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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7

        

         “비… 비상…! 비사아앙!! 앞 쪽 화물칸에 기업 새끼들이 숨어있었다—!”

         

         “거 비상 말고는 맞는 말이 하나도 없네!!”

         

         다급한 외침에 외부에 있던 갱단원이 무슨 일인가 하고 몰려들어온다.

         그 꼴을 본 나는 무슨 생체 경고등 마냥, 늘어진 메아리를 남기며 멀어져가는 밉상스러운 목격자 놈의 등판을 노려본다.

         

         그러고보니 게임에서도 있었다.

         교전이 불리해지면 냉큼 도망가서 지원군을 줄줄 달고 돌아오는 경보기 타입의 적이.

         

         차이점이라면… 저 자식은 너무 강렬한 사건 현장을 봐 버렸으니 아마 본인은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것. 그렇다고 해서 그대로 방치하기엔 온 동네방네에 우리가 가고 있다고 떠들어댈 판이라 최대한 따라붙어 봤지만.

         

         콰직!!

         

         – …?! 적대 세력의 고화력 철갑탄(High Velocity Armor Piercer Bullet; AP탄)의 사용 확인, 진열을 재정비하겠습니다. –  

         

         굳건하게, 그리고 묵직하게.

         복도를 몸으로 가득 메운 채로 거침없이 가야 할 길을 개척하던 제로의 어깻죽지에서 쪼개진 장갑 파편이 튀었다.

         

         자질구레한 생채기와는 전혀 다른 수준의 유효타. 제로가 칼같이 반응해서 상반신을 비틀지 않았다면 필시 주요 부품 한두 개쯤은 꿰뚫렸을 공습이다.

         

         여태까지는 어찌저찌 발목 붙잡히는 일 없이 쾌속 전진하는데 성공했으나, 유갑스럽게도 이 언저리부터는 대비를 시작한 적들과 다퉈야 같았다.

         

         “아! 진짜…!”

         

         전장에서 망설임은 곧 죽음이나 다름없으니, 쾅! 하고. 거진 문을 부술 기세로 몸을 날려 급한대로 빈 객실 안으로 뛰어들자, 방금 전까지 우리가 서있던 위치에 미친듯이 불똥이 튀고 바닥을 지탱하던 철판이 움푹움푹 패인다.

         

         “몰아넣었다…! 빨리 마무리해!!”

         “…잠깐, 뭐? 나보고 저런 무지막지해 보이는 드로이드 코앞에 다가가서 총질하라고? 씨발, 니가 직접 가든가!”

         

         적-우리-들이 객실로 들어갔다며, 쫓으라고 자기들끼리 바락바락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렸다.

         존나 다행이다. 제각각 입으로 떠들기만 바쁘지, 제로의 전투 간격 내로 먼저 들어올 만큼 배짱 넘치는 새끼는 없어서.

         

         만약 인해전술로 칼침 맞는 것 정도는 각오하고 밀고 들어왔으면 영락없이 독 안에 든 쥐 꼴이었을 테니까.

         

         “자가 진단부터 돌리고, 피해 현황 보고해!”

         

         – 메인 프레임 체크, 연산 및 무장 시스템 전부 이상 무(System All Green). 교전 속행하겠습니다. –

         

         “좋아…!”

         

         탕! 타당! 탕!!

         

         간략한 데미지 리포트를 듣자마자 객실 문틀 모서리에다 권총을 대고 총열만 내민 채 마구잡이로 방아쇠를 당긴다. 탄창이 완전히 빌 때까지 연사해서 이쪽이 건재함을 보인다.

         

         우연히 놈들이 맞고 쓰러지는 요행? 그딴 건 바라지도 않았다. 주춤주춤 접근해오던 발 끄는 소리가 단번에 다시 멀어졌으니 원하던 바는 충분히 달성했다.

         

         다수의 적과 넓은 공간에서 싸우다가 포위당하느니 차라리 좁은 복도에서의 전투가 그나마 낫다고 생각했지만, 나뭇가지와 돌이 아니라 총과 칼의 패싸움에서는 직선 통로에서조차 수의 이점이 부각되었다.

         

         “…애매하네.”

