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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9

    <99 – 구관이 명관>

     

    “티토소가.”

    “왜?”

    “그 우비, 줄 사람이 있을 것 같아.”

     

    고개를 갸웃하자 귀밑으로 내린 사이드테일이 귀엽게 흔들리는 티토소가.

     

    “누구? 즈앙은 아닐 거 아니야. 이런 무서운 강의, 절대로 듣지 않겠다고 했는걸. 설마 사다코 교수님한테 우비를 드리자고?”

     

    모퉁이 뒤에서 즈앙이 울상을 지었다.

    빨리 어떻게든 해달라며 수신호로 열심히 재촉한다.

    몸으로 가리고 은근슬쩍 손가락으로 구석을 가리키자 흘끗 뒤를 본 티토소가가 킥킥 웃었다.

     

    “아~ 이를 어쩐담? 야외강의나 하자고 하는 사다코 교수님 주기는 싫은데.”

     

    환해지는 즈앙의 얼굴.

     

    “그래도 나보고 맨날 기절이나 하는 겁쟁이라고 놀리는 즈앙한테 우비 주기도 싫은걸~”

     

    어두워지는 즈앙의 얼굴.

     

    “줄까? 말까? 즈앙이 사과라도 하면 한 번 생각해볼 수도 있고? 막 그러는데?”

    “티토. 슬슬 위험하지 않아?”

    “뭐가 위험해?”

     

    무언가를 깨닫고 싸늘해지는 즈앙의 얼굴.

     

    “위험한 건 즈앙의 학점이지! 우비도 없어서 쓸쓸하게 자기 방으로 돌아갈 즈앙의 학점보다 위험한 건 없다구~?”

    “난 말렸다?”

    “흥. 말리지 않아도 돼. 이제 진정한 겁쟁이는 내가 아니야. 즈앙이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겁많은 겁쟁이, 슈퍼겁쟁이야!”

     

    천장에서 휙 뛰어내린 즈앙이 티토소가의 등에 매달렸다.

     

    “누가 슈퍼겁쟁이라고?”

    “흐갸아아앗!!”

     

    결국 티토소가는 한번 기절했다가 깨어난 뒤에야 즈앙한테 우비를 양보했다.

     

    “안 듣는다고 하지 않았어?”

    “흥. 저녁을 너무 많이 먹어서 조금 몸을 움직이고 싶었을 뿐이야. 다이어트 삼아서.”

     

    다이어트 한 번 무섭게 하는 친구네.

     

     

    * *

     

     

    쏟아지는 폭우 너머로 다각다각 들리는 자이언트킹크랩의 발소리에 걸음을 우뚝 멈추고 숨소리까지 죽여가며 행군을 벌이기를 10여분.

    강의장에 도착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다이어트를 너무 과하게 해서 뼈만 남아버린 스켈레톤이었다.

     

    “겔겔겔. 너희가 사다코가 말한 신입생이냐? 제법 싹수가 있구만. 이런 폭우를 뚫고 강의를 들으러 오는 용기를 다 내고.”

    “저기…해골씨? 해골님?”

    “해골교관이라고 불러라.”

    “해골교관님. 사다코 교수님은 어디 계세요?”

    “감기에 걸려서 안 나온다.”

     

    즈앙이 등 뒤로 힘껏 주먹을 쥐며 기뻐했다.

    티토소가도 그거 참 꼬시다며 말은 못해도 무진장 기뻐하고 있다.

    고인물인 내 소견으로는… 아무리 감기 때문이라고 해도 교수가 자리를 비웠다는 것은 그다지 좋은 신호가 아니다.

     

    ‘교수만큼 악질력의 고점이 뛰어난 사람은 없겠지만, 그래도 교수들은 나름 전문직이잖아.’

     

    그에 비해 대타로 참석한 이 해골교관은 교수가 아닌 교관.

    몇몇 전투술이나 지식분야에 있어서는 뛰어난 성취를 이뤘을지 몰라도 악질짓을 어떻게 하면 적당히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교육테크닉은 전무하다.

    요컨대 자신이 할 수 있는 악질짓을 최대치까지 망설임없이 박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고점만 놓고 보면 사다코 교수님이 직접 하는 강의보다 더 악랄할지도 몰라!’

     

    티토소가는 아무튼 사다코 교수님의 강의가 아니어서 행복하다는 얼굴로 헤헤 웃었다.

