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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8

    용병단을 떠나, 나와 아르윈은 말을 몰았다.

     

    행렬에 맞추지 않은 우리만의 독자적인 속도로 달린다.

     

    누구도 밟지 않은 풀을 헤치며 나아간다.

     

     

    정해진 길을 벗어나는게 나름의 개방감을 선물했다.

     

     

    나만 그렇게 느끼고 있는것도 아닌 듯 했다.

     

    옆에 있는 아르윈을 바라보니 그녀의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오랜시간 한 지역에만 갇혀서 살았기에 그럴까.

     

    이런 자유로움이 그녀는 마음에 들었나 보다.

     

     

    어느 정도 그 점을 노리기도 했다.

     

    여행하길 좋아하고, 자유를 갈망하는 그녀에게는 이런것보다 나은게 없을테니.

     

    또한, 그 동안 갈고 닦은 궁술을 한번 시험해볼때가 되기도 했다.

     

    겸사겸사 목숨을 끊는 연습도 해보고 말이다.

     

    어찌됐든 먼 훗날, 내가 죽고 난 이후에 세상을 살아갈 그녀다.

     

     

    그런 그녀에게 그러한 것들을 알려주어 나쁠게 없었다.

     

    애초에 남편인 나의 의무라고 볼 수 있었다.

     

     

    아르윈이 생명을 끊을 준비가 되어있을까.

     

    처음에는 상상 이상으로 거부감이 드는 일이다.

     

     

    하지만 또, 못하겠다고 한다면 굳이 오늘 알려줄 필요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녀와 이런 시간을 보내는 게 더 중요했다.

     

    이유가 무엇이었든지간에 그녀에게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르윈은 감정이 상했으니 말이다.

     

     

    “…”

     

    나는 슬며시 아르윈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엘프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준다라.

     

    이런 특이한 경험도 따로 없을 것이다.

     

     

    ****

     

     

    투레질을 하는 우리의 말을 나무에 묶어놓고, 말에서 내린다.

     

    나는 검을 차고, 나의 활을 등에 멨다.

     

    화살과 화살통도 챙긴다.

     

    아르윈은 제 활만 등에 멨다.

     

     

    “가자.”

     

    내 말에 아르윈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러며 상황을 살폈다.

     

    날씨가 그다지 맑지는 않은게, 밤이 일찍 찾아올 것 같다.

     

    어쩌면 조금은 일찍 사냥을 그만두고 귀환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지간에 우리는 숲 속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울려오는 새소리와, 청아한 숲의 공기가 우리를 반긴다.

     

     

    아르윈은 이토록 큰 숲은 또 처음 들어오는건지, 아니면 또 새로운 숲에 들어온게 생소한건지, 이리저리 두리번대기 바빴다.

     

     

    그녀는 그러다 내게 물어왔다.

     

    “베르그, 뭘 사냥할 거에요?”

     

    “보이는대로. 아무거나 한 마리만 잡아보자.”

     

    “…아무거나는 아무거난데, 예상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 질문속에는 마치 앞으로의 미래가 설레어 못참겠다는 아이의 조바심 같은 감정이 담겨있었다.

     

    사실 확신 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목숨을 끊는다는 것에 대한 긴장감일지도.

     

    어찌됐든 그녀가 흥미를 느끼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 재미는 이후에 그녀를 위해 맡겨두기로 한다.

     

     

    .

    .

    .

     

     

    우리는 한참동안 숲을 돌아다녔다.

     

    이런 저런 이야기도 가볍게 하며, 하나의 일탈을 즐긴다.

     

     

    물론 이렇게 돌아다니기만 한것도 아니었다.

     

     

    여러 흔적들을 쫓아, 우리는 점차 사냥감에게 다가서고 있었다.

     

     

    예상한대로 사슴이나 토끼, 멧돼지 같은 것들이 우리의 상대였다.

     

    나는 아르윈과 대화를 하면서도 주위를 꾸준히 살폈다.

     

     

    “아르윈. 사냥감이 나타나면 잡을 수 있겠어?”

     

    “그 동안 연습 많이 했는걸요.”

     

    “…그런 의미가 아니라.”

     

    “베르그, 이것봐요…!”

     

    하지만 아르윈은 나만큼 사냥에 집중하고 있지 않았다.

     

    간혹 걷다가도 멈춰서서는, 아무렇게나 피어난 꽃에 속삭이듯 호들갑을 떨었다.

     

    “나팔꽃이에요…!”

     

    항상 유지하던 그 차가운 표정은 어디다 가져다 버렸는지 모르겠다.

     

    그녀는 갈수록 내게 다양한 표정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처음봐?”

