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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9

        

         

       소림사 현판 떼고 천마성전 간판 달던 마두는 신당 소속의 호법이라고 했다.

         

       수십 척 함대 끌고 망망대해를 항해하던 놈은 지휘선이 저 멀리에 있던 탓에 얼굴도 모르고, 최리옹 역시 누군지 짐작도 안 간다고.

       하지만 청이 보기에 마교에서 가장 사나이가 아닐까 싶었다.

         

       그야말로 산 넘고 바다 건너는 여정이었다.

         

       운이 좋았는지, 그러다 결국 마교 고수들 사이 유일하게 쪼그만 소년과 마주칠 수 있었다.

         

       “여. 꼬맹이.”

         

       “……?”

         

       지승주가 눈을 부릅떴다.

       본래 표정이 없는 지승주였으니 얼마나 놀란 것인지 대충 짐작할 만한 일이었다.

         

       “뭐야, 왜 그렇게 놀라? 못 볼 사람이라도 본 것처럼.”

         

       “당신, 살아있었습니까?”

         

       “뭐야 내가 언제 죽었다고 살아있냬?”

         

       “분명 당신의 시체를 보았습니다만. 그것도 신교의 신화전 앞마당을 본뜬 장소였습니다.”

         

       “신화전?”

         

       “대호법 분들께서 지내시는 장원입니다. 아마 누군가가 당신을 환상으로 만들어 죽일 만큼 죽이고 싶어 하는 모양입니다만. 조심하십시오. 환상 속이라고 하나 당신을 보면 죽이려 달려들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사람 쏙 빼놓고 하는 대화였다.

       최리옹이 기침 소리를 냈다.

         

       “크흠.”

         

       “자전마군께서도 무사하셨군요. 다행입니다.”

         

       “마뇌가 진법을 걷어내려 한다기에 내 도우러 왔소. 어찌 진전은 좀 있소이까?”

         

       “방저 몇 개를 치웠습니다만, 도대체 몇 개를 깔아놓았는지 짐작도 안 됩니다. 일단 팔괘를 구궁방으로 삽전해 해집산을 적용했습니다만.”

         

       “내 오면서 보았더니 오시 상상천에 지활로가 있었소만.”

         

       “아 그럼 남천반에는 영괘, 영천, 출강, 비진 네 유사방을 걷어내면 되겠군요.”

         

       뭔가의 전문 용어가 마구 펼쳐졌다.

       그때부터는 청이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의 시작이었다.

         

       물론, 어차피 도울 생각도 없었다.

       그래서 이내 관심을 잃고 주변을 살폈으나 또 딱히 흥미가 가는 광경이 없었다.

       결국, 지루한 청이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그 광경에 최리옹이 혀를 찼다.

         

       “쯧쯧, 그렇게 해서 입이 찢어지겠느냐?”

         

       “졸린 걸 어떡해요, 그럼.”

         

       “그럼 차라리 잠이나 처잘 것이지 다 큰 처자가 경망스럽게 입이나 쩍쩍 벌리고는. 혼사가 일렀다면 진즉 어미가 되었을 년이.”

         

       청이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익숙한 잔소리를 하지 않나?

       늙으면 다 이렇게 되나?

         

       하지만 최리옹은 익숙한 그분들이 아니었다.

       청이 인상을 팍 썼다.

         

       “남이사. 어미가 되든 애비가 되든 무슨 상관이에요? ”

         

       “이년 말씨가 아주 더럽구나. 어째 점점 이리 패악질만 늘어갈꼬. 계집이 얼굴만 반반해서는 그걸 믿고 까부는지.”

         

       “됐고. 그래서 얼마나 걸릴 것 같아요?”

         

       최리옹이 지승주를 바라보았다.

       지승주가 묘한 눈으로 청과 최리옹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다 최리옹이 하는 무언의 채근을 이기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빨라도 하루는 더 걸리겠다 싶었습니다만, 마군께서 도와주시면 훨씬 낫겠습니다. 사실, 물이 없어 시간이 촉박한 상황이지 않습니까.”

