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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8

       그림자 괴물에게 샤도우라는 이름을 지어준 뒤에야 돌아온 요정과 은화.

       

       문을 벌컥 열며 팔을 활짝 벌렸다.

       

       “저 왔어요! 엘리의 귀여운 예비 신랑 요나가요!”

       

       가게 전체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 소란스럽던 주점에 순간 정적이 울려 퍼졌으나, 그들의 시선이 내 쪽을 향하더니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왁자지껄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일부는 재밌다는 듯 껄껄 웃거나, 이게 뭐냐는 듯 옆 사람과 수군거리긴 했으나…딱 거기서 끝이었다.

       

       내게 무슨 최면 능력이 있어서 뭘 해도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게 아니다. 그냥 다들 익숙해져서 그런 거지.

       

       가끔 내게 집적대는 사람도 있긴 했는데…대부분은 엘리의 독점욕 펀치에 착해지더라고.

       

       이젠 그 소문이 나서 봐도 못 본 척하는 것 같지만.

       

       …봐도 못 본 척이라고 하니, 어디까지 허용되나 조금 궁금해지긴 하네.

       

       너무나도 무방비한 모험가 누나들의 엉덩이와, 그 근처에 매달린 지갑의 유혹을 뿌리치며 도착한 카운터.

       

       엘리가 한숨을 푸욱 내쉬며 내 정수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꽁.

       

       “아얏!”

       

       “들어올 때마다 소리 지르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응애. 나 아기 요나. 기억력 나빠.”

       

       “오, 그래도 스무 살이 되면 독립한다는 말은 기억하지?”

       

       “스무 살이 되면 야한 일 하자는 약속 아니었나요?!”

       

       꽁.

       

       “흐약!”

       

       “그런 약속 한 적도 없어! 그때도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겠다고 했지!”

       

       “에이. 저는 엘리를 믿어요. 분명 스무 살이 되자마자 술은 어른한테 배우는 거라며 잔뜩 취하게 한 다음에 이렇고 저런 짓을 할 생각인 거죠?! 빨간 책처럼! 빨간 책처럼…!”

       

       “…하! 이 패턴이 몇 번째인데 내가 또 당황해 줄 것 같아?”

       

       “하긴. 요즘 취향이 바뀌어서 그런 종류는 창고 깊숙한 곳에 숨겼죠? 최근에 사 온 게 뭐였더라…‘팝니다. 몰락영식. 한 번도 안 쓴.’의 만화판이었죠? 제가 드린 소설이 마음에 들었나 보네요!”

       

       “……큿!”

       

       분한 표정으로 입술을 짓씹는 엘리. 얼굴이 터질 듯 붉게 물든 것을 보아, 정곡을 찔려 부끄러운 게 분명하다.

       

       키득이며 그 앞에 앉자, 옆에서 소시지를 안주 삼아 맥주를 홀짝이던 리디아가 손을 흔들었다.

       

       “좀 늦었네.”

       

       “아직 계셨어요? 오래 걸려서 먼저 돌아가실 줄 알았는데.” 

       

       “엘리 선배가 2층에서 요나 네가 어떻게 싸웠는지 알려주면 맥주랑 안주를 공짜로 준다길래. 계속 말해주면서 계속 마시고 있었지.”

       

       “아하? 그래서 무슨 이야기 했나요?”

       

       “결국 칭찬. 2층이 비교적 쉬운 곳은 사실. 하지만 1층처럼 도는 건 불가능해.”

       

       “왜요? 미궁으로서의 난이도는 비슷하잖아요.”

       

       “응. 하지만 몬스터의 스펙이 달라졌잖아. 그리고 어지간하면 먼저 감지당하니 기습도 힘들어.”

       

       미궁으로서의 난이도가 비슷한 건 사실이나, 몬스터가 전체적으로 강해진 데다가 모험가는 시력에 의존하는데, 몬스터는 청각과 후각으로 적을 구분하니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제 실력을 발휘하기 힘들다고 한다.

       

       “저한테는 오히려 상성이 좋았는데 말이죠.”

       

       “맞아. 그러니까 방심은 금물.”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리디아.

       

       맞는 말이다. 아무리 소리를 먹는 발걸음으로 내 기척을 극한까지 줄일 수 있다 한들, 코볼트에게 실수로라도 한 대 맞으면 바로 중상인 건 사실이니까.

       

       “방어구를 하나 맞춰야 할까요?”

