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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9

       『절망 새기는 올가미』는, 크라운홀 공략을 위해 다방면으로 작전을 진행하고 있었다.

       

       제국이 존속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황실 혈통의 ‘무조건적인’ 유능함으로부터 기인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호부 아래에서도 얼마든지 견자가 나올 수 있다. 세대를 거듭하다 보면 반드시 한 번은 돌연변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고위 흑마법사들은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었다. 타인의 영혼을 으깨서 발동하는 여러 사악한 비술을 사용하면, 수명은 수십 배까지 늘려놓을 수 있었으니까.

       

       역사적으로 여러 왕국이 흑마법사들의 손에 멸망의 기로에 접어든 것은, 그들이 취약한 시기를 노려오기 때문이었다. 우둔한 왕, 자존심만 높은 왕, 무능한데 의욕이 넘치는 왕. 

       

       그런 시기에 찌르고 들어오는 칼날은 막아낼 수가 없는 법이다.

       

       하지만 제국은 다르다. 그들은 ‘무능한 황손’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듯 보였다. 태어나는 황손들은 모두 천재였으며, 성격적인 결함이 있을지언정 무능했던 적은 없었다.

       

       혈통의 힘인가? 그들의 금발은, 그토록 위대한 형질을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아니다. 황실의 씨를 도둑질해서 아이를 만들어봐도, 그들은 금발과 청안을 가지고 태어났을 뿐 재능을 갖고 태어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그 유능함의 비밀은 수도 크라운홀에 있을 것이다. 

       

       여신의 축복인가, 어떤 고대 아티팩트의 작용인가, 아니면 알려지지 않은 대마법사의 비술인가. 모른다. 모르지만, 그것이 반드시 존재하며, 크라운홀의 중심── 황실 구역에 숨겨져 있다는 것은 정황상 확실하다.

       

       부술 수 있다면. 혹은, 그것을 가져올 수 있다면⋯⋯.

       

       수천 년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제국을, 마침내 기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서로 간의 협력이 드문 흑마법사들이었지만, 제국 붕괴라는 단어가 주는 기대감은 너무나도 컸다. 어느 정도 세력을 투자해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그렇기에 『절망 새기는 올가미』는 다른 네임드 흑마법사들의 지원을 받아, 크라운홀 습격과 탈취를 목표로 여러 계획을 추진할 수 있었다. 

       

       시민들을 살아있는 스파이로 만드는 마법 또한, 다른 네임드 흑마법사가 보내 준 선물이었다. 그는 이 선물을 적절하게 잘 이용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멋대로 쥐락펴락할 수 있는 얼간이와 접선한다. 귀족이어야 일이 편할 테고, 탐욕적이고 하반신으로 생각하는 놈이면 최적이다. 

       

       그리고 남을 멋대로 조종할 수 있는 아티팩트를 미끼 삼아, 영향력을 빌려 크라운홀에 마법을 퍼트리는 것이다.

       

       계획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정보를 입수했으며, 앞으로도 유의미한 정보를 기대해 볼 수 있었다. 또, 이제는 한 발짝 더 나아가 볼 수도 있을 것이었다.

       

       최면에 걸린 이들을 이용해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사방에서 갑작스러운 테러가 일어난다면, 대단히 당혹스러울 테지⋯⋯.

       

       

       『절망 새기는 올가미』는 이번 일을 위해서 쓸만한 놈들 셋을 자작에게 붙였다. 호위이자, 감시이자, 사실상 무능한 자작 대신에 일을 제대로 끌어나가는 사령탑이었다.

       

       셋 모두 흑마법사였으며, 전원이 영혼을 연료로 사용할 수 있는 우화급의 강자였다. 

       

       그중에서도 한 명은 본신의 실력이 우화의 영역에 다다라 있었다. 이미 우화를 사용할 수 있는 상태에서, 타인의 영혼을 희생해 증폭한다면. 그 위력은 같은 단계의 경지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

       

       무엇보다도 석상.

       

       최면을 거는 기능은 석상 표면에 새겨 둔 마법으로 인한 부수적인 효과일 뿐이다. 진정한 의미는 석상 그 자체에 있었다.

       

       마력 전도율이 높은 귀금속에 마법을 새기지 않고, 투박한 석상에 새겨낸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유사시에는, 석상의 힘을 쓰면 된다.

       

       그러니 저택에 불청객이 찾아왔을 때, 그들은 긴장하지 않았다.