         

       사람이 먹을 것 없이는 버텨도 물이 없이는 오래 버티지 못하는 법이었다.

       그건 제아무리 고수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청이 속으로 셈을 했다.

         

       지승주는 전문가였다.

       혼자 하여 하루는 꼬박 걸리겠다는 일을 여기 할아범이 도와서 반절이 된다 해도 반일이다.

         

       그럼, 한숨 푸지게 자도 되겠네?

         

       “할아범이 자랬으니까 나는 잠이나 잘게요. 진법이 해제될 것 같으면 깨워 줘요. 어떻게 되나 구경이나 좀 하게.”

         

       청이 혹시 몰라 당부해 두고는 바르작거리며 머리를 이리저리 기대어 보았다.

       그러다 마음에 들도록 편안한 자세가 잡혔다.

         

       이미 헤맨 지가 오래라서 잠잘 시간을 넘긴 모양. 몸이 편안해지니 수마가 몰려들었다.

         

         

       —-

         

         

       진법 해체는 생각보다 훨씬 시간이 더 걸릴 모양이었다.

       청이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자 보이는 풍경이 그 지긋지긋한 왕궁의 대전이었으니까.

         

       최리옹은 피곤한 기색으로 산과 들과 왕궁을 오갔다. 하기사 늙은이가 계속 돌아다녔으면 피곤할 만도 하지.

       안겨있는 청이 민망해질 지경이었다.

         

       “할아범, 피곤하면 좀 쉬지 그래요.”

         

       “고수가 고작 하루쯤 날을 지새웠다고 피곤할 사람이냐? 허튼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아니면 내려놔요. 나도 이제는 걷기 뛰기 다 되거든요?”

         

       “괜히 궁금하다고 쏘다니다 잘못 밟으면 여태 한 작업이 전부 허사가 되는 수가 있어. 그냥 이리 있는 게 도와주는 거다.”

         

       그런가? 그렇다는데야 뭐.

       명분이 생긴 청이 당당하게 탑승을 즐겼다.

         

       진을 해체하는 작업은 문외한이 봐서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며 서고 멈추고 돌고, 때로는 뒤로 좌우로 돌아다니다 한 지점에 멈춰 허공을 발로 차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면 쇠공 하나가 허공에서 튀어나와 바닥을 뒹굴었다.

       그런 작업의 끊임없는 반복이었다.

         

       거기에 심지어 배도 고프다!

       그렇다고 배고프다 칭얼거리기에는 최리옹의 안 그래도 움푹 들어간 눈시울이 지금은 더욱 꺼져서 음영이 질 정도였다.

       그 앞에서 청이 차마 배고프다 입을 뗄 수가 있었다.

         

       “배고파 죽겠네. 밥은 어떻게 해요?”

         

       “어쩔 수 있나. 굶어야지.”

         

       “아오, 더럽네. 진법 설치하는 새끼들은 아주 고추를 다 떼버려야 돼. 정정당당하게 상대할 것이지 이딴 걸 깔아서는.”

         

       “그래. 네 말대로다. 아주 육시럴 놈들.”

         

       최리옹 역시 이를 바득 갈았다.

         

       그렇게 쫄쫄 굶고 있자니 잡생각이 들었다.

         

       이럴 거면 몇 명 더 깨워서 같이 하면 훨씬 빠르지 않을까? 분명 마교 놈 중에 진법 전문가가 더 있을 것도 같은데.

         

       어라……?

       그러고 보니 천마혼 위치 본다고 몇 명인가 기절시켰었는데.

       걔네는 안 깼나?

       할아범은 정신 차렸는데?

         

       청이 그런 생각을 하던 때였다.

       문득 들려오는 목소리가 청의 생각을 깼다.

         

       “엄마.”

         

       “후후, 내 아들.”

         

       “엄마.”

         

       “그래, 어미가 여기 있단다. 내 아들.”

         

       청이 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리다 묘한 광경에 눈살을 찌푸렸다.

         

       표독스러운 얼굴을 한 미부인이었다.