       

       “아직 괜찮아. 아이언 울프의 가죽은 철과 비슷하니까. 2층에서는 골렘이랑 계층 수호자만 조심하면 기껏해야 골절 선에서 끝나겠지.”

       

       “…골절도 무서운데용.”

       

       “안 맞으면 그만. 지금까지 그래왔잖아.”

       

       “…….”

       

       나에 대한 리디아의 취급이 어쩐지 대충대충인 것 같다.

       

       신뢰라면 신뢰지만, 마음이 아픈 것은 왜일까.

       

       입술을 삐죽이며 툴툴대고 있자니, 엘리가 내 앞에 따끈한 파스타에 고기를 몇 점 올린 접시를 내려놓았다.

       

       “배고프지? 베니가 밥을 잘 안 먹어서 걔네 집에서는 뭐 먹은 거 없을 거 아냐. 먹고 어여 자라.”

       

       “그러고 보니, 간식만 있지 식사류는 없었네요. 크림 파이는 참 맛있던데….”

       

       슥삭슥삭 소스를 비비며 그리 말하자 엘리의 표정이 묘해졌다.

       

       “크림 파이….”

       

       “세상에. 엘리 지금 무슨 생각한 거예요? 야한 생각 했죠? 맞죠? 이거 보세요. 리디아 님! 엘리가 방금 야한 생각 했어요!”

       

       “…요나. 애처럼 굴지 마. 엘리도 다 큰 어른. 욕구불만일 수도 있지.”

       

       “전 애 맞는데요?”

       

       “그럼 어쩔 수 없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시지를 포크로 찍어 입가에 가져다 대려는 리디아. 다만, 너무 얕게 찍은 걸까. 실수로 떨어진 소시지가 그녀의 가슴골 사이에 끼었다.

       

       “…뜨거워.”

       

       미간을 살짝 찌푸리는 리디아. 그녀가 손으로 소시지 대신, 자신의 가슴을 살짝 받쳐 들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가슴 사이에서 쏘옥 뽑아먹는 소시지.

       

       내 시선을 느낀 리디아가 자신만만한 태도로 손가락으로 V자를 그려 보였다.

       

       “브이.”

       

       “…….”

       

       설마 어차피 가슴으로 받은 거 그냥 손대지 않고 그대로 꺼내 먹은 건가? 뜨거운 데다가 기름까지 묻으니까?

       

       어이없어하는 사이. 리디아가 태연하게 티슈로 자신의 가슴을 닦기 시작했다. 윗부분은 물론이요, 안쪽까지 닦기 위해 가슴 사이를 헤집으면서.

       

       꼴깍.

       

       나도 모르게 넘어가는 침. 하지만 아쉽게도 이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요나.”

       

       “헙!”

       

       엘리가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으니까. …묘하게 숨결이 거친 걸 봐서는 반은 화나고 반은 흥분한 것 같지만.

       

       “베니의 공방에서 무슨 실험을 했니. 위험한 건 아니겠지?”

       

       “아, 그런 건 아니에요. 오늘 한 내용은 샤도우…그러니까 그림자 괴물이 절 좋아하는 이유를 알아내는 거였는데…….”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엘리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었다.

       

       촉수, 크림 파이, 호감도, 샤도우, 촉촉한 베니칩 쿠키….

       

       “마지막으로 혼자 읽어보라고 마법서도 하나 받아왔어요. 어려운 건 아니고 미약한 불꽃이랑 비슷한 기초마법들이 적힌 책이더라구요.”

       

       마법서. 라고 하기에는 꽤나 얇은 책을 품에서 꺼내 팔랑팔랑 흔들었다.

       

       기초마법뿐이고, 대단한 마법이 적힌 것도 아니지만 일단 마탑에서 반쯤 독점하는 지식이라 정가는 1골드나 된다나.

       

       그래서 베니도 그냥 주는 게 아니라 빌려주더라.

       

       까비아깝송….

       

       아예 준 거였으면 마법만 샤샥 익히고 바로 팔아서 가챠나 돌리는 건데.

       

       내 이야기를 듣던 엘리의 표정이 점점 풀어졌다.

       

       “뭐야. 조금 걱정했는데 잘하고 왔네.”

       

       “무슨 걱정을…아! 설마 제가 베니랑 바람피우는 생각이라도 했던 건가요?”

