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98


    ​
    ​
    ​
    그녀는 자신이 아는 사실을 하나둘 털어놓기 시작했다. 리안은 새로운 질문을 켜켜이 쌓아 던지며 궁금했던 점들을 해소해나갔다.
    ​
    ​
    길게 이어진 대화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랬다.
    ​
    ​
    너는 누구인가? 
    – 나는 그분의 신실한 종이자 이계의 신이다.
    ​
    여긴 어디인가?
    – 내 심상 공간이다. 권능을 강하게 발현할 수 있는 장소다. 정신만 끌어온 상태라 꿈을 꾸는 상태와 비슷하다.
    ​
    나를 왜 여기로 데려왔는가?
    – ..동료가 사라졌는데 흔적이 여기서 끊겨서 제대로 조사를 해보려고.
    ​
    동료 누구?
    – 하뮬리나. 하지만 이젠 궁금하지 않다.
    ​
    하뮬리나는 무슨 목적으로 나에게 접근했었는가?
    ​
    ​
    마지막 질문에 생명체 아니, 이계의 신은 말이 없다가 이내 리안의 뜨거운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식은땀을 줄줄흘리다가, 우다다다 필요 없는 사실까지 늘어놓기 시작했다.
    ​
    ​
    이계의 신은 제 세계가 멸망했거나 세계에서 쫓겨나 차원에 틈에 던져진 신들을 총칭해서 부르는 말이다.
    ​
    ​
    이계의 신의 종류는 매우 많으며 인간의 기준으로 선한 신도 있으며 악한 신도 있다.
    ​
    ​
    그녀는 이계의 신이지만 급이 그리 높지 않다. 그래서 ‘그분’을 모시며 종으로서 살고 있다.
    ​
    ​
    이 세계의 신은 멍청한 실수를 저질렀고, 그 탓에 차원의 벽이 약해졌다. 세계를 가져야만 신의 힘이 강해지기에 ‘그분’은 이 세계를 지배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
    ​
    그들 외에도 다른 이계의 신이 존재하며 경쟁 관계이다.
    ​
    ​
    따라서, ‘그분’의 종인 그녀는 ‘그분’을 따르지 않는 이계의 신을 적으로 간주한다. 
    ​
    ​
    그런 이계의 신보다 더 적대적인 관계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다크 판타지 세계의 신이라고 한다.
    ​
    ​
    아무리 세계를 말아먹었다고 해도 이 세계는 다크 판타지 신의 세계였기 때문에 그가 본격적으로 나서면 자칫 일이 어려워질 수 있었다.
    ​
    ​
    그런 와중에 나타난 리안은 무려 다크 판타지 신의 힘을 품고 있기 때문에, 이 세계를 침공 중인 모든 이계의 신들의 표적이 될 수 밖에 없다.
    ​
    ​
    다만, 아직까지 리안을 발견한 이계의 신은 그녀와 하뮬리나가 전부였다. 다른 이계의 신이 리안을 발견하지 않는 이상 위협이 되지 않을 터였다.
    ​
    ​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진짜 문제가 따로 있다고 말했다.
    ​
    ​
    “진짜 문제?”
    「하뮬리나는 그분의 신실한 종이기에 분명 그분께 너에 대한 정보를 넘겼을 것이다.」
    “뭐? 그 말은…”
    「그분께서 움직이신다는 말이지.」
    ​
    ​
    그녀는 일부러 ‘그분’이 마왕 군의 실세라는 걸 알려주지 않았지만 리안은 이미 눈치챈 상태였다.
    ​
    ​
    그도 그럴 게 하뮬리나와 함께했던 포텐시엔이 사천왕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
    ‘처음에는 내가 알던 모습이랑 달라서 몰랐지만..’ 
    ​
    ​
    원작에서 포텐시엔은 인간의 모습보단 어인의 모습에 가까웠다. 나중에 여유를 가지고 나서야 그가 쓰는 무기나 특유의 말투가 원작 속 사천왕과 똑 닮았다는 걸 알아차렸다.
    ​
    ​
    ‘결론적으로 정리하자면 마왕 군이 날 노리고 있을 거라는 거네?’
    ​
    ​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었다. 마왕 군 자체는 겁나지 않았다. 이미 리안은 자신을 적대했다가 무너져 내린 지역을 두 눈에 담은 후였기 때문이다.
    ​
    ​
    걱정이 되는 건 다른 사람들이었다.
    ​
    ​
    ‘..다른 사람들이 휘말릴 수도 있어.’
    ​
    ​
    아무리 노아가 카르디샨 내에서 큰 힘을 쥐고 있다고 해도 그들이 머무르고 있는 땅은 마왕의 땅이다. 언제 어디서 어떤 위협이 올지 모르는 상태라는 말과 같았다.
    ​
    ​
    ‘내가 혼자 도망가면 -…아니, 아니야. 마왕 군이 나만 쫓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어.’
    ​
    ​
    미래의 용사 파티에 들어가는 노아와 아이리스, 제스가 모두 네스트에 포함된 상태였다. 지금 당장은 용사 파티의 면모가 보이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낭중지추라는 말에 어울리는 모습을 보일 터였다.
