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의 지하로 들어온 나는 감탄을 하고 말았다.
넓기도 넓었거니와 안에 펼쳐진 광경이 다채로웠기 때문이다.
“참 은밀하게도 해 놓으셨네.”
파라몬 영감님 정도 되는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이렇게 해 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어이구, 이 양반은 나름 착하게 산 양반인 거 같은데…”
정확하게 일자로 바닥에 뻗어 있는 병사.
병사라는 게 그렇듯 그저 명령에 따라 이곳을 지키고 있던 사람으로 추정이 된다.
안타깝게도 바닥에 쓰러져 있었지만.
옆에서 나를 따라 다니던 드잔트가 무심하게 고개를 돌렸다.
“드워프제 투구를 썼다면 괜찮았을 것이다.”
“파라몬 영감님이 때린건데요?”
“…최소한 꿈틀은 할 수 있었겠지.”
급하게 정정하는 걸 보니, 역시나 우리 영감님들은 논외의 대상이었다.
드워프제 투구도 막지 못 하는 싸다귀라….
걸어들어 갈 수록 바닥에 누워 있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놈은 기사인가 보네.”
그래도 기사라는 건지 꿈틀 정도는 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뻗어 있는 자세가 일자가 아니었다.
“음…”
정정하겠다.
‘꿈틀’중에 ‘꿈’정도 한 것 같다.
검이 반쯤 뽑혀 있었으니까.
퉁퉁부어서 투구를 채우고 있는 얼굴이 얼마나 강한 타격이었는지를 증명해주고 있었다.
주변에 있던 아이들의 영혼마저 그것을 구경하고 있었으니, 말 다한 셈이다.
“이래도 되는 거 맞아…?”
드잔트가 코웃음을 쳤다.
“괜찮다.”
“진짜요?”
“저 두놈이 어딘가에 잠입하는 건 수도 없이 있었던 일이니까.”
영감님들의 삶이 평범하지는 않았겠지만….
도대체 무슨 삶을 살아온 걸까?
“대륙전쟁 시절에 무모하게 돌격을 감행한 아군이 있었다. 지금은 멸망한 왕국이지.”
이어지는 이야기에 나는 흥미가 동했다.
당시의 일에 대해서 들은 게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합당한 작전이라 치부되었다. 저 두놈만은 무리하다 판단했고.”
“그래서요?”
“그쪽 아군의 보급품을 모조리 날려 버렸다. 지휘관의 의식도 같이 날려 버렸지.”
“…..?”
전쟁은 잘 모르지만, 그 보급품이라는 거 엄청 중요한 거 아닌가?
없으면 전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결과적으로 그 덕분에 큰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두놈이 아니었다면 다 죽었을 것이야. 머저리들만 모였던 곳이라 결국 멸망했지만.”
“역시…”
“그냥 행동하는 것처럼 보여도 무척이나 치밀한 놈들이다.”
드잔트의 말에 따르면 영감님들의 수완은 굉장하다고 한다.
하기야 대륙전쟁에서 활약한 영감님들이니, 각종 전술에 통달했을게 당연한 소리지만.
“그 외에 네크로맨서의 목을 잘라온 일도 수두룩하지.”
“걱정할 필요 없겠네요.”
이야기를하며 걸어갈 수록 아이들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같이 갇혀 있던 아이들을 걱정하는 듯싶었다.
기특하게도 그 와중에 친구가 된 것이리라.
“괜찮아. 어마어마한 영감님이 가셨거든.”
주위를 훑어본 아이들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광경을 보면 아이도 납득할 만 하니까.
“여긴가 보네요.”
열려진 문.
몸을 떠는 아이들.
그리고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
짜악 –
“우리는 이곳에서 망을 보지. 저쪽과 할 이야기도 있고.”
드잔트가 턱짓으로 세레나를 가리켰다.
세레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니 그들만의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부탁드려요.”
안으로 들어서자 마자 보이는 것들은 나의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더러운 바닥과 곳곳에 흩어진 핏자국들.
녹이슨 쇠창살.
그리고 안에 갇혀 있는 아이들까지.
얼마 전에 갇혀온 듯 외관이 깔끔한 아이들도 있었다.
파라몬 영감이 쇠창살을 구부려 입구를 만들었다.
“왔는가?”
“이렇게 뒤집어놔도 괜찮아요?”
“이렇게 안 하고 아이들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네.”
이놈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경비병들을 다 빼지는 않을 것이다.
무력충돌은 어쩔 수 없다는 것.
“이편이 가장 확실하고 안전하지.”
“….”
영감님의 말보다 나의 눈길을 잡아끄는 아이가 있었다.
겁에 질려 오들오들 떨고 있는 아이.
유난히 눈에 띄는 아이였다.
“저 아이에게 무언가가 있는가?”
“네. 우선, 애들을 좀…”
갇혀 있는 아이들만 대략 사십명 정도.
모두가 겁에 떨고 있었지만, 이 아이만은 조금 달랐다.
“…구해주러 오신 건가요?”
떨리는 눈이 나와 마주쳤다.
“맞아.”
“그럼…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건가요?”
“응.”
안도한 듯 아이의 손에서 떨림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촉촉해진 눈동자가 꼭 부모님을 떠올리는 듯했다.
“아저씨들은 누구신가요…?”
“우리는 말이야…”
우리가 누구인지 말하기 전에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허리춤으로 손을뻗자 만져지는 차가운 방울.
딸랑 –
“…아저씨?”
아이의 주변을 돌고 도는 업.