       

       “저건 『꼭두각시』 로레이다. 그리고 저건⋯⋯ 정보국의 요원인 것 같은데. 가슴 죽이는군.”

       

       “요원은 제법 치는 것 같지만, 저 비실비실한 남자 녀석은 별거 없네. 세 합이면 죽일 수 있겠어. 그리고 저 꼬맹이는⋯⋯ 시종인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데.”

       

       “꼬맹이? 꼬맹이가 어디 있다는 거냐? 쟤? 너 인마, 저 정도 가슴더러 꼬맹이라고 부르는 거면, 대체 얼마나 큰 걸 좋아하는 거냐고.”

       

       농담까지 나눌 여유가 있었다. 적들은 넷이었지만, 주의해야 할 녀석은 둘뿐이었으니까. 우화의 영역에 다다른 흑마법사는 활시위를 매만지면서 목소리를 내리깔고 말했다.

       

       “조용. 자작이 당하면, 강하해서 습격한다. 한 명만 남기고 모조리 죽인다.”

       

       “예예, 제가 부수고 내려갑죠.”

       

       쌍검사는 침을 탁 뱉고는, 허리춤에서 칼을 뽑았다.

       

       촤자자작-! 우르르!

       

       쌍검사가 바닥을 부수며 강하했다. 그 시점까지만 해도, 흑마법사들은 불청객들을 단숨에 정리하고 끝낼 수 있을 줄 알았다. 여유가 남는다면 생포한 뒤에 즐겨 볼 생각도 했다.

       

       하지만, 트윈테일 소녀의 손에서 형언할 수 없는 섬광이 번뜩였을 때.

       

       “이, 건⋯⋯ 자색 마탑의⋯⋯!!”

       

       그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흑마법사인 궁수가, 무언가 눈치챘다는 듯한 유언과 함께 반으로 ‘지워지고’ 나자. 그들은 이번 일이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 중에는 괴물이 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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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깜빡여서 초점을 잡았다. 분명, 쌍검을 찬 녀석이 낙하하면서 칼을 휘둘렀고⋯⋯ 급한 대로 마법을 날렸다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앞을 핑발레즈가 막아서고 있었다. 

       

       “너⋯⋯.”

       

       핑발레즈의 팔뚝이 베여 피가 흐르고 있었다. 출혈량을 보면, 뼈가 드러날 정도로 깊이 베인 것 같았다. 

       

       그녀는 사슬을 불러내서 양팔에 둘둘 감으며, 뒤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괜찮습니까? 다친 곳은?”

       

       “⋯⋯덕분에.”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내가 마법사가 아니라 전사였으면 유리 랜스터가 다칠 일이 없지 않았을까. 아니면, 즉각적인 방어 마법이라도 준비하고 다녔더라면.

       

       하지만 지금은 이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었다. 눈동자를 쓱 움직여서 전장의 상황을 파악했다.

       

       근육질에 커다란 대검을 등에 메고 있는 놈 하나.

       

       호리호리하게 생겨서 쌍검을 차고 있는 놈 하나.

       

       그리고 활을 찬 놈이⋯⋯ 죽었군. 자색 마탑주 유나의 요격에 그대로 정신이 갈려 나가 버린 모양이다. 침을 질질 흘리면서 엎어져 있었다.

       

       설마하니 자색 마탑주가 섞여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겠지. 이 싸움은 이미 우리의 승리였다. 비대칭전력이 있으니까. 

       

       실제로 쌍검을 찬 녀석이 식은땀을 흘리면서 활 찬 놈의 시체를 곁눈질했다. 

       

       “뭐야, 죽은 거야⋯⋯? 뭐냐고, 제기랄⋯⋯! 왜?!”

       

       “⋯⋯⋯⋯.”

       

       생각해 보자. 마탑주가 마법을 갈기면 이대로 전투는 끝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정보가 필요했다. 

       

       정황상 자작은 빈껍데기일 확률이 높으니, 저 습격자 녀석들을 제압하는 쪽이 유의미한 정보를 얻어낼 수 있을 터. 놈들을 심문하든가 해서 정보를 뽑아내야 한다.

       

       그래서 물어봤다.

       

       “마탑주님, 혹시 정보 남기면서 제압하실 수 있나요?”

       

       “음⋯⋯.”

       

       고민하는 시점에서 아웃이다. 힘 조절이 잘 안되는 마탑주의 특성상, 기껏 잡아놓고는 남는 게 없을 수가 있었다. 뇌가 깨끗하게 표백되면 아무리 심문을 해도 정보를 건져낼 수가 없으니까.

