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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8

        

         ‘대체 언제부터 거기 있던 건데…!’

         

         뒤통수가 얼얼하다.

         풍압에 밀려 넘어지면서 객실 내벽에 머리를 박은 것과 긴장을 풀은 순간 얼탱이 없는 매복에 당했다는 사실 중 어느 쪽의 지분이 더 큰지는 잘 모르겠다.

         

         상대가 스스로 진입(Push)해오도록 유도하거나, 시간을 끌어서 못 참고 전진할 때까지 버티는 것.

         

         적의 유효 사거리 내로 안전하게 들어갈 방도가 없다면 무조건 따라야 하는 전투 교본이다.

         

         목숨 내놓고 하는 교전이 무슨 장난도 아니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 드는 건 분명 칭찬해줄 만한 일이었지만, 아무래도 전자를 고른 입장에서는…… 후자를 택한 새끼가 겁나 아니꼬울 수밖에 없었다.

         

         아니, 애당초 기업 지원이 오면 망하는 것도 지들이면서 뭘 느긋하게 숨어있는 건지…!

         

         “씨…발!!”

         

         쌍욕을 퍼부어주고 싶은 건 오히려 이쪽이거늘.

         씨부렁거리며 복도로 막 튀어나오는 놈과 눈이 마주쳤다.

         

         분명 뒤에서 쏟아진 제로의 살벌한 탄막쇼를 봤을 테니, 당장이라도 뒤돌아서 덤벼들 드로이드를 상대할 준비를 할 줄 알았는데 남자는 나에게서 머리를 돌리지 않았다.

         

         눈앞의 적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다는 고집인지, 살인 기계보다는 훨씬 약해 보이는 계집을 생각하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다는 판단인지는 알 수 없어도.

         뒤편에서 꽂히는 살기등등한 눈길은 애써 무시한 채 우선 나부터 어떻게 해보겠다는 의도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것 참 강약약강은 확실한 친구였네.

         

         “이렇게 달려들었으니까… 죽고 싶은 걸로 이해한다?!”

         

         타닥!!

         

         통조림 까먹던 힘까지 쥐어짜 발을 구른다.

         하지만 그렇게 노력해서 몸을 날리는 방향은 남자의 정반대, 널브러진 사체들이 있는 각도.

         

         기세 좋게 말해 놓고 기껏 하는 일이 도망가는 것처럼 보였다면, 정말 안타깝지만 당신은 싸움 보는 눈이 부족한 편에 속하시겠다.

         

         상황이 어찌 굴러가도 잘해야 같이 죽는 게 한계인 놈의 선택은 내 목숨.

         한편 내 승리 조건은 곧 복도를 가로질러 도착할 제로가 이 새끼의 목을 날려버리거나, 내가 먼저 지방층에 새 숨구멍을 뚫어주는 것이었으니 무조건 거리를 벌리는 게 맞았다.

         

         “이 년이…!”

         

         달려드는 남자를 향해 권총을 겨눈다.

         움직이면서 쏘려니 조준선이 지진 난 듯 흔들리는 게 정밀한 이동 사격은 더 연습이 필요하겠다. 조금은 섣부른 결정이었을지도…?

         

         탕—!

         

         “썅년이!!”

         

         땀방울, 핏방울이 허공에 뿌려진다.

         

         대략적으로나마. 건들거리는 남자의 머리를 겨냥하고 쏴 봤지만, 유감스럽게도 어깨에 맞았다. 이래서 영화나 시네마틱(Cinematic; 영화의 속성을 가진 영상)을 보면 등장인물들이 어깨에 총상을 입는 거구나… 하나 배웠다.

         

         요동치는 어깨와 팔을 잡아당겨 이번엔 널찍한 몸통을 노리고 발포. 옆구리에 쪽에 붉은 반점이 퍼진다. 덮쳐오는 모양새가 많이 무너졌으니 이제 한 발 정도만 더 먹여도 충분히….