    ​
    ​
    그때가 되면 어차피 마왕 군에 눈에 띄어 타락하여 마왕 군이 되거나 죽임당할 터였다. 운 좋게 살아난다고 해도 멀쩡한 모습은 아닐 것이다.
    ​
    ​
    ‘아직 공작가의 기사를 발견하진 못했지만 -… ’
    ​
    ​
    리안은 굳은 얼굴로 결심했다.
    ​
    ​
    ‘모두와 카르디샨 아니, 마왕의 땅을 벗어나야 해.’
    ​
    ​
    생각이 정리되자 좁아졌던 시야가 다시 넓어졌다. 마스코트처럼 생긴 이계의 신이 리안의 눈치를 보며 눈을 굴리고 있었다.
    ​
    ​
    ‘날 노리려고 했던 모습이나, 이계의 신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당장 여기서 처리해야겠지. 하지만.. 방법이 없어.’
    ​
    ​
    눈앞에 있는 존재를 처리하냐 마냐를 떠나 이 공간에서 나갈 수 있느냐 없냐조차도 알 수 없었다.
    ​
    ​
    리안은 제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각인은 새겨져 있었지만 가르간도아를 불러도 아무것도 소환되지 않았다.
    ​
    ​
    그만큼 이 공간이 특수한 공간이라 그런 게 아닐까 예상 중이었다.
    ​
    ​
    ‘끙, 한시라도 빨리 나가서 마왕의 땅을 벗어날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
    ​
    리안은 잠시 고민하다가 마땅한 답이 안 떠올라,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이계의 신에게 말했다.
    ​
    ​
    “여기서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해?”
    「그거라면 저쪽으로 가면 된다.」
    ​
    ​
    이계의 신이 짤뚱한 팔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검은색으로 일렁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포탈과 유사하게 생겼다.
    ​
    ​
    「저기로 들어가면 깨어날 수 있을 거다.」
    “..왜 순순히 알려주는 거야?”
    「이익! 네 녀석 때문에 내가 이런 꼴이 되지 않았나! 내가 이 모습만 안되었어도 내가 직접 추방했을 것이이이잇…!」
    ​
    ​
    이계의 신이 또다시 씩씩거리며 화를 내자 리안은 반사적으로 이계의 신을 위아래로 마구 흔들기 시작했다. 이계의 신은 마구 흔들린 탓에 눈동자가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
    ​
    리안은 해롱거리는 이계의 신을 놓아준 후 포탈 쪽으로 이동했다. 포탈 쪽으로 향하고 싶다고 생각하니 몸이 알아서 앞으로 나아갔다.
    ​
    ​
    「후에에..」
    “그럼 나는 이만 가볼게. 가능하면 앞으론 착하게 살아.”
    ​
    ​
    리안은 그리 말한 후 포탈 안으로 다급히 몸을 던졌다. 보통 이런 정신적인 세계는 현실과 시간의 흐름이 다른 경우가 있어 마음이 급했다.
    ​
    ​
    리안이 포탈 너머로 사라지고. 해롱거리며 어두운 공간에 두둥실 떠 있던 이계의 신이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
    ​
    「케헤헥! 케헤헷! 멍청한 인간 놈!」
    ​
    ​
    리안이 사라지자 이계의 신은 점차 원래의 형태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인간이 두 눈으로 이계의 신을 마주하게 된다면 본인의 눈을 뽑아버릴 정도로 차원을 벗어난 형태가 되었다.
    ​
    ​
    어린아이의 귀여운 목소리가 여자와 남자, 아이와 노인의 목소리가 뒤섞인 기이한 소리처럼 바뀌었다. 
    ​
    ​
    이계의 신은 제 몸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걸 느끼며 포탈 쪽을 바라보았다.
    ​
    ​
    「크흐흐, 맛있게 먹어주마.」
    ​
    ​
    리안이 뛰어든 포탈은 현실로 돌아가는 포탈이 아니었다. 애초에 현실로 돌아가는 포탈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리안이 현실로 돌아가기 위해선 이계의 신을 죽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이곳은 그런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
    ​
    이계의 신이 가볍게 손짓하자 포탈이 사라져버렸다. 그녀의 몸속으로 들어간 리안은 더 이상 빠져나올 수 없게 되었다.
    ​
    ​
    「무한한 어둠 속에서 절망하다 부서지거라. 그리하여 나의 양분이 되어라.」
    ​
    ​
