 체념을 한 것인지.

       

       으음. 분명 이 자의 얼굴을 이전에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팔짱을 낀 채 과거의 기억을 되짚어 보았지만 기억이 애매했다.

       

       내가 화음에 왔던 것은 수십 년 전에 있었던 일인지라.

       

       생각이 안 나는 걸 보면 그리 중요한 인물은 아니겠지. 싸울 맛이 있는 상대였다면 내가 잊을 리가 없으니.

       

       그런데 왜 이리 찝찝한 것일까.

       

       “내 말 듣고 있는가?”

       

       남자의 다그침에 생각을 멈췄다.

       

       “듣고 있네.”

       “그럼 돌아가게. 오고 싶다면 나중에 정식적인 절차를 밟도록 하고.”

       

       단호한 축객령에 그냥 이 자를 잠깐만 기절 시켜두고 주변을 구경할까 고민하다 그만두기로 했다.

       

       입은 복장이나 들고 있는 곰방대가 질이 좋은 걸로 보아 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일 게 분명했으니.

       

       이런 자를 건드렸다가 원한이라도 사면 이전처럼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될지 몰랐다.

       

       다 죽이고 다니던 것도 치기 어리던 시절에 하던 일이지. 이젠 그런 일을 벌이는 것도 귀찮다.

       

       나는 얌전히 알겠다고 답을 한 후에 난간을 넘어 허공으로 뛰어 올랐다.

       

       “아니! 가라는 게 거기로 가란 말이 아니잖아!”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듯 남자가 곰방대를 내던지며 내 손을 잡으려 했으나 나는 그 손아귀를 피했다.

       

       경악에 찬 그 얼굴을 보자니 헛웃음이 샜다.

       

       네가 게임을 하러 온 현대인도 아니고 본래 무림에 살던 녀석인데 이런 것에 놀라면 어쩌자는 것이냐.

       

       가볍게 착지해서 위를 올려다보니 남자가 난간을 붙잡은 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리 중요한 사람이 아닐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저 자가 무인이라면 저런 표정을 지을 리가 없으니.

       

       – 군수 표정 좀 봨ㅋㅋㅋ

       – 완전 벙쪘는데.

       – 가랬다고 뛰어내릴 줄은 몰랐겠지.

       – 나 같아도 심장이 덜컥 할 듯.

       

       채팅창을 바라보다 한 단어가 내 시선을 사로 잡았다.

       

       저 남자가 군수라고? 화음의 군수?

       

       그제야 남자의 얼굴이 기억났다.

       

       분명 내가 화음을 습격하러 왔을 때 관군을 이끌고 내 앞을 가로막은 놈이 저 놈이었지.

       

       가진 몸이 비루한 것에 비해 강렬한 눈이 인상적인 녀석이었다.

       

       기미가 잔뜩 낀 저 눈이 하도 허술하여 떠올리는 것이 어려웠다.

       

       내가 저 녀석을 살려 두었던가? 패악질을 부리던 때의 내가 자비를 베풀었을 리는 없는데.

       

       기억이 안 난다.

       

       하아. 기억이 이리 흐릿한 것을 보면 나도 나이를 먹긴 많이 먹은 모양이야.

       

       군수가 살아있는 것을 보면 그 때 내가 무슨 변덕을 부린 걸 테지. 그 시절의 나는 무척이나 불안정한 인간이었으니까.

       

       더 고민을 하는 것도 귀찮다 싶어 군수에 대한 것을 머릿속에서 미룬 뒤 채팅창의 아해들에게 질문을 하나 던졌다.

       

       “아해들아. 방금 거기 말고도 이 도시를 감상하기에 적당한 곳이 있더냐?”

       

       – 하늘세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화음 뒤에 있는 산에 가서 내려다보면 풍경이 좋아요.]

       

       “저기를 말하는 것이냐?”

       

       내가 손가락으로 화음 뒤에 있는 높은 크기의 돌산을 가리키자 채팅창에서 수긍의 말들이 흘러나왔다.

       

       저기에서 내려다본다면 분명 도시를 한 눈에 조망할 수가 있겠지만 저기까지 걸어가는 것만 해도 한 세월이 걸리지 않겠느냐.

       

       창을 열어 시간을 확인했다. 어느새 새벽 두 시라는 시간이 되어 있었다.

