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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8

       내가 입꼬리를 올리자 신령이 발끈하며 어깨를 폈다.

       

       그와 동시에 머리 위의 귀도 바짝 서는 모습이 신기했다. 저것은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 것인가?

       

       이런 내 호기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령은 당당하게 목소리를 냈다.

       

       “자. 내 소개를 하지 않았느냐. 그대도 자기소개를 하거라.”

       “본인은 민트초코파인애플피자다.”

       

       내 본래의 이름을 말하려 한 순간 입이 제멋대로 움직여 게임 속 닉네임을 언급했다.

       

       무슨 억제력이라도 걸려 있는 것처럼 저항할 수 없는 힘이었다.

       

       “무어라고?”

       

       신령은 내 말을 듣고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더듬더듬 내 이름을 따라 말했다.

       

       “민트초… 뭐?”

       

       화령. 백화령. 백아라. 등등.

       

       나의 이름을 말하려 수많은 시도를 해보았다만.

       

       “민트초코파인애플피자.”

       

       게임 속의 내 육신은 처음에 정했던 닉네임을 입에 담을 뿐이었다.

       

       역용술을 사용해 입을 억지로 움직여보려 시도하기도 했으나 게임의 강제력 앞에선 어쩔 수가 없었다.

       

       이 무슨. 닉네임 이외의 이름은 언급할 수 없게 해두었단 말인가.

       

       아니. 잠시만. 그러면 난 이 게임 속에서 민트초코파인애플피자라는 이름으로 살아야 한단 소리더냐?

       

       이럴 줄 알았더라면 좀 더 정상적인 이름으로 지었지!

       

       어쩐지 내 이름을 정할 때에 시청자들이 웃음을 터트리더라니.

       

       내가 속으로 나를 골린 놈들은 비난하고 있을 동안 신령은 몇 번이고 내 이름을 따라 말하려다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혀가 꼬이는 것이 닉네임을 제대로 발음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이해한다. 민트초코파인애플피자라는 단어는 지금 무림에 존재하지 않은 언어로 이루어진 단어니까.

       

       나도 그런 이름을 들었다면 당황했을 것이야.

       

       “그냥 민가라 불러도 되겠느냐?”

       “그렇게 하거라.”

       “그래. 민가야. 나는 이곳에서 신선의 기운을 느끼고 온 것이다. 혹여 이 곳에 신선이 있다 가지 않았느냐?”

       “여기에 있던 건 본인뿐이었다만.”

       “이상하군. 그럴 리가 없는데.”

       

       고갤 갸웃거리는 신령을 보다 문득 떠오른 것이 있어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들었다.

       

       내게서 신선의 기운이 느껴질 만한 물건이라 하면 검선이 내게 선물한 이것밖에 없겠지.

       

       검을 보이자 신령이 탄성을 내지르며 박수를 쳤다.

       

       “오오. 여기서도 신선의 기운이 느껴지는구나!”

       “그대가 느낀 건 이것의 기운이 아니었나?”

       “그래. 이것과는 달랐다.”

       

       내 이것 말고는 짐작 가는 부분이 없다마는.

       

       그러고 보면 튜토리얼을 끝맺은 후에 신선의 조각이라는 걸 얻었지.

       

       그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이것은 신선에게 받은 물건이더냐?”

       “그렇다.”

       “호오. 단순한 무인이라 생각했거늘 신선의 인정을 받은 대단한 사람이었나 보구나.”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던 신령은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슬며시 나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자신의 품 안을 주섬주섬 뒤지더니 거기에서 호리병 하나와 술 잔 두 개를 꺼내 들었다.

       

       “한 잔 하지 않겠느냐?”

       

       신령은 사람이라기 보단 개념적인 무언가에 가깝다.

       

       저들은 태어나기를 신령으로 태어난 존재이기에 인간에 가까운 모양새를 하고 있으나 인간과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

       

       나도 저들의 사고방식에 대해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저들을 만나 대화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에.

       

       허나 보통 신령이 술을 권유할 때는 귀찮은 일을 떠넘기고 싶을 때 뿐이라는 것만큼은 알고 있다.

       

       문맥도 뭣도 없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대작을 권유한 것으로 보아 이 자의 의도도 비슷한 듯 하구나.

       

       “부탁할 것이 있다면 당당히 그 제안과 대가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 빠를 게다.”

       “…부탁 같은 건 없다!”

       

       신령은 내 말을 부정하고 싶어 했지만 덜덜 떨리는 목소리와 방황하는 눈동자가 그게 거짓임을 증명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 눈을 노려보니 점차 신령의 몸이 쭈그러들었다.

       

       얼마 안 가 버림받은 버림받은 강아지마냥 귀를 쭈그러트린 그녀는 꼭 애원하는 것처럼 목소리를 냈다.