    이계의 신의 내부는 끝없는 어둠으로 이루어져 있어 영원히 헤매다가 점점 정신이 미쳐 영혼까지 부서지게 된다.
    ​
    ​
    보통의 인간이라면 1초도 버티지 못하는 곳이지만, 리안은 꽤 잘 버티고 있는지 이계의 신은 제 뱃속에 들어간 리안의 존재를 선명하게 느꼈다.
    ​
    ​
    「자, 너는 어떤 절망을 먹여줄 거지?」
    ​
    ​
    이계의 신이 침을 질질 흘리며 앞으로 기다릴 만찬에 웃음 짓는 순간.
    ​
    ​
    푸욱!
    ​
    ​
    「어?」
    ​
    ​
    그녀의 배 부분이 찢어지더니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그녀는 제 배.. 라고 부를 수 있는 부위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의 일부가 있었다.
    ​
    ▉의 일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의 일부가 배를 갈라버렸다.
    ▉의 일부가 그녀를 갈기갈기 찢기 시작했다.
    ​
    ​
    꿀꺽.
    ​
    ​
    ▉는 그녀를 집어삼켜 버렸다.
    ​
    ​
    ***
    ​
    ​
    “훙냥냥, 냥냥 펀치다냥…”
    ​
    ​
    푹신한 침대 위, 170cm 크기의 다키쿠마라가 가득했다. 그 사이에 잠옷을 입고 토끼 귀가 달린 안대를 착용한 개그 세계의 신이 잠꼬대를 하고 있었다.
    ​
    ​
    “앙냥냥…맛있는…끅..”
    ​
    ​
    그녀는 잠꼬대를 하다가 또다시 작게 트림을 흘렸다. 하지만 잠든 상태라 알아차리지 못했다. 
    ​
    ​
    ***
    ​
    ​
    찌르르,짹짹.
    ​
    ​
    “아.”
    ​
    ​
    리안은 눈을 번쩍 뜨며 잠에서 깨어났다. 벌떡 몸을 일으키자 막 해가 떠오르는 바깥 풍경이 보였다.
    ​
    ​
    “내가.. 크흠,큼. 얼마나 잔 거지?”
    ​
    ​
    머리가 멍했지만 일주일 동안 잠들었던 때와 달리 쌩쌩했다. 이번에는 그렇게까지 오래 잠들진 않은 듯했다. 다행이었다.
    ​
    ​
    멍한 얼굴로 창문 밖을 바라보다가 물에 젖은 몸을 터는 강아지처럼 머리를 마구 털었다.
    ​
    ​
    ‘이럴 때가 아니지 어서 이 땅을 벗어날 준비를 해야 해.’
    ​
    ​
    리안은 그 어느 때보다 의욕이 충만해진 상태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욕실로 달려갔다. 깔끔하게 씻은 후 곧바로 방 한쪽에 놓인 서재 책상으로 향했다. 의자에 앉아 종이를 펼치고 펜을 들었다.
    ​
    ​
    ‘여기에서 머문 지 벌써 3년이나 지났던 걸 생각해보면 -.. 슬슬 기사가 카르디샨에 도착했어도 이상하지 않아.’
    ​
    ​
    리안은 틈틈이 노아를 통해 기사의 존재를 확인해달라 부탁했었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이름과 얼굴을 알고 있었기에 조사를 부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
    ​
    조사 결과는 항상 같았다. ‘찾을 수 없음.’
    ​
    ​
    이렇게 막무가내로 찾기만 하다간 놓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원작 지식을 끌어와 기사가 올 시기를 유추했다. 그 시기가 이번 해였다.
    ​
    ​
    ‘슬슬 기사가 도착할 때이니, 카르디샨에 기사가 도착했는지 조사도 해야 하고, 함께 떠날 사람을 골라내야 해. 그에 따른 식량이나 물자도 준비해야 하고.’
    ​
    ​
    리안은 조직원 모두를 끌고 마왕의 땅을 탈출할 생각은 아니었다. 간부들은 몰라도 일반 조직원 중 범죄를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꽤 많았다.
    ​
    ​
    나고 자란 땅이 워낙 도덕성이 없는 곳이라 그런 점이 더 두드러졌다. 그런 이들은 걸러낸 후 마왕의 땅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사람만 골라낼 필요가 있었다.
    ​
    ​
    ‘그리고…’
    ​
    ​
    리안은 차곡차곡 계획을 정리해나갔다. 그런 리안을 세계가 응원해주는 것처럼.
    ​
    ​
    “형! 노아 형이 돌아왔어!”
    ​
    ​
    타이밍 좋게 노아가 시련에서 돌아왔다.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올 한 해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한 해 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그녀는 자신이 아는 사실을 하나둘 털어놓기 시작했다. 리안은 새로운 질문을 켜켜이 쌓아 던지며 궁금했던 점들을 해소해나갔다.

