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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8

       

       

       

       

       

       98화. 축제가 열린다 ( 3 )

       

       

       

       

       

       이방인은 눈보라를 뚫고 바람처럼 빠르게 달렸다. 시야를 가리는 눈보라도, 두껍게 쌓여 푹푹 꺼지는 눈도 그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쉬지 않고 달리다가 배고프면 짐승을 사냥했고, 졸리면 적당히 땅굴을 파서 잠을 청하며 쉴 틈 없이 달렸다. 평소라면 이렇게 무리하지는 않았겠지만, 그의 목적은 다름 아닌 결투의 축제.

       

       언제 시작할지, 어떻게 끝날지 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른다.

       좀 더 급해지는 마음만큼 달리는 속도가 빨라졌다.

       

       말을 타도 한 달 가까이 걸리는 거리를 보름 만에 도착한 것은, 그야말로 초월적인 경지에 이른 그의 신체 능력 덕뿐이었다.

       

       

       “음… 늦지는 않았나 보군.”

       

       

       이방인은 저 멀리 보이는 익숙한 성벽을 보며 중얼거렸다. 하얗고 단아하지만 드높게 솟아오른 성벽.

       

       신앙의 고향, 만인의 안식처.

       

       마침내 성도 키비타스에 도착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성문을 통과하기 위해 길게 줄을 늘어선 것이 보였다. 성문이 아주 작게 보이는 여기까지 줄이 이어져 있으니, 성도는 지금 사람이 바글바글할 것이다.

       

       

       ‘이쪽으로는 못 가겠군.’

       

       

       애초에 정식으로 검문을 받고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본래 자신은 성도에 있어야 하는 몸. 편지 하나 남기고 몰래 빠져나왔으니 들어가는 것도 몰래 들어가야 한다.

       

       

       ‘이번에 만나면 토니가 잔소리 좀 하겠어.’

       

       

       방랑벽이 심한 이방인의 가출 아닌 가출은 연례행사였지만, 이번에는 돌아오는 것이 좀 늦었다.

       연락도 없어서 토니는 화가 단단히 났을 테니, 부디 축제가 끝날 때까지 들키지 않기를 바라야 하리라.

       

       이방인은 성벽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뒷짐을 지고 성벽 주위를 걷는 모양새가 영락없이 산책 나온 늙은이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의 날카로운 기세는 맹수와도 같았으니, 실상은 늙은이의 탈을 뒤집어쓴 노련한 전사였다.

       

       이윽고 성벽 위의 성기사들이 직접 보이지 않는 곳에 도착한 이방인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눈을 감고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는다.

       

       손가락 끝으로 신성력을 모은다. 아주 작게, 실처럼 가늘고 여리게.

       신성력이 퍼지면 성기사들이 반응할 테니, 그들이 느끼지 못할 정도로 한없이 약하게.

       

       후웅-!

       

        이방인을 중심으로 실바람 같은 신성력이 퍼져나갔다. 오직 들풀만이 미약하게 흔들리며 무언가 스쳐 지나갔음을 알게 하였다.

       성벽 위의 성기사들은 신성력을 눈치채지 못했고, 이방인은 성기사들의 기척을 모조리 잡아낼 수 있었다.

       

       

       ‘경계가 삼엄하군. 빈틈도 거의 없고, 아주 철저해… 훌륭하군.’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이방인. 

       

       그래,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감히 경비를 늦춰서야 쓰겠는가?

       비록 지금 자신은 몰래 숨어드는 입장이지만, 성기사들의 근면한 모습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후-

       

       잡생각은 여기까지.

       

       이방인은 입에서 가늘고 길게 숨을 내뿜었다. 그리고 다시 옅은 호흡을 들이마신다. 호흡이 점차 느리고 약해진다.

       

       그럴수록 이방인의 기척이 점차 흐려졌다. 이방인을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윤곽이 점차 흐릿해져 주변 사물과 동화되는 듯했다.

       

       오랜 시간 대륙을 돌아다니면서 어깨너머로 배운 기술 중 하나였다.

       

       후-

       

       옅은 호흡을 반복하면서 이방인은 때를 기다렸다. 아무리 경계가 삼엄해도 결국 불가피한 빈틈은 있기 마련.

       

       그리고 그 틈은, 아주 짧게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흡!”

       

       

       짧은 기합을 뱉은 이방인이 빠르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높게 솟은 성벽을 향해 쏜살같이 질주하다가ㅡ

       

       탓, 타탓, 탓-!

       

       그 속도 그대로 성벽을 박차며 수직으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아주 작게 튀어나온 돌을 디딤대로 삼아 성벽을 타고 오르는 이방인.

       

       눈 깜짝할 사이에 성벽 꼭대기에 도착한 이방인은 발을 멈추지 않았다.

       

       

       “수고 많아. 별일 없지?”

       

       “옛! 이상 없습니다!”

       

       “그래, 알겠어. 내려가봐… 어?”

       

       “왜 그러십니까?”

       

       “아니, 뭐가 지나간 것 같은데… 아닌가?”

       

       

       서로 교대하는 성기사들의 사각을 파고들어 교묘하게 몸을 움직였다. 그야말로 한낮에 등장한 귀신같은 몸놀림.

