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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8

        

         

       베테랑의 수법은 차원이 달랐다.

         

       『 내가 뭐 많은 걸 말하라고 하는 게 아니야. 애초에 너 같은 젊은 놈이 많은 걸 알고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게 멍청이지. 네가 알아봐야 뭘 얼마나 알겠어? 내가 원하는 건 거창한 게 아니라 뭐 그런 거 있잖아. 이야기나 나누자는 거지. 오, 이런. 잡혀 와서 배가 고플 텐데 이 삶은 옥수수(кукуруза)나 한 입 하지? 들고 뜯어먹기 힘들어하는 것 같은데 내 손수 알을 분리해서 먹여주지. 』

       『 우리는 말이야. 너에 대해 꽤 많은 것을 알고 있어. 네 이름이나 나이, 가족 관계 같은 것들 말이지. 아, 협박은 아니야. 우리가 네 가족을 알아봤자 뭘 하겠나? 물론 대테러부대가 테러리스트 가족으로 협박한 적은 있지. 하지만 우리는 그런 야만스러운 놈들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도록. 뭐, 네 대답 여하에 따라 네가 대테러부대 놈들에게 다시 넘어가게 될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

       『 평범한 고문을 할 수도 있어. 예를 들어서 우리가 얻은 정보와 네가 입에서 부는 정보를 대조하고. 그게 틀리다 싶으면 꼬챙이를 몸에다 꽂아버리고 전기로 지져버리는 것 같은 그런 것 말이지. 하지만 이런 것도 계속하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진단 말이야. 우리가 무슨 고문 기술자도 아니고, 어차피 정보만 얻으면 되는 사람들이란 말이야. 어? 우리 쉽게 쉽게 가자고. 몇 번 고문 사이클 돌린 다음 이 자리에 앉아서 내 질문을 듣는 게 너에게도 유쾌한 일은 아닐 테니까. 』

       『 별거 아닌 질문만 답해주면 돼. 그래, 너 정도 말단 놈이 답할 수 있는 질문부터 해주지. 네가 일주일 전부터 오늘까지 겪었던 일상에 관해서 상세하게 말해주기만 하면 된다고. 』

         

       가장 먼저 공포와 회유로 신입으로 보이는 녀석을 구슬렸고.

         

       『 나는 너희 같은 놈들을 잘 알아. 위로 올라가기 위한 향상심에 지배되어 있고, 단체에서 주입하는 사상에 푹 빠져 입은 무겁고, 그런 주제에 어설프게나마 경험을 쌓아서 견딜 줄 아는 녀석들 말이야. 』

       『 너희 같은 돼지 새끼들은 아무리 잘해주고 회유해줘도 사람 뒤통수를 칠 궁리밖에 하지를 않아. 입에서 나오는 족족 거짓말이고, 감미로운 꿀과 듣기 좋은 말로는 도저히 회유가 안 되는 족속들이지! 』

       『 나는 너희에게는 그 어떤 질문도 하지 않겠다. 대신에 아까 말했던 대로 너희를 가지고 놀겠다. 어디, 가장 먼저 네 상급자 놈이 그렇게나 무시했던 KGB의 유산부터 맛을 보여주마. 』

       『 얼굴을 갈아버리는 과정에서 소중한 치아가 뽑힐 수가 있으니, 이 끌과 바늘로 가지런히 정돈을 해주마. 』

         

       어느 정도 짬을 먹은 것 같은 녀석들은 다짜고짜 고문했으며.

         

       『 병신 슬라브-나치 놈아. 』

       『 나는 너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 거다. 』

       『 너는 저렇게 얼굴을 갈아버리지도 않을 것이고, 몸을 썰어버리지도 않을 거다. 』

       『 약간의 구타 말고는 너는 무사히 나가게 될 거다. 』

       『 똑똑히 보고 들어라. 너 때문에 네 부하가 병신이 되는 과정을 똑똑히 보라고! 』

         

       도발했던 우크라이나인의 정신을 아작내기 위해 엄포를 놓았다.

         

       그리고 이 끔찍한 수법은 효과를 보았는지 답변이 술술 나오기 시작했다.

