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98

     

     삼가 고인의 명복을 아무튼 빔.

     장례식이라는 게 고인의 명복을 기리는 의식이지만, 귀족의 장례식은 조금 경우가 다르다.

     엄숙한 분위기에서 펼쳐지는 사교의 장.

     드레스코드는 전부 검은색으로 통일하고, 희로애락 중 기쁨과 즐거움만을 뒤로 숨긴 추모의 연회.

     “세빌리야 남작이 죽었네요. 다음 대의 세빌리야는 어떠려나?”

     검은 리본이 휘감긴 연회장의 가운데, 장례식에 참석한 귀족들이 저마다 술잔을 들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모르지. 저 화환이 전대에 온 건지, 당대에 온 건지.”

     사람들의 관심은 죽은 이에게 없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죽은 자가 아닌, 후계자에 관심이 있을 뿐이기에.

     “지브롤터에서 화환을 보낼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어요.”

     “바로 이웃 영지 아닌가. 나름의 교류가 있었겠지.”

     “그러면 나중에 지브롤터가 깃발을 내걸 때, 세빌리야도 같이 그 아래에 들어가는 건가요?”

     “어허. 그건 억측이야. 아무리 지브롤터가 나름 대외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주객전도가 따로 없지만, 지브롤터라서 어쩔 수 없다.

     귀족의 죽음에 으레 도착하는 왕가의 화환 옆, 당당하게 ‘크림슨 지브롤터 변경백’의 화환이 놓여있으니.

     “심지어 로마나 자작까지 왔다고 했죠?”

     “조사관이지만 사실상 명복을 빌어주려고 모르가니아에서 보낸 거지.”

     “이번에 새로 뭐더라…법무청? 새롭게 만들어진 조직의 실질적 수장이라고 하던데.”

     “가모스 남작이 여기저기에 기름칠을 좀 많이 해뒀나 봐. 그 꼬장꼬장한 노인네가 그랬을…크흠.”

     언제나 이 순간은 재미있다.

     귀족들이 자기들끼리 작게 속삭이듯 말하고 있지만, 그 이야기들을 듣는 건 언제나 즐겁다.

     ‘이럴 때야말로 항상 회귀 전의 연회를 느끼게 해준단 말이지.’

     매국노 그레이와 그 아래에서 연회를 즐기는 배신자들.

     앞에서는 하하호호 웃으며 덕담을 나누고, 뒤로는 흠결을 찾거나 트집을 잡으려고 발버둥 치는 저열한 무리.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인간군상이다.

     절대선도 절대악도 아닌, 강자에게 굴복하고 약자를 잡아먹으려는 이기적인 인간의 전형과도 같아서.

     그리고 나도 그런 자들과 비슷한 결이라서 더 편하다.

     “도련님. 조사가 끝났습니다.”

     “멘테 경. 찾았습니까?”

     “아직은요.”

     공식적인 자리라, 멘테 경이 나에게 다가와 공손하게 말했다.

     “‘넘버즈’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혹시나 들킬까봐 호텔에 계속 머무르고 있습니다. 유사시에는 뛰쳐나올 수도 있습니다만….”

     “아뇨. 그들은 이번에 안 나오는 게 돕는 겁니다. 상대가 예상대로의 적이라고 한다면.”

     “…….”

     멘테 경이 말없이 바닥에 짙게 드리운 그림자를 발로 쓱 문질렀다.

     

     제국의 그림자.

     현재 우리가 찾는 존재.

     ‘새로운 백은 냄새는 나지 않지만, 그림자가 아니더라도 첩자가 올 수는 있지.’

     플람벨 남작은 백은을 섭취하다 죽었다.

     작위를 물려받은 가모스 남작은 백은에 대해 일절 모르니, 분명 누군가는 접촉하려고 할 게 분명하다.

     남은 백은이 있다면 회수하거나.

     아니면 가모스 남작에게도 백은을 한번 복용해 보라고 제안하거나.

     혹은….

     “멘테 경. 가모스 남작은 지금 어디에?”

     “헥스 자작과 따로 이야기를 나누는 중입니다.”

     “아. 사냥터 계약 문제. 좋네요. 알아서 잘하겠죠.”

     이전에 잠시 이야기를 나눴으니, 헥스 자작은 지브롤터-모르가니아에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충분히 계약을 끌어낼 수 있겠지.

