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99

       “미안해 언니, 토카막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거야. 그러니까 언니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만 빌려 쓰고 있을게!”

        

       아카샤는 그리 말하며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막을 겨를이 없었다.

        

       깨진 창문을 보며 로테는 나지막한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표정에서 황당한 기색이 읽힌다. 로테는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내게 물었다.

        

       “저택에는 언제 돌아왔어?”

       “조금 전에.”

       “너한테 물어보고 싶은 거 투성이야.”

        

       내가 로테였어도 같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미안한 마음에 나는 말없이 있었다.

        

       “근데 그 전에 쟤부터 잡아내야 하는 거, 맞지? 너에게 중요한 물건을 가져갔잖아.”

        

       나는 무안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급한 불부터 꺼야 했다.

        

       우리는 창가로 뛰어갔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카샤가 수풀에서 토카막을 끄집어내고 있었다. 그녀가 우리를 올려다보더니 씩 웃는다.

        

       “하, 이런 것도 대비해서 여기에 미리 숨겨뒀었지.”

        

       얼씨구, 계획범죄라는 말이지. 우발적으로 일으킨 범행이었다면 정상 참작의 여지라도 남아 있었을 텐데 말이다.

        

       “넌 뒤졌어.”

        

       서열정리 들어간다.

        

       “잠깐, 갑자기 뛰어내리면 어떡해!”

        

       내가 창문에서 뛰어내리자 로테가 당황하며 얼떨결에 같이 내려왔다.

        

       “여기서 쟤 잡으려면 달리 방법이 없잖아.”

       “그건 그렇지만, 적어도 말은 해 줘야….”

        

       대화를 이어 나갈 시간은 없다. 아카샤는 입에 마력초를 물고 스크롤을 꺼냈다. 도망칠 준비를 마친 것이다.

        

       “자, 재미있는 거 보여 줄게. 이건 중량 경감 스크롤이거든?”

        

       중량 경감, 물체 주변의 공기를 조작하여 무거운 물건도 쉽게 들어 올릴 수 있도록 해 주는 공계마도다.

        

       “이걸 여기에 적용하면, 어라? 한 손으로 이게 들리네?”

        

       토카막을 수영 튜브처럼 옆구리에 끼고 흔들거리는 아카샤.

        

       저런 것까지 준비했을 줄이야. 철두철미한 녀석이다.

        

       일이 쉽게 풀리진 않을 것 같다. 추격이 길어질 걸 대비해야 한다. 나는 힙색에서 마력초를 꺼내 불을 붙였다. 로테도 날 도와줄 채비를 마쳤다.

        

       “언니, 나랑 싸우기라도 하려고? 여기서 이러면 안 될 것 같은데?”

        

       유리창 깨진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대부분은 저택에서 고용한 시종들이다.

        

       “창문 깨진 소리가 들렸는데… 세상에!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잠깐만, 아가씨 친구분이 둘…?”

       “다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유리창은 깨져 있지, 에테르는 둘이지. 제삼자가 보면 황당한 상황이기는 하다.

        

       민폐도 이런 개민폐가 따로 없다. 나중에 살리에르 백작에게 고개라도 숙여야 할 판이다.

        

       당장 해명하기에는 시간이 모자라다. 나는 결단을 내렸다.

        

       “로테, 내가 쟬 쫓을 테니까 넌 여기 사람들에게 설명 좀 해 줄래?”

       “으, 응.”

        

       내 말에 아카샤는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언니라면 그럴 줄 알았어. 언니는 친구보다 연구가 중요할 테니까.”

       “뜸 들이지 말고 그거나 내놓으시지?”

       “싫은데?”

        

       아카샤는 언덕에서 내려오는 고라니처럼 내달렸다. 인간이 내기 어려운 속도로 땅을 접어 달린다. 수인족과 금안족이 주로 사용하는 체술, 축지(縮地)였다.

        

       체술을 몸에 익힌 건 이쪽도 마찬가지다. 이러나저러나 나와 아카샤의 신체 스펙은 똑같으니까. 그녀가 쓸 수 있는 건 나도 쓸 줄 알아야 한다.

        

       “이쪽으로 가는 게 낫겠는걸.”

        

       타타탁!

         

        아카샤는 방향을 바꿔 남쪽으로 향했다. 예상하던 도주 경로다.

         

       영지 남쪽엔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숲이 있다. 아카샤는 이 숲을 따라서 서남쪽과 서쪽 산을 차례대로 경유한 뒤 곧장 마대륙으로 올라가려는 꿍꿍이였다.

        

       “정말 끈질기네!”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숲 깊은 곳까지 도달했다. 아카샤는 발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마력초를 피우며 내달리던 내 몸에 마력이 골고루 돌기 시작했다. 나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뒤 곧바로 스태프를 꺼냈다. 그 모습을 본 아카샤가 콧소리를 내며 물었다.