     

    그럼에도 내가 분위기를 맞춰 묻자, 아르윈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네. 셀레브리엔 영지에서는 자라지 않아서…책으로만 봤어요.”

     

    “…”

     

    “…실제로는 이렇게 생겼구나.”

     

    나팔꽃을 바라보며 아르윈이 속삭였다.

     

    170년간 책으로만 보았던 것을 직접 두 눈으로 보게 되는 건 어떤 느낌일까.

     

    나는 도무지 알수가 없었다.

     

     

    어렴풋이 그녀에게 연민을 느끼고 있다는 것만이 확실했다.

     

    행복해하는 그녀를 보면서도,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물론 미소는 나왔지만 말이다.

     

     

    -스슥…!

     

     

    그 순간, 무언가가 수풀을 헤치고 지나가는 소리가 피어난다.

     

    “베르그, 이거 향기-읍!”

     

    나는 나팔꽃 앞에 조신히 앉아 향을 맡으려던 아르윈의 입을 막았다.

     

    “…쉿.”

     

     

    그리고는 조용히 속삭였다.

     

    아르윈은 그 갑작스러운 행동에 잠시 놀란 듯 긴 귀를 파르르 떨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소리가 난 곳을 아르윈에게도 가리켰다.

     

    손가락 끝에는 한 암사슴이 서 있었다.

     

     

    하지만 나무와 수풀에 가려 사냥감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지, 아르윈은 한참토록 방황했다.

     

     

    긴 시간 뒤, 사슴이 고개를 들고 나서야 아르윈도 눈이 커졌다.

     

    그렇게 아르윈도 암사슴을 찾자, 나는 천천히 막았던 그녀의 입을 놨다.

     

     

    “…활 꺼내.”

     

    나는 아르윈에게 속삭였다.

     

    아르윈은 잠시 멈칫하다, 내 말대로 활을 꺼내든다.

     

    나는 허리 뒤에 맸던 화살통에서 화살을 하나 꺼내, 아르윈에게 건넸다.

     

     

    그녀는 익숙한 손길로 화살을 받아들고는…그렇게 잠시 굳어있었다.

     

     

    “…”

     

     

    사슴은 평화롭게 풀을 뜯어먹으며 자연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는 아르윈을 지켜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도 조금은 망설이는 듯 했다.

     

     

    “…아르윈.”

     

    그런 그녀의 이름을 불러 등을 살짝 밀어준다.

     

    아르윈은 그 부름에 놀란 듯 몸을 흠칫 떨었다.

     

    “…심호흡 해.”

     

    내가 말했다.

     

     

    활은 언젠가 그녀의 몸을 지켜줄 수도 있는 무기였다.

     

    그녀는 이 사실을 분명 기억해야했다.

     

    생명체에게 화살을 쏘지 못할거라면 궁술을 배운 의미는 어디에도 없었다.

     

    “할 수 있어.”

     

    그 말에, 아르윈은 표정을 굳히고 활시위에 화살을 걸어 줄을 당겼다.

     

    평소보다 천천히 늘어지는 활시위.

     

     

    계속해서 멈칫대며, 그녀는 눈을 깜빡인다.

     

    그 눈빛에 어떠한 감정도 담기기 시작했다.

     

     

    활시위를 더 단단히 당길수록, 그녀의 표정에 담기는 혼란은 가중되어갔다.

     

    그럼에도 행동자체는 멈추지 않는게 기이하다면 기이했다.

     

    내가 혹시 너무 밀어붙이는 걸까?

     

     

    “…혹시 무언가를 죽이는게 두려운거라면-”

     

    “그건 아니에요.”

     

    -퉁!

     

    순간적인 대답과 함께, 화살이 공기를 가르며 날아간다.

     

    생각보다 훨씬 빨랐던 결단.

     

    -콱!

     

    하지만 화살은 사슴 근처에 있던 나무에 박힌다.

     

    -파바박!

     

    그 소리에 놀란 사슴이 순식간에 자세를 낮추더니 도망쳤다.

     

     

    허무하게 사라져가는 목표물을 보며 나는 침묵했다.

     

    “…빗나갔네요.”

     

    아르윈이 중얼거렸다.

     

     

    사실 아르윈의 행동에 사뭇 놀라고 있었다.

     

    망설이던 표정과 달리, 행동이 너무도 빨랐다.

     

    어색한 그 모습에 무슨 말을 해야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혹시 애초부터 빗맞출 생각이었던걸까.

     

    그렇다면 빠른 행동도 이해가 된다.