       

       말하자면 조준이 문제였다. 대포를 쏠 건데, 머리가 산산조각이 나지 않게 잘 노려서 쏴야 한다. 그러니.

       

       “발을 확실하게 묶어 두면 가능하죠?”

       

       “응. 그, 그래 주면. 깔끔하게, 사지만 지워낼게. 하, 하지만 누구라도 위험해지면 바로 쏠 거야.”

       

       확인했다.

       

       “후배님, 대검 쓰는 쪽은 제가 단독으로 상대할게요.”

       

       “⋯⋯마법사가 전위 없이 단독으로 싸운다는 말입니까? 『꼭두각시』 로레이.”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요원님. 자신 있어서 맡는 거니까. 저 남자는 당신만큼 강해 보이지는 않거든요.”

       

       “그렇다면, 쌍검 쪽은 저와 미친 마법사가⋯⋯ 2인 1조로 제압, 또는 사살하겠습니다.”

       

       배분이 끝났다. 얼굴흉터 선배는 대검쟁이에게 견제용 마법을 퍼부으며 자리를 옮겼고, 핑발레즈는 쌍검사에게 달려들었다. 

       

       사슬 틈으로 흘러나오는 피가 눈에 자꾸만 밟혔다. 

       

       나는 이를 악물고 마법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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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검을 든 흑마법사는 로레이를 노려봤다. 사전에 전해 받은 요주의 인물 목록에 포함되어 있어, 그녀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꼭두각시』 로레이⋯⋯ 이름은 많이 들었지. 던전 탐사 의뢰를 주로 한다면서?”

       

       “맡길 탐사 의뢰가 있나요? 하지만, 의뢰 수주를 하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은데.”

       

       능청스러운 로레이의 대답에, 흑마법사는 대검을 쥐고 상단세로 들어 올렸다. 

       

       “모험가네 뭐니 하는 얼뜨기들이 용병보다 상대하기 편해. 너희는 골렘과 드잡이질이나 하며 떵떵대는 족속들이니까. 사람을 죽여본 적은 있나?”

       

       “당신 생각보다는 많을 텐데요.”

       

       “직접 확인해 보도록 할까. 번제(燔祭), 『타오르는 정신방벽』-!!”

       

       끄아아아아아악-!

       

       대검에 저장된 가엾은 영혼 하나가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갈가리 찢겨나갔다. 새까맣고 진한 마력이 번져나가고, 흑마법사는 그것을 이용해서 마법을 완성시켰다.

       

       흑마법사의 눈동자에 새까만 불꽃이 일렁였다.

       

       “⋯⋯그건, 적탑의 정신 보호 주문이군요.”

       

       “그래. 정신에 해를 가하는 모든 시도를 태워내는 마법이다. 『꼭두각시』 로레이⋯⋯ 별명만 봐도 뻔하지. 남의 신체를 제멋대로 조종하는 환상 마법을 사용할 것 아니냐?”

       

       붕붕. 커다란 대검이 공기를 가르며 위협적인 소리를 내었다.

       

       “자색 마탑의 마법사는, 사냥하기 정말 편하단 말이야⋯⋯. 영혼 몇 개만 있으면 이렇게 간단하게 막아낼 수 있으니까-!!”

       

       “『분산하는 환영』.”

       

       쿵쿵쿵. 육중한 덩치로 돌격해 오는 흑마법사에게 맞서 로레이는 침착하게 영창했다. 정신 간섭이 먹히지 않으니, 빛을 일그러뜨려 시각에 작용하는 쪽의 마법을 사용했다.

       

       숙련도 높은 마법사의 환상에는 어색함이 없다. 로레이는 노력으로 쌓아 올린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정교하게 환상을 짜 올렸다.

       

       빛이 번져나가며 로레이의 모습이 세 갈래로 나뉘었다. 각 환영의 움직임이 자연스러웠고, 각자 다른 방향으로 동시에 움직였다. 흑마법사는 진짜와 가짜를 분간할 수 없었다.

       

       “흐읍!”

       

       부우웅-!

       

       대검이 환영 하나를 반으로 갈랐다. 

       

       쐐애액-! 팅!

       

       로레이가 틈을 노려 단검을 투척했다. 그러나 흑마법사는 갑옷 전체에 마력을 흘려 넣는 것으로 막아냈다. 그는 대검으로 또 하나의 환영을 베어내며 말했다.