       얼굴에는 그저 증오를 띄면서도, 장성한 아들의 머리를 허벅지에 올린 채 살살 쓰다듬으며 자상한 목소리를 내는 중이었다.

         

       다만, 그 아들의 얼굴이 낯이 익었다.

         

       “앗! 저 씨발놈! 아주 팔자가 폈네?”

         

       환한 미소를 머금은 지존 호소인이었다.

         

       “할아범, 잠깐 내려줘 봐요. 내가 저 새끼는 가만히 안 두기로 했는데.”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내가 그 꼴을 두 눈 뜨고 지켜볼 것 같으면 이 고생을 할 이유가 다 무엇이냐.”

         

       “칫,”

         

       청이 혀를 찼다.

         

       저새끼는 자연경을 호소하더니만.

       결국 진법에 빠져 지 애미랑 놀고 자빠졌네.

         

       그런데 또 의외였다.

       지존 호소인이라서 제일 높은 자리 차지하고 엣햄 내가 황제이니라 이딴 소리나 할 줄 알았는데.

       가장 원하는 환상이 지 애미랑 노닥거리기야?

         

       청이 질색팔색 오만상을 쓰며 물었다.

         

       “이거 지존 호소인이 보는 환상 맞죠? 이거 제일 원하는 환상을 보여주는 거 맞아요? 저게 저 가지가지싸가지 호소인이 원하는 거야?”

         

       “지존도 따지고 보면 불쌍하다 할 것이야. 제 어미에게 단 한 번 안겨보질 못했으니 그 한이 저러한 게다.”

         

       “그건 무슨 소리에요?”

         

       “신혈이 가진 업이지. 쯧쯧.”

         

       신혈을 품는 모체가 평범할 수는 없다.

       근골이 튼튼하고 기혈이 웅대하며 상단전은 맑고 선천진기는 강대해야 하니, 대개는 중원에서 가장 적합한 여인들을 납치하여 신혈의 아이를 품도록 만들었다.

         

       그러하니, 원치 않는 아이를 억지로 낳아서 모성을 가지는 어미가 드물었다.

         

       제가 낳은 자식을 보는 얼굴에는 눈깔이고, 입을 열어 모진 칼날을 쏟아내니 그 혓바닥이야말로 천하의 검객이라 할 실력이었다.

         

       “엄마.”

         

       “그래. 내 아들. 내 사랑스러운 아들.”

         

       “엄마.”

         

       “그래. 나도 사랑한단다. 내 아들.”

         

       그리 말하는 여인의 표정에 서린 분노가 선명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면서도 목소리만 자애로우니 오히려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아니, 근데 엄마 얼굴은 왜 저래놨대요?”

         

       “살면서 한 번도 다른 표정을 본 적이 없어 그러하겠지. 상상으로도 다른 표정을 꿈꿀 수가 없는 게다.”

         

       청이 말문이 막혀 입만 뻥긋거렸다.

         

       어미는 원독이 찬 얼굴로 노려보는 중이고, 지존 호소인은 그러면서도 그저 해맑아 행복한 표정이다.

         

       청이 한숨을 푹 쉬며 욕설을 삼켰다.

         

       진짜 씨발, 마교 이 씨발 놈들은 꼭대기부터 저 아래까지 뭐 하나 정상인 새끼가 없어.

         

         

       —-

         

         

       진법의 해체 작업은 그 후로 한참이나 시간이 지나서 이루어졌다.

       배고프고 목마르고 꾸벅꾸벅 졸다 못해 머리가 아파 더는 잠도 못 잘 정도의 시간이었다.

         

       아픈 머리로 퀭한 눈을 하고 있던 청이었다.

       문득 최리옹이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진법이 사라지는구나.”

         

       “아. 진짜…….”

         

       힘들어 죽는 줄 알았네. 생략된 뒷말이었다.

       품에 안겨서 졸기만 했던 청의 생각이었다.

       이쯤 되면 양심 속 삼각형이 다 닳아 완전한 원형을 이루는 위업을 달성했다고 자축해도 될 정도였다.

