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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8

       엘라는 <빵과 서커스>의 한 페이지를 펼쳐 들었다.

       그곳에는 <크리스티앙 가이드>에서 별 3개를 받은 서커스단들에 대한 특집호가 실려 있었다.

         

       흑백 사진 하나 덜렁 걸려 있던 우리 페이지와 달리 컬러 사진까지 붙어 있는 데다 종이 재질도 번들번들한 것이 훨씬 고급스러워 보였다.

       화가를 통해 물감으로 후보정했는지 사진에 찍힌 인물들의 모습 역시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그녀는 기사의 내용을 간추려 우리에게 전달해주었다.

         

       첫 번째는 ‘황금 카니발’이라는 곳이었다.

       그곳은 별을 3개 받은 곳 중 유일한 기획형 서커스단이었다.

         

       샛별 서커스 때문에 ‘기획형’이라고 하면 뭔가 근본이 없고 얄팍한 이미지였는데, 이곳은 샛별과는 그 규모나 지원에 있어서 차원을 달리하는 곳이었다.

         

       오랫동안 대형 극장을 운영해온 경험이 있는 전문 경영인이 관리를 맡았고, 도시 간 이동을 위해 서커스단 자체적으로 비행선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단원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전문 의료팀까지 딸려 있었다.

         

       단원들 역시 다른 서커스단의 단장들과 비교될 만큼 유명한 곡예사들이었다.

         

       나는 잡지에 실린 사진을 바라봤다.

       외알 안경을 끼고 있는 중년 남성이 멋들어진 콧수염을 세우고 있었다.

         

       현 서커스 업계의 정점에 선 남자, 마술사 ‘로드 판타스틱’.

       그가 바로 황금 카니발의 단장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은 평생에 하나도 얻기 힘들다는 인스피라를 무려 4개나 지니고 있었다.

         

       정점이라…….

       나는 왠지 모를 승부욕을 느꼈다.

         

       두 번째 3성 서커스단은 ‘레카체프 25’였다.

       그곳은 서커스 명문인 ‘레카체프 서커스 학교’ 출신들로 구성된 곳이었다.

         

       입단할 수 있는 사람은 매년 1명.

       그해의 수석 졸업자뿐이었다.

       

       즉, 레카체프 25는 1기 수석 졸업생부터 25기 수석 졸업생까지 25명의 곡예사로 이루어진 서커스단인 것이다.

         

       “다만, 올해의 26기 수석 졸업자로 알려진 학생은 입단을 거절한 것으로 밝혀졌다. 소문에 의하면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기사를 읽는 엘라의 표정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작은 시골에 있던 서커스 학교 출신이었다.

       명문 서커스 학교의 수석들로 이루어진 서커스단이라니까 아무리 당찬 그녀라도 뭔가 밀리는 느낌을 받는 것 같았다.

         

       3성 서커스단 중 마지막은 ‘바퀴의 서커스’라는 곳이었다.

       그곳은 유랑민족인 집시들의 전통 서커스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서커스단이었다. 4천 명의 부족민 전원이 서커스단 소속이라고 하니 그 규모 하나만은 세계 최대라 할 수 있었다.

         

       나는 엘라의 설명을 들으면서 아는 이름이 나올 때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TT1에서 그들 중 일부는 서포터로 나오고 일부는 정신이 오염당해 적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이 몸 담은 서커스단의 내력에 대해 자세하게 듣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업계 일인자를 중심으로 1류 프로들로 조직된 황금 카니발.

       초엘리트 소수 정예 집단인 레카체프 25.

       가장 크고 오래된 바퀴의 서커스.

         

       어느 곳 하나 만만한 곳이 없어 보였다.

         

       만약 우리가 카바레의 대결에서 저들과 붙었다면 배지를 딸 수 있었을까?

       샛별을 상대로도 아슬아슬한 승부를 했던 우리였다.

       아마도 이기는 건 절대로 불가능했을 것이다.

         

       나는 엘라를 바라보며 곤란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3달 전, 그녀가 자신만만하게 내뱉었던 말이 떠올랐다.

       그녀는 내가 쓴 대본을 100% 소화할 수만 있다면 우승도 가능하다고 했다.

         

       “저 3곳을 상대로 해도 이길 수 있을까요?”

         

       기사를 읽고 나서 멍하게 서 있던 그녀가 나를 슬쩍 바라보더니 진지하게 표정을 고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엘라 양은 저들의 실력을 모르지 않아요?”

         

       내 질문에 그녀는 잠시 인상을 찌푸리더니 기억을 더듬는 사람처럼 먼 곳을 바라봤다.