     

    “해골교관니임. 그래서 우리 오늘 뭐해요? 일찍 끝내주세요?”

    “저런. 많이 피곤했나보구나!”

    “네에. 과제 너무 많아요오.”

     

    티토소가의 애교 섞인 목소리에 즈앙과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 저런 교활한 목소리를 낼 수가 있지?

    부럽다.

    나한테도 저런 애교스킬이 있으면 교수님들의 넋을 빼놓고 보상을 탈탈 털어갈 수 있을 텐데!

    커뮤니케이션 기술에서 <협박>기술의 비중이 컸던 지난날의 과오 탓인지 나로서는, 암살자인 즈앙에게도 도저히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애교 섞인 목소리였다.

     

    “겔겔겔. 안 그래도 수면시간이 부족한 신입생들이 보기 안쓰러워서 내 생각해둔 것이 있지.”

    “강의 일찍 끝내기요?”

    “그보다 더 좋은 거. 실은 오는 길에 <어디서든 잘 자기> 강의를 보며 영감을 얻었네.”

    “…왜 하필 그런 강의에서 영감을.”

    “모험가의 야간행동. 그간 깨어있을 때의 활동법은 많이 배웠지만 잠들었을 때의 행동에 대한 주의사항은 배운 적이 없겠지. 안 그런가?”

     

    서두부터 불안하다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해골교관이 갑자기 급발진을 밟았다.

     

    “수면 중에 무심코 벌인 잠꼬대나 몸짓 한 번에 소리를 내어 적에게 들킬 때의 참담한 심정은 겪어본 모험가만이 아는 것이지.”

     

    슈퍼카도 정도면 V형 12기통 엔진을 단 V12 제로백 3초컷 사양이다.

     

    “교관님. 티토소가는 매번 강의시간마다 조용히 잠들어서 그런 거 연습 안 해도 되는데요?”

    “오. 그럼 티토소가 학생은 오늘은 교관 옆에서 얌전히 구경만 하게.”

     

    즈앙이 내가 무슨 짓을 했지? 하고 넋이 나갔다.

    티토소가가 교관 뒤로 종종 달려갔다.

    해골다리 뒤에 숨어서 고개만 내밀고는 혀를 베에 내미는 도발실력이 예사롭지 않다.

    우는 소리는 힝잉잉인 주제에 남들을 열 받게 하는 실력만큼은 타고난 것도 티토소가의 반전매력을 돋보이게 만든다.

    어쩌면 그냥 제 무덤을 제 손으로 파는 점은 사다코 교수님의 수강생다운 바람직한 예비언데드의 자세일지도 모르지.

     

    “해골교관님. 실은 저도 암살자 훈련을 받아서 수면 도중에 잠꼬대를 벌일 걱정은 없습니다.”

    “그 말을 증빙할 교수평가가 학생부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군!”

    “아니 그럼 티토소가는요! 쟤도 딱히 뭘 한 건 아니잖아요!”

    “쥐 죽은 듯이 얌전하게 기절함×2회. 제대로 입력되어 있다만?”

    “으윽!”

     

    괜히 티토소가를 걸고 넘어져서 강의무용론을 내세우려다가 열외자만 만들어준 즈앙은 사촌이 땅을 산 것처럼 배가 아파보였다.

     

    “즈앙. 둘이서라도 열심히 하자.”

    “오크노디… 너만 믿을게…”

     

    잠자는 강의에서 잠을 더 잘 자게 도와줄 방법은 기절시키기밖에 없는데.

    정 힘들어하면 도중에 파워딱밤이라도 한 대 먹여서 기절시켜줘야겠다.

     

    “자, 이제부터 잠을 자거라!”

    “…네?”

     

    쏴아아 쏟아지는 폭우에 물에 젖은 우비는 무겁고, 땅에 몸을 눕혔다가는 수영부터 해야 될 판이다.

    지나가던 자이언트킹크랩이 이게 웬 수상뷔페냐며 신이 나서 달려올 것은 말할 것도 없지.

    즈앙이 물었다.

     

    “이거 맞아요? 확실해요?”

     

    암살자인 그녀조차 상식을 의심하게 만드는 강의.

    그러나 해골교관의 뜻은 투철했다.

     

    “혼자서 자기 힘들면 직접 재워주마.”

    “어떻게요?”

