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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8

   소울 아카데미에 존재하는 캐릭터들 중에 불행한 사람이 많단 이야기를 했었던가?

   

   그거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주요 캐릭터 중에 불행하지 않은 사람이 더 적다.

   

   크건 작건 간에 하나씩은 불행을 가지고 있고 그걸 해결하거나 극복하는 게 소울 아카데미라는 게임의 캐릭터 퀘스트인지라.

   

   당장 내가 지금까지 만난 캐릭터들을 봐라.

   

   불쌍 왕자인 아서 솔라딘은 자기 어머니를 잃고 나서 완벽해야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인간이고.

   

   프레이 켄트는 감정을 느끼질 못해서 목숨을 건 투쟁에 집착하는 광년이고.

   

   페이비는 자기도 모르는 여러 불운을 품고 있는 폭탄이지.

   

   내가 조이를 최애캐라고 생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수많은 캐릭터 중에서 조이만큼은 불행과 크게 연관이 없거든.

   

   가문도 멀쩡하고, 본인의 성격도 멀쩡하고, 고민이라고 해봐야 진짜 친구를 사귀기가 어렵다는 정도고. 하는 짓도 얼빵한 게 귀엽잖아.

   

   오늘 아침에 나랑 프레이의 속도를 따라잡겠다고 필사적으로 따라오다가 탈진해서 바닥에 널부러졌을 땐 진짜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니까.

   

   하는 행동은 진짜 바보 같은데 또 숨을 고르고 일어나면 차가운 악역영애가 있는 것도 재밌고.

   

   어쨌든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연 열등 공자에게도 불행이 존재한다.

   

   성능이 애매하기는 하지만 얘도 주요 NPC 중 하나거든.

   

   자칼 공략 관련 업적이 있을 정도니까.

   

   자칼 버로우의 불행은 자신의 형에 대한 열등감이다.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났던 형.

   

   훗날 버로우 가문을 융성시킬 것이라 여겨졌던 형.

   

   너무도 뛰어난 위광을 지녀 자신을 그림자 안에 가두었던 형.

   

   우연한 사고에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내던졌던 형.

   

   자칼 버로우는 자신의 형이 죽은 후에도 그 그림자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의 부모는 여전히 형의 죽음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고.

   

   가문의 사람들은 이미 죽어버린 그의 형과 자칼을 비교하며 내리깎았고.

   

   심지어 본인조차도 형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기자신을 진창으로 밀어 넣고 있었으니.

   

   본래는 놀기 좋아하던 아이였던 자칼이 최고가 되기 위해 발악을 하는 데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네가 그걸 어떻게.”

   

   그리고 지금 내가 내민 목걸이는 자칼 버로우의 형 자일 버로우의 유품이지.

   

   항시 자일 버로우가 끼고 다녔던 목걸이.

   

   본래는 유언에 따라 자칼에게 주어져야 했을 목걸이.

   

   이 물건을 내가 들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타인을 위해 죽었을 때에 누군가가 훔쳐서 장물로 넘겨버렸거든.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까.

   

   ‘우연히…’

   “우연히 구했어요. 버로우 가문의 인장이 박혀 있는 게 눈에 띄었거든요.”

   

   자칼이 이를 못 알아 볼 리는 없다.

   

   어렸을 적부터 형의 뒤를 따라다녔고 지금도 형의 그림자에서 살아가는 자칼이다.

   

   자신의 형이 지니고 있던 물건은 여전히 생생할 걸?

   

   이제부터 게임 속 스토리대로 진행이 된다면 자칼이 이 물건을 내놓으라고 할 테고.

   

   그럼 그의 손이 목걸이에 닿음에 따라서 목걸이에 내장된 마법이 발동됨과 동시에 퀘스트가 생겨날 거고.

   

   그 과제를 함께 해결하고 나면 자칼의 마음은 열린 문이 되겠지!

   

   그 후에는 허접 주신이 나에게 뭘 줄지나 기대하면 그만이다!

   

   행복한 미래를 그리면서 자칼의 대답을 기다리던 나는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 챘다.

   

   “그래서 어쩌란 거지?”

   

   가만 목걸이를 바라보던 자칼이 느릿하게 고개를 들었다.

   

   그 눈동자에 담긴 것은 그의 머리카락만큼이나 진한 붉은 색의 증오였다.

   

   “다시 한 번 묻지. 어쩌라는 거냐.”

   

   소울 아카데미라는 게임에서 자칼의 입에서 나오는 건 저런 대사가 아니었다.

   

   게임 속에서 자칼은 그건 너 따위가 들고 있을 물건이 아니라면서 목걸이를 내놓으라고 한단 말이다.