         

         “큭?!”

         

         쿵! 하는 소리와 그에 준하는 충격이 등판을 타고 흐른다.

         벌써 땅에 닿았나? 바닥에 묻어 있던 혈액이 튀는 걸 보니 그럴지도. 근데 이럼 내가 머릿속으로 그렸던 멋진 그림이랑은 구도가 좀 어긋나는데… 곤란하다.

         

         본능적으로 무릎을 굽혀 닥쳐올 마운트 상황에 대비한다.

         

         내가 직접 결정타를 꽂을 필요도 없다. 어느새 다다른 남자를, 마찬가지로 따라붙은 제로 쪽으로 차서 밀어내기만 해도 상황 종료다. 그래, 이렇게 발로 뻥…… 뻥?

         

         꾸우욱!

         

         이미 피부에 파묻힌 부츠는 아무리 힘껏 뻗어봐도 발차기와는 거리가 얼었다.

         

         각력은 평균적으로 완력보다 훨씬 세기에 나라도 이 정도는 가능할 줄 알았는데 예상 이상으로 온체중을 실어 날아온 남자의 무게는… 많이 푸짐했다.

         

         “야, 이런 개….”

         

         돼지새끼! 황무지에 숨어사는 똘마니가 뭐 이리 무거워?! 먹을 것도 부족한 김에 다이어트나 좀 하지…!

         

         최선을 다해 팔과 다리를 써서 찍어 눌러지는 건 피했지만, 기어이 몸이 맞부딪친다.

         

         동시에 서늘하면서도 묵직한 감촉이 복부 근처에서 느껴졌다.

         주먹질 정도라면 이를 악물고 견뎌주겠다고 생각했지만 뭔가 달랐다.

         

         턱을 당겨 밑을 바라보니, 상당히 요란스러운 개조가 베풀어진 네일건(Nail Gun; 못총, 못 박는데 쓰는 공구)가 보였다.

         

         사거리를 늘리기 위함인지 잡아 늘려진 총열, 삐죽삐죽한 가시 장식을 둘러친 손잡이, 덕테이프로 위에다 둘둘 감아 놓은 조준경.

         그리고… 못 대신, 살 떨리게 생긴 큼지막한 탄이 잔뜩 들은 매거진까지.

         

         원형도 모르게 달라진 총과 별개로, 출고 당시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한 탄약에 관한 정보가 망막에 표시되었다.

         

         [ M999-Parabellum 고밀도 고폭화약 철갑탄. Black Dragon Corp. ]

         

         이런 망할. 하필 이 친구가 철갑탄 쓰는 사수였어? 운도 지지리 없지.

         …존나 고맙다. 사이버웨어야,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줘서.

         

         우드득!! 투쾅—!

         

         “흡…!!”

         

         혹시라도 혀를 씹지 않도록 입을 다물었다.

         

         승부가 났다는 걸 깨달으니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그로 인해 느려졌던 체감 시간이 원래대로 돌아와서. 놈의 가슴팍을 관통한 칼날과 영거리에서 발사된 철갑탄 중 어느 게 더 빨랐는지는 못 봤다.

         

         남자의 머리통을 붙잡아 옆 객실에다 휙 하고 던져 넣는 제로를 보면서, 화끈거리는 배를 움켜쥔 채 오만가지 경우의 수를 따져보았다.

         

         요즘 사람 명줄이 질기다지만… 그게 과연 임플란트 하나 없는 나한테도 적용되던가?

         

         지원 병력이 여기까지 오려면 얼마나 남았더라. 의료실에서 소독하고, 총알 뽑아내고 할 설비는 있지만 오퍼레이팅 할 사람이 없는데?

         게다가 가방마저 침대 맡에 두고 와서 지혈제도 수중에 없네? 끝내준다 정말.

         

         – ……. –

         

         묵묵히 내려다보는 제로의 음영이 꼭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처럼 느껴졌다.

