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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7

       

       

       

       

       서은우가 927 작가다.

         

       설소영.

         

       그녀가 이것을 확신한 것은 언제였을까?

         

       그가 꿈꾸는 아이들이라는 대본을 처음 선보였을 때?

         

       우연히 이름이 가까워 그의 옆자리에 배정받고, 수업 시간 내내 그를 지켜보았을 때?

         

       입학식이 끝나고 피곤함에 빠져있던 자신을 도와줬을 때나, 느낌이 비슷한 목소리를 들었을 때일 수도 있고, 어쩌면 처음 얼굴을 마주하며 인사를 주고받게 된 그 순간일지도 모른다.

         

       사실 상대방을 납득 시킬 수 있는 이유야 차고 넘쳤고, 동시에 설소영에게 있어서 이유라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가 않다.

         

       중요한 것은 이미 설소영은 자신의 안에서 어떠한 확실한 결론을 내렸고, 설령 그가 그것을 부정하더라도 그 확신에는 변화가 없을 거라는 거다.

         

       애초에 그러한 확신이 없었더라면 이번 꿈꾸는 아이들의 결말을 굳이 바꿀 이유도 없었을 테고, 주인공인 김미소 역을 이다혜에게 흔쾌히 양보할 이유도 없었겠지.

         

       그런 의미에서 설소영은 조금 놀랐다.

         

       이다혜.

         

       설소영은 그녀가 얼마나 빛나는 사람인지 알고는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오늘 이다혜가 무대 위에서 보여준 밝은 빛은 오직 그녀만의 재능. 어쩌면 자신에게 딱 맞는 배역을 받았기에 더더욱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

         

       그렇기에 솔직히 조금 질투가 나기도 했다.

         

       원래 그에게서 딱 맞는 배역을 받는 것은 언제나 자신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감정과는 반대로 이다혜에게 고마움도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무대에서 환하게 빛날수록 사람들은 더욱더 자신의 연기에 빠져들 테니까.

         

       설소영은 떠올렸다.

         

       꿈꾸는 아이들, 이 작품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은 어째서인지 주인공 김미소가 아닌 문연우다.

         

       그렇기에 늘 마지막까지 무대에 서 있는 것은 설소영이었으며, 덕분에 그녀는 항상 연습 과정에서 무대를 나지막하게 지켜보고 있던 그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그때마다 그의 얼굴에는 약간의 아쉬움이 담겨 있었다.

         

       설소영은 그가 그렸던 원래의 결말을 알고 있기에 그가 아쉬워하는 이유에 공감했다.

         

       사실 결말의 수정 전과 후, 문연우가 내뱉는 대사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단지, 그 말을 내뱉으며 어떤 감정을 요구하는지만 다를 뿐.

         

       하지만 그로 인해 관객들이 느끼는 여운은 천지 차이일 것이다.

         

       왜냐하면, 설소영이 생각했을 때도 수정 전의 결말이 훨씬 작품성이 뛰어나다는 느낌을 받았으니까.

         

       그렇다면 왜?

         

       굳이 그는 작품성이 떨어지는 방향으로 결말 부분을 수정했을까?

         

       아마 거기에는 청소년 연극제라는 부분에 포커스가 맞춰져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그는 속으로 몇 번이든 이런 말을 하며 스스로 타협했을지도 모른다.

         

       기껏 해 봐야 청소년 연극제라고.

         

       고작 청소년 연극제라고.

         

       꿈꾸는 아이들은 어디까지나 927 작가님이 아닌 고등학생 서은우로서의 작품이다.

         

       너무나도 학생 수준을 벗어난 작품을 만들어버리면 당연히 자신의 정체를 의심하는 사람이 생기는 법이다.

         

       애초에 그는 자신의 정체가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말이다.

         

       세상에 영원한 비밀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어떠한 계기로, 또는 어떠한 사고로 927 작가님이 서은우라는 것이 세상에 알려질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은 꿈꾸는 아이들을 대해 이런 평가를 하겠지.