   

   “그 목걸이를 가지고서 나와 거래할 셈이었나? 안타깝게 됐군. 난 그 물건에 관심이 없다.”

   

   ‘거짓말.’

   “열등 공자님. 자신을 속이고 싶으신가요? 허접다운 생각이네요.”

   

   무심코 튀어나온 말은 메스가키의 언어로 번역이 되어 자칼의 귀에 스며들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지 않았다.

   

   성을 내지도 않았다.

   

   다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뿐.

   

   자신의 책을 들고서 떠나가는 그 뒷모습은 너무도 무거워서 도저히 붙잡을 수가 없었다.

   

   난 자칼이 도서관에서 떠나가고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이게…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왜 자칼이 자기 목걸이를 보고도 그걸 내버려두고 떠나가 버린 거야?

   

   대체 왜?

   

   *

   

   자칼 버로우는 자신의 형을 기억했다.

   

   부족함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것 같았던 그 사람을.

   

   훗날 버로우 가문을 융성시킬 것이라 기대 받던 자신의 형을.

   

   그리고 그 기대를 이루기도 전에 타인을 위해 자신의 몸을 내던졌던 멍청이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일이라는 톱니바퀴를 잃어버린 버로우 가문의 초침은 그 날로부터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자칼은 그게 싫었다.

   

   매일 같이 자신의 형을 찾으며 눈물을 흘리는 어머님도.

   

   술로 하루를 지내며 매일같이 자신에게 성을 내는 아버님도.

   

   침묵에 빠져버린 가문의 사람들도.

   

   하나 같이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그래서 자칼은 그 날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노력했다.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기 위해 힘을 냈다.

   

   그토록 좋아하던 놀이 대신에 수련을 시작했고.

   

   이런 걸 왜 읽어야 하느냐고 투정을 부리던 책을 품에 안았고.

   

   귀족다운 기품을 지니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자일의 자리를 자신이 대체하기 위해서.

   

   버로우라는 가문의 톱니바퀴가 되기 위해서.

   

   초침을 움직여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허나 그가 아무리 발악을 한다 하여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자칼이 아무리 뛰어난 성적을 거두어도 그의 부모는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가문의 사람들은 겉으로 칭찬을 할 뿐 뒤로는 그를 형과 비교하며 깎아내렸다.

   

   그는 멈춰버린 세상에 남겨진 외톨이였으니.

   

   자칼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자신을 내버려두고 가버린 형을 원망하고 또 원망하는 것뿐이었다.

   

   그랬기에 자칼은 루시 알른이 목걸이를 보여주었을 때 그 목걸이가 무엇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죽기 전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던 자일의 모습을 기억했기에 그가 목에 차고 있던 목걸이도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저걸 왜 루시 알른이 들고 있는가.

   

   그것을 이해할 수 없어 자칼이 이야기를 꺼내자 루시 알른은 특유의 짜증나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우연히 구했어요.”

   

   우연이라고.

   

   운좋게 구했다고.

   

   그는 자칼에게 너무도 신기해서 당혹스러운 우연이었다.

   

   그가 넘기 위해서 발악하고 있는 형의 목걸이를.

   

   지금 그에게 열등감을 심어주고 있는 루시 알른이 ‘우연’하게 구한 것이니까.

   

   자칼은 루시 알른을 싫어했다.

   

   거기에 별 대단한 이유는 없었다.

   

   단순히 루시 알른이 그보다 뛰어났기에 자칼은 그녀를 미워했다.

   

   학문에 있어서 루시 알른은 압도적인 존재였다.

   

   아카데미 입학시험에서 그녀가 거둔 성적은 역사에 남을 수준이었으니.

   

   작금의 자칼로써는 감히 따라잡는 걸 추측하기도 어려운 수준이었다.

   

   전투?

   

   이전에 한 대회에서 그를 장난감 가지고 놀 듯 했던 프레이 켄트를 상대로 승리한 것을 봐라.

   

   격이 다른 수준이다.

   

   그렇다고 다른 부분이 부족한가?

   

   그렇지 않다.

   

   루시 알른에게 부족한 것은 오롯이 하나.

   

   그 성격뿐이었다. 자신보다 위에 있건 아래에 있건 무조건 깔보는 오만하고도 건방진 성격 말이다.

   

   그 하나 때문에 루시 알른은 여전히 아카데미 내에서 기피를 당했다.

   

   과거라면 모를까 지금의 루시 알른이 그를 모르진 않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자신이 유한 척을 하면 사람들의 호감을 살 수 있을 거란 걸 모를 리가 없다.