     

    영락없이 수면마법 걸어서 상대를 잠재우는 스켈레톤 매지션인줄만 알았는데 해골교관은 검을 들어서 상대의 머리를 내리치는 시늉을 했다.

    매지션이 아니라 워리어셨다니, 물리마법을 즐겨쓰는 동지로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10분 안에 잠들지 못하면 직접 잠재워주마. 사다코 교수님과는 다르게 참 친절하지? 겔겔겔.”

    “교수의 제자인지 조교인지 친구인지는 몰라도 언젠가 저거 내 손으로 반드시 죽일 거야.”

    “그래서 즈앙 넌 어디서 잘 거야?”

    “바닥에서 잘 수는 없지. 나무 위에 올라가려고.”

    “같은 나무에 올라갈래?”

     

    즈앙은 타닷 하고 나무 위를 빠르게 박차며 다릿심으로 올라갔다.

    넌 어떻게 올라올 거냐고 쳐다보는 시선에 훗 하고 웃고는 가장 길게 늘어진 나뭇가지를 향해 힘껏 점프하였다.

     

    “이얍!”

     

    나뭇가지를 꾸욱 잡아당겨 땅까지 내리고는 손으로 붙잡고 기어오르니 뭐 저런 무식한 녀석이 다 있냐는 시선으로 즈앙이 나를 쳐다봤다.

     

    “무슨 암살자가 그렇게 요란하게 다녀?”

    “나 암살자 아닌데? 마검사인데?”

    “그래. 꿈은 크게 가지고 볼 일이지.”

     

    나무 위에 올라가서 비를 피하는데, 저 밑에서 해골교관과 함께 나란히 서서 안절부절 못하는 티토소가의 모습이 보였다.

     

    “저, 교관님. 비가 너무 내려서 추운데요.”

    “저런. 안됐구나.”

    “몸도 떨리고 뭔가 무섭고, 저 이만 실내에 들어가서 구경하면 안 되나요?”

    “저런. 안됐구나.”

    “…안 되는 거죠?”

    “저런. 안됐구나.”

    “…”

     

    혼자 저러고 있는 게 더 불쌍해 보인다.

     

    “자, 자이언트킹크랩이요!”

    “음?”

    “자이언트킹크랩이 오면 위험하잖아요. 교관님이 저 지켜주시는 거 맞죠?”

    “저런. 안됐구나.”

    “거기서까지 저런이 나오면 곤란하죠! 열외하는 학생정도는 지켜달라고요!”

     

    해골교관이 싱글벙글 웃는 낯짝으로 겔겔겔 웃었다.

     

    “…저도 그냥 나무 올라갈게요…”

     

    교관이 자신을 지켜줄 생각이 없음을 깨달은 티토소가는 뒤늦게 나무를 기어오르려 시도했다.

    물론 경험자가 아니면 나무타기는 쉽지 않고, 살만 까지고 서럽고 힘든 노동일뿐이었다.

     

    “이거 잡고 올라와!”

    “고마워, 오크노디…!”

     

    밑으로 내린 휴대용 로프를 붙잡고 올라온 티토소가는 부쩍 피로해보였다.

     

    “저기 보여? 불빛이야.”

     

    즈앙이 옆 공터를 가리켰다.

    귀를 기울이니 학생들이 내지르는 비명소리와 철을 씹고 두들기는 소리도 들렸다.

     

    “겔겔겔. 옆에서는 벌써 시작했군요.”

     

    철창 속에 들어가서 자이언트 킹크랩들을 피해 잠드는 극한체험을 하는 학생들이 내지르는 안타까운 비명소리였다.

    이 근방 자이언트킹크랩은 저기서 모조리 끌고 가줬으면 했지만 해골교관은 우리 생각보다 더 싸이코스러운 미친놈이었다.

     

    “킹크랩들아, 식사시간이다!”

     

    사료통을 풀어서 킹크랩들이 좋아하는 새우와 조개를 바닥에 와장창 풀어버리는 해골교관.

    그 만행에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다각다각 소리가 사방에서 접근했다.

    티토소가는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우리들, 이제부터 어떻게 되는 걸까…”

    “자는 시늉이라도 하면 되지 않을까?”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사다코 교수님이 너무 그리워.”

     

    사다코 교수를 티토소가만큼 무서워하던 즈앙이 울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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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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