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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8

       제국의 황궁.

       평소와 다름 없이 회의가 이어지는 황제의 집무실에서, 외무 장관이 보고를 이어나갔다.

         

       “……동부 연합과의 협상은 올해 말까지 최대한 마무리할 계획입니다.”

         

       황제는 불만족스럽다는 얼굴로 옥좌를 두드렸다. 그의 시선은 자연스레 옆에 있는 아리아에게로 향했다. 아리아가 이 자리에 동석할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그녀가 황제직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1황자와 2황자가 집무실에 들어오지 못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물론 단순히 그것뿐만은 아니었다. 아리아에게는 이 자리에 앉을 만한 능력이 있었다.

       제국 최대 부호인 크라펜 공작가를 제 편으로 끌어들인 것으로 모자라, 민생과 관련된 제국 정책 전반을 특유의 이미지를 활용하여 성공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아리아를 무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흠. 황녀는 할 말이 있는가?”

       

       황제의 말에 외무 장관의 가슴이 내려앉았다. 크라펜 공작가를 등에 업은 아리아는 말이 황녀지, 사실상 재무부의 실권자나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새 재무 장관이 크라펜 공작가의 일원이기도 했고 말이다.

         

       “아니요. 늦긴 하지만, 그래도 올해 안에만 마무리된다면 크게 문제되지는 않을겁니다.”

        “그런데 표정이 왜 그러느냐?”

       “……그게.”

         

       아리아는 난처한 얼굴로 입구를 바라보았다. 굳게 닫혀있는 문 너머에는 그 어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애초에, 중앙기사단장이 든든하게 지키고 있는 황궁에 누군가 들어왔다는 것 자체가 낭설이었다.

         

       하지만 아리아는 확신했다. 방금 그 기척은 분명 암주의 것이었다.

         

       ‘어떡한다?’

         

       모든 시선이 아리아에게 쏠려 있었다.

       아리아는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다. 알테어라면 회의장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만한 명분을 만들어 줄 것이다.

         

       “황제 폐하!”

         

       얼마 지나지 않아 중앙 기사단이 다급한 얼굴로 문을 열고 등장했다.

       허락도 없이 들어오는 것은 엄청난 무례였지만, 당사자들은 그런 것 따위 신경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지금 무슨 짓…….”

       “폐하! 당장 대피하셔야 합니다!”

         

       대신들이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대피라는 망언을 입에 담는다는 말인가.

       대륙에서 가장 안전한 곳을 고르라 하면 단연 이곳 황궁일진데.

         

       다음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타는 듯한 열기가 허공에 폭발했고, 공기를 가르는 칼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태양을 가리고 있던 그림자는, 구름이 아니라 한 생명체의 날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생명체의 정점, 드래곤.

         

       홍옥처럼 빛나는 비늘을 본 귀족이 침음성을 뱉어냈다.

         

       “……레드 드래곤.”

         

       멜리나가 사라진 지금, 저 드래곤에 맞설 인간은 없었다.

         

       모두가 비명을 지르며 대피하는 가운데, 한 사람만이 피하지 않고 있었다.

         

       ‘……과하네.’

         

       어떻게 마키나에서 이곳까지 왔나 했더니, 에리야스의 도움을 받은 모양이었다.

         

       “황녀님도 당장 대피하십시오!”

       “나는 혼자 갈 수 있으니, 다른 이들부터 챙기거라.”

       “하, 하지만…….”

       “듣거라, 레닉스. 이런 급박한 상황에 너 같은 시종을 챙길 기사는 없다. 기사들은 모든 요인들이 대피하는 즉시 빠져나가겠지. 다른 말로 하면, 내가 여기 남아야 기사들이 내빼지 않는다.”

       

       말단 시종, 레닉스가 감격한 얼굴을 했다.

         

       “시종들이 모두 도망가면, 마지막으로 날 데리러 오거라. 어서 가서 동료들을 대피시키거라.”

       “아……알겠습니다!”

         

       멀어지는 레닉스를 본 아리아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게 뭐하자는 건지.’

         

       자신을 회의장에서 빼내기 위한 명분이라기엔 너무 지나친 감이 있었다.

         

       아리아는 남들이 대피하는 반대쪽으로 움직였다. 이게 시선을 끌기 위한 양동이라면, 알테어는 분명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진체를 드러낼 필요까지는……음?