     

     

    아르윈도 이런 내 마음을 알아차린건지, 나를 뒤늦게 올려다보며 변명했다.

     

     

    “…정말 빗나간거에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실 중요하지는 않았다.

     

    아쉬울 뿐.

     

     

    이내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조언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대원들을 훈련시키던 버릇이 튀어나온 걸지도 몰랐다.

     

     

    “…그래도 다음에는 동요하지 마.”

     

    “…동요하지 않았어요.”

     

    “무언가를 죽이는 경험을 해둬야, 나중에 긴박한 상황이 오더라도 침착하게-”

     

    “-베르그.”

     

    아르윈이 단호히 나를 불렀다.

     

    “…저 엘프에요.”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알아.”

     

    “…그게 아니라.”

     

    “…?”

     

    “저런 미물을 죽인다고 제가 죄책감을 느낄 것 같아요?”

     

    “…”

     

     

    그녀의 입에서 나올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말.

     

    이런 분위기는 오랜만이라 잠시 잊고 있기는 했다.

     

    처음 만났을 때 분명 이 느낌이었다.

     

     

    …혹시 그럼 아까의 빠른 결단도 그러한 맥락이었을까.

     

     

    어찌됐든 저렇게까지 강하게 말하는데 더는 설교하지 않아도 될 듯 했다.

     

    사실 이 모든게 나의 아쉬움에서 비롯된 이야기다.

     

    아르윈이 스스로의 몸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하나 만들어두었으면 했으니.

     

    그러니 이쯤 했으면 됐다.

     

     

     

    살짝은 얼어붙는 분위기를 풀고자 내가 말했다.

     

    “…뭘 그렇게 살벌한 말을 해.”

     

    “틈만 나면 싸우는 당신이 할 말은 아니거든요.”

     

     

    아르윈도 그런 내 분위기에 편승하여 농담을 건네왔다.

     

    분위기는 다시금 부드럽게 풀린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아르윈. 이제 돌아가자. 어두워진다.”

     

    “…”

     

    아르윈은 그 말에 침묵했다.

     

    “…아르윈?”

     

    “아까 그 사슴… 조금만 더 쫓아가면 안돼요?”

     

    “…”

     

    “그게 힘들면 숲을 조금만 더 돌아다녀도 좋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다음에.”

     

     

    그리고는 몸을 돌려 숲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잠시 고집을 부리던 아르윈도, 그런 내 단호한 행동에 결국에는 나를 따랐다.

     

     

    .

    .

    .

     

     

    숲을 나서는 순간,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낭패였다.

     

    날씨가 좋지는 못했다지만, 이렇게 한순간 비가 올거라 생각하지는 못했으니.

     

     

    나는 점차 빠르게 행동했다.

     

    나무에 묶여있던 말의 고삐도 풀고, 활을 싣는다.

     

    방향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위치를 잡는다.

     

     

    그리고 그때, 갑작스러운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거친 물줄기가 뿜어져 내린다.

     

    “…”

     

    혀를 찬 내가 급히 비를 피할 곳을 수색했다.

     

    일단은 임시방편으로 커다란 나뭇잎이 겹겹이 퍼진 나무 밑으로 향하기로 결정한다.

     

    여차하면 숲에서 보았던 작은 동굴로 향해도 되고.

     

     

    나는 아르윈을 불렀다.

     

    “아르윈! 저기로…”

     

     

    하지만 이내 발견한 아르윈의 모습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멍한 뒷모습을 발견한다.

     

     

    숲 밖에서, 아르윈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행동 하나로만 전해지는 진한 자유로움.

     

    그녀의 감정이 내게까지 전염되어오는 듯 했다.

     

     

    그렇게 빗줄기를 받아들이던 아르윈이 이내 나를 바라보았다.

     

    “…”

     

    그리고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시원하네요.”

     

    그녀의 아름다움이 그 빗속에서 더욱 강조되는 듯 했다.

    “너무 좋아요, 베르그.”

     

    어쩌면 행복해 보이는 그 모습 때문일지도 몰랐다.

     

    “이래서는 못 돌아가겠어요.”

     

     

    그녀를 두고 비를 홀로 피할 수는 없던만큼, 나도 비를 그녀처럼 시원하게 받아들였다.

     

    비를 피하는 걸 포기하자 나까지도 후련해진다.

     

     

    “그러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취향입니다님! 5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ㅋㅋㅋ 감사하실 것 없습니다. 원해서 했는걸요.

    침대밑의괴물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옙, 없습니다.

    맥켄리님! 3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배서형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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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IW 섞일 수 없는 이종족 아내들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Polygamy is abolished.

We don’t have to force ourselves to live together any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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