길게 이어진 대화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랬다.

너는 누구인가?

– 나는 그분의 신실한 종이자 이계의 신이다.

여긴 어디인가?

– 내 심상 공간이다. 권능을 강하게 발현할 수 있는 장소다. 정신만 끌어온 상태라 꿈을 꾸는 상태와 비슷하다.

나를 왜 여기로 데려왔는가?

– ..동료가 사라졌는데 흔적이 여기서 끊겨서 제대로 조사를 해보려고.

동료 누구?

– 하뮬리나. 하지만 이젠 궁금하지 않다.

하뮬리나는 무슨 목적으로 나에게 접근했었는가?

마지막 질문에 생명체 아니, 이계의 신은 말이 없다가 이내 리안의 뜨거운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식은땀을 줄줄흘리다가, 우다다다 필요 없는 사실까지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계의 신은 제 세계가 멸망했거나 세계에서 쫓겨나 차원에 틈에 던져진 신들을 총칭해서 부르는 말이다.

이계의 신의 종류는 매우 많으며 인간의 기준으로 선한 신도 있으며 악한 신도 있다.

그녀는 이계의 신이지만 급이 그리 높지 않다. 그래서 ‘그분’을 모시며 종으로서 살고 있다.

이 세계의 신은 멍청한 실수를 저질렀고, 그 탓에 차원의 벽이 약해졌다. 세계를 가져야만 신의 힘이 강해지기에 ‘그분’은 이 세계를 지배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들 외에도 다른 이계의 신이 존재하며 경쟁 관계이다.

따라서, ‘그분’의 종인 그녀는 ‘그분’을 따르지 않는 이계의 신을 적으로 간주한다.

그런 이계의 신보다 더 적대적인 관계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다크 판타지 세계의 신이라고 한다.

아무리 세계를 말아먹었다고 해도 이 세계는 다크 판타지 신의 세계였기 때문에 그가 본격적으로 나서면 자칫 일이 어려워질 수 있었다.

그런 와중에 나타난 리안은 무려 다크 판타지 신의 힘을 품고 있기 때문에, 이 세계를 침공 중인 모든 이계의 신들의 표적이 될 수 밖에 없다.

다만, 아직까지 리안을 발견한 이계의 신은 그녀와 하뮬리나가 전부였다. 다른 이계의 신이 리안을 발견하지 않는 이상 위협이 되지 않을 터였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진짜 문제가 따로 있다고 말했다.

“진짜 문제?”

「하뮬리나는 그분의 신실한 종이기에 분명 그분께 너에 대한 정보를 넘겼을 것이다.」

“뭐? 그 말은…”

「그분께서 움직이신다는 말이지.」

그녀는 일부러 ‘그분’이 마왕 군의 실세라는 걸 알려주지 않았지만 리안은 이미 눈치챈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게 하뮬리나와 함께했던 포텐시엔이 사천왕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내가 알던 모습이랑 달라서 몰랐지만..’

