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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8

       이건 어렵겠는데.

         

       파스텔은 부유 동산의 끄트머리 바위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었다.

         

       대공동의 지상을 덮은 녹색 수목과 떠다니는 동산들이 시야를 넓게 가렸다. 그 사이로도 저 너머에서 새를 타고 비행하는 검은 인원들이 빈번히 눈에 들어왔다.

         

       으아.

         

       교단원 너무 많은 거 아니야?

         

       일단 아기새를 타고 순찰의 시선을 피해 조심스럽게 올라오긴 했지만 더 접근하는 게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바위 뒤에 다시 숨었다.

         

       “여기 밤은 언제 찾아와요? 동굴 천장에 태양이 떠 있는데요.”

         

       신비로운 뭔가인지 눈부시지 않게 대공동을 밝혔다. 저것만 없으면 어두컴컴할 테니 몰래 접근해 볼 만할 텐데.

         

       같이 숨은 악마가 머리를 내밀었다.

         

       『신이 만든 건가.』

       “태양의 위치가 정중앙 천장에 있는데 지금 시간이랑은 안 맞지 않아요?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지만 저건 점심 12시쯤에나 있을 위치잖아요.”

         

       태양은 태양인데 그냥 전구처럼 달린 거 같다. 그렇다고 밤이 되면 딸깍이며 꺼질지는 모르겠네.

         

       『저건 괴이한 상태군. 신학적 해석을 고려하면 성지에 있는 태양이 저렇게 고정되어 있을 리는 없어. 교단의 수작이다. 본래 시간에 맞춰 움직였을 태양을 강제로 고정시킨 걸 테지.』

         

       오오, 그렇구나.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접근하긴 어렵겠네.

         

       악마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좋지 않은 징조군. 악신의 영향력이 강해졌든 성지의 시스템에 간섭할 역량이 생겼든 뭐든 간에 교단이 위험한 역량을 갖췄어.』

         

       악마가 턱을 문질렀다.

         

       『분명 10년 전 그 고생을 하며 우리가 몰락시켰을 텐데 어찌 이렇게…….』

         

       파스텔은 과거사에 잠긴 악마를 잠시 보다가 아기새들을 돌아봤다.

         

       “여기 밤은 있어?”

       ―삐약.

         

       아기새의 머리가 저어졌다.

         

       “별수 없네. 돌아가 친구들과 재합류할까.”

         

       올라탄 부유 동산이 교단의 근거지로 움직이고 있긴 해도 교단원이 저리 많으면 그냥 이쯤에서 포기하는 게 맞겠다.

         

       하늘고래 때처럼 숨어들기에는 교단이 너무 탁 트인 부유 동산들에서 활동 중이네.

         

       파스텔은 팔짱을 끼고 고심했다.

         

       기사단 조사를 이쯤에서 마무리해도 문제는 없긴 하지. 교단의 존재가 확실해졌으니까.

         

       물증은 당장 손에 없지만 권력은 있으니 기사단 압박과 조사를 강행하면 하늘섬의 권력을 일원화하는 게 가능하겠다.

         

       모든 권력을 아카데미로~!

         

       독재가 아니니 안심하세요!

         

       매우 흐뭇한 결과.

         

       하지만 살짝 꺼림칙한 건 있다. 이 작업을 속행해도 이틀은 걸릴 듯싶었다. 기사단 스파이로 들킨 걸 파악했을 교단이 그동안 무슨 짓을 할지가 문제다.

         

       교단이 아무것도 안 하고 도망칠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것대로 아쉬워.

         

       “저희끼리 슥삭슥삭 못할까요?”

         

       도와줘, 호르몬 친구.

         

       『흠?』

         

       악마가 생각에서 깨어났다.

         

       『아, 미안하다. 무슨 얘기 중이었지?』

       “교단 폭파 대작전이요.”

       『벌집 쑤시는 행위가 될 테지만 정면으로 충돌해 보는 건 가능하다. 이 아기새들은 둥지로 돌려보내고 말이다.』

         

       의미 없는 벌집 쑤시기는 좀…….

         

       ―삐야악?

         

       어차피 교단의 인증을 받은 거주자라 그냥 대놓고 밖을 구경 중이던 아기새의 부리가 벌어졌다.

         

       “왜 그래?”

       ―삐약! 삐약!

         

       날개가 어딘가를 가리켰다.

         

       파스텔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교단의 구역에 아까는 보이지 않던 검은 연기가 천장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오잉.