         

         이건… 미안하지만 역시 제로가 좀 더 위험부담을 짊어지고 고생해주는 수 밖엔….

         

         팅—.

         

         “…?”

         

         시끄럽던 총성이 잠시 잦아든 기차에 이질적인 잡음이 울렸다.

         긴장감으로 인해 집중력이 높아지지 않았다면 포착하기도 힘들었을 작은 쇳소리.

         

         최근은 아니더라도 분명 들어본 적이 있는 오싹한 클립음(Clip Sound)에 나는 움츠러들었고, 제로는 귀신같이 응수했다.

         

         – 아샤님, 머리를…!! –

         

         다 끝마쳐지지도 못한 말과 동시에, 협소한 길목에서는 기동성이 심각하게 저해된다는 이유로 집어넣어놨던 칼날이 사출된다.

         

         굳어버린 내 몸은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는 주제에 주어지는 시각 정보와 상황만큼은 충실히 지켜보고 있었다.

         

         뻗어진 검의 끄트머리가 춤춘다.

         

         혹시라도 과한 충격을 줘서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지 않도록, 섬세하고 부드럽게 흔들린다. 그렇게 굴러들어오던 수류탄의 궤적을 반대편 객실 쪽으로 빗겨내는데 0.4초, 던져진 폭발물이 지연 신관이란 걸 확인하고 열린 문을 닫아버리는데 0.8초.

         

         삐이이——!!

         

         근처에 있던 창이란 창은 모조리 깨져 나가기까지 1초.

         그나마 비산한 유리 파편은 거진 흐름을 타고 날아가서 이쪽으로 떨어진 건 얼마 안 돼니 다행이랄까.

         

         대부분의 충격은 제로가 몸을 던져 막아줬음에도, 틈새를 통해 새어 들어온 압축 공기만으로 머리카락이 거꾸로 치솟은 데다가.

         또 그때처럼 지근거리에서 일어난 폭발로 인해 안 그래도 먹먹하던 귀가 완전히 파업 상태에 들어가 버렸다.

         

         ‘무슨 마음의 양식도 아니고, 꼭 잊을 만하면…!’

         

         갱단이 무슨 경찰처럼 따로 장비를 보급해주는 것도 아니니 이런 폭발물은 개인이 스스로 챙겨 다니는 물건일 터.

         

         같이 좆 돼 보자는 의미의 억제력을 위한 수단이라면 차라리 다 죽어가는 놈이 자폭하는 것보다 이렇게 대놓고 써주는 편이 낫긴 하다.

         

         하지만 이러면 아무리 개쫄보 새끼들이라도 아껴 놓던 수류탄까지 까 넣었으니 분명 진입해올 것이 뻔하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더 안정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기적적으로 총알이 우리 둘 모두를 비껴가길 바라고 정면승부? 기각.

         제로를 앞세워서 돌진? 그럼 아까 전과 똑같고.

         이판사판으로 적들이 실수하기를 기대하며 이대로 농성? 논할 가치도 없다.

         

         직접적인 전투에서 모자란 내가 도움이 되는 방법은, 언제나 최대한 냉정하게. 높은 가능성과 기발한 노림수를 찌르는 것뿐이었다.

         

         “가! 빨리!!”

         

         – …금방 정리하겠습니다. –

         

         내가 제대로 말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자세히 설명할 틈도 부족했기에 이 녀석이라면 알아들을 거라 믿고 건너편 객실을 눈짓한다.

         뿌연 연기와 바깥에서 쏟아지는 모래먼지가 시야를 가린 이때다.

         

         여유작작하게 빈 탄창에 여분 총알을 삽탄하고 있을 시간 따위는 없었으니.

         주머니를 더듬어서 아까 화물칸에서 반쯤 쓰다 남은 탄창으로라도 대충 갈아 끼운다.

         

         비척거리는 다리를 채찍질해 구석에 처박힌 몸을 일으킨다.

         망치가 내려치기도 전에 모루가 뻗어서야 양동작전은 성립하지 않으니까.

         

         “씨발, 아직도 움직인다…! 육중한 발소리가 났어!”

         “그래서 내가 방 안에다 던지라고 했지?! 애매하게 굴기는….”

         

         “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 이 새끼들아!”