       

       한 일이라고는 검선을 상대로 발악한 것밖에 없는데 벌써 이런 시간이 되어 있었다.

       

       무림의 태양이 저물어가는 중이었기에 이런 시간이 되었을 거라고는 상상치도 못했다.

       

       하긴 그러고 보면 내가 게임을 시작한 것도 늦은 밤이었지.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꾸나.”

       

       – 아직 튜토밖에 안했는데?

       – 낭인객잔가면 꿀잼됨. 진짜임.

       – 30분만 더 하면 안 됨? 조금만 더하자.

       

       – 엔리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맞아요! 우리 30분만 더해요!]

       

       “지금 돈을 보낸 게 진짜 엔리더냐?”

       

       <네!>

       

       너무 당당하게 말을 해서 순간 내가 잘못 본 게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이보게. 엔리. 시청자들에게 휘둘리지 말라 했던 건 그대가 아닌가. 왜 그대가 직접 나를 휘두르려고 하는 게냐.

       

       “이제 두 시다. 두 시. 다들 내일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으냐.”

       

       엔리 그대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내일 아침이면 어학당에서 만나야 하거늘 그대가 여태까지 깨어 있어서야 되겠느냐.

       

       착한 사람들은 모두 잠들 시간이다. 다들 눈을 붙이러 가거라.

       

       – 나 직장 안 다녀!

       – 어차피 밤 샐 거니까. 그냥 방송 해 줘!

       

       “내가 싫다. 이 놈들아. 다음에 또 할 테니 스토리 진행은 그 때 하자꾸나.”

       

       계속해서 쏟아지는 시청자들의 간청을 모두 쳐내고 방송 종료 버튼을 눌렀다.

       

       이제야 채팅창이 조용해 졌구나. 내 방송이 뭐 그리 좋다고 저리 난리들인지 원.

       

       방송이 완전히 꺼진 걸 확인한 나는 게임에서 나가는 대신 발을 움직였다.

       

       내로남불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본인은 일 년 내내 잠을 자지 않아도 멀쩡할 수 있는 인간이다. 다른 이들과는 전혀 사정이 다르지.

       

       뭐어. 그래도 내 시청자들을 배려하여 이야기의 진행은 하지 않고 느긋이 돌산의 풍경만 보고 올 터이니 이 정도면 괜찮지 않겠느냐?

       

       돌산 쪽으로 향하며 느긋이 도시의 안을 구경했다.

       

       해가 저물어가는 중이라 그런지 본래 도시에 살던 이들은 다들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다른 동료들에게 술 한 잔만 더 마시자고 권유하는 남자.

       

       가판대에 놓아둔 물건을 주섬주섬 챙기는 아낙네.

       

       이제 집에 들어가야 한다 말을 하는 아이와 조금만 더 놀다 가자는 아이들 무리.

       

       저들은 아마 본래부터 무림에 거주하던 이들일 것이다.

       

       하나하나의 동작에 자연스러움이 담겨 있었으니.

       

       저들과는 반대로 내게 어색하다는 느낌을 주는 이들도 있었다.

       

       온 몸에 피칠을 한 채 가판대에 다급히 달려가 약초를 다 사겠다 외치는 이.

       

       어두워져 가는 중인데도 무기를 어깨에 맨 체 도시 바깥으로 걸어가고 있는 이.

       

       도시 한 가운데에 서서 허공에다 대고 무어라 소리를 치고 있는 이.

       

       척 보기에도 괴리감이 느껴지는 모습이었거늘 무림의 사람들은 저들은 보고서도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마치 저들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저런 모습을 보니 이 세상이 게임 속 세상이라는 게 체감이 되는구나.

       

       이게 현실이었다면 모두들 저 사람들을 노려보고 있었을 터이니 말이다.

       

       갑작스레 생겨난 궁금증이다만 이 게임 속에선 음식 맛이 어떻게 느껴지는 것이더냐?

       

       VR게임이라는 것은 현실처럼 생생하지 않더냐. 그렇다면 게임 속에서 느끼는 음식의 맛도 현실처럼 느껴지는 것이더냐?

       

       도시에서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 호기심을 해결할까 생각을 했으나 안타깝게도 이미 식당들은 모두 문을 닫고 있었다.