       

       “무슨 부탁인지 사실대로 고하면 들어줄 테냐?”

       “들어 보고나서 정하겠다.”

       “흐으. 알겠다. 말하마. 그러니까 이건… 화산과 관계된 일이니라.

       얼마 전에 화산이 머무르는 돌산의 신령이 이야기하길 그 곳에 무언가 변고가 일어나고 있다더구나.

       삿된 마음을 먹은 이들이 모여 화산이 있는 산에서 매화를 피우려 한다고. 반드시 그것을 막아야 하는 데 자신과 화산에는 그를 막을 힘이 없으니 구원을 보내 달라고.

       그대는 신선의 인정을 받을 정도로 고결한 무인 아닌가. 자네가 화산에 간다면 충분한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이를 부탁하려 했다네.”

       

       신령의 말은 다소 뜬구름을 잡는 소리였다.

       

       그 투박한 돌산에서 매화를 피우려 한다는 것이나, 매화가 피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나.

       

       어느 쪽이건 무엇을 비유한 것일 터인데 앞에 있는 신령에게는 이를 해석할 능력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 해석은 내 스스로 해야 하겠지.

       

       어디 보자. 이 시기에 화산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더라.

       

       당시 본인은 천마신교에 틀어박혀 교인과 장로들을 상대하느라 골몰을 썩던 중이었던지라 세상 소식에 그리 민감하지 못했다.

       

       복수도 어느 정도 끝마친 후였던 지라 이 때 나의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신교에서 도망칠 수 있을까 하는 것뿐이었지.

       

       그래도 꼴에 천마의 직함을 지니고 있었던 지라 내게 들어오는 정보는 상당히 많았다.

       

       그 중엔 화산에 대한 것도 있었다.

       

       아아. 그래. 생각이 났다. 혈교의 교주가 화산에서 무슨 음모를 벌였고 그 여파로 화산파가 완전히 멸문하게 되었다고 했던가.

       

       정확한 기억은 아니었지만 대충 그런 내용이었을 것이다.

       

       즉, 삿된 이들은 혈교 쪽 놈팽이들이고, 매화를 피운다는 것은 그들의 음모를 이야기하는 것인가.

       

       정확한 내용은 모르겠으나 화산에 갈 이유는 충분해 보이는 구나. 혈교주 놈이 하는 일이라면 방해를 하러 가야지.

       

       허나 그 전에 물어야 할 게 있다.

       

       “내 그대의 부탁을 들어준다 치자.”

       “정말인가?”

       “말을 끝까지 듣거라. 부탁을 들어준다면 그대는 내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

       

       본인은 선량한 자선사업가가 아니다.

       

       혈교의 계획을 망치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있으나 그 뿐이다. 반드시 그들을 괴롭힐 이유는 없다.

       

       화산이 망하든가 말든가 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는 내게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지금 급한 것은 어디까지나 신령 쪽이다.

       

       그러니 이 녀석이 적절한 대가를 내놓지 못한다면 본인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등을 돌릴 것이다.

       

       “어. 그러니까. 신선들이 먹는 환단은.”

       “필요 없다.”

       

       환단의 역할을 할 것은 지금 내 주머니에서 잠자고 있는 공청석유면 충분하다.

       

       “짐보따리 가득 담긴 금은 어떻.”

       “그 또한 필요 없다.”

       

       현실의 재물을 준다 하여도 시큰둥 할 터인데 게임 속 재물을 준다고 내가 덥썩 받아들일 리가 없지 않으냐.

       

       신령이 이런저런 물건을 입에 담았지만 그 중에서 본인의 구미를 당기게 한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쉽지만 이래서야 돌아갈 수밖에 없겠구나.”

       

       안타까운 일이다만 세상일이라는 게 원래 다 생각대로 풀리진 않는 것이지.

       

       등을 돌리려 한 순간 신령이 다급히 내 옷깃을 부여잡았다.

       

       “그럼 이거! 이것을 주마!”

       

       신령이 내민 것은 낡은 두루마리였다.

       

       얼핏 보기엔 그리 대단할 것 없는 물건처럼 보였으나 두루마리에는 신령에게서 느껴지던 특유의 신비한 기운이 담겨 있었다.

       

       범상찮은 물건이구나.

       

       “이게 무엇이지?”

       “그대가 마음속으로 깊이 바라는 걸 찾아내주는 두루마리이니라. 대륙 전체를 통틀어도 몇 개 없는 귀물이다! 내 이것보다 더 한 보상은 줄 수 없으니 제발 가지 말아다오.”

       

       그런 힘이 담겨 있다고? 그 말이 사실이라면 분명 흥미가 간다만 이 녀석이 하는 말을 어찌 믿을 수 있을까.

       

       이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의심을 품은 순간 내 앞에 창이 하나가 떠올랐다.