       

       “아니. 리디아면 모를까 베니는 걱정할 필요 없으니까 그 부분은 괜찮아. 손이나 잡겠지.”

       

       “…이건 이것대로 화나는데요?”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불만스러운 기색을 숨김없이 표하자, 엘리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베니의 사정을 들었다고 했잖아?”

       

       “그렇죠?”

       

       “베니도 그걸 신경 쓰거든. 혹시라도 다른 특성이 깨어날까 항상 조심하더라고.”

       

       “아.”

       

       베니가 이식받은 것은 서큐버스의 눈.

       

       그 탓에 베니는 소녀의 몸에 박제되었고, 그 대가라는 듯 마법적 재능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아무리 샤도우가 있었다고 하나, 제대로 된 저항 수단 하나 배운 적 없는 실험체가 황혼을 삼키는 자의 지부 하나를 날려 먹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하지만 베니는 몬스터의 힘에…정확히는 그 안에 깃든 광기의 신의 권능에 잠식당한 인간의 말로를 안다.

       

       몸이 견디지 못하고 뒤틀려 죽어버리거나, 완전히 미쳐버려 또 다른 몬스터가 된다.

       

       아직까지는 괜찮았지만,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장담은 없다. 점점 샤도우와의 동화도 심해지고 있으니까.

       

       “알겠어요. 베니는 좀 적당히 놀려야겠네요.”

       

       “…안 놀린다는 선택지는 없어?”

       

       “제 애정 표현이라 어쩔 수 없답니다. 그리고 솔직히 엘리도 좀 좋잖아요?”

       

       “…….”

       

       입을 꾹 다문 엘리의 모습에 낄낄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싹싹 비워진 파스타 그릇을 내밀며 한 손은 엘리를 향해 흔들고, 다른 한 손을 리디아의 등을 팡팡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그럼 저는 이만 올라가 볼게요! 피곤하기도 하고, 이걸 읽어보고 싶기도 하니까요!”

       

       기초 마법서를 툭툭 건드리자, 그제야 피식 입꼬리를 끌어올린 엘리.

       

       “애들이 잘 시간은 한참 전에 지났어. 어여 가봐라. 리디아 너도 슬슬 일어나고.”

       

       “에. 싫어. 엘리 선배 방 많잖아. 오늘은 재워줘. 맥주도 더 줘. 다음 안주는 찹스테이크로.”

       

       “너 혼자 몇 병을 마셨는줄 알아?! 퍼뜩 일어나 이년아!”

       

       투닥이는 엘리와 리디아를 뒤로하고 내 방으로 올라갔다.

       

       아무리 기초마법이라지만, 자기 전에 잠깐 읽은 걸로 익히는 건 무리겠지. 하지만 내용을 이해하는 정도는 가능하겠지.

       

       일단 읽어두고, 나중에 곱씹으면서 연습하면 그만이다.

       

       솔직히 가챠는 사도다. 운만 좋으면 대박이라는 건 사실이지만…판타지 하면 노오오력 해서 마법을 배우는 재미도 있는 법 아니겠는가.

       

       부푼 기대를 안고 책을 펼쳤다. 그리고.

       

       “……뭐라는겨.”

       

       글씨는 읽을 수 있다. 글씨만 읽을 수 있었다.

       

       뭐라는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뭔 놈의 현학적인 수식어가 이리도 많은 건지.

       

       어찌어찌 곁가지를 쳐내고 내용만 읽으려 해도 심장의 서클이 어쩌구 하라는데 애초에 나는 서클이 없다.

       

       심장을 중심으로 마력이 뭉쳐있다는 건 알겠고, 움직일 수도 있는데 딱 그뿐이다.

       

       책을 내려다보며 한참을 고민한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가챠나 돌릴까.”

       

       나는 이게 맞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스타레일 1트럭으로 로빈, 로빈 전무, 토파즈 뽑았네용. 히히히힣.

    로그인 보상으로 뿌리는 뽑기권이랑 앵벌이한 보석으로 토파즈 전무 뽑으면 끗!

    그나저나 여러분. 그거 아시나요? 제 전작인 ‘팝니다. 몰락영애. 한 번도 안 쓴.’의 웹툰이 탑툰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진쟈진쟈 잘 나왔으니 다들 한번 봐주세요! 원작을 보신 분도, 안 보신 분도 분명 만족하실 거에요!