         

       『 그래, 보자. 우크라이나 쪽으로 발을 뻗으려고 하는 마피아 새끼들을 좀 조지려고 했다? 』

       『 그 과정에서 배때기 부른 경제인 몇 놈 납치해다가 협박도 좀 하고? 』

       『 그게 기본적인 계획이었지만 거기에 재미를 좀 보려고 했다. 그래, 뭐 그럴 수 있지. 』

       『 오, 이건 좀 좋은 정보로군. 러시아 국영 마나 에너지 연구소에 사보타주를 하려고 했다고? 』

       『 그리고 중국 소행으로 위장을 하려고 했다? 그래. 어쩐지 들고 있는 장비가 죄다 중국산 쓰레기들밖에 없다 했지. 하하하하. 아무리 위장을 하려고 했다고 해도 그렇지, 그딴 쓰레기를 쓰면 되나. 수류탄은 제대로 터지지도 않고, 총은 몇 번 쏘니까 턱턱 걸리고. 그러니까 대테러부대에 그렇게 쉽게 잡힌 거 아닌가? 』

       『 그런데 연구소에 대한 정보는 어떻게 얻었나? 너희 같은 쓰레기들이 알 수 있을 리는 없고. 오, 일본? 』

       『 일본에 히틀러를 찬양하는 사람들이 있다? 너희는 황인종들을 원숭이라면서 경멸하지 않았나? 』

       『 일본은 히틀러에게 명예 아리아인으로 인정받고, 동맹을 맺고 싸운 역사가 있으니 인정할 수 있다고? 하하하! 』

         

       하지만 답변은 거기까지.

       주술에 관한 내용은 당최 나올 생각은 하지를 않았다. 털어놓으면 죽는 저주라도 걸린 것인지, 아니면 자기도 모르게 이용당한 것인지는 몰라도 주술의 ‘주’자도 나오지 않았다.

         

       혹시 몰라서 다시 고문하고 구슬려 보아도 한결같이 나오는 답변은 ‘나는 모른다’ 뿐.

         

       잠시 고민하던 중년 남성은 KGB 때부터 사용했던 유서 깊은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누군가는 날조라고 부르고, KGB에서는 창조라고 불렀던 마법 같은 방법을 말이다.

         

         

         

        * * *

         

         

         

       빅토르는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녹음된 소리를 들었다.

         

       『 끄…. 끄으윽…. 우리 아조프 대대는…. 일본의 명예 아리아인들로 이루어진 단체와 협력해….』

       『 러시아 국영 마나 에너지 연구소에 사보타주를 하고…. 자료를 획득하고….』

       『 일본…. 주술사의 도움을 받아…. 인신공양을 이용해 주술을 발동해….』

       『 테러를 감행하려 했습니다….』

         

       신음하며 말하는 목소리는 힘이 없고 작았지만, 강한 무인이었던 빅토르가 듣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 어때. 자네가 원하는 내용이 맞나? ]

       “그래. 고맙네.”

       [ 고마우면 자네가 가지고 있는 술이나 좀 주게. ]

       “그래, 얼마 전 질 좋은 보드카를 얻었는데, 부하에게 들려서 보내주지.”

       [ 흐흐흐, 그래. 쪼잔하게 하나만 보내지 말고, 화끈하게 한 박스 정도는 보내게. ]

       “알겠네.”

         

       통화를 마친 빅토르는 책상을 톡톡 두들기며 생각했다.

         

       ‘일본, 일본이라.’

         

       일본.

       무인과 주술사가 가득한 나라.

         

       ‘일본에 수준급 무인이 많았지.’

         

       이름 있는 무인이라면 빅토르의 공격을 막거나 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리라.

       애초에 빅토르가 날렸던 공격은 무인을 상대하기 위한 공격이 아닌, 주술사나 마법사 같은 이를 상대하기 위한 원거리 공격이었으니까.

         

       ‘재패나치(Japanazi) 짓이라. 나름 맞는 것 같기는 한데….’

         

       잠시 고민하던 빅토르는 결론을 내렸다.

         

       ‘사할린 때문에 사이도 안 좋은데, 경고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사이 좋은 국가도 아니고, 영토 분쟁 때문에 맨날 마찰이 일어나는 나라다.

       게다가 러시아가 어려울 때 도움을 주기는커녕 가장 먼저 빠져나갔던 놈들이기도 하고, 요즘 들어서는 콧대가 높아져서는 간을 보려고 하는 게 영 거슬리기도 했다.

         

       “일단 말이나 꺼내봐야겠군.”