         

         복도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렸기에 대충 엿이나 먹으라고 맞대응해주고, 문가에 머리를 기대자 폭발 후폭풍 사이로 희끄무레한 적들의 실루엣이 보인다.

         

         그 수는 하나… 둘… 셋?

         참나, 방금 화물칸에서 스무 명은 족히 박살내고 오는 길인데 겨우 셋에게 막혀 있었다니 어처구니가 없네.

         

         그래도 서로가 서로에게 앞서가라며 선두를 떠넘기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여차하면 여태 지나온 통로를 역주행하며 권총 난사를 벌여서라도 이목을 끌 생각이었는데 그럴 필요도 없겠다.

         

         이 녀석들이 지키던 위치도 포기한 채, 시간 낭비하며 간격을 좁혀오는 동안 이미 제로가 뒤를 잡았으니 말이다.

         

         까강!

         파스스슷….

         

         “…엉?”

         

         돌연 자신들의 후면에서 들린 거친 금속음과 모래 알갱이 떨어지는 소리에 한참 늦은 불길함을 감지한 바보들의 고개가 돌아간다.  

         

         뭐, 거창하게 작전이라고 부를 것도 없었다.

         

         이놈들이 직접 들어왔으니 그곳의 기차 출입문은 틀림없이 열려 있다는 건데, 친절하게 던져준 수류탄이 창문은 물론이고 반대편 객실 외벽에 드로이드조차 드나들 만한 엑스트라 출입구를 만들었으니까.

         

         결국 폭심지에 정신이 팔려서 경계가 소홀해졌기에 대놓고 옆으로 우회하는 드로이드도 놓쳤다는 그런 이야기일 뿐.

         

         깨진 창문으로부터 분 바람이 자욱하던 연기를 조금 걷어내자, 세상 형형한 눈빛으로. 사격하기 좋게 엄폐물 하나 없는 통로에 모습을 드러낸 녀석들을 스캔하는 제로가 나타났다.

         

         – ……. –

         

         긴말은 필요 없었다. 시시콜콜한 유언 같은 걸 들어줄 녀석도 아니었고.

         

         관절 같은 설비변경을 제외하면 새로 부착해준 부품은 총 세 종류.

         근거리 전투는 히든 블레이드로 나름 보강했으니 당연히 원거리 교전을 위한 무장도 설치했다.

         

         사람으로 치면 이두근 부위의 장갑이 좌우로 개방되고, 드러난 총구가….

         

         드가가가가각—!!

         

         “어우야.”

         

         피라던가… 아무튼 여러가지 파편이 튈라 머리를 팍 숙인다.

         

         화약의 폭풍에 휘말린 녀석들이 비명도 못 지르고 순식간에 찢겨 나갔다.

         

         빗발치는 총알의 규격은… 내 피스메이커와 동일한 대구경 고속탄 전용.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리, 내 여분 탄약은 전부 쟤 뱃속에 장전된 채로 들어있는 셈이다. 좀 아껴 써라 이놈아!

         

         그리고… 독립형 손목 관절과 호환만 됐어도 손바닥에서 발포하는 모델을 골라줬을 텐데 그건 조금 아쉽다.

         

         정리는 다 끝났냐고 물어보려다 아직도 청각이 맹하다는 걸 깨닫고 그냥 복도로 나온 후, 널브러진 잔해…들을 굳이 밟을 이유는 없었기에 조심스럽게 디딜 곳을 골랐다.

         

         뻐근한 몸을 억지로 움직이는 내가 영 불안했는지 제로가 급하게 달려온다.

         그렇게까지 서두를 필요는 없는데 왜 저럴까… 하는 의문은.

         

         “……아, 더러운 존버충.”

         

         처음부터 제자리를 지킨 건지, 다가오는 도중에 낌새를 눈치채고 숨은 건지는 몰라도. 중간에 있던 다른 방에서 튀어나온 네 번째 남자를 보고 풀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팩트 : 이 말괄량이는 남에게 당한 게 아니라, 자기가 던진 수류탄에 휘말렸었다.

    휴재 약빨이 떨어졌는지 또 지각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게다가 원래 쓰려던 곳까지도 못써서 또 상하편으로 갈라졌네요. 일일연재가 진짜 이렇게나 어렵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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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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