         

       “몇 년 전에 레카체프 25의 공연을 본 적이 있어. 물론 그때는 레카체프 22라는 이름이었지만.”

       “그랬군요,”

       “그때 기준으로 점수를 매겨보자면……음, 88% 정도?”

         

       88%라.

       과연 별을 3개 받을 만한 곳이었다.

       그녀의 입에서 나왔던 점수 중 가장 높았다.

         

       “22명이 88%였다면 1명당 4%. 지금은 25명이니 100%겠군요?”

         

       나의 말에 엘라가 볼멘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엉터리……. 그런 식으로 계산하는 게 어딨어?”

       “하하, 그래도 인원이 3명 늘어났으니 그때보다 더 발전했겠죠?”

       “아마 그렇겠지. 어쩌면 90% 이상이 됐을지도……. 만약 26번째가 들어갔다면 진짜로 100%가 됐을지도 모르지만…….”

       “네?”

         

       나의 반문에 엘라는 찔끔 놀란 얼굴로 고개를 붕붕 저었다.

         

       “아, 아냐. 아무것도……. 어쨌든 예선전이 종료되는 건 내후년 5월 31일이야. 우리는 더 노력해야 해.”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메인 퀘스트의 종착점은 멀지 않은 듯하면서도 아직 한참 남아 있었다.

         

       점심 먹은 자리를 정리한 우리는 다시 마차에 올랐다.

       산에 걸친 고갯길은 평소보다 해가 빨리 졌다.

       숲속에서 노숙하고 싶지 않으면 길을 서둘러야 했다.

         

       “단장님!”

         

       막 마차를 출발시키려는데 유라크네가 나를 향해 달려왔다. 그녀는 품에 익숙한 보온병을 안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본 순간 탄식을 내뱉을 뻔했다.

       그 보온병은 내가 지난 3달 동안 애용한 물건이었다.

       그리고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물건이기도 했다.

         

       “아까 시간 내서 차를 타봤어요.”

         

       그녀가 활짝 웃으며 보온병을 내밀었다.

       나는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쉬지 않고…….”

         

       나는 진심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서 말했다.

       그녀는 다 안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여행을 시작하고 나서 단장님이 차를 찾지 않으셨잖아요. 헤헤, 저를 배려해서 그러신 거 다 알아요.”

         

       ‘아닌데……. 정말 마시기 싫었는데…….’

         

       내가 더는 차를 마시지 않는 것은 그녀의 호감도 15 보상이었던 ‘유라크네의 정성’ 퀘스트를 완료했기 때문이다.

         

         

       *서브 퀘스트-유라크네의 정성

       : 유라크네는 당신이 차를 마실 때마다 점점 더 깊은 정성을 우려냅니다.

         

       달성조건

       : 유라크네가 직접 끓인 차를 1000잔 마시기 (단, 1시간 이상 간격을 둘 것.)

         

       성공 시 보상

       : 1잔당 [유라크네의 정성] +0.1% 증가

         

       실패 시 페널티

       : 없음

         

         

       그녀의 호감도 15를 달성하자 추가되었던 퀘스트.

       무려 3달 동안 열심히 차를 마신 덕분에 나는 1000잔을 채울 수 있었고, 덕분에 그녀가 제공해주는 특성인 ‘유라크네의 정성’을 최고 레벨로 올릴 수 있었다.

         

         

       특성: 유라크네의 정성

       적용 대상: 유라크네가 직접 끓인 차

       효과: 차를 마시면 원더스타인의 3대 기본 능력치가 1시간 동안 100% 증가합니다.

       요구 조건: 유라크네의 호감도 15

         

         

       3대 기초능력치가 1시간 동안 2배로 증가한다니.

         

       처음에는 좋은 특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공연 준비에 들어가니 전투력은 써먹을 데가 없었다.

         

       더 힘이 세지고 더 단단해져 봐야 뭐하겠는가.

       내 목표는 서커스 그랑프리에 진출하는 거였지 세계정복 같은 게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퀘스트를 치워야 마음이 놓이는 게이머의 본능 덕에 어떻게 마셔대긴 했지만 괴롭기 그지없었다.

         

       완료된 퀘스트 창을 보고 더는 차를 마실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뿌듯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유라크네는 내가 차를 마시는 것을 참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이렇게 몰래 차를 타다 준 것이다.

       나를 보며 생글생글 미소 짓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차마 필요 없으니 가져가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동안 나를 위해 1000잔의 차를 타준 그녀의 정성을 생각해서 나는 그녀가 내민 보온병을 받아들였다.