         

       돌연 폭발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비행하던 교단원들이 혼란스럽게 휘청이더니 진원지로 날아갔다. 무슨 일이냐는 의문 섞인 고함이 들려왔다.

         

       오이잉.

         

       “연금술 실험이라도 실패했을까요?”

         

       악마님께 포션 제작 배우던 파스텔처럼?

         

       그러게 누가 마석 각성제 같은 약물을 만들어 팔래. 바보바보. 인과응보다.

         

       악마의 미간이 좁혀졌다.

         

       『저건 공격 마법이다. 외부 습격이야.』

         

       으헤?

         

       파스텔은 표정이 묘옹~해졌다.

         

       각종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다가 몸을 움직이게 했다.

         

       “이 틈에 침입하죠!”

         

       동산의 건축물로 달렸다. 하얀 신전이 쏜살같이 가까워졌다. 문을 벌컥 열었다.

         

       『무엇을 하려는 거지?』

         

       악마와 아기새들이 서둘러 뒤쫓았다.

         

       “신성 모독이 아니길 빌게요!”

         

       파스텔은 내부로 들어가 대뜸 커튼들 잡아당겼다. 커튼이 힘을 못 버티고 커튼 봉에서 뜯겨 나왔다.

         

       “이렇게 된 거 아기새 친구들의 협조도 있으니 차라리 대놓고 날아가요! 얘들아! 와봐! 와봐!”

       ―삐약?

         

       병아리 몸체의 목 부분에 긴 커튼을 둘러맸다.

         

       “이렇게 이렇게!”

         

       파스텔은 아기새에 올라탔다. 그리곤 커튼을 정리해 몸을 가렸다.

         

       “숨어서 날아가죠!”

         

       아기새 친구는 어차피 여기 거주자라 대놓고 날아가는 것 자체는 문제없으니까.

         

       『호오. 커튼을 두른 새인가. 관심받기 좋겠군.』

         

       후후.

         

       “하지만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면 이미 신원이 검증된 아기새에 굳이 관심을 가지기엔 너무 바쁘죠!”

         

       그랬다간 지금 그런 거 구경할 때냐며 상관에게 혼나기 딱 좋다.

         

       파스텔은 머리카락을 내밀어 하얀 커튼에 비쳐 보이는지 확인했다. 분홍 실타래가 선명했다.

         

       내 머리카락이 보기 예쁜 건 좋은데 이럴 땐 곤란하단 말이야.

         

       “한 겹으로는 부족하네요!”

         

       아기새에게서 내려왔다.

         

       “다음 커튼! 다음 커튼!”

         

       악마가 손을 뻗었다.

         

       『기다려 봐라. 커튼은 그런 식으로 분리하는 게 아니다.』

         

       손길이 커튼을 올리듯 흔들었다. 능숙한 손놀림에 커튼 봉의 매듭이 단번에 풀렸다.

         

       『옛날 대신전의 커튼과 매듭이 같군. 받아라.』

         

       우왕.

         

       커튼 빨래한 경력이 묻어나오는 손길!

         

       사실 파스텔은 이럴 때를 위해 악마님에게 빨래를 전담시켰던 거야!

         

       선견지명!

         

       “좋았어요! 어서어서 하세요!”

         

       파스텔은 커튼으로 아기새 꾸미기에 열중했다.

         

       매듭매듭.

         

       “목이 너무 조이면 말해.”

       ―삐약.

       “어? 벌써 목이 조인다구?”

       ―삐야악.

       “아니라구? 알겠어.”

         

       바람에 흔들리지 않을 무게도 고려해 넉넉하게 열 겹을 묶었다. 아기새가 사람만 한 거대 병아리라 가능한 개수였다.

         

       준비를 끝낸 파스텔은 아기새에 올라탔다. 커튼을 꼼꼼히 덮었다. 커튼을 왕창 두른 아기새가 동산 끄트머리로 걸어갔다.

         

       “악마님도 탑승 끝났죠?”

       『그래.』

         

       아기새를 툭툭 건드렸다.

         

       출발! 출발!

         

       ―삐약!

         

       아기새가 힘차게 폴짝 뛰었다. 통통한 병아리 몸체가 땅을 벗어나 허공에 닿았다. 그리곤 그대로 추락했다.

         

       오잉.

         

       중력감이 몸을 휩쓸었다.

         

       우와악?!

         

       ―삐야악?!

         

       아기새가 전력으로 날개를 파닥였다.