아까부터 눈에 띄던 것이 이제야 확실해졌다.
“애가 아니네?”
“…네?”
“몇십년 먹은 남정네가 들어앉았어.”
파라몬 영감님이 아이들을 빼내다 말고 이곳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연기는 그만하지?”
아이의 얼굴에 섬뜩한 미소가 맺혔다.
씨익 –
순간, 빠르게 움직이는 놈의 손.
어느덧 품속에서 빠져나온 단검이 나의 목에 붙어 있었다.
이럴 줄 알았다.
어째 아이한테서 살업이 보인다 했더니….
“어떻게 눈치챈 것이지?”
아이의 얼굴.
아이의 목소리.
하지만 나오는 말투는 전혀 달랐다.
불쾌한 이질감을 불러일으킬 만큼.
이상한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사람을 죽였는데 원혼이 안붙어 있네?”
“….”
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목이 떨어지기 직전이라는 걸 모르는군.”
검이 목에 닿여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이놈의 상태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는 게 맞을 것이다.
“마나도 안 쌓았고…”
“….”
“빙의도 아닌데 아이의 몸이라…”
아마 모종의 방법으로 성장을 멈춘 것 같았다.
어릴 때부터 길러진 암살자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는 소리다.
눈치챌 수 없도록 마나마저 쌓지 않은 암살자.
딸랑 –
희끄무레한 장면들이 떠올랐다.
죽어 있는 아이들.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죽은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그사이를 누비는 이놈.
“영혼을 모으고 있었구나.”
“….!”
내가 말을 내뱉는 순간.
닿아 있던 칼이 움직이며 내 목을 그어놓았다.
그리고 경악이 터져 나왔다.
“…네, 네놈…!”
당황하며 다시 한번 칼을 내지르는 놈.
하지만 몸에 상처가 날리가 없었다.
맨발로 성검위에서도 뛰어노는데, 이런 단검이 내 몸을 뚫을리가 있겠는가?
다시 한번 검이 휘둘러지려는 찰나.
콰앙.
놈의 몸이 튕겨져 나가며 벽에 부딪혔다.
콰직 –
영감님의 발에 부러지는 팔.
우지직 –
으스러지는 손가락.
다시 검을 잡기는 힘들 것이다.
“자네가 어떻게 빠져나올까 했더니, 그대로 검을 맞아버릴 줄은 몰랐군.”
“아니, 위험해 보이면 빨리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영감님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자네에게 위험한 일이 생기겠는가?”
“참나…”
암살자를 어깨에 들쳐매는걸 본 나는 고개를 돌렸다.
반짝반짝.
부담스럽게 나를 쳐다보는 아이들.
“아저씨는 기사님인가요?”
“아니.”
“마법사님이신가요?”
“아니.”
또 다른 게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는 아이들.
“무당이야.”
“무당이요?”
뭔지도 모르면서 일단 멋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저도 무당할래요!”
“너넨 이런 거 하지 마.”
무당이 되는 순간 편안한 삶과는 멀어진다.
능력이 뛰어날수록 아주아주 멀어지는 것이다.
“이제 나가야지? 집에 가자.”
아직도 몸을 떨고 있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이 몇 번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사그라드는 떨림.
아이의 호흡이 고르게 변하고 있었다.
“할머니가 만져 주는 것 같아요.”
“비슷해.”
이제 이곳을 빠져나가는 일만 남았다.
문제는 이 많은 아이들을 데리고 어떻게 빠져나가냐는 것이다.
들키지 않고 나가기에는 너무나 많은 숫자였으니까.
문을 빠져나가니 드잔트와 세레나가 우리를 반겼다.
딱딱해진 얼굴로.
“생각보다 빨리 끝났군.”
뒤를 졸졸 따라오는 아이들.
지하에서 올라가 건물 밖으로 나가니,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저 멀리 보이는 시뻘건 불길과 검은 연기.
땡 – 땡 – 땡 –
“불이야!”
“군량창고에 불이 났다!”
바쁘게 뛰어가는 병사들까지.
우리의 근처에 남아 있는 병사는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마저도 다 바닥에 누워 있었으니….
클로셀 영감이 그 앞에서 히죽거리고 있었다.
“자네가 사람 죽이는 걸 싫어하니, 싹 다 재워 버렸네.”
“그…영감님.”
“음?”
솔직히 이게 괜찮은 건지 모르겠다.
이곳은 엄연히 남의 나라가 아닌가?
이렇게 깽판을 치다가 걸리기라도 하면 큰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니냔 말이다.
영감님이 걱정 말라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우리의 얼굴을 본 목격자도 없거니와 들켜도 상관이 없네.”
“상관이 없을 수가 있나요?”
“차차 알게 될 것이네.”
영감을 따라 나가니 신기하게도 길이 열려 있었다.
“허….”
길을 따라 잠들어 있는 병사들.
가끔 불을 끄기 위해 달려오던 경비들도 마찬가지였다.
풀썩 –
“부…불이…!”
스르륵 –
일정 거리 이상 접근하면 바닥에 쓰러졌다.
영감님들의 말대로 완벽한 잠입이었고, 완벽한 구출이었다.
“이게 되네…”
“이제 어디로 가면 되겠는가?”
딱 한곳 떠오르는 곳이 있다.
가보지도 않았는데 선명한 곳.
촉이 오고 있었다.
“보육원이 있어요.”
뭔가 실력이 늘어나려는지 가물가물 휘청휘청!!!
여러분 저 성장하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