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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9

       아침부터 저녁까지 마차를 탄 채 꼬박 한나절을 달려 루미노르 아카데미가 있는 ‘지식의 섬’에 도착하고 난 후.

         

        나와 에단은 모레 아카데미에서 치러질 입학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여관 하나를 잡아 머무르기로 했다.

         

        실제로도 먼 곳에서 시험을 치르러 오는 학생들은 종종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평민이든 귀족이든 관계없이.

         

        지식의 섬이라는 곳이 위치가 조금 특이해서 다른 도시에 비해 조금 고립되어있기도 하고, 혹시나 지각이라도 하면 아예 일 년을 날려버릴 가능성도 있으니까.

         

        물론 이 세계에서 전화 예약 같은 사치스러운 숙소 예약이 가능할 리가 없었으니, 당연히 당일 현장에서 여관에 빈방이 있는지를 확인해야만 했고.

         

        말과 마차까지 전부 맡겨놓은 여관에서 나와 에단에게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문제 하나가 발생하고야 말았다.

         

         

        “빈방이, 하나밖에 없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도련님. 이 시기에는 항상 아카데미 입학시험 때문에 항상 방이 전부 가득 차거든요.”

         

        “흐음….”

         

         

        오늘부터 닷새 동안 입학시험을 위해 여관에 묵어야 하는 상황에서, 숙소로 잡으려던 여관 객실의 방이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는 문제가.

         

         

        “그래, 알겠네. 메이드, 일단 다른 여관을 한번 둘러보도록 하지.”

         

        “네, 도련님.”

         

        “귀족 도련님이랑 메이드 아가씨가 헛걸음하시는 게 아닐까 싶어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아마 다른 여관을 가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무슨 말이지?”

         

        “저희 여관은 그래도 아카데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으니 방이 하나라도 남아있는 거고, 아마 섬 안쪽으로 들어가실수록 빈방은 찾아보기 힘드실 테니까요.”

         

        “…….”

         

        “그리고 만약에라도 도련님이 헛걸음하고 돌아오셨을 때, 방금 말씀드린 방이 남아있을지는 장담 못 드립니다. 저희도 손님은 받아야 하니까요.”

         

         

        다른 여관을 수색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려는 에단을 불러 세우는 가게 주인의 말.

         

        저 의연한 태도로 볼 때 딱히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실제로 이 늦은 저녁 시간까지 1층 식당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니 더욱 그 신빙성이 더해지기도 했고.

         

        대부분이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녀가 섞인 모습이었으니. 그들 또한 우리와 마찬가지로 아카데미 입학시험에 응시하기 위한 사람들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혹시 웃돈을 받고 다른 방 하나를 더 팔 생각은….”

         

        “이미 다른 방은 다 예약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이런 구석진 곳에 있는 여관에도 도련님 같은 귀족 자제분이 묵으러 오는 일이 빈번하기도 하고요.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괜히 순간의 돈 욕심에 눈이 멀어 귀족한테 밉보일 생각은 없습니다.”

         

        “…….”

         

         

        정작 저 태도로 블랙우드 가문의 적장자에게 밉보이고 있다는 건 모르는 눈치였지만.

         

        뭐, 아무리 평민과 귀족 사이라고 해도 원리원칙대로 하겠다는 가게 주인에게 무력이나 압박을 가하는 건 상당히 도리에 어긋나는 행위이기도 했고.

         

        에단도 그것을 알고 있기에 굳이 블랙우드 가문의 문양을 밝힐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정 빈방이 필요하시면 다른 객실 손님들에게 한 번 직접 협상하셔야 할 겁니다만, 손님 말고도 다들 아카데미 입학시험을 준비하러 온 학생들이라서 양보해주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끄응….”

         

        “그리고 이미 마차까지 저희 여관에 맡기시지 않았습니까? 이 늦은 시간에 다시 마차를 끌고 돌아다니시기도 쉽지 않으실 테고, 마차만 맡겨놓은 채 다른 여관에서 묵으시기도 번거로우실 테지요.”

         

         

        그냥 방 하나에서 둘이 자라는 말을 잘 돌려서 표현하는 여관 주인의 모습.

         

        확실히 지금은 그의 말대로 하는 것이 가장 원만한 해결책일 터였다.

         

        아카데미 입학시험은 평민이든 귀족이든 나름의 인생이 걸린 중요한 시험일 테니, 괜히 웃돈 주고 방을 팔았다가 시험날 컨디션을 흐트러뜨리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물론 블랙우드 가문의 위상을 빌어 반쯤 강제로 다른 사람에게 방을 양도받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그건 아까 말한 도리에 어긋나는 행위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게다가 마부는 나와 에단이 머무르는 동안 다른 곳에서 숙식을 해결하기로 되어있으니, 이제 와서 마구간의 마차를 빼서 다른 곳으로 옮기기도 번거로워질 테고.

