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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8

       “……벨라 씨 때문이었어.”

        

       클레어의 그 말에 나와 앨리스는 한순간 눈을 마주쳤다.

        

       혹시라도 레오와 클레어가 벨라의 정체에 대해 의심하고 있는 걸까? 솔직히 벨라의 연기는 완벽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렇게 말하면 오지랖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어제 벨라 씨를 만났을 때 느낀 게 있거든. 우리는 벨라 씨를 도와주고 싶었어.”

        

       아무래도 먹혀도 너무 잘 먹힌 모양이다.

        

       조금 긴장한 듯 힘이 들어갔던 앨리스의 어깨에서 힘이 조금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벨라 씨는 못 찾았고, 어쩌다가 너희한테 눈이 간 거야.”

        

       “용케도 알아봤네.”

        

       “알아보지 못하는 쪽이 더 이상하지 않아?”

        

       클레어는 코웃음을 치며 내 쪽을 보았다.

        

       앨리스는 몰라도 나는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다는 자신감인 모양이었다.

        

       아니지, 시간을 돌리기 전에도 앨리스, 클레어, 레오가 한 번에 쏟아져 들어왔던 것을 생각하면 클레어는 앨리스도 한 번에 알아봤을 것이다. 원작에서는 레오가 ‘아니겠지’하고 넘어갔던 것도, 클레어는 확실하게 짚고 넘어갔을 테니까.

        

       “…….”

        

       잠깐 이야기가 끊어졌다. 별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복도를 지나가는 바니걸이 한 명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면을 벗은 우리 둘의 얼굴을 흘끗 보긴 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지나갔다. 아마 아직도 내 손에 들려있는 지폐를 본 거겠지.

        

       가면을 쓰는 것이 의무는 아니다. 그냥…… 이런 복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한테 자기 정체를 보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었을 뿐이다.

        

       돈을 받았다면 얼굴 정도는 보여줄 수 있는 거니까.

        

       “그래서, 이제 어쩔 거야?”

        

       우리 곁을 지나가는 여자를 바라보다가, 슬슬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까지 멀어졌다고 판단했는지 클레어가 입을 열었다.

        

       “……내가 돌아가 달라고 해도 너희는 안 돌아가겠지?”

        

       “그렇지.”

        

       앨리스의 말에 클레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레오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클레어의 시선을 받은 레오도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앨리스는 한숨을 푹 쉬었지만, 그렇게 기분 나쁘다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럼, 나한테 협조해주겠어?”

        

       앨리스의 제안에 클레어와 레오는 잠깐 눈을 마주친 뒤 다시 이쪽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기꺼이.”

        

       두 사람의 대답을 듣고, 앨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두 사람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레이스 가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이야기를 계속 이어 나갔다.

        

       “내가 얻은 정보에 의하면, 여기에 첩자가 한 명 숨어있어.”

        

       “첩자?”

        

       첩자라는 말에 클레어의 표정이 바로 진지하게 변했다. 그건 레오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우리 몸을 제대로 못 보겠다는 듯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던 레오는 지금은 우리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과연 그레이스 가. 황제의 진정한 충신 가문 중 하나.

        

       “응. 하지만 그 첩자가 하려는 일이 뭔지는 정확하게 몰라. 다만…… 국적을 생각하면 아마 지보에 관련된 이야기겠지.”

        

       벨라가 그렇게까지 상세한 정보를 주지는 않았을 텐데, 앨리스는 지금 나름의 추론으로 사실에 꽤 근접한 결론을 끌어냈다.

        

       하긴, 법국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고 있다면 그렇게까지 어려운 추론은 아니리라. 제국 정보부도 바보는 아니었으니까.

        

       “지보?”

        

       하지만 그런 종류의 정보에 접근할 권한이 없는 클레어와 레오는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자세한 건 나중에 알려줄게. 우선은 눈앞의 정보원을 잡는 게 먼저야.”

        

       “그 정보원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어?”

        

       “응.”

        

       앨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눈에는 의지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조금 전에도 봤으니까. 지금 얼른 나가면 아직 있을지도 몰라. 레오, 네가 해줬으면 하는 일이 있는데.”

        

       앨리스의 부름에 레오가 눈을 깜빡였다.

        

       레오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앨리스는 내 손에 그때까지도 들려있던 파운드화를 잡아챘다. 그리고 이제는 차갑게 식은 그 지폐를 레오의 손에 들려주었다.

        

       “……이것 좀 빌릴게.”

        

       그리고 클레어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클레어는 앨리스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차렸는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무슨 의미인지는 알겠는데…….

        

       내 가슴 사이에 꽂혀있던 돈이라고 생각하니 영 꺼림직하게 느껴지는 건 내 생각이 이상해서는 아니겠지?

        

       *

        

       그 뒤로는, 의외로 내가 여기 왔을 때와 상황이 비슷하게 흘러갔다.

        

       원작에서는 레오가 앨리스를 마주쳤던 첫날에 앨리스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정확하게 나오지는 않았다. 아마 그 이후에 이어진 스토리를 보면 별다른 소득은 없었을 거다.

