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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8

        눈앞엔 백발금안의 소녀가 서 있었다.

         

        소녀는 크게 놀란 얼굴이었다. 입을 슬쩍 벌렸고, 초점은 한 곳에 고정하지 못한 채 내 몸 이곳저곳을 훑었다.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건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실로 어이가 없었다. 눈높이, 이목구비, 거기에 체형까지. 머리카락 색이 정반대인 걸 제외하면 나와 똑같이 생긴 소녀가 코앞에 있었으니까.

         

        마치 문 사이에 거울을 놓은 것처럼 대칭적이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정확히 같은 시각에 입을 뻐끔거렸다.

         

        넌 누구인지.

         

        왜 나와 똑같이 생긴 건지.

         

        이런 곳엔 뭐 하러 온 거고, 로테와는 여기서 뭘 하고 있었는지.

         

        무수한 의문들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그러나 내 입은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그녀를 보며 가장 먼저 떠올렸던 단어가 내 입에서 제멋대로 튀어나오고 말았다.

         

        “…카샤?”

         

        아카샤, 내 쌍둥이 여동생.

         

        혼탁해진 기억 한가운데서 그 단어를 끄집어냈다. 낯설었지만, 어딘가 정겨운 이름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에게는 여동생이 없다. 지구에 두고 온 누나 한 명이 전부였는데.

         

        그렇다면 이 소녀는 내가 아닌, 에테르의 동생이라는 뜻이 된다. 이 소녀에겐 안타깝지만, 지금의 나와는 사실상 연이 없는 인물이었다.

         

        “어, 언니?”

         

        소녀는 날 언니라고 부르며 성큼 다가왔다. 불과 몇 피트 되지 않는 거리였다. 나와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혀온 소녀가 곧 양팔을 벌렸다.

         

        사고의 흐름을 이을 새도 없었다. 나는 통발에 고기가 잡혀 들어가듯 정면에서 허그를 당했다.

         

        “언니! 여기서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어!”

         

        이산가족이라도 만난 듯한 반응이었다. 

         

        처음 볼 때 촉이 왔지만, 목소리까지 에테르와 똑같았다. 그 점에 내 팔에서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소녀는 머리를 파묻으며 제 할 말을 계속했다. 

         

        “나 누군지 알겠지? 언니 쌍둥이 동생 아카샤야. 우리 항상 둘이서 하나였잖아. 죽을 때까지 함께하기로 약속했었는데 갑자기 가출해 버리면 어떡해…. 아무튼, 기억 돌아온 거 맞지? 응? 그렇지?”

         

        내가 가출을 했느니, 기억이 돌아왔느니 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말 투성이였다. 

         

        에테르에게 형제자매가 있는지 버멜에게 물어봤으면 이런 일을 겪어도 당황하지 않았을 텐데.

         

        “언니, 조만간 우리 집으로 돌아가자. 이제 다른 데 가면 안 돼. 알겠지?”

         

        -꽈악

         

        소녀가 나를 더 세게 끌어안는다. 그 탓에 흉부가 압박돼서 횡격막이 위로 들어올려지는 것만 같았다. 도저히 사람이 낼 법한 힘이 아니었다.

         

        숨이 살짝 막힌다. 폐가 짓눌리는 감각에, 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백발 소녀의 어깨 너머를 응시했다. 로테가 어두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왜인지는 몰라도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꽈아악

         

        “커, 커헉…! 야…!”

        “아, 미안해! 내가 너무 세게 안았지?”

         

        그제서야 소녀는 끌어안았던 팔을 서서히 풀었다.

         

        나는 폐부에 몰려 있던 공기를 있는 대로 토해내며 숨을 가다듬었다. 웬만큼 호흡이 안정되자 생각을 곧바로 정돈할 수 있었다.

         

        우선, 이 아카샤라는 소녀는 확실히 내 여동생이다. 하지만 난 이 소녀가 누구인지 모른다. 기억하는 건 이름 정도고, 그마저도 이 몸의 원래 주인이 알고 있던 정보일 것이다.