         

         평소에 내가 문틀에 신발만 부딪쳐도 평평하게 다져버리겠다며 온갖 호들갑을 다 떨던 애가 말도 없이 조용하니 심각성이 더욱 부각되는 것 같았다.

         

         …결국 사람이란 언젠가는 실수하고, 실패하는 법이다. 단지, 나에게는 그 한 번이 지나치게 치명적이었을 뿐.

         

         ‘거지같네….’

         

         억울하다면 꽤 억울하고, 슬프다면 엄청 슬프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네오 헤이븐 근처에도 못 가보고 여정이 끝나는 게. 성공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삐끗하는 것보다 덜 아쉽다는 마음도 들었다.

         

         그래. 모험도 낭만도 좋지만 더 험하게 구르면서 고생하느니 차라리 지금….

         

         – 객실로 돌아가면 냉찜질이나 경피 패치(Transdermal Patch; 파스)를 부착하셔야겠군요. –

         

         얼음찜질을 하고 편히 안식에 드는 게… 에?

         

         “……잠깐만, 뭐라고?”

         

         배를 누르던 손가락을 꼼지락거린다.

         더럽게 아프고 화끈거려서 당연히 총알이 관통한 줄 알았는데 그렇다고 하기엔 축축하거나 흘러내리는 감촉이 전혀 없었다.

         

         곧바로 손을 치워 자켓을 걷어붙이고 말랑말랑한 맨살을 확인한다.

         꼴 보기 싫은 피멍은 확실히 생겼지만… 진짜 관통상은커녕 총상조차 아니었다. 설마 탄환은 튕겨 나가고 운동 에너지만 전달된 건가? 왜??

         

         균열이 생긴 제로의 복합 장갑을 한 번, 탄환과 충격이 역류했는지 엉망으로 터져나간 마개조 네일건을 한 번.

        마지막으로 시선을 내려 재킷과 몸에 착 달라붙은 바지, 헤이롱의 ‘특제’ 프로토타입 하이퍼 컴뱃 슈트를 응시했다.

         

         “…이게, 무슨 복합 합금 장갑보다 단단하다고?”

         

         – 물론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가 감히 이런 교전 구도에서 아샤님의 옆을 비울 리가 없지 않습니까? –

         

         “내가 일부러 총 맞고 다닌 것도 아닌데 몰랐지…!”

         

         재질이 범상치 않다는 것쯤은 이걸 걸친 날부터 알았지만, 공학 지식이라곤 평균보다 좀 나은 수준에 불과한 내가 그 정보를 바탕으로 실성능을 유추하긴 무리였다고 주장하겠다.

         

         사실 그보다도, 속으로 읊던 유서 비스무리한 걸 입밖으로 꺼내지 않은 게 진짜 천만다행이다.  나 혼자만의 비밀로 남을 기억인데도 쪽팔려서 당장 혼절하고 싶었으니까! 아— 시발!!

         

         – 괜찮으십니까? 안색이 과하게…. –

         

         “!! 시끄러. 욘석아!”

         

         말똥말똥한 스캐너 렌즈를 손바닥으로 틀어막고 몸을 일으킨다.

         먼지, 응고되려는 피, 모래 및 기타 등등이 옷자락을 타고 후두둑 쏟아진다.

         

         일단 활동하는데 거슬린다고 돌돌 말아 놨던 소매를 재빨리 풀어 내려서 노출된 팔을 다시 덮는다. 뜨거운 공기가 넘실거리기 시작한 장소라 좀 불쾌하긴 해도 역시 안전이 제일이니.

         

         – 방금 죽인 놈들이 차량을 지키던 수비 병력으로 추정됩니다. 기차 외부로 우회하는 도중 바로 앞에 정거 중인 호버크래프트를 확인했습니다. –

         

         “크흠…. 그럼 여기서 내려서 양 방향으로 기차를 장악한 거라고?”