       

       순식간에 성벽을 넘은 이방인은 바람처럼 내려와 다시 기척을 감췄다.

       그대로 잠시 대기한다.

       

       성벽 위의 성기사들은… 그대로다. 삼엄한 경계를 정면으로 뚫고 지나갔으리라 상상도 하지 못하는 모습.

       

       이방인은 씨익 웃었다. 오랜만에 하는데 아직 솜씨가 죽지 않았다. 이 정도면 한참을 현역으로 뛰어도 충분하리라.

       

       이윽고 그는 저 앞에 보이는 대로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오랜만에 성도로 돌아온 이방인의 첫 행선지는 만신전 앞, 사거리에 위치한 식당이었다. 오랫동안 변치 않는 맛으로 성도 시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가게.

       

       간만에 와서 그런가, 유난히 사람이 많은 듯했다.

       

       

       “이게 뭐지? ‘용사님의 하루 아침 세트’라고?”

       

       

       기묘하기 짝이 없는 이름에 이방인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자신이 늙어서 유행에 뒤쳐진 걸까? 이런 기묘한 이름의 메뉴라니.

       

       일단 주방장의 추천 메뉴라고 적혀있으니 이방인은 ‘용사 세트’를 주문하고는 혀를 끌끌 찼다.

       

       

       “쯧. 나 때는 이런 괴상한 이름을 걸고 장사하는 곳이 아니었는데.”

       

       

       주방장이 아들로 바뀌더니 초심을 잃었다며 궁시렁거리던 이방인은 문득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들을 바라봤다.

       

       

       “아니, 좀! 여기까지 와서 꼭 그렇게 기록 해야겠어요? 자꾸 이러면 제가 변장한 의미가 없잖아요!”

       

       “아하하… 용ㅅ, 아니지. 케니ㅡ”

       

       “쉿! 켓니스라고 불러요.”

       

       “아, 네. 켓니스 님, 저희는 정말 불편하지 않으니까 그러시지 않아도…”

       

       “한스 님. 전 불편해요. 그냥 저희끼리 밥 먹어요.”

       

       “데, 데이지! 켓니스 님께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용ㅅ… 흠! 그렇게 말씀하셔도 저는 물러설 수 없습니다. 하도 불평하셔서 저 혼자 온 것인데. 이 이상은 절대로 안 됩니다.”

       

       

       로브를 뒤집어쓴 여자 한 명, 검은 머리의 사내와 단발 머리의 여자아이 그리고 사관으로 보이는 사제까지.

       

       눈에 안 뜨일 수가 없는 조합의 일행이다. 역시나 등장부터 가게의 모든 사람들이 이들을 주목했다. 하지만 이내 흥미를 잃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온갖 사람들이 성도로 모여드는 만큼, 별다른 주목을 하지 않는 것이다. 허나 이방인은 달랐다.

       

       그에게는 보였다.

       로브를 뒤집어쓴 여인, 강하다.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몸 안에 신성력이 어마무시하게 응축되어 있다. 사람이 아니라 신성력으로 빚어진 무언가처럼 느껴질 정도.

       

       

       ‘성도에 저 정도의 여자가 있었던가…’

       

       

       이방인이 고민에 빠진 사이, 그가 주문한 용사 세트가 나왔다.

       

       얇고 바싹하게 구워진 고기와 신선한 계란, 약간의 샐러드와 옥수수, 사과, 따뜻한 스튜와 빵까지. 잘 차려진 한 상이다.

       

       포크와 나이프로 고기를 썰면서, 귀는 저쪽의 일행을 향해 예민하게 곤두세웠다.

       

       

       “굳이 식사를 사주지 않으셔도 괜찮았는데… 지금이라도 제가 절반 드리겠습니다.”

       

       “아니에요. 한스 님 덕분에 마을이 무사했는데, 지금 만신전이 보상을 드리기에는 바빠서… 사과의 의미로 만신전 대표인 제가 사드리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마세요.”

       

       “어휴, 제가 뭐 큰일을 했다고. 전부 켓니스 님 덕분이었죠. 하하하!”

       

       “한스 님. 저는 이 가게 싫어요. 한스 님. 이따가 같이 과자 먹으러 가실래요? 한스 님? 한스 님? 왜 제 말에 대답을 안 해주세요? 한스 님?”

       

       “음. 용사님께서 한스 사도님께 사과의 뜻으로 식사를 대접하였다…”

       

       

       머리를 긁적이며 헤프게 웃는 검은 머리 사내, 그 옆에는 생기 없는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단발머리 소녀. 뭔가를 웅얼거리며 열심히 적는 사관.

       

       …별로 가까이하고 싶은 모습은 아니었다. 뭔지는 몰라도 이방인이 지내온 세월의 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저 남자, 고생길이 훤하다.

       뭐가 될지는 몰라도 분명 가시밭길이리라.

       

       

       ‘안됐군.’

       

       

       이방인은 식사를 마치고 가게를 나섰다.

       

       든든하게 배도 채웠으니, 이제 결투의 축제에 참가해야겠는데… 오랜만에 성도로 돌아온 이방인이 축제에 어떻게 참가하는지 알 리가 없었다.