       

       [히든 퀘스트 : ‘화산의 매화’]

       

       [화산은 멸문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당신이 돕지 않는다면 화산은 정말로 역사 속으로 이름을 감추게 될지도 모릅니다. 신령을 도와 화산을 구하십시오.]

       

       [보상 : 바라는 것을 쫓는 두루마리]

       

       흐응. 그러니까 지금 이 놈이 하는 말이 사실이라는 걸 증명하겠다는 것이더냐.

       

       한 번 속아주도록 하겠다. 지난번에 비녀를 건네준 것도 있으니 말이다.

       

       “신령아. 잔을 내놓거라.”

       “갑자기?”

       “보통 신령은 남한테 무슨 일을 떠맡길 때에 술부터 먹이지 않더냐?”

       “부탁을 들어줄 건가?! 진짜로?!”

       “싫으면 말고.”

       “아니. 아니야. 자아. 어서 받게나. 내 그대에게 신령의 술을 맛보게 해주겠네!”

       

       신령은 다급히 술잔에 술을 따르고는 내 손에 반쯤 억지로 쥐어 주었다.

       

       그것을 들이키니 미묘한 단맛이 느껴지는 쌉싸름한 맛이 입 안을 가득 채웠다.

       

       맛있는지 맛없는지는 모르겠다만 적어도 내 취향은 아니었다.

       

       본인이 좋아하는 마실 거리는 좀 더 단 것들이었으니 말이다.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이로써 확인이 되었구나. 게임 속 세상에서도 맛을 느낄 수 있다.

       

       흐음. 그렇다면 미식을 경험하게 만들어주는 게임도 있지 않을까. 그런 게임이 있다면 상당히 흥미가 간다마는.

       

       “신령아. 하나 물어도 되겠느냐?”

       “무엇인가. 내 무엇이라도 답해주지!”

       “그대들은 도대체 왜 무슨 부탁을 할 때에 술부터 내미는 건가?”

       

       한 녀석만 그런다면 내 그 놈의 버릇이겠거니 생각을 했을 터다만 신령들이 다 똑같은 행동을 하는 걸 보면 무슨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

       

       “궁금하단 게 그것인가? 화산에 대한 게 아니라?”

       

       내가 이리 질문하자 신령이 눈을 끔뻑였다.

       

       “대답할 수 없는 것인가?”

       “…그렇진 않다. 우리가 술을 내미는 건 일종의 규율 같은 것이다. 부탁을 하기 전에 먼저 맛난 것을 먹여 기분을 풀어주어야 한다는 식이지.”

       “이게 맛있는 거라고? 진심으로?”

       

       내가 아무리 술에 조예가 깊지 않다고는 하나 이게 맛있다는 것에 동의하지는 못하겠다.

       

       “취선에게 받은 술이 맛이 없을 리가 없는데? 견문이 부족한 것 아닌가?”

       “견문이 부족한 것은 오히려 그대 쪽이다. 산에나 틀어박혀 있으니 이런 걸 보고 맛있는 술이라 하는 것이다. 현대엔 이보다 더 나은 것이 넘치고 넘친다.”

       “현대? 그것은 또 어느 지방인가?”

       

       신령은 내가 말하는 현대를 내가 있던 지방의 이름이라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그 허술한 모습이 재밌었기에 나는 현대에 존재하는 여러 먹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내 현대에 오고 나서 한 번도 식사의 시간을 허투루 쓴 적이 없었기에 말할 거리는 차고 넘쳤다.

       

       흥미진진한 얼굴로 내가 말하는 것을 듣고 있던 신령은 내 묘사에 침을 흘리다 정신을 차리곤 자신의 소매로 입가를 닦아냈다.

       

       “말하는 것만 들어보면 현대라는 곳은 도원향에 따로 없구나.”

       “그러는 그대는 신령 아닌가. 도원향에 가본 적 있지 않으냐?”

       “도원향이 괜히 도원향인 줄 아느냐?”

       

       잡담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새벽 네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슬슬 떠날 때인가. 게임 안에 더 있어도 할 게 없으니.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옷의 흙을 털어내고 있으려니 여자아이가 나의 옆에 자연스럽게 따라 붙었다.

       

       왜 따라오려 하는 것인가. 신령이라면 이 산을 지켜야 하지 않으냐?

       

       내가 의문을 담아 쳐다보았더니 신령이 왜 그러냐는 듯 고갤 갸웃 거렸다.

       

       그럴 게 아니라 말을 해라. 말을.

       

       귀여워 보이긴 한다만 세상 일이 그것 만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 놈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빠빠빠빰! 여우귀 신령이 동행하고 싶다고 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

    조회수 50만 돌파!
    독자님들이 계신 덕에 이룰 수 있었던 일입니다.
    항상 보러 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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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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