        

       하지만 여기서는 도와줄 사람들이 꽤 많았다. 특히 대놓고 남자인 레오가 섞여 있었으니까.

        

       “술이라도 한잔 마실래?”

        

       “……시끄러워.”

        

       잔뜩 긴장한 레오에게 클레어가 작게 물었다. 조금 전과는 다르게 클레어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정당하게 구한 것은 아니고, 술에 잔뜩 취한 채 비틀대다가 누군가 떨어뜨린 걸 슬쩍 주워 왔다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가면을 쓰고, 마치 조금이라도 퇴폐한 분위기로 보여야 한다는 듯 교복 단추를 몇 개 정도 풀고 있는 클레어는, 참 신기하게도 원작의 클레어 같은 분위기가 조금 풍겼다.

        

       물론 그런 분위기로도 숨길 수 없는 성실한 분위기 때문에 정말로 아주 조금만 풍겼을 뿐이지만. 특히 저 머리카락을 풀어 내리지 않는 이상은 아마 그런 분위기는 절대로 나지 않을 거다.

        

       “저기 있다.”

        

       “아, 저 사람…….”

        

       다시 가면을 쓰고 침착함을 되찾은 바니걸 앨리스가 손가락으로 키아라 베라티를 가리키고, 클레어가 깜짝 놀라 중얼거렸다.

        

       그럴 만 하지. 첫인상이 그렇게 껄렁해 보이던 사람이 사실은 성당 기사단의 일원이라고 한다면, 사실을 모르던 사람은 깜짝 놀랄 것이다. 게다가 성당 기사단의 여성들은 모두 수녀이기도 하니까.

        

       그런 사람이 저렇게 바니걸 차림에 가슴에 반짝이까지 뿌리고 있다고 하면 아무도 모를 수밖에.

        

       그런 의미에서 법국은 정말로 제격인 사람을 골랐다. 다른 광신도들은 저런 역할에 절대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겠지만, 저 신자 코스프레만 하는 사람이라면 기꺼이 저런 일을 맡을 테니까.

        

       목숨 걸고 싸울 수 있다면 더 기쁘게 맡았을 거고.

        

       “…….”

        

       지금 이 자리는 앨리스가 지휘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내가 이렇게 바니걸 차림이 되는 것을 감수한 것도 앨리스가 원하는 대로 해주기 위해서였으니까.

        

       뭐, 그래도 제대로 된 사람을 찾아서 다행이다.

        

       제국 정보부가 무능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아니면 벨라가 유능한 걸까.

        

       “어때, 할 수 있겠어?”

        

       앨리스의 질문에, 긴장으로 빳빳하게 굳어버린 얼굴이긴 했지만, 레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러면…….”

        

       앨리스가 그렇게 말하고, 레오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갔다. 나는 그 앨리스와 조금 떨어졌지만 필요할 경우 순식간에 달려갈 수 있을 법한 곳에 서 있었고…… 클레어는 내 근처에 딱 붙어있었다.

        

       …….

        

       음.

        

       조금 불편한 기분이 드는데.

        

       클레어가 자꾸 나를 지키려고 하는 것 같아서 영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아무리 그래도 체감상 나보다 한참 어린애가 나를 지키려고 하는 거니까…….

        

       정신 차리자.

        

       지금은 집중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찝찝함은 나중에 몰아서 느껴도 된다.

        

       만약 일이 실패하면 되돌려도 되긴 하지만.

        

       왜일까.

        

       나는 지금 이 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설령 레오나 우리 중 한 사람이 실수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기분을 느끼며, 나는 조금은 불안한 마음으로 같은 쪽 다리와 팔이 동시에 앞으로 나가는 레오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

        

       결과만 두고 보면, 작전은 성공했다.

        

       다만 레오의 정신에는 회생 불가능한 데미지가 가해진 것 같다.

        

       바니걸한테 화대를 주면서 손을 너무 떨어서 돈을 가슴 사이에 꽂지도 못 한 채 떨어뜨려, 바니걸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그 돈을 줍게 했다면 얼마나 쪽팔릴까.

        

       최소한의 자비로 시간을 돌려 한 번 더 기회를 줘야 하나 고민해봤지만, 사실 똑같은 사람이 똑같이 가봐야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이 뻔했으니 그냥 모른 척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레오만의 잘못은 아니었다. 지폐가 내 가슴 사이에서 습기를 양껏 흡수해서 빳빳하게 서지 않았던 것이 문제 중 하나였으니까.

        

       아마 주워 든 지폐가 축축했다는 것도 키아라 베라티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던 이유 중 하나이리라.

        

       그래도 뒤쪽에 있던 우리를 진작 눈치채고 있었는지 얌전히 따라와 주긴 했지만.

        

       그리고 그렇게 돌고 돌아서, 우리는 내가 시간을 돌리기 전에 왔던 곳까지 오게 되었다.

        

       복장이랑 대화를 주도하는 사람이 바뀌기는 했지만.

        

       “그래서, 황녀님께서 그런 차림으로 무슨 일이야?”

        

       그렇게 말한 키아라 베라티의 눈이 내 쪽으로 슬쩍 돌아오더니,

        

       “아니, 황녀님‘들’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질문을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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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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