       

       “내 마력이 바닥나는 걸 기다리고 있는 거라면 오산이다. 내가 대검에 저장해 둔 영혼은 열 개! 이거면 하루 종일도 싸울 수 있어. 그 전에 네 목이 떨어질 테지⋯⋯ 만!”

       

       “⋯⋯⋯⋯.”

       

       마력을 낭비하다시피 쏟아붓는 흑마법사에게는 약점이랄 게 존재하지 않았다. 효율을 위해 노력하고 연구하지 않아도, 출력을 높이는 것만으로도 간단하게 승기를 잡는다.

       

       타인의 영혼을 불사른다는 악업, 고작 그것 하나를 감수하는 것만으로도 이토록 막대한 힘을 다룰 수 있다.

       

       그렇다면 거리낄 이유가 대체 어디에 있다는 말이냐.

       

       흑마법사는 대검에 마력을 한껏 불어넣었다. 칼날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짙은 마력이 대검을 덧씌웠다. 예리함도 정교함도 없지만, 사람을 너무나도 간단하게 부술 수 있으리라.

       

       환상은 더 이상 남지 않았다. 저기서 멍하니 서 있는 로레이가, 본체이리라. 흑마법사는 로레이를 향해 대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 앞에서, 로레이는 조용히 손가락을 들었다.

       

       “하나, 정정해 드리자면.”

       

       “죽어라──!!”

       

       휘익- 콰아아아앙!!

       

       대검이 떨어져 내렸다. 로레이의 한 뼘 옆에. 엉뚱한 바닥에.

       

       흑마법사의 뺨에 식은땀이 흘렀다.

       

       “⋯⋯뭐, 냐. 나는 분명⋯⋯!”

       

       “정신에 해를 가하는 시도를 막아내는 주문, 이랬나요? 먹힐 리가 없죠. 『꼭두각시』는 무언가를 빼앗거나 하는 마법이 아니니까.”

       

       감각이, 이상했다. 팔이 자신의 팔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뭔가, 이상하게 비틀려 있었다. 분명, 정신 보호 주문을 걸어뒀을 텐데. 

       

       “무슨, 짓을 한⋯⋯!”

       

       “『꼭두각시』는, 상대방을 꼭두각시로 만든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꼭두각시는 당신이 아니라 나.”

       

       흑마법사는 대검을 뽑아 들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힘을 줘도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 대신, 눈앞의 로레이가 팔을 들어 올렸다. 로레이는 조용히 말했다.

       

       “이 마법은, 나를 선물해 주는 거니까.”

       

       “⋯⋯⋯⋯!!”

       

       흑마법사는 그제야 위화감의 정체를 알았다. 로레이는 자신의 육신의 감각을 ‘선물해 주었던’ 거다. 자신이 지금껏 움직이려고 했던 팔은, 자신의 팔이 아니라 로레이의 팔이었다.

       

       흑마법사는 빠르게 판단했다. 이 팔이 로레이의 팔이라면.

       

       “그렇다면⋯⋯!”

       

       그렇다면, 로레이의 팔을 움직여서 로레이를 때리게 하면 된다. 흑마법사는 팔을 움직여서 스스로에게 주먹을 날리게 했다. 

       

       퍼억-!

       

       “끅⋯⋯!”

       

       흑마법사는 스스로 자신의 안면을 때리고야 말았다. 로레이가『꼭두각시』를 풀어, 감각이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기 때문이다. 

       

       로레이는 웃었다.

       

       “자, 이 중에 어느 게 당신의 팔일까. 잘 생각하고 알려주세요.”

       

       “으, 으아아아──!!”

       

       지독한 심리전의 늪이었다. 언제, 어떻게 감각을 ‘선물 당할지’ 모른다. 지금 휘두르려는 것이 자신의 팔인지, 로레이의 팔인지 알 수 없다. 

       

       주먹을 앞으로 뻗었을 때, 자신의 팔로 로레이를 때리게 될지, 로레이의 팔로 자신을 때리게 될지 알 수 없다. 복잡하게 일그러진 혼란 속에서, 흑마법사는 로레이의 뜻대로 춤을 추었다.

       

       꼭두각시 연극이 끝난 자리에는, 자신의 얼굴에 연거푸 주먹을 꽂아 기절해 버린 흑마법사만이 남았다.