         

         

        가게 주인이 말한 대로, 그냥 나와 에단이 한방에서 자면 해결될 문제였다.

         

        왜인지 에단은 좀처럼 그 결론을 내지 못하고 내 눈치를 보는 모습이었지만.

         

         

        ‘메이드랑 같이 자는 건 좀 부담스러운 건가?’

         

         

        이미 가슴까지 내준 사이에서 겨우 잠자리 좀 공유한다고 부담스러워하는 게 이상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건 복잡해서 또 모르는 거니까.

         

        나도 순간적으로 같은 방에서 일박, 혹은 그 이상을 머물러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괜히 어젯밤 일이 떠올라서 머릿속이 복잡해지긴 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내가 에단에게 가슴을 허락해준 건 해럴드와의 대련에서 승리하고 난 보상일 뿐, 딱히 그에게 내 몸 일부를 영구적으로 허락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즉, 에단 쪽에서 이상한 짓만 안 한다면 그와 한방을 쓴다는 것 자체는 그리 문제가 아니었으니.

         

        어차피 아카데미에 들어가고 나면 전속 메이드인 나는 에단과 같은 기숙사실을 사용하게 될 테고, 사실상 그 예행연습이라고 보면 상관없었다.

         

         

        …다만, 문제는 에단인데.

         

        아무래도 입학시험을 앞두고 있으니만큼 컨디션도 최대한으로 유지하고 싶은 그에게, 잠자리에 다른 사람이 함께 누워있는 것은 충분히 신경을 거스르게 하는 요소겠지.

         

        아마 그 부분을 걱정해서 고민하는 게 아닐까 싶긴 했다.

         

        뭐, 정 한 침대가 불편하다고 하면 나는 옷가지를 바닥에 깔고 누워서 자면 그만이니까.

         

        이미 잠정적으로 결론이 났다고 생각한 나는 에단에게 헛걸음하지 말고 여기서 묵자는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했다.

         

         

        “도련님께서만 불편하시지만 않으시다면, 빈방이 생길 때까지는 제가 도련님과 같은 방을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메, 메이드? 진심이야?”

         

        “혹여나 저와 같은 침대를 쓰는 것이 불편하시다면, 제가 옷가지를 깔고 바닥에서 자도록 하겠습니다. 사흘 치의 옷을 챙겨왔으니 옷 하나는 바닥에 깔고, 다른 하나는 덮고 자면 될 일이니까요.”

         

        “아, 아니! 내가 진심이냐고 물은 건 그런 걸 물은 게 아니라….”

         

        “혹여나 같은 방을 공유한다는 사실조차 불편하시다면 제가 마구간의 마차에서 잠을 청하겠습니다. 도난당할 위험을 고려하여 제 짐만 도련님의 방에 맡겨주신다면….”

         

         

        “바, 방금 말한 비어있는 방, 일박에 얼마를 받지?”

         

        “지금 시기에는 일박에 은화 두 개입니다.”

         

        -짜르릉.

         

        “닷새를 빌리도록 하지.”

         

        “아이고, 감사합니다~.”

         

         

        에단에게서 은화 열 개를 받아간 여관 주인이 능청스러운 표정과 함께 객실 열쇠를 건네주었고.

         

        에단은 방금까지의 고민스러운 표정 대신 서둘러 나를 데리고 객실이 있는 2층으로 데려갔다.

         

         

        “알았으니까 일단은 빨리 올라가서 쉬자, 메이드. 이상한 소리는 그 정도만 하고.”

         

        “네?”

         

        “딱히 메이드가 같은 침대를 쓴다고 불편하거나 하진 않으니까. 바닥에서 자겠다는 말 같은 거 하지 말라는 뜻이야.”

         

        “네, 도련님.”

         

         

        다행히 에단도 딱히 나랑 같은 방을 쓴다는 거나 침대에 눕는 것 자체는 딱히 신경 쓰이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바닥에서 잘 일이 없어진 건 다행이긴 하네.

         

         

         

       ⁎ ⁎ ⁎

         

         

         

        에단과 사용하기로 한 객실 키를 받아 안으로 들어가고 나니 생각보다는 그럭저럭 넓은 방이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하나 남아있었던 방이 때마침 2인실이었던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만약 1인실이었으면 에단의 배려와는 무관하게 그냥 내가 바닥에 누워야 했을 테니까.