     “화환 하나로 사냥터를 얻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거래는…잠시.”

     저 멀리.

     누군가가 다가온다.

     “멘테 경…을 향해 오는 건 아닌 것 같네요.”

     “시선이 도련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나를 향해.

     “그레이 지브롤터.”

     내 이름을 정확히 부르며 다가오는 짙은 갈색 머리칼의 중년 남자.

     아는 얼굴이다.

     “헤이스팅스 롤랜드 후작을 뵙습니다.”

     “음.”

     왕국의 충신 중 한 명이며, 황제를 상대로 기사단을 이끌고 진격을 저지하려고 했다가 그대로 황제에게 살해당한 북부의 귀족.

     “변경백은 강녕하신가?”

     “예. 여전하십니다. 이번에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과연. 아직까지 여유롭다는 건가….”

     후작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마스터는 되지 못한 상급의 기사.

     아버지를 상대로 검사로서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자.

     그래서 아버지가 매국노가 되었을 때, 진심으로 분개하며 기사단을 이끌고 제국군에 들이받은 자.

     “멘테 경도 나날이 강해지고 있구려. 어쩌면 나보다 더 빨리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소.”

     “감사합니다, 후작.”

     “이럴 줄 알았으면 그대를 우리 롤랜드로 데리고 올 걸 그랬나.”

     “저는 지금 지브롤터의 사람입니다. 실례입니다, 후작님.”

     “그런 말을 할 정도로 당당하기까지. 진짜로 실례했군. 아쉬워서 그러니, 너무 그리 노려보지 마시게.”

     노려보지 않을 수가 있을까?

     내가 모르가니아에 얼마나 공을 들여 영입한 사람인데, 그걸 말 한마디 넌지시 던져서 홀라당 잡아먹으려고 한 주제에.

     “멘테 경은 제 스승이며, 지브롤터의 기사입니다. 분명 지브롤터에서 마스터가 될 사람이죠.”

     그래도 너무 까탈스럽게 굴 수는 없다.

     “그보다, 뒤에 있는 사람은…?”

     “아. 이쪽은 내 장남일세. 그대와 같은 15살이지.”

     나보다 머리 두 개는 더 작은 주황색 머리칼의 소년이 움찔거리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페, 펠우드 롤랜드…라고 합니다.”

     “…….”

     “저, 저기….”

     “반갑습니다. 롤랜드 경. 저는 그레이 지브롤터입니다.”

     펠우드 롤랜드.

     아카데미 재학 시절 일방적으로 친우라고 불렸던 자이자, 왕국이 멸망한 뒤 나를 몇 번이고 괴롭힌 악우.

     ‘아카데미 들어올 때는 이 정도로 안 작았었는데.’

     오히려 지금의 나만큼 컸는데, 아직은 엄청 작다.

     “만난 적이…있었나?”

     “소문은 무성히 들었습니다. 롤랜드에서 창기병으로 마스터가 될 수 있는 인재가 나왔다고.”

     “아아, 그래. 다른 건 몰라도, 내 아들이 드라군이 될 인재기는 하지.”

     아들에 대해 칭찬하니 바로 롤랜드 후작이 옅게 웃으며 펠우드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떠냐. 소문만 들었을 때랑은 다르지?”

     “예, 예….”

     “소문?”

     “뭐든지 직접 눈으로 봐야 하는 법. 그레이 지브롤터는 풍문과 달리….”

     헤이스팅스 후작이 사납게 웃었다.

     “아주 제대로 칼날을 숨기고 있군 그래.”

     “…저는 그저 능력이 부족한 장남일 뿐입니다.”

     “마스터를 기준으로 두면 마스터 아닌 사람은 누구나 부족하지.”

     “…….”

     “그렇게 보지 말게. 나도 자네가 생각하는 바를 모르는 건 아니니까.”

     헤이스팅스 후작은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아련하게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귀족가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족쇄야. 차라리 자유를 몰랐다면 모를까, 산 너머를 보게 될 기회가 있으니 더 큰 시련이지.”

     “…….”

     “이크. 내 정신 좀 보게. 그러면 다음에, 언젠가 또 보도록 하지. 변경백에게 안부 전해주고.”

     “예.”

     헤이스팅스 후작이 몸을 돌려 떠났다.