        

       “진짜 나랑 여기서 싸우려고? 자매끼리 이러면 안 돼.”

       “싸우긴 뭘 싸워. 도둑질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에이 씨, 시간 없는데. 뭐, 좋아. 언니랑 오랜만에 한 번 붙어나 볼까?”

        

       스르륵. 아카샤 또한 아공간에서 스태프를 꺼내들며 광기 어린 조소를 지었다.

        

       마도사가 꺼내는 스태프는 그 사람의 성격이나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형태가 결정된다. 스태프는 실물보다는 영체에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간단한 예로, 내가 스태프를 소환하면 항상 버니어 캘리퍼스가 나온다. 이 몸으로 빙의하기 직전, 그러니까 논문을 읽다가 철제 캘리퍼스로 컴퓨터를 내려친 경험이 반영된 게 아닐까 싶은데.

        

       처음 소환했을 땐 뭔 병신같은 게 나왔다고 욕을 바가지로 했었다. 지금은 익숙하지만.

        

       그래서 이젠 어떤 스태프가 나와도 그러려니 할 줄 알았다.

        

       “저건 뭔 병신같은 거야.”

        

       아카샤의 스태프는 Y형 피뢰침이었다. 저딴 게 마법사들 쓰는 지팡이라고…?

        

       “너 혹시 성씨가 프랭클린이냐?”

       “뭔 개소리야. 언니 기억이 이상하긴 한가 보구나? 아니면 여신이 건드리기라도 했나?”

        

       아카샤는 피뢰침, 그러니까 스태프를 붕붕 휘두르며 바닥에 내리꽂았다.

        

       “아, 언니. 싸우더라도 우리 마법은 살살 쓰자. 여기서 우리가 이러는 걸 사람들에게 들키면 여러모로 난감해질 거 아냐? 응?”

        

       저 말은 거짓말이었다. 그녀가 포켓에서 꺼낸 스크롤만 하더라도 곱게는 못 싸울 마법들이 내장되어 있었다.

        

       “어디 보자. 언니는 기억을 잃어서 주로 쓰던 마도도 다 까먹었지? 그러니까 나도 이것만 사용해서 상대해 줄게. 오랜만에 같이 놀아보자.”

        

       아카샤는 토카막을 내려놓고 스크롤을 하나씩 점화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여기서 굉음을 일으켰다간 영지민에게 민폐를 준다. 아카샤는 바로 도망갈 테니 자연스레 그 책임은 내가 물게 되겠지. 날 사람들에게 배척받게 만들어서 ‘집’으로 돌아오게 만들려는 속셈이다.

        

       그렇게는 안 둔다.

        

       동생이 허튼짓 못 하도록 한 번에 끝낼 수단이 필요하다. 이른바 ‘미치광이 전략’의 대상이 될 마도를 찾아야 한다.

        

       그걸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나는 힙색의 가장 깊은 곳에서 커다란 스크롤을 꺼냈다.

        

       “아, 잠깐만.”

        

       명백히 당황했다. 아카샤는 입을 우물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어, 언니. 설마 나 죽일 작정인 건 아니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선 씨게 넘었다, 그지?”

       “너도 이게 뭔지 아는구나.”

        

       절멸급 마수조차도 쓰러뜨릴 수 있는 궁극의 마도.

        

       [최상급 화계마도 ─ 플레어(Flare)]

        

       플레어 스크롤의 개화부에 마력을 흘려 넣을 준비를 마쳤다.

        

       나는 웃으며 아카샤에게 물었다.

        

       “토카막 줄 거야, 말 거야?”

        

       최후통첩이었다.

        

        

       **

        

        

       플레어를 사용했다간 이 숲이 통째로 날아간다. 이 때문에 처음부터 쓸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아카샤를 속이려면 마음을 다해야 한다. 나는 실제로 개화부에 마력을 흘려 넣었고, 거의 격발 직전까지 갔다. 덕분에 아카샤를 속일 수 있었다.

        

       “아, 알았어! 우리 말로 하자, 말로!”

        

       싸움보다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걸 몸소 알게 해 주었다. 아카샤는 팔을 휘휘 저으며 스태프를 도로 집어넣었다.

        

       “자, 됐지? 스크롤도 넣고, 스태프도 역소환했어. 그러니까 언니도 그거 치워!”

       “그럴 거야. 그 전에….”

        

       협상에서 중요한 건 기선제압. 입장차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무릎부터 꿇어.”

       “그래! 이러면 됐지?”

        

       그렇게 생전 처음 보는 여동생과의 면담이 시작됐다.

        

       “남의 물건 훔치면 그게 잘하는 짓이에요, 못하는 짓이에요?”

       “못하는 짓이지.”

        

       명랑한 대답이었다. 내가 째려보자 아카샤는 억지 울상을 지었다.