   

   그런 것조차 모르는 멍청이가 입학시험에서 1등을 차지할 리가 없잖은가.

   

   자칼이 생각하기에 그 오만은 그 어떤 것의 앞에서도 고개를 굽히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다른 이들이 자신을 어찌 생각하던 자신의 길을 걷겠다는 올곧음이었다.

   

   자칼은 그 올곧음이 미웠다.

   

   자신은 올곧을 수 없기에.

   

   주변에 의해 뒤바뀌어 주변이 바라는 바에 따라 살아가야 하는 자신은 그럴 수 없기에.

   

   올곧고 싶어도 결국에는 꺾이고야 말기에.

   

   자신이 이룰 수 없는 올곧음이 싫었다.

   

   그 때문에 목걸이를 보고서.

   

   그리고 고갤 들어 루시 알른의 얄미운 눈웃음을 본 그는 자신의 형을 떠올렸다.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살더라도 주변의 사랑을 받던 그 올곧음을 기억해냈다.

   

   그래서 목걸이에 관심이 없다고 소리쳤다.

   

   자신의 형을 조금도 의식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만약 루시 알른에게 목걸이가 필요하다 이야기하면 형의 그림자에 짓눌려 있음을 인정하는 것 같아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열등 공자님. 자신을 속이고 싶으신가요? 허접한 생각이네요.”

   

   그 순간.

   

   루시 알른은 그의 열등감을 눈치 채기라도 한 것처럼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을 본 자칼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례? 실례?

   

   그런 건 신경 쓰지도 않았다.

   

   이 이상 루시 알른과 대화를 하고 있으면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기에.

   

   그렇게 도서실에서 빠져나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서 한참을 걷던 자칼은 건물을 나오고 나서 구름 낀 하늘을 보다 아카데미의 하얀 벽을 후려쳤다.

   

   “열등하다고? 내가?”

   

   루시 알른.

   

   그 빌어먹을 년 같으니.

   

   *

   

   자칼이 목걸이를 거절할 것이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나는 머리가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뭐지? 걔가 왜 목걸이를 내버려 두고 가버린 거야?

   

   목걸이를 보고 경악한 걸 보면 목걸이가 뭔지를 알아차린 건 분명한데.

   

   게임 속에서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었던 이벤트였기에 도저히 추측할 수가 없다.

   

   무슨 변수가 생긴 건지 감도 안 잡혀.

   

   아아. 젠장.

   

   이렇게 되면 자칼의 호감도를 올려서 허접 주신이 준 퀘스트를 클리어 하겠다는 계획은 폐기해야겠네.

   

   문제가 뭔지 알면 그걸 해결해 보겠지만 방법이 뭔지 모르니 대처할 수단이 없다.

   

   이럼 다른 쪽으로 돌아가야지.

   

   아서나 프레이의 호감도를 올릴 방법을 찾다가 정 안 되겠다 싶으면 다른 방법을 고려해보자고.

   

   못 할 건 없지. 방법이야 수도 없이 많은 걸.

   

   그래도 아쉽네. 쉽게 풀릴 줄 알았던 일이 어렵게 된 거니까.

   

   어째 이 세상에 떨어지고 나서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냐.

   

   혹시 여기에도 아그라가 관련되어 있는 걸까.

   

   미간을 찌푸린 채 고민을 거듭하고 있던 나는 근처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갤 들었다.

   

   거기에는 내가 시킨 오늘의 아카데미 특선 디저트.

   

   파르페가 있었다.

   

   시킨 지 얼마 안 됐는데 빨리 나왔네.

   

   숟가락을 떠서 맨 위에 올려진 아이스크림을 입에 넣은 나는 그 달콤하면서도 부드럽고 시원한 맛에 손을 흔들었다.

   

   역시 머리가 아플 때는 단 거지.

   

   중세풍 판타지라서 다행이야.

   

   이게 진짜 중세였다면 이런 사치는 꿈도 못 꿨을 텐데.

   

   입 안을 가득 채우는 단 맛에 웃음을 지은 나는 재차 숟가락을 움직이며 생각을 계속했다.

   

   일단 계획을 바꾸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아.

   

   까마귀의 인장을 얻어서 뉴먼 가문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수단이 많아지니까.

   

   일단은 커즈 뉴먼이 빠르게 그 비약을 찾아주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나.

   

   “냠.”

   

   그 때까지는 조이랑 프레이를 데리고 노가다나 뛰어야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사람에게도 질투를 품는 게 열등감이겠죠.

—–
씨쁠쁠님! 10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응원의 후원!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더 재밌는 정통 메스가키 판타지로 보답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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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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