    물론 어린이는 못 보지만요! 19금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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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8

EP.98





       그림자 괴물에게 샤도우라는 이름을 지어준 뒤에야 돌아온 요정과 은화.


       


       문을 벌컥 열며 팔을 활짝 벌렸다.


       


       “저 왔어요! 엘리의 귀여운 예비 신랑 요나가요!”


       


       가게 전체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 소란스럽던 주점에 순간 정적이 울려 퍼졌으나, 그들의 시선이 내 쪽을 향하더니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왁자지껄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일부는 재밌다는 듯 껄껄 웃거나, 이게 뭐냐는 듯 옆 사람과 수군거리긴 했으나…딱 거기서 끝이었다.


       


       내게 무슨 최면 능력이 있어서 뭘 해도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게 아니다. 그냥 다들 익숙해져서 그런 거지.


       


       가끔 내게 집적대는 사람도 있긴 했는데…대부분은 엘리의 독점욕 펀치에 착해지더라고.


       


       이젠 그 소문이 나서 봐도 못 본 척하는 것 같지만.


       


       …봐도 못 본 척이라고 하니, 어디까지 허용되나 조금 궁금해지긴 하네.


       


       너무나도 무방비한 모험가 누나들의 엉덩이와, 그 근처에 매달린 지갑의 유혹을 뿌리치며 도착한 카운터.


       


       엘리가 한숨을 푸욱 내쉬며 내 정수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꽁.


       


       “아얏!”


       


       “들어올 때마다 소리 지르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응애. 나 아기 요나. 기억력 나빠.”


       


       “오, 그래도 스무 살이 되면 독립한다는 말은 기억하지?”


       


       “스무 살이 되면 야한 일 하자는 약속 아니었나요?!”


       


       꽁.


       


       “흐약!”


       


       “그런 약속 한 적도 없어! 그때도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겠다고 했지!”


       


       “에이. 저는 엘리를 믿어요. 분명 스무 살이 되자마자 술은 어른한테 배우는 거라며 잔뜩 취하게 한 다음에 이렇고 저런 짓을 할 생각인 거죠?! 빨간 책처럼! 빨간 책처럼…!”


       


       “…하! 이 패턴이 몇 번째인데 내가 또 당황해 줄 것 같아?”


       


       “하긴. 요즘 취향이 바뀌어서 그런 종류는 창고 깊숙한 곳에 숨겼죠? 최근에 사 온 게 뭐였더라…‘팝니다. 몰락영식. 한 번도 안 쓴.’의 만화판이었죠? 제가 드린 소설이 마음에 들었나 보네요!”


       


       “……큿!”


       


       분한 표정으로 입술을 짓씹는 엘리. 얼굴이 터질 듯 붉게 물든 것을 보아, 정곡을 찔려 부끄러운 게 분명하다.


       


       키득이며 그 앞에 앉자, 옆에서 소시지를 안주 삼아 맥주를 홀짝이던 리디아가 손을 흔들었다.


       


       “좀 늦었네.”


       


       “아직 계셨어요? 오래 걸려서 먼저 돌아가실 줄 알았는데.” 


       


       “엘리 선배가 2층에서 요나 네가 어떻게 싸웠는지 알려주면 맥주랑 안주를 공짜로 준다길래. 계속 말해주면서 계속 마시고 있었지.”


       


       “아하? 그래서 무슨 이야기 했나요?”


       


       “결국 칭찬. 2층이 비교적 쉬운 곳은 사실. 하지만 1층처럼 도는 건 불가능해.”


       


       “왜요? 미궁으로서의 난이도는 비슷하잖아요.”


       


       “응. 하지만 몬스터의 스펙이 달라졌잖아. 그리고 어지간하면 먼저 감지당하니 기습도 힘들어.”


       


       미궁으로서의 난이도가 비슷한 건 사실이나, 몬스터가 전체적으로 강해진 데다가 모험가는 시력에 의존하는데, 몬스터는 청각과 후각으로 적을 구분하니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제 실력을 발휘하기 힘들다고 한다.


       


       “저한테는 오히려 상성이 좋았는데 말이죠.”


       


       “맞아. 그러니까 방심은 금물.”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리디아.


       


       맞는 말이다. 아무리 소리를 먹는 발걸음으로 내 기척을 극한까지 줄일 수 있다 한들, 코볼트에게 실수로라도 한 대 맞으면 바로 중상인 건 사실이니까.


       


       “방어구를 하나 맞춰야 할까요?”