       

       하아. 방송을 끄기 전에 생각이 났더라면 아해들에게 물을 수 있었을 터인데. 실로 아쉽게 되었구나.

       

       어쩔 수 없지. 다음에 게임에 들어왔을 때 식당에 한 번 가보는 수밖에.

       

       아니지. 아니야. 굳이 무림의 맛없는 음식을 먹을 필요는 없지 않으냐. 기왕 음식 맛을 볼 것이라면 좀 더 괜찮은 곳으로 가야지.

       

       나중에 엔리에게 한 번 물어봐야겠구나.

       

       이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산의 초입에 도착해 있었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거리가 멀었던지라 땅을 접으며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는 이미 땅 아래로 숨어버린 지 오래였다.

       

       산에 대해 잘 모르는 이가 밤의 산으로 걸어 들어간다는 건 조난을 당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지.

       

       허나 그것은 나무와 나무 사이로 걸어 들어갔을 때의 이야기다.

       

       그 위를 넘어 간다면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톡톡.

       

       허공을 밟아가며 산을 올랐다.

       

       숲 아래에서는 끊임없이 싸움의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화룡무인을 하는 유저들이 무언가와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겠지.

       

       어지간한 이들이 태양이 저문 시간에 숲에 발을 들일 리가 없으니.

       

       원래 밤의 숲은 고요한 맛이 있어야 하거늘 이래서야 운치가 없구나.

       

       한참을 걸어 돌산의 맨 위에 도착하고서 풍경을 둘러 보았다.

       

       하늘에는 동그란 달이 떠 있었고, 그 주변을 호위하듯 수많은 별들이 옹기종기 모여 각자의 빛을 냈다.

       

       현대에서는 보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그 곳에서는 하늘을 올려다보아도 별을 볼 수 없으니까.

       

       구름이 움직이며 별의 일부를 가리는 것을 보고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도시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시청자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이 곳은 분명 도시를 한 눈에 조망하기에 좋은 장소였다.

       

       잠에 빠지는 중인 화음을 느긋히 살폈다.

       

       켜져 있던 불이 꺼지는 것을. 고양이가 담벼락과 담벼락 사이를 넘는 것을. 늦은 밤인데도 여전히 도시 한 가운데에서 빛나는 관의 모습을.

       

       그러다 뒤에서 느껴진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여자아이 하나가 서 있었다.

       

       이제 갓 열 살이 되었을 것 같은 자그마한 아이의 머리 위에는 동물의 귀가 달려 있었다.

       

       신기하구나. 복슬거리는 주홍색 귀라니. 여우의 것인가?

       

       쫑긋거리는 귀를 보고 있자니 한 번 만져보고 싶다는 욕구가 절로 생겼다.

       

       여자아이는 나를 훑어보더니 고개를 갸웃 거렸다.

       

       “너는 누구냐?”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마는.”

       

       평범한 이는 아니다.

       

       아이 같은 외모에 비해 느껴지는 기운이 저토록 맑고 고강한데 거기에 평범이라는 단어가 끼어들 여지는 없다.

       

       기가 맑은 것으로 보아 요괴는 아니고 높은 확률로 신령 쪽인 것 같기는 한데.

       

       “내가 먼저 묻긴 했다만 일단은 답해주마. 본인은 이 산의 신령이니라.”

       

       정답이구나.

       

       흐으음.

       

       강할까?

       

       경지가 낮지는 않다만.

       

       기를 풀어 슬며시 주변을 찍어 눌렀다. 실력이 있는 자라면 자신을 도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도록.

       

       허나 신령은 내가 푼 기운을 정확히 느끼지 못했다. 그저 압박감만을 느낀 듯 약간 시퍼래진 얼굴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쉽게도 상대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자는 아닌 듯하구나.

       

       “왜 그리 무서운 눈으로 보는 것이냐. 내가 무얼 했다고.”

       

       겁에 질려 어깨를 움츠린 모습이 자그마한 동물 같아 웃음이 샜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동물귀 좋아하시나요? 전 좋아합니다.
    ———-

    사서님 10코인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homy님께서 그려주신 그림은 제가 봐도 멋진 것 같습니다.

    그림에 걸맞는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다음화 보기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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