원작에서 포텐시엔은 인간의 모습보단 어인의 모습에 가까웠다. 나중에 여유를 가지고 나서야 그가 쓰는 무기나 특유의 말투가 원작 속 사천왕과 똑 닮았다는 걸 알아차렸다.

‘결론적으로 정리하자면 마왕 군이 날 노리고 있을 거라는 거네?’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었다. 마왕 군 자체는 겁나지 않았다. 이미 리안은 자신을 적대했다가 무너져 내린 지역을 두 눈에 담은 후였기 때문이다.

걱정이 되는 건 다른 사람들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휘말릴 수도 있어.’

아무리 노아가 카르디샨 내에서 큰 힘을 쥐고 있다고 해도 그들이 머무르고 있는 땅은 마왕의 땅이다. 언제 어디서 어떤 위협이 올지 모르는 상태라는 말과 같았다.

‘내가 혼자 도망가면 -…아니, 아니야. 마왕 군이 나만 쫓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어.’

미래의 용사 파티에 들어가는 노아와 아이리스, 제스가 모두 네스트에 포함된 상태였다. 지금 당장은 용사 파티의 면모가 보이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낭중지추라는 말에 어울리는 모습을 보일 터였다.

그때가 되면 어차피 마왕 군에 눈에 띄어 타락하여 마왕 군이 되거나 죽임당할 터였다. 운 좋게 살아난다고 해도 멀쩡한 모습은 아닐 것이다.

‘아직 공작가의 기사를 발견하진 못했지만 -… ’

리안은 굳은 얼굴로 결심했다.

‘모두와 카르디샨 아니, 마왕의 땅을 벗어나야 해.’

생각이 정리되자 좁아졌던 시야가 다시 넓어졌다. 마스코트처럼 생긴 이계의 신이 리안의 눈치를 보며 눈을 굴리고 있었다.

‘날 노리려고 했던 모습이나, 이계의 신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당장 여기서 처리해야겠지. 하지만.. 방법이 없어.’

눈앞에 있는 존재를 처리하냐 마냐를 떠나 이 공간에서 나갈 수 있느냐 없냐조차도 알 수 없었다.

리안은 제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각인은 새겨져 있었지만 가르간도아를 불러도 아무것도 소환되지 않았다.

그만큼 이 공간이 특수한 공간이라 그런 게 아닐까 예상 중이었다.

‘끙, 한시라도 빨리 나가서 마왕의 땅을 벗어날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리안은 잠시 고민하다가 마땅한 답이 안 떠올라,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이계의 신에게 말했다.

“여기서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해?”

「그거라면 저쪽으로 가면 된다.」

이계의 신이 짤뚱한 팔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검은색으로 일렁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포탈과 유사하게 생겼다.

「저기로 들어가면 깨어날 수 있을 거다.」

“..왜 순순히 알려주는 거야?”

「이익! 네 녀석 때문에 내가 이런 꼴이 되지 않았나! 내가 이 모습만 안되었어도 내가 직접 추방했을 것이이이잇…!」

이계의 신이 또다시 씩씩거리며 화를 내자 리안은 반사적으로 이계의 신을 위아래로 마구 흔들기 시작했다. 이계의 신은 마구 흔들린 탓에 눈동자가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리안은 해롱거리는 이계의 신을 놓아준 후 포탈 쪽으로 이동했다. 포탈 쪽으로 향하고 싶다고 생각하니 몸이 알아서 앞으로 나아갔다.

「후에에..」

“그럼 나는 이만 가볼게. 가능하면 앞으론 착하게 살아.”

리안은 그리 말한 후 포탈 안으로 다급히 몸을 던졌다. 보통 이런 정신적인 세계는 현실과 시간의 흐름이 다른 경우가 있어 마음이 급했다.

리안이 포탈 너머로 사라지고. 해롱거리며 어두운 공간에 두둥실 떠 있던 이계의 신이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케헤헥! 케헤헷! 멍청한 인간 놈!」

리안이 사라지자 이계의 신은 점차 원래의 형태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인간이 두 눈으로 이계의 신을 마주하게 된다면 본인의 눈을 뽑아버릴 정도로 차원을 벗어난 형태가 되었다.

어린아이의 귀여운 목소리가 여자와 남자, 아이와 노인의 목소리가 뒤섞인 기이한 소리처럼 바뀌었다.

이계의 신은 제 몸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걸 느끼며 포탈 쪽을 바라보았다.