         

       927 작가님이 만든 작품치고는 뭔가 조금 아쉽다고.

         

       그리고 이건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작품을 사랑하는 927 작가님 본인이 가장 그렇게 생각하실 테고, 결국 후회하시겠지.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부터 일어나는 모든 일은 오직 자신만의 독단.

         

       그 모든 책임은 스스로에게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

         

         

       설소영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 순간부터, 공연이 끝나기 전까지 그녀는 더 이상 설소영이 아니었다.

         

       무대 위에 홀로 서 있는 소녀는 김미소의 소꿉친구이자, 이 꿈꾸는 아이들의 또 다른 주인공……

         

       문연우.

         

       그리고 그녀의 등장과 함께 관객석의 어디에선가……

         

         

       “하하. 오늘 공연 보러 오길 진짜 잘했네. 역시 그래야 너답지, 소영아.”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어서오세요 카페 바이올렛에서 설소영의 상대 역을 맡았던 남궁환은 왠지 모르게 설레는 미소를 짓고 있었고.

         

         

       “……아무래도 제 감이 맞았던 모양이군요.”

         

         

       마찬가지로 그녀에게서 이상한 기류를 느꼈던 고동빈 감독 역시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설소영이 대중들에게 보여준 연기력은 모두 카메라로 녹화된 화면이다.

         

       즉, 라이브로 그녀의 ‘진짜’ 연기를 본 사람은 극히 소수라는 것.

         

       이제 관객들뿐만이라 모든 사람들이 서서히 깨달을 것이다.

         

       왜 설소영이라는 어린 배우가 927 작가의 모든 작품에 주인공으로 출현할 수 있었는지를…….

         

       이다혜의 노래 이후로 여운에 빠져있던 공연장 안이 설소영의 등장으로 순식간에 침묵에 빠진다.

         

       보통의 연기자는 본인의 연기에 스스로가 빠져들어 그 캐릭터에 몰입한다면, 설소영은 그와 정반대이다.

         

       철저하게 계산된 것 같으면서도 내면의 본능에 맡기듯이.

         

       설소영의 연기는 그저 보는 이를 몰입시킨다.

         

       얼굴, 대사, 목소리, 몸짓 등등 그녀 특유의 분위기가 섞인 연기를 보고 있으면 혼이 쏙 빠지는 기분을 느낄 것이다. 어쩌면 그 순간만큼은 잠시 숨을 쉬는 것을 잊을 정도로.

         

       그리고 그 과정에서 관객들은 현재 그녀가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도 단번에 깨닫게 되겠지.

         

       소중한 친구인 김미소를 떠나보낸,

       

       문연우라는 소녀가 느끼고 있는 짙은 슬픔을…….

         

         

       ─……미소야.

         

         

       이윽고, 설소영이 대사를 내뱉었고 꿈꾸는 아이들은 종장에 들어섰다.

         

       동시에……

         

       그것은 설소영의 독주(獨走)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소리였다.

         

         

         

       ***

         

         

         

       꿈꾸는 아이들에서 문연우라는 캐릭터는 어떤 캐릭터일까?

         

       주연 3인방이지만 분량은 그중에서 제일 작은, 중후반부까지의 임팩트만 본다면 사실상 조연과 다를 바가 없는 캐릭터.

         

       허나, 나는 마지막 씬으로 인해 문연우가 충분히 주연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고, 방금 설소영이 첫 대사를 내뱉자마자 조금 소름이 돋았다.

         

       현재 그녀가 품고 있는 감정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전달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래…….

         

       분명 슬픔.

         

       원래라면 마지막 씬에서 문연우가 품고 있어야 할 감정은 그것과 반대인 희망에 가까웠어야 했다.

         

       꿈속에서 김미소는 바랬다.

         

       친구들이 자신의 죽음에 대해 더 이상 슬퍼하지 않기를, 얼른 자신을 잊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

         

       문연우는 김미소의 가장 가깝고, 친한 친구.