        

       아카샤는 손등으로 눈을 비비며 힝힝거리는 시늉을 했다. 진짜 울기라도 했으면 일말의 동정심이라도 들었을 텐데, 그걸 제 발로 차 버리네. 재미도, 감동도 없는 발연기에 짜증만 치밀었다.

        

       “근데 토카막은 진짜 어쩔 수 없었어. 언니가 가출한 뒤부터 일이 진행되는 속도가 훨씬 느려졌으니까.”

       “일? 무슨 일.”

       “그런 거 있어. 기억 돌아오면 알게 될 거야.”

        

       얘가 안 알려줘도 상관없다. 정보통은 따로 있으니까.

        

       “어쨌든 그 일은 우리 종족의 비원이야. 그 목표에 도달하려면 내 능력만으로는 안 돼. 나와 언니가 같이 있어야 한다고.”

       “아, 그래서?”

       “잘 생각해 봐. 언니가 기억을 잃어버리고도 이걸 만들었다는 건 우리 종족을 끔찍하게 여기고 있다는 증거야.”

       “그래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뭔데.”

        

       빙빙 돌려 말하는 건 별로 안 좋아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아카샤가 손을 모아 부탁했다.

        

       “언니가 바로 집에 올 거라고는 생각 안 해. 그러니까 이거, 눈 딱 감고 빌려줘.”

        

       나와 똑같이 생긴 소녀가 무릎을 꿇고 처량한 눈빛으로 싹싹 빈다. 이 광경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오묘하다.

        

       “흠.”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걸 어떡한다.

        

       [뭔가 생각이 있어 보이시네요.]

        

       그렇다.

        

       아카샤가 대충 어떤 존재인지는 유추해냈다. 그러니 좋은 생각을 하나 떠올릴 수 있었다.

        

       버멜이 준 정보, 내가 아닌 ‘에테르’의 입지, 그리고 그 여동생인 이 녀석. 이 삼박자를 잘 조합하면 핵무기 개발에 엄청난 박차를 가할 수 있다.

        

       [뭐 어떻게요?]

        

       생각해 보면 간단한 일이다. 나는 입꼬리를 올린 채로 아카샤를 내려다보았다.

        

       “그냥 주는 건 안 돼.”

       “그러면?”

       “등가교환을 하자.”

        

       내 대답에 아카샤의 고개가 살짝 돌아간다.

        

       “피, 자매인데 이렇게 박하게 굴어도 돼?”

       “난 너 누군지 모른다니까?”

       “아, 알았으니까 그 스크롤이나 좀 치워!”

        

       [와, 주인님. 방금 건 조금 너무했는데요.]

        

       뭐, 이 정도면 충분히 관대한 처사지.

        

       토카막을 빼앗길 뻔했는데 도리어 거래 품목에 올려주겠다는 소리잖아? 표면적으로 보면 내가 손해 보는 장사를 하는 거나 다름없지.

        

       그래, 겉으로는 그렇다는 말이다.

        

       “좋아. 내가 뭘 주면 되는데?”

       “내가 가장 갖고 싶어 하는 걸 생각해 봐.”

        

       나는 아카샤를 슬쩍 떠보았다. 사고방식까지 서로 같다면 말 안 해도 원하는 걸 꿰고 있을 터.

        

       “아, 그거? 언니가 옛날에 가지고 싶어 하던 거 말이지?”

        

       그러더니 아카샤는 품에서 A2 사이즈만 한 크기의 마전지를 꺼냈다.

        

       복잡한 스크롤이었다. 복잡하게 얽힌 곡선이 사위를 뒤덮고 있었고, 코팅도 5중 이상으로 꽤 두꺼웠다. 심지어 플레어처럼 다차원 스크롤이었다.

        

       똑같은 다차원 스크롤이라도 플레어와는 격이 달라 보였다. 마도진의 패턴을 관찰하니, 플레어와는 달리 유클리드 내적공간에서 정의된 기하가 하나도 없었다.

        

       “언니가 집에 올 때까지 빌려줄게. 이걸로 쌤쌤인 걸로, 어때?”

        

       아카샤가 스크롤을 돌돌 말아 내게 내밀었다.

        

       “흠.”

        

       이게 뭘까. 원래의 에테르는 알겠지만, 난 모른다.

        

       고민하던 중 양장본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 이 세계의 모든 마법을 다 정리해 놓은 이 녀석이라면 알고 있지 않을까.

        

       [관리자 모드로 전환합니다.]

        

       반투명한 상태로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양장본을 바라본다. 나는 원격 조작으로 분석할 스크롤을 선택하고, 그 이후의 일을 양장본의 시스템에게 맡겼다.

        

       [분석중]

        

       나는 그 글자를 바라보며 무료하게 있다가,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

        

       감정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 감정 결과]

        

       [□ 전설급 고유마도 ─ ‘백야(白夜)’의 개화부(미완성)]

        

       아무래도 월척을 낚은 것 같다.

       

    다음화 보기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