         

       “아껴서 마시겠습니다. 그러니……앞으로는 이동 중에는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헤헤, 네, 단장님!”

         

       기분 좋은 콧소리를 내며 멀어져가는 유라크네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차가 담긴 물병을 망토 안주머니에 찔러넣었다.

         

       우리는 바다를 오른쪽에, 산을 왼쪽에 두고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따라 달렸다.

         

         

       ***

         

         

       마야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가 산 너머로 완전히 모습을 감춘 뒤였다.

       마차 안은 사람의 형체를 간신히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깜깜했다.

       그녀는 맞은편 좌석에서 쌕쌕거리는 숨소리를 들었다.

         

       여섯 개의 늘어진 팔.

       실루엣의 형태를 보니 유라크네였다.

         

       마야는 울렁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일어섰다.

         

       그녀는 잠깐 본 기억력을 바탕으로 머릿속에 완벽한 삼차원의 공간을 그릴 수 있었다.

       그렇기에 눈을 감는 것은 멀미의 완벽한 대응책이 되지 못했다.

         

       흔들림이 멈췄지만 메슥거림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녀는 마차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밖은 어두컴컴했다.

       마차에 걸린 등불의 빛이 간신히 앞을 분간하게 해주었다.

         

       마차를 몰던 랫맨들은 마부석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마야는 투레질치는 말들을 조심하며 앞으로 걸어갔다.

         

       무리의 맨 앞에 원더스타인이 서 있었다.

       그는 막 스벤과 밴딕에게 횃불과 꾸러미를 건네받은 참이었다.

         

       “아, 마야 양, 일어났나요?”

         

       원더스타인이 그녀를 보고 미소지었다.

       마야의 입에도 옅은 미소가 걸렸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잠에서 덜 깬 듯 뚱한 얼굴처럼 보였지만…….

         

       그녀는 원더스타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어디 가시는 건가요?”

       “마을에요. 목책 안 공터를 야영장으로 쓸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려고요.”

         

       괴물 단원들이 마을 안으로 출입하는 건 쉽지 않았다.

       도시하고 달랐다.

       규모가 작은 마을일수록, 그리고 대로에서 떨어진 시골일수록 외지인에게 배타적으로 굴었다.

         

       특히, 그들 같은 떠돌이들은 절대 무리 지어 들어오게 두지 않았다. 언제 떼강도로 돌변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괴물 단원들은 오죽할 것인가.

       목책만 빌려 쓸 수 있어도 감지덕지한 일이었다.

         

       이 세계는 마귀들의 서식처인 어비스와 미약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언제 어디서 공간의 장벽을 찢고 마귀가 출몰할지 몰랐다.

         

       사람의 영적 자취가 강하게 남은 곳일수록 그럴 확률이 낮았다.

       그리고 어둡고 영적인 힘이 미약한 곳일수록 그럴 확률이 높았다.

         

       밤의 숲이 그런 곳이었다.

       물론 확률이 높다고는 해도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위험한 마귀와 마주칠 확률은 매우 낮았다.

       대부분은 살쾡이 따위에게 물리고 어비스로 쫓겨나는 미약한 놈들뿐이었다.

         

       마을 근처에서 자려는 가장 간절한 이유는 어비스의 마귀보다는 날벌레와 밤이슬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게 맞았다.

         

       그동안 멀미 때문에 늘 마차 안에서 골골거리고 있던 마야였다.

       원더스타인이 매일 잠자리를 구하느라 이런 수고를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루즈에서는 단원들이 그렇게 배척받는다는 느낌을 못 받았기 때문이다.

         

       “늘 단장님 혼자 가신 건가요?”

       “하하, 원래는 엘라 양이 함께 가곤 했는데, 오늘은 뭐 때문인지 중간에 잠도 안 자더니 지금 곯아떨어졌더군요. 그러니 혼자 가야죠. 사실 이렇게 해가 빨리 질 줄 몰랐어요. 산을 너무 얕봤군요.”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마야가 말했다.

         

       “제가 같이 갈게요.”

         

       원더스타인은 그녀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마차 안에서 쉬고 계셔도 되는데요.”

       “아뇨. 저 많이 잤어요. 그리고……마차는 싫어요.”

       “저야 심심하지 않아서 좋지요.”

         

       마야는 마차 안에서 얇은 외투를 두르고 나왔다.

       7월이었지만 북쪽으로 온 데다 산이 가까워서 그런지 밤에는 추운 편이었다.

         

       원더스타인과 마야, 두 사람은 불빛이 일렁이고 연기가 피어나는 곳을 향해 함께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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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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