         

       함께 웃고, 장난치고, 의견이 안 맞아 가끔 싸우기도 하고, 언제 그랬냐며 순식간에 화해하고, 때로는 친구가 누군가를 도우려는 순수한 일에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함께해주는 그런 친구.

         

       서로 너무나도 가까운 사이였기에 문연우는 친구가 꿈에서까지 등장해 무엇을 바라는지,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문연우는 쓴 미소를 지으며 독백한다.

         

       너는 항상 막무가내다. 종잡을 수가 없었다. 왜 그렇게 손해를 보면서 사는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이런 식으로 김미소에 대한 가벼운 욕으로 시작한다. 그것은 일종의 투정이었다.

         

       문연우는 지금까지 김미소라는 사람에게 엄청 휘말리며, 좋은 의미든 안 좋은 의미든 수많은 일을 겪었으니까.

         

       만약 그녀가 죽을 거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더라면, 당장이라도 찾아가 지금처럼 속사포를 내뱉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동시에 문연우는 김미소라는 친구를 이해하고 있다. 김미소라는 사람에게서 어떠한 빛을 본 사람이 있는 것도.

         

       그렇기에 그 끝에는 결국 이해만이 남는다.

         

       문연우는 친구가 바라는 대로 슬픔을 잊기로 한다, 더 이상 친구의 빛을 쫓지 않고 그녀가 만들어준 새로운 인연들과 함께 그저 앞으로 나아가기로 한다.

         

       분명 그것은 어딘가에서 자신을 보고 있을 김미소에게 전하는 희망적인 다짐.

         

       그래. 비로소 이제 이 이야기에 슬픔 따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분명 그랬어야만 했다.

         

       설소영의 연기에서 너무나도 무거운, 짙은 감정이 느껴진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이 연극에 끝에는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이변을 직감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소영아…….”

         

         

       자신의 무대를 마무리하고 내 옆에 선 이다혜, 그녀를 포함한 연극·영화부 부원들 역시 모두 숨을 죽이며 무대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관객들과 다르게 누구보다 꿈꾸는 아이들의 결말을 봐왔던 사람들이다. 당연히 지금 설소영이 펼치고 있는 연기는 연습 때와 예선 때와는 많이 다른 것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끝에는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

         

       ……당연한 소리다.

         

       애초에 저 결말은 대본이 수정되기 전의 이야기.

         

       꿈꾸는 아이들의 원래 결말이자, 오직 나만이 알고 있어야 했던 결말이다.

         

       나는 다시 무대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는 설소영을 바라봤고, 저절로 주먹이 꽉 쥐어졌다.

         

       기분 탓이 아니라…….

         

       지금 무대에 선 그녀의 모습을 보면, 마치 내게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다.

         

       한 사람의 각본가로서 수정 후의 결말을 진심으로 만족하냐고, 정말 후회하지 않겠냐고.

         

       그리고 너는 도대체 왜.

         

       마지막으로 연기에 들어서기 전에 내게 그런 사랑스러운 얼굴을 보였던 걸까.

         

       나는 다만 조금 얄궂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내가 그렸던 원래의 결말을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설소영이 굳이 올해 처음 만난 나를 위해 그래 줄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허나, 그 대상이 또 다른 ‘나’라면 아마 얘기가 많이 달라지겠지.

         

         

       “……눈치챘구나.”

         

         

       나는 그 말을 조용히 내뱉으며, 설소영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저 무언가에 홀리듯이 계속 보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인기 여배우에게 집착 받는 천재작가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She likes me enough to win an award. Meet Seo Eun-Woo, a passionate K-Drama fan turned writer, whose life takes an unexpected twist when he awakens in a world of mediocre dramas. Frustrated and desperate for the perfect storyline, he stumbles upon a former actress who sparks his creative genius. Watch as their fateful encounter turns his life into a captivating drama of its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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