     마지막까지 멘테 경에게 아쉽다는 듯 시선을 보냈으나, 멘테 경은 묵묵히 내 뒤에 꿋꿋하게 서 있었다.

     “…멘테 경. 방금 저 사람, 무슨 말을 한 건지 이해하셨습니까?”

     “아뇨.”

     “중년의 감수성인가….”

     대충 느낌적으로는 신분의 족쇄를 벗어던지고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이처럼 들리지만-

     ‘헛소리.’

     그런 자유조차 있는 자의 투정일 뿐.

     “하여튼. 왕국 귀족 평균이란. 어휴.”

     남의 집 장례식장에 와서 후계자 구도를 분석하며 이 집안이 정치적으로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는 걸 따지는 이들이 있지를 않나.

     자식 대결에서 살짝 밀린다 싶으니 바로 허파에 헛바람 든 소리를 하며 자리를 피하는 얼어 죽은 낭만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지를 않나.

     “멘테 경. 찾았습니다.”

     제국과 교류를 시작한 지 약 2년.

     “냄새가 납니다.”

     그사이에 벌써 제국에 물든 자가 어슬렁거리지를 않나.

     “쓰기 전에 잡으면 좋을 것 같은데, 그러면 함정 깔아둔 게 안타깝겠죠?”

     “그렇지.”

     멘테 경이 입맛을 다시며 칼을 만지작거렸다.

     “도련님. 이번에는 나 주는 거다?”

     “물론입니다. 잘 때 직접 옆에서 피워드리죠.”

     “후, 이번에는 반드시….”

     멘테 경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벽을 넘는다.”

     * * *

     새벽, 4시.

     

     모두가 잠든 시각, 빛 한 점 없는 복도에 그림자가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흐아암.”

     

     어느 암실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경비병이 길게 하품하는 사이.

     서걱.

     그림자는 단숨에 병사에게 접근했고, 병사의 목은 그대로 아래로 떨어졌다.

     “잭, 뭐하는-”

     서걱.

     옆에 있던 또다른 병사 또한 목이 떨어졌다.

     목이 떨어지는 소리는 그다지 크게 울리지 않았고, 두 병사의 몸은 차렷자세 그대로 멈췄다.

     끼이익.

     검은 그림자가 문을 연다.

     차가운 방 안에는 마석이 은은한 빛을 뿜어내고 있고, 가운데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노인의 시체가 관 속에 누워있었다.

     저벅, 저벅.

     그림자는 단걸음에 관을 향해 다가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날카로운 단검.

     어딘가 표면에 붉은 액체가 반짝이는, 마치 벼락처럼 구불거리는 단검.

     이곳은 분명 영안실이고, 시체를 안치하는 장소이나-

     푹!

     그림자는 노인, 플람벨 남작의 시체를 향해 단검을 찔러넣었다.

     심지어 다른 곳도 아닌 심장을 향해.

     “……!”

     아무런 반응이 없다.

     붉은 피가 튀거나 하는 반응도 일절 없이, 시체는 그 어떤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덜커덩!

     어딘가 잠금장치가 닫히는 소리가 그림자가 들어온 입구 방향에서 들려왔다.

     타ㅡ앗.

     그림자는 즉시 관을 뛰어넘고 창문을 향해 달렸으나-

     쨍그랑!

     창을 깨며 나타난 작은 소녀의 발길질에 그대로 명치를 얻어맞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 쓰레기 같은…!”

     “참으세요. 경.”

     그림자는 보았다.

     “어차피 죽은 거, 마법으로 만들어 낸 허상이었으니까.”

     “……!!”

     깨진 창 너머, 위에서 내려온 밧줄을 잡고 내려오는 회색 머리칼의 청년을.

     “안녕. 왔구나.”

     달빛을 등진 청년은 너무나도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내 백은.”

     “!!”

     그림자는 바로 몸을 돌려 도망치려고 했으나-

     푸ㅡㅡ욱!

     복부를 관통하는 칼날에 그대로 땅에 박힌 채,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멘테 경.”

     “응.”

     “자, 잠깐-”

     그림자가 다급하게 입을 열었으나.

     푸ㅡ욱.

     그림자는 자신의 시야가 천장을 한 번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한 뒤, 그대로 옆으로 멀어지는 몸에 의식을 잃었다.