         

        또한 이 소녀로부터 원본 에테르에 대한 정보도 얻어냈다. 진짜 에테르는 기억을 잃었고, 그 자리를 내가 대신 차지하게 된 것 같은데. 이 점은 아직 모호하니 넘어가기로 하고.

         

        마지막으로, 이 소녀의 등장. 왜 뜬금없이 살리에르 저택에 머무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돌아온 걸 본 저택 사람들이 당황해 한 이유 정도야 알겠다. 과연, 염색 얘기도 여기서 나온 거겠지.

         

        상황 파악을 빠르게 마친 나는 서재 곳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로테 말고 다른 사람은 안 보인다. 로테는 아까보다 더욱 더 복잡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

         

        이럴 때 한마디씩 던지던 양장본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는지 입을 다물었다. 졸지에 대화를 주고받는 사람은 나와 이 소녀밖에 없게 되었다. 그 사실이 무척이나 불편했다.

         

        “언니? 왜 말이 없어?”

         

        아카샤가 내 손을 잡으며 물었다. 원래 에테르의 기억이 돌아왔다고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안타깝지만 난 너를 모른다. 이 점은 확실히 해 두어야겠지.

         

        “미안한데, 네가 누구인지 모르겠어.”

        “…뭐?”

        “네 이름이 아카샤라는 것까지는 기억이 나. 그런데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나는 게 없어.”

         

        환하게 웃던 소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구겨졌다.

         

        “거, 거짓말이지?”

        “진짜로.”

         

        나는 고개를 얕게 내저으며 아카샤의 떠는 물음에 쐐기를 박았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에게는 비참한 일이었지만 이것이 사실이었다. 무엇보다도 난 이 소녀가 기억하는 에테르가 아니었다.

         

        “괘, 괜찮아. 이름이라도 기억하는 게 어디야. 나머지는 나중에 떠올리면 되지.”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다. 혹여 자길 기억해주지 않는다고 이 자리에서 난리를 피웠더라면 난감할 뻔했다.

         

        “어쨌든 내가 언니 동생이야. 여기까지는 알겠지? 자, 이제 우리 집에 갈까?”

         

        톡톡 튀기 시작한 목소리에서 기대감이 묻어나온다. 

         

        “집?”

        “그래, 우리 사는 집. 언니도 여기 있으면서 많이 힘들었잖아. 이런 곳에서 살지 말고, 금안족은 금안족끼리 같이 살자. 응?”

         

        금안족이 모여 사는 곳이라. 그런 곳이라면 두 군데가 있는 것으로 안다.

         

        한 곳은 마대륙과 가까운 엘랑카야 산맥 남부와 서부. 

         

        또 다른 한 곳은 엘프의 나라인 카우렐리아의 동남부.

         

        아카샤가 말하는 곳이 둘 중 어디인지는 자명하다. 분명 여기서 가까운 곳이겠지. 그곳의 지리를 생각해 본다면 금안족이 모여 사는 장소가 얼마나 혹독할지는 예상이 간다.

         

        버멜에게 전해들은 바는 없지만, 아마도… 그렇고 그런 곳이겠지. 나는 적당히 둘러대기로 했다.

         

        “미안하지만 그것도 안 돼.”

        “왜?”

        “조금 있으면 개학이거든.”

        “개학이라니.”

         

        아카샤는 픽 웃음을 흘렸다. 어이 없다는 반응이었다. 그 반응에 오히려 나도 어이가 없어질 지경이었다. 

         

        “아카데미 다니는 거 말이야?”

         

        한 발짝 물러난 그녀가 팔짱을 끼며 물었다. 퉁명스러움이 조금 섞인 말투였다.

         

        “인간들 공부하는 아카데미에 있어서 뭐 해? 어지간한 마도는 언니가 다 꿰고 있잖아. 그런 거, 그냥 자퇴해 버려.”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레파토리였다. 생각해 보니 클리온 황자가 날 사들이려고 했을 때 했던 말과 엇비슷했다.

         

        로베스피에르 이사장은 황실에 마수가 숨어 있다고 귀띔해 줬다. 만약 제2황자의 그 태도가 타고난 성정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면, 그가 날 자퇴시키려고 했던 건 순전히 마수의 소행이라는 건데.