         

         넘어질 때 굴러간 권총을 주워 상태를 살펴보고 있으려니 희소식이 있었다.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른 건 물론이요, 곁다리로 붙어있던 장애물도 겸사겸사 치워버렸을 줄이야.

         

         …겸사겸사라고 가볍게 묘사하기엔 우여곡절이 조금 심했지만 아무튼.

         

         사박! 사박… 사박….

         

         복도를 가로질러 기차 밖으로 힘차게 발을 내디딘다.

         

         나름 직접 걸어가겠다는 의사표현이었으나 자꾸만 경사를 따라 다리가 미끄러지고 신발이 푹푹 잠겨서 결국 얌전히 전용 로봇의 지정석에 탑승할 수밖에 없었다.

         

         장갑이랑 기관부 틈새로 모래가 마구 들어가는 게 보이는데… 고장은 안 나겠지만 보는 내가 다 찝찝하다.

         

         우뚝 멈춘 호버크래프트까지의 거리는 고작해야 쉰 걸음 내외.

         

         심지어 뺏은 물건들을 적재하고 있었는지, 친절하게 문도 열려 있었다. 그야 여태 개고생을 했기에 이렇게 쉽게 도착한 거겠지만, 내 강점을 살려볼 기회도 없이 악조건에 질질 끌려다니다 보니 기분이 영….

         

         “에휴.”

         

         한숨을 내쉬고 조종석에 착석.

         

         내부 계기판 프레임을 더듬어서 전기 전도율이 괜찮을 곳을 붙잡고 흐름에 간섭한다.

         모자라 보이는 범죄자투성이라도 특출난 엔지니어가 섞여 있을지도 모르는 만큼 최대한 은밀하게, 기존 데이터와 유사하게 빚어낸 전자 폭탄을 주행 및 엔진 시스템에 부착했다.

         

         아, 바로 터트리지는 않는다.

         방금 궁지에 몰린 쥐가 얼마나 아득바득 달려드는지 경험하지 않았나? 때로는 도망갈 길을 열어주는 게 더 우수한 전략이 될 수 있으리라.

         

         그 외는… 이걸로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도어락이랑 호버링 쪽도 살짝 만지작거려 둘까.

         

         – …많이 피로해 보이시는데, 작업이 끝나는 대로 이만 객실로 돌아가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이미 넘칠 정도로 호의를 베푸시지 않았습니까? –

         

         “…응?”

         

         호의? 아, 일부러 강도 새끼들을 쓸어버리면서 전진하는 걸 제로는 부수적인 호의라고 판단한 걸까.

         

         확실히 뚫고 오는 길에 몇몇 좌석칸 승객으로부터 감사 인사도 받았으니 그런 시각으로 바라볼 수도 있겠다.

         이 범죄계획에서 우수한 차량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했는지 몰라도. 조금은, 은연중에 의무감을 가지고 행동했을지도…?

         

         “그래도 여기까지 온 김에 그 둘은 확인하고 가야지.”

         

         솔직히 내가 한 말이지만, 노련한 전 용병이 있으니 별일은 없을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중간중간 거슬리는 임플란트나 무기를 보유한 것들이 섞여 있긴 해도 기업 속 뒤집어 놓는 걸 생업으로 삼는 이들과 비교하기엔 차이가 현격했으니까.

         

         

         ……한데 왜 그 객실에 도착하니 로잘린이 홀로 위기에 처해있는 걸까?

         아시프는 대체 어디로 갔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의 교훈 : 영화를 함부로 따라하지 말자.
    하하! 쫄았대요.

    ‘Si vis pacem, para bellum.’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
    요즘 개봉이 다가와서 시끌시끌한 존윅 시리즈에도 인용되었던 로마 서적의 라틴 문구라 하네요.

    모티브가 된 파라벨룸 탄과 M995 AP탄은 유명한 표준 탄약 중 하나입니다. 항상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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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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