     마지막 순간.

     자기 목이 데구루루 바닥을 구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 건, 자기 몸을 향해 느긋하게 걸어오는 회색의 청년을 보고 난 뒤.

     “그레이, 지브롤터-”

     그림자는 의식을 잃었다.

     * * *

     “그러니까 무조건 온다고 했잖습니까. 헥스 자작.”

     “…병사를 빼돌리기를 잘했네.”

     영안실의 문이 열리며, 헥스 자작이 핼쑥한 표정으로 들어와 다시 문을 닫았다.

     “야.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니냐. 마법으로 만든 인형을 계속 밖에 세워두는 거.”

     “그래서 저희가 이번에 사냥했던 마석 좀 드렸잖아요.”

     “두 시간 동안 계속 서 있었다고.”

     “상대도 두 시간 동안 간을 보다가 들어온 거죠. 따질 거면 이 그림자를 탓하세요.”

     나는 목이 잘린 그림자의 허벅지 부분을 바로 단검으로 베었다.

     “음….”

     “남녀를 확인하려고 그러는 거냐?”

     “아뇨. 번호가 지워졌네요.”

     “…그래? 보통 이렇게 불로 피부를 지졌다는 건 폐기라는 건데.”

     그림자는 여자였다.

     허벅지에 번호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 불에 지져진.

     “머리카락 색은 검은색인 것 같은데….”

     “염색한 거겠죠.”

     “젠장. 제국 황실에서는 자기네 핏줄을 이렇게까지 써먹으려고 하는 건가?”

     “혈통보다 능력을 더 중요시하는 국가 아니겠습니까.”

     그림자는 도태되고 폐기되었기에 그림자가 되었을 테지.

     “그보다, 찾았습니다.”

     몸 안쪽 주머니를 뒤지자마자 바로 물건이 나왔다.

     “백은이네요.”

     “…….”

     “잠시 확인을.”

     종이봉투 안에 들어있는 걸 살짝 손등에 흘려, 가볍게 냄새를 맡고 혀끝을 댄다.

     “야.”

     “……쓰으읍.”

     설탕보다도 더 달콤한 아찔한 감각.

     “맞네요. 백은.”

     “…너, 괜찮냐?”

     “캐롤라인이랑 비교하면 딱히.”

     “하아…. 내가 못 살아, 정말.”

     헥스 자작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지팡이를 위로 들었다.

     “라이트.”

     파ㅡㅡ앗.

     빛이 반짝이기 시작한 순간, 우리는 보았다.

     “…저거 뭐냐?”

     “…….”

     관 속.

     누워있어야 할 그것이, 상반신을 벌떡 일으켜 세우고 있는 모습을.

     “멘테 경! 목!”

     내 외침에 멘테 경이 즉시 몸을 일으킨 그것을 향해 검을 크게 휘둘렀다.

     카ㅡㅡㅡㅡ앙!

     철검이 강철을 때린 듯한 날카로운 파공성.

     으득, 으드득.

     비쩍 마른 노인의 모습을 한 그것은 멘테 경의 검을 입에 문 채,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이야.”

     역시 제국이다.

     “시체 팔이 하나는 기가 막히네, 정말.”

     죽은 노인네의 시신마저도 적을 공격하는 데 쓰려고 하다니.

     “크윽!”

     멘테 경이 검을 당기며 내 쪽으로 크게 뛰고, 헥스 자작이 긴장 가득한 얼굴로 지팡이를 앞으로 겨눴다.

     “그레이. 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고 있냐…?”

     “네.”

     별거 없다.

     “흡혈귀가 죽기 전에 시체를 구울로 만들었을 뿐이죠.”

     죽은 그림자가 흡혈귀인지 확인하려면 저기 후드 아래 가려진 송곳니와 귀를 확인해야겠지만.

     “적어도 저 심장에 박힌 단검에 뭔가 담겨있다는 건 알겠네요.”

     인간이든 흡혈귀든, 시체를 흡혈귀의 권속으로 만드는 힘은 저 단검에 있다.

     “역시 제국.”

     참, 좋다.

     ‘1+1 행사를 해줄 줄이야.’

     획득 가능한 백은이 실시간으로 늘어났으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실시간 드랍템 변경 패치
    다음화 보기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