         

       잔불에 타들어가는 종이처럼 세상이 조금씩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재가 흩날리고, 그 너머로 어슴푸레 침침한 묘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횃불도 다 타버린 묘실임에도 아예 어둡지는 않았으니, 묘실 밖으로부터 작은 구멍을 뚫어 빛을 끌어오는 반치의 기술이 이미 신선의 경지에 달했다고 하는 이유일 것이다.

         

       마교도들이 환상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아쉬운 탄식, 간혹 상실에 대한 흐느낌, 또는 좌절 섞인 고함이 석실 안에 메아리쳤다.

       어떤 이는 아예 털썩 주저앉아 흐느끼며 저만 아는 이름을 되뇌기도 했다.

         

       지승주가 말한 지독한 진법이란 것이 이러한 이유였다.

       환상에 걸려서는 스스로 나가고자 하지 않고, 진법을 해체해서도 끔찍한 상실감에 몸부림을 치게 되니 그야말로 악의의 정수와도 같았다.

         

       그리고 그렇기에 청에게 기회가 왔다.

         

       “읏차.”

         

       청이 최리옹의 품에서 톡, 뛰어내렸다.

         

       “얘야?”

         

       “흐흐, 기나긴 모멸의 시간이었다……”

         

       동시에 청이 세차게 바닥을 짓밟았다.

       월녀산보의 반중력 보행이었다.

         

       어둠 속 홀로 찬란한 삼각뿔, 천마혼의 광채 위로 사람의 몸통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마침내 청이 빛나는 삼각뿔을 손에 쥐었다.

         

       청이 크게 숨을 들이쉬고, 이내 쩌렁쩌렁 큰 소리가 묘실을 가득 메웠다.

         

       “자! 주목! 여러분, 보이십니까!”

         

       순간, 모두의 시선이 청을 향했다.

       환상이 깨진 후유증으로 멍하던 눈빛들이 곧 청의 손에 들린 신물을 발견하고는 저마다의 반응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누군가는 경악하며 눈을 키우고, 어떤 이는 그저 끔벅거리며 의문을 표하고. 또 어떤 이는 곧장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았다.

         

       개중에 입을 뻐끔거리는 지승주와도 시선을 마주치니 청이 눈을 찡긋해 주었다.

       지승주의 입 모양을 보니 들리지 않았어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옘병.

         

       그리고 지존 호소인, 이 새끼 어디에.

       아니, 저거 아직도 정신 못 차리네.

         

       지존 호소인은 아직도 멍한 눈빛으로 망연히 서 있을 뿐이었다.

         

       제일 중요한 순간에 이러기 있긴가.

       뭐, 천마혼을 깨버리고 나면 저것도 결국에는 볼 만한 표정을 좀 지어주겠지.

         

       청이 다시 숨을 들이마셨다.

       이제는 정말로 끝, 묘실을 나가 부수고 째면 지긋지긋한 마교 놈들과도 작별이었다.

       그렇게 청이 막 대사를 치려는 순간이었다.

         

       최리옹이 외침이 청의 말문을 막았다.

         

       “안돼! 얘야! 당장 내려놔! 어서! 자격 없는 자가 신물을 만지면! 안 된단 말이다!”

         

       피를 토하는 듯한 처절한 외침이었다.

       크게 부릅떠진 눈동자는 흔들리고, 그 안에 담긴 감정은 명백한 공포로, 공포? 두려움?

       청이 최리옹의 표정에서 공포를 읽었다.

       대체, 왜?

         

       “내려놓으라고! 제발! 애비 앞에서 두 번이나 죽을 셈이냐!”

         

       문득 손이 간지럽다.

       청이 멀거니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어……?”

         

       청이 얼빠진 소리를 냈다.

       

       손안으로 천천히 스며드는 자체 발광 삼각뿔을 보게 되면, 누구라도 얼빠진 소리를 낼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2관은 포기.. 노말 깼읍니다..

    카멘만 잡고 효도하기로 다짐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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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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