         

         

         

        * * *

         

         

         

       전 세계는 빠르게 우경화되어가고 있었다.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해지고, 과거에 있었던 ‘영광의 시대’를 그리워하며 그때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이들이 늘어나며, 무력을 표출하는 방법으로 주변에 힘을 과시하려는 이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중국은 중화의 힘을 만방에 떨치며 세계의 질서를 주도해야 한다며 소리쳤고, 미국은 예전에도 그러했듯 앞으로도 미국이 세계를 조율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며 국방비를 증액하였고, 유럽 국가들은 나토군에 투자하는 것을 줄이고 자주국방에 돈을 쏟아부었다. 특히 영국은 룰 브리타니아(Rule Britannia)의 영광을 다시 불러오려는 것인지 해군과 공군에 돈을 쏟아붓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 역시 마찬가지.

         

       버블 경제 이후 찾아온 경제 불황.

       보통 국가화를 원하는 수뇌부.

       늘어나는 세금과 경제 불황에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국민.

       축복받은 환경으로 강한 힘을 가지게 된 능력자들.

         

       이 모든 것이 일본을 우경화시키고 있었다.

         

       본래 살기 힘들어지면 민족주의가 강해지고 과격한 주장이 힘을 얻기 마련.

       그리고 한 번 힘을 얻기 시작하면 거기에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이 편승하며 주류 의견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주류 의견이 된다면 그것은 전체를 지배하는 의견이 된다.

         

       위대한 제국으로의 회귀.

       가장 찬란하고 낭만이 넘쳤던 다이쇼(大正) 시대로의 회귀.

       분열되어 있던 일본인이 하나로 뭉쳐서 기적을 이루어냈던 황금시대의 재현.

         

       일본의 우익은, 우경화를 가속하는 세력들은 찬란했던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소리를 쳤다.

         

       그들의 목적은 제각각이었다.

         

       권력자들은 더 많은 권력과 명예를 원했다.

       제국 시절을 이끌었던 조상들처럼 제 이름을 역사책에 남기고, 이제는 쇠락해가고 있는 일본을 다시 일으켜 세운 위인으로 기록되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와 권력을 얻어 귀족처럼 살기를 원했다.

         

       재력가들은 더 많은 돈을 원했다.

       황금으로 목욕을 하고, 시녀와 시종을 거느리고, 하루를 꼬박 써도 걸어서 둘러볼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저택에서 살았던 제 조상들처럼 상상을 초월하는 부를 얻기를 원했다.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을 이룰 수 있고, 매일매일 산해진미가 올라오며, 매일매일 다른 절세미녀들을 안고 살아가는 그런 꿈과 같은 생활을 다시 할 수 있기를 원했다.

         

       국민은 자신의 삶이 나아지기를 원했다.

       점차 늘어나는 세금과 살아가기 팍팍한 환경.

       제대로 방음조차 되지 않는 조그마한 단칸방에서 월세를 내고 나면 얼마 남는 것도 없고, 월급날이 다가올 때가 되면 돈이 없어 60엔짜리 나메타케를 사서 먹는 생활에서 벗어나기를 원했다.

         

       힘을 가진 능력자들은 제힘을 보이기를 원했다.

       옛날 위대한 무인들이 그러했듯 제힘을 선보이기를 원했고, 무공을 세워 가문과 유파의 이름을 드높이기를 원했다.

         

       어쩌면 이는 생존이 위협받자 본능이 자극받아 생기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른다.

       본래 살아있는 것들은 제 생명이 위협받으면 욕망을 표출하는 법이니까.

         

       욕망.

         

       부유하고 살고 싶다는.

       이쁘고 잘생긴 이들을 거느리며 살고 싶다는.

       더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는.

         

       인간 본연이 가진 너무나도 당연한 욕망.

         

       어쩌면 우경화되고 있다는 말은, 그러한 욕망이 강해진다는 말과 같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욕망을 원하는 이들이 욕망에 지배당하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리라.

         

       “신주님(神主様), 신주님(神主様)….”

         

       리세는 기도했다.

         

       “명하신 대로 잘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경건하게 손을 모으고 기도하고 있는 리세의 앞에는 슬라임이 있었다. 슬라임은 기도를 하는 리세에게 잘하고 있다는 듯 신력을 콸콸 공급해주었다.

         

       리세의 뒤에서는 여우 꼬리가 슬쩍슬쩍 흔들리고 있었는데, 시녀가 입을법한 옷을 입은 나루미가 그 꼬리를 고급 참빗으로 손질해주고 있었다.

         

       “어서 돌아오셔서 저를 행복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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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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