「크흐흐, 맛있게 먹어주마.」

리안이 뛰어든 포탈은 현실로 돌아가는 포탈이 아니었다. 애초에 현실로 돌아가는 포탈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리안이 현실로 돌아가기 위해선 이계의 신을 죽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이곳은 그런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이계의 신이 가볍게 손짓하자 포탈이 사라져버렸다. 그녀의 몸속으로 들어간 리안은 더 이상 빠져나올 수 없게 되었다.

「무한한 어둠 속에서 절망하다 부서지거라. 그리하여 나의 양분이 되어라.」

이계의 신의 내부는 끝없는 어둠으로 이루어져 있어 영원히 헤매다가 점점 정신이 미쳐 영혼까지 부서지게 된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1초도 버티지 못하는 곳이지만, 리안은 꽤 잘 버티고 있는지 이계의 신은 제 뱃속에 들어간 리안의 존재를 선명하게 느꼈다.

「자, 너는 어떤 절망을 먹여줄 거지?」

이계의 신이 침을 질질 흘리며 앞으로 기다릴 만찬에 웃음 짓는 순간.

푸욱!

「어?」

그녀의 배 부분이 찢어지더니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그녀는 제 배.. 라고 부를 수 있는 부위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의 일부가 있었다.

▉의 일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의 일부가 배를 갈라버렸다.

▉의 일부가 그녀를 갈기갈기 찢기 시작했다.

꿀꺽.

▉는 그녀를 집어삼켜 버렸다.

***

“훙냥냥, 냥냥 펀치다냥…”

푹신한 침대 위, 170cm 크기의 다키쿠마라가 가득했다. 그 사이에 잠옷을 입고 토끼 귀가 달린 안대를 착용한 개그 세계의 신이 잠꼬대를 하고 있었다.

“앙냥냥…맛있는…끅..”

그녀는 잠꼬대를 하다가 또다시 작게 트림을 흘렸다. 하지만 잠든 상태라 알아차리지 못했다.

***

찌르르,짹짹.

“아.”

리안은 눈을 번쩍 뜨며 잠에서 깨어났다. 벌떡 몸을 일으키자 막 해가 떠오르는 바깥 풍경이 보였다.

“내가.. 크흠,큼. 얼마나 잔 거지?”

머리가 멍했지만 일주일 동안 잠들었던 때와 달리 쌩쌩했다. 이번에는 그렇게까지 오래 잠들진 않은 듯했다. 다행이었다.

멍한 얼굴로 창문 밖을 바라보다가 물에 젖은 몸을 터는 강아지처럼 머리를 마구 털었다.

‘이럴 때가 아니지 어서 이 땅을 벗어날 준비를 해야 해.’

리안은 그 어느 때보다 의욕이 충만해진 상태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욕실로 달려갔다. 깔끔하게 씻은 후 곧바로 방 한쪽에 놓인 서재 책상으로 향했다. 의자에 앉아 종이를 펼치고 펜을 들었다.

‘여기에서 머문 지 벌써 3년이나 지났던 걸 생각해보면 -.. 슬슬 기사가 카르디샨에 도착했어도 이상하지 않아.’

리안은 틈틈이 노아를 통해 기사의 존재를 확인해달라 부탁했었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이름과 얼굴을 알고 있었기에 조사를 부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조사 결과는 항상 같았다. ‘찾을 수 없음.’

이렇게 막무가내로 찾기만 하다간 놓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원작 지식을 끌어와 기사가 올 시기를 유추했다. 그 시기가 이번 해였다.

‘슬슬 기사가 도착할 때이니, 카르디샨에 기사가 도착했는지 조사도 해야 하고, 함께 떠날 사람을 골라내야 해. 그에 따른 식량이나 물자도 준비해야 하고.’

리안은 조직원 모두를 끌고 마왕의 땅을 탈출할 생각은 아니었다. 간부들은 몰라도 일반 조직원 중 범죄를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꽤 많았다.

나고 자란 땅이 워낙 도덕성이 없는 곳이라 그런 점이 더 두드러졌다. 그런 이들은 걸러낸 후 마왕의 땅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사람만 골라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리안은 차곡차곡 계획을 정리해나갔다. 그런 리안을 세계가 응원해주는 것처럼.

“형! 노아 형이 돌아왔어!”

타이밍 좋게 노아가 시련에서 돌아왔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