       


       “아직 괜찮아. 아이언 울프의 가죽은 철과 비슷하니까. 2층에서는 골렘이랑 계층 수호자만 조심하면 기껏해야 골절 선에서 끝나겠지.”


       


       “…골절도 무서운데용.”


       


       “안 맞으면 그만. 지금까지 그래왔잖아.”


       


       “…….”


       


       나에 대한 리디아의 취급이 어쩐지 대충대충인 것 같다.


       


       신뢰라면 신뢰지만, 마음이 아픈 것은 왜일까.


       


       입술을 삐죽이며 툴툴대고 있자니, 엘리가 내 앞에 따끈한 파스타에 고기를 몇 점 올린 접시를 내려놓았다.


       


       “배고프지? 베니가 밥을 잘 안 먹어서 걔네 집에서는 뭐 먹은 거 없을 거 아냐. 먹고 어여 자라.”


       


       “그러고 보니, 간식만 있지 식사류는 없었네요. 크림 파이는 참 맛있던데….”


       


       슥삭슥삭 소스를 비비며 그리 말하자 엘리의 표정이 묘해졌다.


       


       “크림 파이….”


       


       “세상에. 엘리 지금 무슨 생각한 거예요? 야한 생각 했죠? 맞죠? 이거 보세요. 리디아 님! 엘리가 방금 야한 생각 했어요!”


       


       “…요나. 애처럼 굴지 마. 엘리도 다 큰 어른. 욕구불만일 수도 있지.”


       


       “전 애 맞는데요?”


       


       “그럼 어쩔 수 없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시지를 포크로 찍어 입가에 가져다 대려는 리디아. 다만, 너무 얕게 찍은 걸까. 실수로 떨어진 소시지가 그녀의 가슴골 사이에 끼었다.


       


       “…뜨거워.”


       


       미간을 살짝 찌푸리는 리디아. 그녀가 손으로 소시지 대신, 자신의 가슴을 살짝 받쳐 들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가슴 사이에서 쏘옥 뽑아먹는 소시지.


       


       내 시선을 느낀 리디아가 자신만만한 태도로 손가락으로 V자를 그려 보였다.


       


       “브이.”


       


       “…….”


       


       설마 어차피 가슴으로 받은 거 그냥 손대지 않고 그대로 꺼내 먹은 건가? 뜨거운 데다가 기름까지 묻으니까?


       


       어이없어하는 사이. 리디아가 태연하게 티슈로 자신의 가슴을 닦기 시작했다. 윗부분은 물론이요, 안쪽까지 닦기 위해 가슴 사이를 헤집으면서.


       


       꼴깍.


       


       나도 모르게 넘어가는 침. 하지만 아쉽게도 이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요나.”


       


       “헙!”


       


       엘리가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으니까. …묘하게 숨결이 거친 걸 봐서는 반은 화나고 반은 흥분한 것 같지만.


       


       “베니의 공방에서 무슨 실험을 했니. 위험한 건 아니겠지?”


       


       “아, 그런 건 아니에요. 오늘 한 내용은 샤도우…그러니까 그림자 괴물이 절 좋아하는 이유를 알아내는 거였는데…….”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엘리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었다.


       


       촉수, 크림 파이, 호감도, 샤도우, 촉촉한 베니칩 쿠키….


       


       “마지막으로 혼자 읽어보라고 마법서도 하나 받아왔어요. 어려운 건 아니고 미약한 불꽃이랑 비슷한 기초마법들이 적힌 책이더라구요.”


       


       마법서. 라고 하기에는 꽤나 얇은 책을 품에서 꺼내 팔랑팔랑 흔들었다.


       


       기초마법뿐이고, 대단한 마법이 적힌 것도 아니지만 일단 마탑에서 반쯤 독점하는 지식이라 정가는 1골드나 된다나.


       


       그래서 베니도 그냥 주는 게 아니라 빌려주더라.


       


       까비아깝송….


       


       아예 준 거였으면 마법만 샤샥 익히고 바로 팔아서 가챠나 돌리는 건데.


       


       내 이야기를 듣던 엘리의 표정이 점점 풀어졌다.


       


       “뭐야. 조금 걱정했는데 잘하고 왔네.”


       


       “무슨 걱정을…아! 설마 제가 베니랑 바람피우는 생각이라도 했던 건가요?”