         

        물론, 2인실이어도 침대는 하나뿐이었으니 여전히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환경이긴 했지만, 겨우 그런 거로 투덜거릴 정도로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

         

        뭐, 몸을 씻을 수 있는 욕실이 붙어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세탁이야 클린 마법으로 해결하더라도 별문제가 없었지만, 몸을 씻는 행위만큼은 클린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설거지에 채소 껍질 깎기까지 가능한 클린으로 왜 몸은 못 씻냐고? 그야 당연히 뻔하잖아. 여캐들 목욕하는 장면 CG 수집해야 하니까 그렇지.

         

        이 게임의 근본이 아카데미 게임의 탈을 쓴 야겜이라는 사실을 언제나 빼먹어선 안 된다. 아무리 스토리가 좋고 자유도가 높다고 해도 야겜은 야겜이라는 것을.

         

        물론 게임 설정상으로는 몸을 정갈하게 만드는 신성한 행위를 마법 따위로 대체하면 안 된다는 등의 내용이 있었지만, 게이머로서는 아무리 봐도 여캐들의 목욕 CG 수집을 위한 구실에 불과해 보였으니.

         

        이런 변두리 여관의 개인실조차도 욕실이 덤으로 붙어있을 정도로 이 게임의 제작자들은 야한 CG 수집에 진심이라는 것을 언제나 잊어선 안 된다.

         

         

        “먼저 씻을래, 메이드?”

         

        “…….”

         

        “…메이드?”

         

         

        …그냥 단순하게 먼저 씻겠냐고 물어보는 질문이 왜 오늘따라 다른 의미를 지니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지.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말자. 그냥 닷새 동안 같은 숙소에서 자고 일어나는 것뿐이잖아.

         

        그리고 혹시라도 빈방이 생기면 그때라도 옮기면 되는 거고.

         

        아마 가장 응시생이 많을 것으로 예상이 되는 검술부 입학시험은 이틀 뒤에 시작이니, 모레부터는 아마 빈 객실이 하나둘 생겨날 터였고.

         

        나는 마음을 다잡으며 에단에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저택 외부라고는 하나 여전히 제 주인은 도련님이시니, 도련님께서 먼저 씻으시는 편이 옳습니다.”

         

        “그, 그럼 먼저 씻을게, 메이드….”

         

        “갈아입으실 옷은 욕실 앞에 준비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응….”

         

         

        그런 말과 함께 욕실 안으로 들어서며 한나절의 피로를 씻으러 들어가는 에단.

         

        욕실 안쪽에서 물이 위아래로 끼얹어지는 소리를 확인한 후, 나는 곧바로 짐가방을 풀어 가져온 짐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 옷 가방보다는 당연히 에단의 옷 가방부터.

         

        애초에 에단의 옷 가방이라고 해도 짐 자체를 거의 내가 쌌었으니 어디에 뭐가 있는지는 쉽게 찾아낼 수 있었고.

         

        대충 갈아입을 옷과 속옷, 그리고 수건을 꺼내 차곡차곡 쌓아둔 후, 에단이 벗으면서 들어간 옷가지들도 클린 마법으로 세탁하면서 공간이 난 짐가방 안쪽에 정리해두었다.

         

        다른 사람의 눈치 볼 것 없이 클린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여러모로 편리하긴 하네. 예전에는 혹시라도 들킬까 봐 유일하게 마법 사용이 허락된 주방에서만 썼었는데.

         

         

        “이 정도로 준비해서 가져다 놓으면 되려나.”

         

         

        저녁 식사는 아까 마차 안에서 보존식으로 적당히 때웠고, 이제 와서 다시 여관 밖으로 나갈 일은 없을 테니 바로 잠옷으로 갈아입혀도 되겠지.

         

        그리고 에단이 씻고 나오면 바로 나도 씻어야 하니까 내가 입을 옷도 미리 꺼내놓고.

         

        그렇게 두 벌의 갈아입을 잠옷 세트를 세팅해놓고 난 후, 욕실로 이어지는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평소처럼, 욕실과 방 사이에 있는 탈의실에 갈아입을 옷을 내려놓기 위해.

         

         

        “에단 도련님, 갈아입으실 옷은 탈의실 욕실 문 앞에….”

         

        “…메, 메이드? 가, 갑자기 욕실에는 왜 들어와?”

         

        “……아.”

         

         

        …맞다.

         

        여기 블랙우드 저택 아니었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꺄아악! 메이드는 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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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id of the Lout Prince

I Became the Maid of the Lout Prince

망나니 공자의 메이드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transmigrated into a character from my favorite game in my previous life. Moreover, as the character I despise second most in the game. (Not a wasteman) The cover was designed by Deep Dark Wolf, and the typography was done by 유일유화 (Yu Ilyu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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