         

       “오랜만이군. 아리아 황녀.”

         

       얼굴이 보이지 않는 암살자 로브.

       그림자 사이에서 나타난 남성의 주변에는, 밤까마귀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기절해 있었다. 알테어가 변명하듯 말했다.

         

       “달려들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만큼 중대한 사안인지라.”

        “올리비아가 나타났나보군요.”

       “……그래.”

       

       어떻게 알았냐는 듯한 물음에, 아리아가 난장판을 벌이고 있는 레드 드래곤을 가리켰다.

       알테어도 함께 그쪽을 힐끔거리다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하는 것이 있었다.

         

       아무리 계약적으로 묶인 사제관계라고 한들, 생사를 넘나드는 혈투를 반복하다 보면 자연스레 통하는 것이 생기기 마련이다.

         

       아리아가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렇게라도 다시 만나니 반갑네요. 알테어.”

       “……그렇다니 다행이군.”

       “다만, 저런 무식한 방법을 쓰자고 한 게 알테어가 아니길 바랄 뿐이에요.”

         

       본체로 현현하여 황성을 휘젓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나저나 어떻게 안거죠? 저도 수소문 해봤지만, 전생과는 다르게 아예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던데요.”

       “이카일에서 번개가 치더군.”

         

       아리아는 단번에 이해했다.

         

       “……그러면 에스티도 당했다고 보는 게 맞겠군요.”

       “도, 라니.”

       “멜리나 님이 사라지신 지 반 년이 넘었어요. 그때는 긴가민가 했는데, 이제는 확실히 알겠네요.”

         

       알테어는 곤란하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전생에 알테어와 아리아를 교두보 역할을 한 장본인이 바로 멜리나였기 때문이다.

         

       “……하나씩 사냥당하고 있군.”

       “아직 확신은 없어요. 멜리나 님을 죽여놓고, 저를 내버려두는 것도 말이 안되니까요.”

       “또 모르지. 우리처럼 회귀하지 못했을 수도.”

        “그건 아닐거에요.”

       

       아리아는 확신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생의 올리비아는 불가사의할 정도로 능력이 뛰어났다.

       단순히 천재라기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회귀겠지.’

         

       확신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아리아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올리비아를 지켜봤으니까.

         

       “올리비아는 회귀했어요. 저번에도, 이번에도.”

       “……이번에도?”

       “회귀하지 않았다면, 저번 생처럼 아카데미에 입학했을거에요. 하지만 그러지 않았어요.”

       

       올리비아는 철저한 사람이다.

       변수에 대처하기보단, 변수 자체를 통제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전생과 똑같이 행동하면 변수가 생길거라고 생각한거에요.”

        “……왜지?”

       “우리가 회귀했다는 사실을 알아버렸으니까.”

         

       그렇게 말한 아리아는, 뜻 모를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숨었겠죠. 위치를 들킨다면, 우리 손에 죽는다는 걸 아니까.”   

       “그러면 왜 모습을 드러낸거지?”

         

       아리아는 자리에 멈춰섰다.

         

       “원래는 맞상대가 가능해질 때까지 수를 미리 줄여둘 생각이었을 거에요. 그리고 에스티는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하는 사람이죠.”

         

       인간 관계 따윈 가져다 버린 사람.

       바다 한가운데서 죽어도 아무도 모르는 사람.

         

       “하지만 문제가 생겼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했을 거에요.”

         

       눈에 띄더라도 확실하게 죽이거나, 에스티에게 정체를 들키고 도망가거나.

         

       결국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들키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래서 전자를 선택했겠죠. 어차피 들킬거라면, 한 명이라도 줄여놓는 편이 나으니까.”

       

       전생에도 그러했다. 올리비아는 절대로 셋 이상을 동시에 상대하지 않았다.

       있다면 딱 한 번, 키엘과 멜리나가 죽었던 날 뿐이었다.

         

       ‘……내가 강했더라면.’

         

       리브가, 에스티, 아쉐 발타르 또한 차례대로 사냥당했다.

         

       그 다음은 대륙 남부였다.

         

       혁명가와 악마 사냥꾼. 그 둘 또한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소식이 끊겼다.

         

       “남부로 가주세요.”

        “……남부?”