       

       로레이는 전투를 끝내고 기지개를 켰다. 무식한 놈이라서 간단하게 이겨 먹을 수 있었다. 자신의 감각을 조금이라도 갈고 닦은 녀석이었더라면 좀 더 복잡한 심리전이 필요했으리라.

       

       “그러면 어디, 후배님 쪽은⋯⋯.”

       

       로레이는 고개를 돌렸다. 쌍검사는 빛을 뿜으며 자폭하기 직전이었다.

       

       “?”

       

       ===============================================================

       

       으아아아아아아-!!

       

       “번제(燔祭), 『정신방벽 보강』, 『신체 강화』.”

       

       영혼의 비명이 울리며, 쌍검사의 몸에서 막대한 양의 마력이 넘실거렸다. 녀석이 몸에 두른 버프는 아주 기본적인 것이다.

       

       특별한 공정 없이 마력을 때려 박아서 퍼포먼스를 올리는 기술. 그렇기에 별다른 약점이 없었다. 깡 스펙으로 찍어 누르는 느낌이었다.

       

       “『트로이의 목마』, 『시간 인지 왜곡』, 『간지럼』⋯⋯.”

       

       이전부터 계속 놈의 정신에 마법을 쏴대고 있었지만. 기교를 부려서 정신방벽을 구축한 것이 아니라, 그저 물량으로. 흙 포대로 빼곡하게 쌓아 둔 느낌이라서 뚫어내기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집요하게 갉아대서 어쩌다 하나 통과되더라도.

       

       “⋯⋯흥, 통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놈이 머리를 한 번 털어내면 깨졌다. 녀석은 실시간으로 정신 세척을 진행 중이었다. 체급으로 찍어 누르니 손을 댈 방법이 얼마 없었다.

       

       “우화(羽化) – 『본망구속(本望拘束) : 전희(前戲)』.”

       

       차르르르르륵!

       

       유리 랜스터는 우화를 지속형으로 발현했다. 골렘을 부쉈을 때처럼 단숨에 사용하는 법 말고도, 이렇게 긴 텀으로 가져가는 응용법도 있었던 모양이었다.

       

       “흐읍!”

       

       휘이이익-!!

       

       유리 랜스터가 팔에 휘감은 사슬을 휘둘렀다. 은빛 사슬이 반원을 그렸고, 사슬에 걸린 테이블과 의자가 단숨에 박살 나 비산했다.

       

       부서진 잔해 사이에 쌍검사는 없었다. 놈은 바닥에 붙다시피 자세를 낮추고, 바퀴벌레처럼 낮게 쏘아졌다. 

       

       파앗-! 카가가강!

       

       칼날이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위로 치솟았다. 유리 랜스터는 사슬을 휘감은 팔뚝으로 검격을 흘려내며, 안면을 노리고 바닥을 쓸어내듯이 발차기를 날렸다.

       

       빠악!

       

       쌍검사가 발차기에 맞고 몸이 붕 떴지만, 나는 놈이 한쪽 손을 들어 올려 막아내는 걸 봤다. 유효타가 아니었다. 저거, 유리 랜스터의 공격을 이용해서 일부러 몸을 띄운 거다.

       

       “유리, 막아-!”

       

       “헷!”

       

       쐐애애액! 카앙!

       

       쌍검사의 몸이 공중에서 급격하게 회전했다. 두 개의 칼날이 믹서기처럼 돌아갔고, 유리 랜스터의 쇠사슬이 잘려 나가며 피가 튀었다. 

       

       “이, 이 자식이⋯⋯!!”

       

       마탑주가 손가락을 겨눴다. 우우웅. 정보를 도려내는 섬광이 손가락 끝으로 모였지만, 쌍검사는 마탑주 쪽을 경계하고 있었다는 듯. 사선상에 유리 랜스터가 위치하도록 끊임없이 몸을 움직였다.

       

       여기서 누가 제일 위험한지 알고 있는 거다. 

       

       변수를 창출해 내야 한다. 나는 홀로그램을 소환했다. 

       

       “『홀로그램 : 집사 군단』!”

       

       “이게 뭐 하는 장난⋯⋯ 큭?!”

       

       쌍검사는 달려드는 홀로그램을 환상이라고 여겨 무시하려 했으나, 집사 펀치에 한 대 맞고서는 이들에게 물리력이 있음을 깨달았다. 

       

       “무슨 이상한 마법을⋯⋯ 꺼져!”

       

       촤자자작!