         

       ―삐약! 삐약! 삐약! 삐약!

         

       파닥파닥 파닥파닥.

         

       추락이 잦아들고 조금씩 떠올랐다.

         

       허어억.

         

       파스텔은 빠르게 뛰는 심장을 눌렀다.

         

       “죽는 줄.”

         

       너 좀 다이어트해야겠다.

         

       ―삐약.

         

       아기새가 민망해하며 느린 비행을 시작했다.

         

       『괜찮나?』

       “괜찮아요.”

         

       교단의 근거지로 다가갈수록 소란이 가까워졌다. 교단원들의 웅성거림이 아주 잘 들리기 시작했다.

         

       -기사단의 습격이다!

       -기사단? 부기사단장은 뭐하고?!

       -걔네가 우리 위치는 또 어떻게 안 건데?!

         

       새를 탄 교단원이 근처를 지나쳤다. 경황이 없는지 특별한 패션의 아기새는 언급도 없었다.

         

       파스텔은 조용히 숨죽였다.

         

       기사단?

         

       그 일 못하는 기사단이?

         

       사실 아카데미의 간섭없이도 자정 작용이 이루어지는 곳이었던 거야?

         

       교단원의 기척이 사라지자 커튼을 조금 들췄다. 틈 사이로 소란의 진원지를 살펴봤다.

         

       우거진 숲이 검격에 한차례 휩쓸려 있었다. 쓰러진 수목이 불타며 혼잡했다.

         

       그 중심에서 정말 검은 갑옷을 차려입은 기사단이 존재했다. 마법 지팡이가 질서정연하게 상공으로 탄환을 쏘았다. 번개와 화염이 작렬했다. 교단원들이 추락하며 비명을 질렀다.

         

       이게 무슨 일?

         

       바로 눈에 띄는 존재들이 있었다. 진형의 중심부에서 기사단장과 멜리사가 굳은 표정으로 얘기 중이었다.

         

       허억.

         

       나의 절친 멜리사!

         

       중간 과정은 모르겠지만 일을 잘했구나!

         

       ―삐야악?!

         

       같이 힐끔힐끔하던 아기새가 뭔가를 봤는지 기겁했다.

         

       자세히 보니 멜리사 옆에 다른 인원들도 있었다.

         

       앨시어와 웬 아기새가 똑같이 짐가방을 메고 눈싸움했다. 둘이 대화는 없이 눈싸움만 하는 중이었다.

         

       저기도 아기새.

         

       오잉.

         

       파스텔은 문득 깨달았다.

         

       얘네 세 마리였지!

         

       분명 하늘고래에서 만났을 땐 분명 세 마리였어!

         

       그때도 한 마리가 갑자기 실종되며 혼자 비공정 폭발시키고 아주 사고를 쳤는데!

         

       저 아기새 친구 여태 버릇을 못 고쳤구나!

         

       하지만 결과가 좋으니 괜찮아!

         

       파스텔은 아기새를 토닥였다.

         

       “걱정 마. 저긴 내 친구 멜리사가 있으니까 네 자매? 남매? 하여튼 아기새 친구도 안전할 거야.”

       ―삐약.

         

       저쪽이 믿을만하니 우리는 침입을 넘어서 양동작전을 해도 되겠다.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악마님께 배운 대로 소란과 소음을 광범위한 인기척으로 바꿨다. 삼차원 이미지가 연상되며 교단원의 형상이 무수히 그려졌다.

         

       모두의 이동 경로를 그리고 시간을 들여 차분히 관찰했다. 불필요한 정보를 소거법으로 하나씩 배제하며 정리했다.

         

       전령인 듯한 교단원의 경로가 뚜렷하게 인식됐다. 기사단 교전지와 어느 하늘 동산을 빠르게 오가는 경로였다.

         

       지휘부 발견.

         

       “지휘부 칠게요.”

         

       혼란, 무질서, 지휘 체계 마비.

         

       『탁월한 전술이다.』

         

       지휘부로 비행했다. 지키던 교단원들이 의아해하며 접근했지만 무시하고 동산에 착륙했다.

         

       모두가 경계하는 가운데 커튼이 열렸다. 소녀의 모습이 드러났다. 멍한 시선이 쏠렸다.

         

       소녀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지면에 발을 디뎠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분홍 머릿결이 굽이쳤다.

         

       “저 알죠?”

         

       분홍 눈동자가 주변을 둘러봤다.

         

       “먼저 죽으실 분?”

         

       검이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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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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