         

        “흐.”

         

        그렇구나. 그렇게 된 거구나.

         

        돌아가면 제대로 말 안 해준 엘프놈부터 추궁해야겠는걸. 나는 입꼬리를 슬며시 올렸다.

         

        “자퇴? 안 돼.”

        “왜?”

         

        딱히 댈 이유가 없을 땐 주제를 바꿔야 한다. 흔히 ‘그보다도’라는 접속사로 시작하는 문장을 사용할 때가 됐다는 뜻이다.

         

        “그보다도, 창고에 있던 토카막 가져간 거 너지?”

        “…어?”

         

        갑자기 바뀐 대화 주제에, 아카샤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정곡이었다.

         

        사실 추론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로테나 로르웰 선배가 내 물건에 굳이 손을 댈 리는 없었을 테고, 이는 저택에서 일하고 있는 시종들도 마찬가지였다. 무거운데다가 쓰임새도 유추하기 힘든 토카막을 뭐 하러 도둑질 해 가겠어?

         

        내가 없었던 동안 다른 외부인이 없었다고 가정한다면 얘가 범인이다. 나와 똑같이 생겼고 하는 짓도 똑같으니, 토카막을 봤을 때 보이는 반응도 똑같겠지.

         

        ─ 와, 득템!

         

        분명 이러면서 가져가려고 했을 것이다. 내가 물리학자인 것과는 별개로, 원래 에테르도 토카막을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던 것 같았으니까.

         

        “토, 토카막 말이지?”

        “약어로 말했는데, 너 뭔지 아는구나.”

        “그럼. 언니가 그렇게 부르라고 했었잖아. 그때 나도 같이 있었는데 어떻게 잊겠어.”

         

        잠깐 당황했던 아카샤의 눈빛이 다시 총명해졌다. 뭔가 꿍꿍이가 생긴 모양이다. 아카샤는 로테가 있는 쪽을 힐끔거리며 말을 이었다.

         

        “아, 그때 기억나네. 자기장을 가둘 수 있는 장치를 만들겠다고 언니가 벼르고 또 벼렸잖아. 그러다가 도저히 안 돼서 고민하던 중에 어디서 영감을 얻었는지 알아?”

        “뭔….”

        “엘프 말이야, 엘프. 친구 만나러 거기 갔을 때 우연히 한 엘프가 언니가 만들던 거랑 비슷한 마도구를 만들고 있다는 걸 알고 몰래 뒤쫓았었잖아. 그때 언니… 조금 변태 같았어.”

         

        시발? 이 몸의 원주인이 연구 때문에 스토킹을 하고 다녔다고? 이거 단단히 미친 년인데?

         

        아니, 설마겠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어조는 평소와는 다르다. 논리적인 근거는 없지만 나는 아카샤가 거짓을 섞어 말하고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그나저나 언니가 기억을 잃고도 토카막을 연구하고 있을 줄은 몰랐어.”

         

        이 녀석, 자세히 보니까 구사하는 화법마저도 나와 똑같다. ‘그나저나’라는 표현을 역이용해서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주제를 은근슬쩍 돌린 것이다. 이대로라면 대화의 주도권을 빼앗기게 된다.

         

        나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요구할 것을 요구했다.

         

        “그런 얘기는 됐으니까, 토카막 가져간 거 너면 다시 돌려 줘.”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카샤는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났다. 스윽, 그녀의 금색 눈동자가 로테의 얼굴을 훑었다. 말할 틈을 계속 놓친 로테는 계속해서 얕은 신음만을 흘렸다.

         

        아카샤는 나에게서 수 미터 떨어졌다. 처음에 비하면 꽤 먼 거리였다. 서재를 경유하는 문은 이곳 하나인데, 뭐 하러 뒤로 거리를 벌리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앞으로 한 발자국 걸어가려던 찰나.

         

        “흐음, 토카막을 돌려달라고?”

         

        아카샤가 슬쩍 입매를 비틀었다.

         

        “싫은데?”

         

        그리고는 창문을 부수고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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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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