       

       쌍검사의 몸을 붙잡고 늘어지던 홀로그램들은 순식간에 난자당했다. 하지만 한 턴을 벌었다.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기존의 환상 마법은 잘 먹히지 않았다. 마력을 때려 박아서 체급으로 막아내고, 뚫리더라도 즉시 정신 세척을 걸어버렸으니까.

       

       매 초마다 디버프 해제 물약을 마셔대는 적에게는, 아무리 디버프를 묻혀도 소용이 없던 거다.

       

       『답문승계』처럼 다른 사람들의 믿음을 끌어올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충분한 억제력을 발휘할 수 있었겠으나, 여기에는 믿음을 빨아먹을 불특정 다수의 약한 놈들이 없었다.

       

       어쩐지 얼굴흉터 선배가 환상 마법을 그렇게 음해하더라니, 카운터를 만나면 골치가 아프구나.

       

       다른⋯⋯ 마법이 필요했다.

       

       TRPG를 위한 마법 말고, 다른 것.

       

       나는 이세계 전생을 한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남을 해치려는 생각을 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직접적으로 살해를 위한 마법을 떠올린 적도 없고.

       

       재미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랬다. 나는 마탑주에 의해 보호받고 있었으니, 그런 흉흉한 마법에 굳이 발을 들여놓지 않아도 괜찮다⋯⋯고, 안일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게 필요할 것 같았다. 사람 대가리를 날리는 마법.

       

       유리 랜스터의 아름다운 몸에 상처가 더 늘기 전에⋯⋯ 저 새끼를 뚫어버릴 수 있는 마법 말이다.

       

       마력을 때려 박은 정신 방벽이 문제라면, 일 점 집중으로 뚫는다.

       

       정신 세척이 문제라면, 단 한 번에 무력화시키면 된다. 마탑주의 마법처럼.

       

       만든다.

       

       마법을 나선으로 꼬았다. 끝은 예리하고도 뾰족하게, 방벽을 뚫어내고 뇌 깊숙한 곳까지 닿을 수 있도록.

       

       마력에는 감정을 담았다. 내게는 데이터가 있다. 크툴루 세션에 담갔다 빼내진 3인조의, 절망하고 괴로워하던 감정. 2황자의 실연의 감정. 그 정신적인 고통을 모조리 욱여넣었다.

       

       “너, 뭘 하는⋯⋯ 이런 제기랄!”

       

       “마법사님, 제가 지킬 테니까 하던 거 하십시오! 그게 뭐든 간에!”

       

       집중하자. 섬세하게 깎아내라.

       

       단순하지만 효율적인 화살 한 발이다. 그러나 시위를 튕길 필요는 없다. 이건 사람의 마음을 잡아먹기 위해서, 집요하게 먹잇감을 쫒아갈 거다.

       

       “발밑에 드리운 그림자, 옷장 틈새로 엿보는 어둠, 새까만 밤의 고독.”

       

       마음을 부수는 새까만 화살.

       

       “『파심현전(破心玄箭)』.”

       

       쏘아 죽였다.

       

       ===============================================================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황자님.”

       

       “아, 그렇군. 그래서⋯⋯ 마음이 박살 난 흑마법사가 자폭을 결심하는 바람에 저택의 반이 날아가는 폭발이 일어났고. 다행히도 자색 마탑주가 폭발 방향을 뒤틀어서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소란을 듣고 달려온 수도기사단에 의해 체포되었고⋯⋯ 그걸 지금 내가 빼내 준 거다?”

       

       “그렇죠.”

       

       2황자 이리드는 잠깐 눈을 감고 고민하다가,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엎드려라.”

       

       “옙.”

       

       나는 조용히 머리를 박고 엎드려뻗쳤다.

       

       그래도 얻은 게 없는 건 아니었다. 자작을 비롯한 인질도 챙겼고, 증거도 챙겼고, 최면 어플도 챙겼고, 수상하고 재미있는 물건도 챙겼다만⋯⋯.

       

       지금 말하면 화를 가라앉히는 데 공적이 전부 소모될 것 아니냐. 나는 칭찬과 포상이 받고 싶었다. 2황자의 화가 풀리면 슬쩍 늘어놓도록 하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거의 뭐 사일런트 힐이네요. 안개가 정말로 짙습니다. 사람 하나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좋은 월요일입니다 마이 프렌즈. 이번주도 같이 으쌰으쌰 해 볼까요!
    다음화 보기


           


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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