       


       “아니. 리디아면 모를까 베니는 걱정할 필요 없으니까 그 부분은 괜찮아. 손이나 잡겠지.”


       


       “…이건 이것대로 화나는데요?”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불만스러운 기색을 숨김없이 표하자, 엘리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베니의 사정을 들었다고 했잖아?”


       


       “그렇죠?”


       


       “베니도 그걸 신경 쓰거든. 혹시라도 다른 특성이 깨어날까 항상 조심하더라고.”


       


       “아.”


       


       베니가 이식받은 것은 서큐버스의 눈.


       


       그 탓에 베니는 소녀의 몸에 박제되었고, 그 대가라는 듯 마법적 재능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아무리 샤도우가 있었다고 하나, 제대로 된 저항 수단 하나 배운 적 없는 실험체가 황혼을 삼키는 자의 지부 하나를 날려 먹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하지만 베니는 몬스터의 힘에…정확히는 그 안에 깃든 광기의 신의 권능에 잠식당한 인간의 말로를 안다.


       


       몸이 견디지 못하고 뒤틀려 죽어버리거나, 완전히 미쳐버려 또 다른 몬스터가 된다.


       


       아직까지는 괜찮았지만,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장담은 없다. 점점 샤도우와의 동화도 심해지고 있으니까.


       


       “알겠어요. 베니는 좀 적당히 놀려야겠네요.”


       


       “…안 놀린다는 선택지는 없어?”


       


       “제 애정 표현이라 어쩔 수 없답니다. 그리고 솔직히 엘리도 좀 좋잖아요?”


       


       “…….”


       


       입을 꾹 다문 엘리의 모습에 낄낄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싹싹 비워진 파스타 그릇을 내밀며 한 손은 엘리를 향해 흔들고, 다른 한 손을 리디아의 등을 팡팡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그럼 저는 이만 올라가 볼게요! 피곤하기도 하고, 이걸 읽어보고 싶기도 하니까요!”


       


       기초 마법서를 툭툭 건드리자, 그제야 피식 입꼬리를 끌어올린 엘리.


       


       “애들이 잘 시간은 한참 전에 지났어. 어여 가봐라. 리디아 너도 슬슬 일어나고.”


       


       “에. 싫어. 엘리 선배 방 많잖아. 오늘은 재워줘. 맥주도 더 줘. 다음 안주는 찹스테이크로.”


       


       “너 혼자 몇 병을 마셨는줄 알아?! 퍼뜩 일어나 이년아!”


       


       투닥이는 엘리와 리디아를 뒤로하고 내 방으로 올라갔다.


       


       아무리 기초마법이라지만, 자기 전에 잠깐 읽은 걸로 익히는 건 무리겠지. 하지만 내용을 이해하는 정도는 가능하겠지.


       


       일단 읽어두고, 나중에 곱씹으면서 연습하면 그만이다.


       


       솔직히 가챠는 사도다. 운만 좋으면 대박이라는 건 사실이지만…판타지 하면 노오오력 해서 마법을 배우는 재미도 있는 법 아니겠는가.


       


       부푼 기대를 안고 책을 펼쳤다. 그리고.


       


       “……뭐라는겨.”


       


       글씨는 읽을 수 있다. 글씨만 읽을 수 있었다.


       


       뭐라는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뭔 놈의 현학적인 수식어가 이리도 많은 건지.


       


       어찌어찌 곁가지를 쳐내고 내용만 읽으려 해도 심장의 서클이 어쩌구 하라는데 애초에 나는 서클이 없다.


       


       심장을 중심으로 마력이 뭉쳐있다는 건 알겠고, 움직일 수도 있는데 딱 그뿐이다.


       


       책을 내려다보며 한참을 고민한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가챠나 돌릴까.”


       


       나는 이게 맞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스타레일 1트럭으로 로빈, 로빈 전무, 토파즈 뽑았네용. 히히히힣.

    로그인 보상으로 뿌리는 뽑기권이랑 앵벌이한 보석으로 토파즈 전무 뽑으면 끗!




    그나저나 여러분. 그거 아시나요? 제 전작인 '팝니다. 몰락영애. 한 번도 안 쓴.'의 웹툰이 탑툰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진쟈진쟈 잘 나왔으니 다들 한번 봐주세요! 원작을 보신 분도, 안 보신 분도 분명 만족하실 거에요!

    물론 어린이는 못 보지만요! 19금이기 때문에...!!
    다음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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