       

       

       ‘가서 친우 얼굴이나 봐야겠군.’

       

       

       얼굴도 보는 겸 축제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고, 이 답답한 로브를 벗을 방법도 마련하면 될 것 같았다. 이방인은 대로를 가득 메운 인파의 무리에 섞여 들어갔다.

       

       대로에는 그야말로 온 나라의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있었다.

       갈색으로 피부가 탄 사람, 온몸이 화려한 문신으로 가득한 사람, 머리를 빡빡 민 사람, 동물 가죽을 뒤집어 쓴 사람… 모두가 축제에 대한 기대를 품고 왔으리라.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소매치기 하나 없는 것도 굉장하군.’

       

       

       하기야, 신께서 불경한 악마 숭배자를 벼락으로 심판하신 것은 워낙 유명한데 감히 누가 성도에서 범죄를 저지르겠는가.

       

       신께서 그대들을 바라보고 계심이 분명한데.

       

       타캉-! 타캉-! 카캉-!

       

       익숙한 거리에 접어들자, 경쾌한 망치질 소리가 들려왔다. 경쾌하고 빠른 박자의 망치질.

       

       이방인의 입꼬리가 싱긋 올라갔다. 꼬장꼬장하고 괴팍한 그의 오랜 친우. 벌써부터 그 얼굴이 보이는 듯하다.

       

       싱글거리며 웃던 이방인의 표정이 찡그려질 때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커흡! 아니, 뭔 열기가!”

       

       

       대장간에 들어서자 이방인을 덮쳐오는 무지막지한 열기. 순간적으로 숨도 쉬기 어려울 정도의 열기가 이방인을 덮쳤다.

       

       황급히 신성력을 몸에 두르자 열기가 한층 가셨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장간을 둘러보는 이방인. 대장간 안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웃통을 벗고 망치질하고 있었다.

       모두 친우의 제자들이다.

       

       

       “흐이야아!!”

       

       “흐랴아!”

       

       “한 번 더!!”

       

       “흐이야아!!”

       

       

       잘 발달된 근육이 부풀어 오르며 꿈틀거렸고, 온몸이 땀에 젖어 번들거리며 빛난다. 제자들의 눈에는 뭔지 모를 광기와 열정이 이글거렸다.

       

       

       “이 못난 놈들아ㅡ!! 덥냐!!”

       

       

       저 안쪽에서 친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닙니다아악!!””

       

       “더우면 때려치워라!! 이 열기도 못 견디면, 너희들은 평생 실을 뽑아낼 수 없다!!”

       

       “”할 수 있습니다아악!!””

       

       “그러면 더 열심히 망치질해라!! 너의 모든 걸 주괴에 쏟으라고!! 박자와 강도는 일정하게, 열정은 무한하게 불어넣어라!!!”

       

       “”흐이야아아!!””

       

       

       … 뭘 뽑아? 실을 뽑아내?

       

       이방인의 표정이 멍청해졌다.

       

       그러니까 지금 주괴에서 실을 뽑아낸다는 건가?

       

       대장간 안쪽에서 걸어나오는 친우의 모습이 점차 가까워진다. 이방인은 반가운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애덤, 나의 오랜 친구.

       못 봇 사이에 많이 늙었… 아니, 잠깐.

       

       못 본 사이에 제법… 근육이 제법 많이 늘었다. 원래 근육이 많은 친구이기는 했어도, 팔뚝이 허리만큼 굵지는 않았는데?

       지렁이 같은 핏줄이 근육 위에서 꿈틀거리며 제 존재감을 과시했고, 팔짱을 끼자 웃통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댁은 뉘쇼? 손님이신가? 아니, 그보다 어떻게 들어온 거요?”

       

       

       애덤은 이방인을 보며 삐딱하게 물었다. 이방인은 그제야 아직도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장간의 풍경이 그만큼 충격적이었다는 뜻이다.

       

       

       “나일세, 애덤.”

       

       “허 참.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음? 자네, 설마?”

       

       

       애덤의 눈이 커다래지고, 이방인은 천천히 로브를 벗었다.

       

       하얀 머리칼은 이글거리는 불꽃의 색으로 덮이고, 꿈틀거리며 춤추는 그림자에 얼굴이 가렸지만. 애덤은 똑똑히 알아볼 수 있었다.

       

       몇 년을 봤는데, 알아볼 수밖에 없다.

       

       

       “맙소사! 라이ㅡ”

       

       “쉿! 레온이라고 불러주게.”

       

       

       수수께끼의 이방인, 레온이 성도에 도착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타나 어색한 부분에 대한 지적은 늘 감사합니다!!

    댓글과 추천은 작가에게 매우매우매우매우 큰 힘이 됩니다!!!

    ㄴㅇ0ㅇㄱ!!! 아닛 이게 무슨 일입니까!!

    – ‘신선우’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달콤한 나데나데도 좋지만, 가끔은 따끔한 채찍질이 필요할 때도 있는 법…!! 하지만 무리하실 필요 없이, 저는 그저 꾸준히 봐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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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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