         

       ‘적어도 세 명씩은 같이 다녀야 안전해.’

         

       알테어와 혁명가, 그리고 악마 사냥꾼. 그 셋이라면 적어도 올리비아에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너는 어찌할 생각이지?”

       “저는 일단 에리야스 님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에요.”

         

       리브가처럼 대외적인 행사가 잦은 사람들은 올리비아도 쉽사리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고로, 가장 먼저 끌어들어야 하는 것은 그 정반대에 위치한 사람이어야 했다.

         

       ‘굳이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겠지.’

         

       잠시 생각하던 아리아가 입을 열려는 순간, 복도가 열기로 차올랐다.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

         

       “날 불렀나?”

       “네. 카르시안 님에게 가요.”

       “……갑자기? 그 년은 아직 동면 중일거다. 회귀했는지도 확실하지 않아.”

       “아뇨, 했어요.”

         

       올리비아의 행동을 보고 유추할 수 있다.

         

       ‘우리가 모두 회귀했기 때문에 몸을 사리는거야. 일부만 회귀했다면 사릴 이유가 없어.’

         

       그 사실을 올리비아가 어떻게 알았는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굳이 알 필요도 없었다.

         

       “황궁에서 할 일도 얼추 마무리됐으니, 당장 데려가주세요. 제 말이라면 들어주실 거에요.”

       

       화이트 로드, 카르시안과는 어느 정도 면식이 있었다.

         

       꽤나 후반까지 함께 싸웠으니 말이다.

         

       멀리서, 시종과 기사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황녀 전하! 어디 계십니까!”

       “당장 찾아라! 흩어져!”

         

       옆에서 에리야스가 툭 중얼거렸다.

         

       “뒷감당은 어떻게 할 생각이냐?”

       “뒷감당이라뇨. 납치당했다고 하면 그만인걸요. 발톱에 한두 번 매달려 본 것도 아니고.”

       “허. 나보고 악역을 하라고?”

         

       아리아가 생긋 웃었다.

         

       “악룡을 감화시킨 황녀. 꽤 듣기 좋지 않나요?”

         

       에리야스도 따라 웃었다.

         

       “극적인 연출을 위해 황궁 지붕 정도는 부숴야 할텐데. 괜찮나?”

       “얼마든지요.”

         

       에리야스가 날개를 펼쳤다. 뒤늦게 달려온 기사들은, 용의 발톱에 붙잡힌 황녀를 무기력한 얼굴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

         

         

       그리고 그 시각, 올리비아는 네 번째 단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단서 #5의 주인은, ‘무왕 아쉐 발타르’입니다.]

         

       ‘현실’에서 다시 한 번 무너져 내리는 아쿠아르를 보던 에스티가 말했다. 그녀의 말투는, 조금이지만 공주답게 변해 있었다.

         

       “……기분이 묘하네.”

         

       기절한 에스티가 깨어나기 전에, 올리비아는 다시 한 번 ‘목소리’와 주박를 없애는 작업을 마쳤다.

       리브가의 도움을 받을 필요는 없었다. 성불은 신성력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했으니까.

         

       “……저들을 성불할 생각은 어떻게 했니?”

         

       올리비아는 여전히 회귀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은 상태였다.

         

       “유추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아. ‘목소리’가 들린 시점이 아쿠아르를 가라앉힌 이후였을테니까.”

         

       에스티는 납득하지 못했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그녀는 자신을 속박하던 굴레에서 두 번이나 해방시켜준 당사자에게 무언가를 캐물을 만한 위인은 아니었다.

         

       올리비아가 천재였다는 사실도 그녀를 납득시키는 데 한몫했다.

         

       ‘회귀하지 않은 척을 해야, 최악의 상황에 닥쳤을 때를 대비할 수 있어.’

         

       아리아는 몰라도, 적어도 다른 회귀자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수는 있을 것이다.

       올리비아는 확신했다.

       지금까지는 전초전에 불과했다고.

         

       ‘이제부터 편가르기 시작이다.’

         

       제국 방향을 쳐다보다 고개를 돌린 순간, 아공간 속에 넣어두었던 통신용 수정구가 울려왔다.

         

       [……리비야.]

         

       멜리나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Ilham Senjaya님!

    그리고 오늘 1만 표지가 완성되었습니다! 와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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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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